통일 | [연재 60]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60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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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9 13:2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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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60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60) 민족단합 5개방안 제시>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1987년 군중시위 "호헌철폐, 독재타도"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60)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민족단합 5개방안 제시
1980년대 중엽에 공화국정부의 주동적인 조치에 의하여 북남대화가 새로이 열리고 북남관계의 개선에 유리한 전제가 마련되였으나 남조선당국자들의 계속되는 분렬주의정책과 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얼마 못 가서 긴장상태가 다시 격화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대화상대방인 북을 걸고 대결을 격화시킴으로써 분렬을 지속시키고 저들의 정치적위기를 수습하여 장기《집권》야망을 실현하려 하였다.
전두환역도는 특히 1988년 2월에 《대통령》임기가 끝나게 되는것과 관련하여 《평화적정권교체》의 미명하에 《대통령간접선거제》로 되여있는 현행파쑈《헌법》에 의한 재집권을 획책하였다.
전두환역도의 재집권책동은 파쑈독재를 반대하고 《직선제개헌》을 요구하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강력한 항거에 부딪쳤으며 야당의 공세에 몰리게까지 되였다.
제1야당이였던 신민당은 《직선제개헌》을 위한 원내투쟁을 벌리며 재야민주세력과 함께 1 000만명 개헌서명운동을 벌리였다. 그들은 1986년 2월 개헌추진위원회 총본부를 내오고 시, 도별지부를 결성하기 위한 집회들을 조직하였다. 이 집회들에는 3월 11일 서울에서 7 000여명, 3월 23일에는 부산에서 4만여명, 4월 5일에는 대구에서 20만여명, 4월 19일에는 대전에서 10만여명, 4월 27일에는 청주에서 4만여명, 5월 3일에는 인천에서 5만여명, 5월 10일에는 마산에서 5만여명, 5월 31일에는 전주에서 3만여명이 참가하였다.
이에 당황한 전두환일당은 야당과 재야민주세력의 개헌투쟁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한편 야당의 일부 사람들에게 《의원내각제》에 의한 《정부》의 《요직》을 주기로 하고 꾀여냄으로써 신민당의 기본세력이 이를 반대하여 통일민주당으로 분당되게 하여 야당세력이 약화된 기회에 현행파쑈《헌법》에 의하여 《정권을 이양》하고 올림픽경기를 치른 다음에 《합의개헌》을 한다는 이른바 1987년 4월 13일 《중대결단》을 내린 《특별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남조선에서 광주사태이후 친미독재《정권》을 유지하기에 골몰하여온 미국이 필리핀에서 마르코스친미독재정권의 붕괴에 이어 남조선이 제2의 필리핀으로 되는것을 막기 위하여 남조선의 파쑈일당에게 안겨준 《여야타협》전술의 산물이였다.
그러나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이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로태우역도는 미국의 새 각본에 따라 그해 6월 29일 항쟁에 떨쳐나선 인민대중앞에서 하는수없이 무릎을 꿇고 《직선제개헌》과 《사면복권 및 구속자석방》, 《언론기본법 개정》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안》이라는것을 내놓았다.
죽어도 《호헌》에서 일보도 양보할수 없다던 파쑈분자들이 《직선제개헌》과 《민주화》를 《공약》하게 된것은 그들의 처지가 그만큼 어렵게 되였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그러나 전두환, 로태우일당은 《6. 29선언》을 발표한 후 《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 리행을 끌었을뿐아니라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애국적진출에 대하여 《종전보다 더 강력히 다스리겠다.》고 위협하여나섰다. 한편 이들은 《올림픽의 안전개최》라는 구실하에 미국으로부터 《F-16》전투폭격기를 비롯한 새로운 전투기술기재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실전배치하고 북의 《기습남침》에 대한 《다각적인 대비태세확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도전해나섰다.
이러한 남조선사태의 발전은 남조선인민들의 운명뿐아니라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전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였다.
여기에서 남조선인민들은 남조선에 군사파쑈《정권》을 그대로 두고서는 북남대화도 통일도 실현할수 없다는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1987년 11월 11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중앙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련합회의를 열고 《남조선의 현 정세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당면대책에 대하여》를 토의하고 조성된 사태하에서 북과 남이 진정으로 힘을 합치고 공동으로 노력한다면 능히 현 정세를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하게 전변시킬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민족단합 5개방안을 담아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 인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민족단합 5개방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하여서는 우선 남조선에서 진정한 민주정권이 출현하여야 한다.
민주정권을 세우는것은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튼튼한 담보이며 북과 남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민족적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첫 출발점이다.
하루밤사이에 민주화의 《옹호자》로 탈바꿈한 미국이나 군사파쑈세력이 이 문제를 해결할수는 없으며 자진하여 민주주의를 선사하리라고 기대하는것은 환상이다.
남조선인민들은 군사파쑈세력의 폭력앞에 굴하지 말고 그들이 내드는 가짜민주화, 가짜문민정치에 기만당하지 말아야 하며 민주화투쟁을 끝까지 벌려 민주정권을 기어코 쟁취하여야 한다.
둘째로,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하여서는 대결을 반대하고 서로 단결을 도모해나가야 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유일한 길은 북의 사회주의력량과 남의 민주주의력량이 단결하는데 있다.
북과 남사이에 사상과 제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서로 단결하고 통일하는데 장애로 되여서는 안된다.
북과 남사이의 단합을 도모하는데서 가장 긴절한 문제는 《반공》을 배격하는것이다.
남조선인민들은 《용공세력척결》을 떠들면서 민주세력을 공격하고 《반공》소동으로 동족사이의 대결을 격화시키는 군사파쑈세력의 책동을 철저히 저지파탄시켜야 한다.
셋째로,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하여서는 남조선에 민주정권을 세우는 기초우에서 서로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대화가 없이는 북과 남이 서로 접근할수 없으며 북남관계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수 없다.
우리는 대화와 접촉을 바라는 남조선의 모든 인사들에게 아무때나 래왕의 문을 열어놓을것이며 북과 남으로 흩어져사는 가족, 친척들의 고통을 시급히 덜어주기 위한 주동적인 대책을 강구할것이다.
넷째로,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하여서는 다가오는 제24차 국제올림픽경기대회문제를 민족공동의 리익에 맞게 해결하여야 한다.
남조선에서 《반공》을 하지 않고 통일을 지향하는 민주정권이 서고 민주정권하에서 올림픽경기대회를 하게 되면 쌍방이 민족적단합을 도모하는 립장에서 공동주최문제를 신축성있게 협의해결할수 있을것이다.
다섯째로,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하여서는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험을 막고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긴급조치가 우선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전쟁으로 녹아날것은 조선인민뿐이며 덕을 볼것은 외세뿐이다.
우리는 핵전쟁에 절대로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관하게 견지하여온 평화애호적립장으로부터 출발하여 남조선에 민주정권이 서면 그와 지체없이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험을 막고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긴급대책을 공동으로 강구해나갈것이다.
그러한 긴급대책으로서 우선 시험적으로 최소한 제24차 국제올림픽경기대회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진행되는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잠정조치를 취할것을 예견하고있다. 평화를 위한 잠정조치에는 전연지대에서의 쌍방무력의 철수, 대규모적인 군사연습의 중지, 지상과 해상의 접촉구역에서 상대방을 향한 총포사격의 무조건금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의 중지, 중립국감시군에 의한 감시조직, 쌍방군사당국자사이의 직통전화개설과 같은 당면한 문제들이 포함될수 있을것이다.
편지에서는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 인민들은 굳게 단결하여 군사파쑈독재를 종식시켜야 하며 북과 남이 함께 손잡고 반드시 자주, 평화, 통일의 새 력사의 장을 펼쳐나갈데 대하여 호소하였다.
민족단합 5개방안은 조성된 남조선정세의 요구에 맞게 온 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갈 획기적국면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애국적발기로, 현실적대책으로 되였다.
하기에 민족단합 5개방안은 그 정당성과 현실성, 공정성으로 하여 내외동포들속에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남조선파쑈도당은 이에 불안을 느끼고 민족단합 5개방안을 담은 편지를 《불온편지》라고 하면서 강제압수하여 그것이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에게 가닿지 못하도록 방해하여나섰다.
그러나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은 민족단합 5개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면서 북과 남이 힘을 합치고 민족이 단합하여 련방제통일을 실현할것을 강력히 주장하여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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