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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59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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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04 18: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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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9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9) 동포애적인 수해구호조치와 그 견인력>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9)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동포애적인 수해구호조치와 그 견인력

 

 

1984년 8월말과 9월초에 내린 심한 폭우로 남조선강원도와 경기도, 경상남북도,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심한 물란리가 났다. 당시 남조선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수해에 의한 인명피해는 근 350여명에 달하고 리재민수는 20만 7 500여명, 파괴된 살림집수는 3만 6 700여채, 류실매몰된 논은 6만 7 000여정보, 피해입은 농작물은 5만 4 000여t에 달하여 생사의 엄혹한 사태가 빚어졌다. 이밖에도 6만m의 도로와 14만 9 000m의 제방이 류실되였으며 수해로 입은 재산피해액은 모두 771억 2 800여만원에 달하였다.

 

이 가슴아픈 소식에 접한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동포애적인 구호의 손길을 뻗치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낼 구호물자견본품을 보아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73(1984)년 9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지체없이 구호물자를 보내주어 그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덜어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으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교시대로 이 사업이 빠른 시일안에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이리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는 1984년 9월 8일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의 수해지역 리재민들에게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 의약품 14종에 759지함을 구호물자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남조선측이 최종집계하여 발표한 리재민수에 비추어볼 때 5인가족으로 계산하여 가구당 쌀은 약 250㎏(5가마니), 천은 약 17m 차례지는것으로 되며 세멘트는 약 3만동의 살림집을 건설할수 있는 량이다. 의약품도 수해지역에서 발생할수 있는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으로 쓸수 있는 량이다. 당시 미국이 준 《구호금》이 겨우 2만US$, 일본의 《구호금》이 10만US$에 불과한데 비하여 공화국정부의 구호물자는 금액으로 1 800만US$(당시 남조선돈으로 145억 6 380만원)에 이르는 실로 막대한 량이였다.

 

이것은 동족이 그 어떤 《우방》보다 비할바없이 가깝고 동포애가 《맹방》의 그 어떤 《지원》보다도 몇배나 더 값지고 뜨겁다는것을 뚜렷이 증시하고있다.

 

공화국정부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뜨거운 정성과 동포애가 담겨진 구호조치가 실현되게 되였으며 이 사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결정이 나온 때로부터 20여일동안에 성과적으로 결속되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공화국정부의 구호조치가 실현된것은 근 40년동안의 민족분렬사에서 처음 있은 일대 사변으로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견지에서뿐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의의깊은 일이였다.

 

이처럼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구호조치는 유감스럽게도 순탄하게 실현되지 못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1 800만US$에 해당되는 막대한 구호물자를 받으면서도 륙로로 하지 말고 바다로만 하자, 바다의 경우 항구는 한군데만 쓰자 등 이러저러한 구실을 붙여 장애를 조성하였다. 또한 말로는 《긴장완화의 창구》를 열려는 《희망》을 가지고 공화국의 구호조치를 받아들이겠다고 하고는 실현단계에서는 그것을 《위장평화공세》이며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하면서 《반공》대결을 고취하던 나머지 구호물자를 실은 북측의 차량과 선박들이 출발하게 된 때에는 《남진》의도를 드러내놓았다고 하면서 《비상경계》조치를 취하였다.

 

국제적으로 적십자사가 생기고 구호사업이 시작된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남조선당국자들처럼 구호조치를 두고 그렇듯 소동을 일으키며 그것도 구호받는 측이 구호하는 측에 그렇게까지 트집을 걸고 비방중상한 례는 일찌기 없었다.

 

하지만 하나의 겨레인 남조선인민들이 겪는 재난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공화국정부와 인민들의 숭고한 동포애와 성의있고 참을성있는 노력에 의하여 온갖 장애와 난관이 극복되고 구호물자가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가닿을수 있었다.

 

이렇듯 분렬의 장벽을 넘어 처음으로 구호물자를 주고받은것은 민족적화해와 단결의 촉진에서 중요한 전환적사변으로 되였다.

 

구호물자의 전달과정은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동포애는 사상과 정견보다도 우위에 놓이는 숭고한 감정이며 겨레들이 단합하려는 지향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수 없는 민족적념원이라는것을 산 현실로 실증하였다.

 

참으로 민족사에 길이 전할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동포애적인 구호조치의 실현에는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김정일동지의 온 겨레를 안아 보살피시는 뜨거운 사랑의 손길이 력력히 슴배여있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는 구호물자전달사업은 통일을 갈망하는 내외동포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으며 세계인민들의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이 동포애적조치를 계기로 북과 남사이에는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가 감돌고 전민족적범위에서 조국통일기운이 더욱 높아지게 되였다. 구호물자의 인도인수사업의 실현은 북남간에 끊어졌던 접촉과 대화의 재개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세계의 수십여개 통신, 방송, 신문들은 《북의 구호조치》, 《북조선의 인도주의적발기》 등의 제목으로 공화국정부의 구호조치를 앞을 다투어 전하였으며 미국신문 《워싱톤 타임스》지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기로 한 북조선의 이번 조치는 김일성주석의 크나큰 배려에 의해 취해진것으로 많은 소식통들이 전하고있다.》고 보도하였다. 판문점현지에서 구호물자인도인수정형을 본 한 외국기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조선수해지역 리재민들에게 보내준 구호물자량이 세계구조력사의 최고기록으로 될수 있은것은 김정일지도자의 품이 대해같이 넓으시고 인민을 위하시는 그분의 심장이 태양과 같이 뜨겁기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공화국정부는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숭고한 목적에서 새롭게 조성된 접촉과 대화분위기를 살리고 그것을 통일대화로 이어나가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취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1984년 10월 3일부 담화와 10월 29일부 편지를 통하여 11년동안이나 중단상태에 있는 쌍방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을 재개할데 대한 공화국정부의 립장을 밝히고 북남적십자 본회담이 중단된 때로부터 오랜 시일이 흘러간 사실을 고려하여 예비접촉을 가지는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실무적문제들에 대한 제안을 남조선측에 알리였다. 또한 북과 남사이에는 인도주의적문제뿐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하면서 경제분야에서도 자원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호상협조와 교류를 실현하기 위한 쌍방간의 접촉과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립장을 표명하였다.

 

이어 10월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당시) 부총리는 공화국의 립장은 어디까지나 북남합작과 단결로 통일을 이룩하자는것임을 밝히고 북남경제회담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담은 편지를 남조선의 《부총리》에게 보냈다.

 

북측의 대화제의는 구호물자의 인도인수를 통해 모처럼 마련된 좋은 분위기를 북남대화재개에로 이어놓아 북남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하고 통일의 길을 개척하려는 애국애족의 립장에서 출발한것이였다.

 

그리하여 1984년 11월 15일 판문점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첫 북남경제회담이 진행되게 되였다. 북측은 회담에서 이미 1972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시였으며 남조선측에서 받아들인바 있는 지하자원의 공동개발문제, 어업분야와 농업분야에서 서로 협조할데 대한 문제, 물자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 등을 실천에 옮길데 대한 구체적인 대책안을 내놓고 북과 남의 경제적합작과 교류를 통일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경제협력기구로서 《북남경제협력위원회》를 발족시킬데 대한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측은 북남경제회담을 무역상사대표단들의 회담처럼 여기면서 북과 남사이의 경제적합작이 아니라 무역이나 하자고 고집함으로써 회담앞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런 속에서 북남경제회담과 별도로 북남적십자회담이 진행되였다.

 

1984년 11월 20일 공화국의 제안대로 판문점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북남적십자본회담재개를 위한 북과 남의 적십자대표들의 예비접촉이 진행되였다. 이 접촉에서는 북측의 제의에 의하여 빠른 시일안으로 북남적십자회담 제8차회의를 서울에서, 제9차회의를 평양에서 가지며 이미 합의되여 토의하여오던 의제를 재개되는 북남적십자회담의 의제로 하기로 하였으며 대표단구성과 기타 절차문제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북남대화는 재개되였지만 북남의 군사적대치상태와 긴장상태의 격화로 하여 암초에 부딪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제2차 경제회담은 다음해로 연기되지 않을수 없었다.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은 1985년 1월에 연기개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미국이 《팀 스피리트 85》합동군사연습계획의 발표로 북남대화에 찬물을 끼얹음으로써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은 중단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후 북남경제회담은 1985년 5월과 6월에 2차, 3차, 9월과 11월에 4차, 5차회담이 진행되였지만 남측의 분렬주의적립장과 태도로 하여 전체 조선민족의 기대에 맞는 응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제2차 북남경제회담에서 북측이 내놓은 통일지향적인 경제기구인 북남경제협조공동위원회를 내오고 폭넓은 경제합작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제안에 대하여 남조선측은 무역거래나 하자고 주장하였으며 제3차 북남경제회담에서는 쌍방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남경제협조공동위원회를 구성할데 대한 북측의 제안에 하는수없이 동의를 표시하고는 그 합의서토의는 회피하였다.

 

북측이 제안한 방안의 기본사상은 합작과 교류를 다같이 진행하자는것이였다.

 

북남경제합작과 교류는 북과 남의 경제적잠재력을 리용하여 민족경제의 발전을 크게 촉진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주며 특히 무거운 군사비부담의 해소로 필연적으로 자본축적의 증가와 경제발전속도의 가속화, 인민들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올수 있는것이다. 이런 과정에 북남간의 불신과 대립이 점차 해소되고 민족적단결이 촉진되여 조국통일의 길을 열어나가는데서 새로운 전진을 보게 될것이였다.

 

그러나 남측은 교류를 먼저 하고 합작은 차후에 하자는 립장과 자세를 고집하면서 회담앞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선교류, 후합작》론은 같은 겨레의 합작과 교류를 나라와 나라들사이의 무역관계로 전환시켜 민족분렬의 현 상태를 유지하고 고착시키려는 분렬주의적립장이였다.

 

한편 북남적십자본회담은 1985년 5월 28~29일 서울에서 제8차회담, 8월 27~28일 평양에서 제9차회담, 12월 3~4일 서울에서 제10차회담이 진행되였다. 제8차, 제9차회담에서는 조국해방 40돐을 계기로 각기 적십자단체책임자를 단장으로 하여 예술단 50명, 고향방문단 50명, 기자단 30명, 수행인원 20명 총 151명으로 적십자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을 구성하여 방문지를 평양과 서울로 하고 3박4일간 체류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와 관련하여 채택한 합의서를 재확인하였다.

 

그리하여 북과 남의 적십자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은 9월 20일 오전 판문점을 통과하여 각각 평양과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것은 국토가 량단된지 40년만에 처음 있은 일로서 온 겨레에게 기쁨을 주었으며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기운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적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평화적통일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공화국정부의 애국애족의 립장과 성의있는 노력의 귀중한 결실이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동포애적인 원호와 그를 계기로 하여 마련된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의 전과정은 분렬의 장벽을 허물고 자유롭게 오고가면서 인도주의적문제와 경제문제를 해결하여 그것을 통일의 문을 여는 계기로 삼으려는 공화국정부의 통일의지와 립장을 내외에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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