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연재 56]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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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31 19:0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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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6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6)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6)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
해외에서 살고있는 동포들도 통일의 주체적력량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지난날 민족수난의 비극속에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 이국의 하늘아래서 살아가는 해외동포들에게 있어서도 조국통일소원은 다를바 없다.
수많은 동포들이 해외에 이주하여 살게 된 조건과 조국통일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지향을 고려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에는 민족통일정부에 북과 남의 대표들과 함께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대표들을 참가시킬것이 명기되여있다. 그러므로 해외동포들과의 단합을 실현하는것은 련방제방식의 통일조국창건을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해외에서 조국의 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수백만 동포들을 통일력량으로 묶어세워 세계도처에서 조선의 통일을 지지성원하는 국제적지원을 확대해나갈수 있기때문이다.
미국과 전두환일당이 《두개 조선》을 추구하고 통일에 역행하는 정책에 매달리는 조건에서 민족대통일전선을 형성하는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로 나섰다.
북과 남, 해외의 모든 통일력량을 망라하는 민족대통일전선이 미국과 전두환일당의 방해책동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조건에서 공화국정부는 그 돌파구인 북과 해외의 련대부터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1980년대초에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에 통일력량의 련대실현을 위한 대화와 접촉이 활발히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공화국정부는 북과 해외의 련대를 실현하기 위하여 해외민주인사들과 종교단체들에 편지를 보내여 다각적인 접촉과 대화, 협상을 진행할것을 제기하고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다.
이러한 가운데 1981년 6월 서부도이췰란드(당시)에 있는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회장일행이 평양을 찾아왔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이들사이의 접촉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한 공동의 협의기구를 조속히 마련하기 위하여 해내외동포들사이의 다각적인 대화를 실현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에 따라 우선 조국통일에 관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를 마련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에 기초하여 대화를 위한 준비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였다.
회의가 열리게 된다는것을 알게 된 남조선당국자들은 회의를 파탄시켜보려고 별의별짓을 다하였다. 그들은 200여명의 행동대를 무어 아메리카지역과 서부도이췰란드(당시)에서 해외동포들이 회의에 참가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매수하도록 하였고 회의장소를 내주지 못하게 하는 한편 회의가 열리게 되는 경우에는 시위와 테로, 랍치 등 여러가지 방해책동을 벌리도록 하였다.
▲제1차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 자료집
분렬주의자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속에서도 1981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첫 력사적인 대화가 개최되였다.
회의에는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대표 45명, 방청 30여명이 참가하였다. 이는 36년간이라는 긴 분렬력사에 처음 있는 일이였다.
회의는 통일의 열망과 동포애의 정 넘치는 가운데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중심의제로 하여 진행되였다.
회의에서 진행된 연설과 제기된 연설들에 대한 광범한 질문과 토의를 통하여 동포단체대표들은 련방국가창립방안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조국통일방안으로 지지환영하였으며 반외세, 반파쑈민주화투쟁과 련공통일의 길에 나설 결의를 표명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이 외세의 희생물이 되여 영구분렬될수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나라의 통일은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리념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단결로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대하여, 자주, 민주, 평화, 중립적인 련방국가를 창설하는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도로 된다는데 대하여 합의하였다.
대화참가자들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민족사의 소망과 조성된 내외적조건을 정확히 구현한 통일강령》으로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해내외 전체 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여 민족의 유일한 출로인 련방국가를 세우기 위한 통일의 길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각계 동포들의 광범한 접촉과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대화의 마당을 더욱 넓혀나갈것을 호소하였다.
회의는 해내외동포들이 민족적리념에 기초하여 얼마든지 단결할수 있으며 단결하면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훌륭한 일을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통일을 열망하는 온 겨레에게 새로운 용기와 신심을 북돋아주었다.
1982년 12월 3일부터 5일까지 기간에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제2차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가 진행되였다. 제1차 대화는 주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간의 대화였다면 제2차 대화부터는 그리스도교신자뿐아니라 각계층 동포들이 참가한 범동포적인 대화로 발전하였다.
이 대화에는 공화국북반부를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 온 100여명의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회의에서는 조국통일운동에서 반미자주화로선을 구현할데 대한 문제와 민족주체적힘으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데 대한 문제가 중심문제로 토의되였다.
회의에서 대표들은 일치하게 공화국정부의 반미자주화로선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관철을 위하여 모든 힘을 기울일데 대한 결의들을 피력하였다.
회의에서는 전두환역도의 《민족화합민주통일론》의 기만성과 분렬주의적본질을 폭로규탄하면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그 조속한 실현을 위하여 준비위원회를 내오며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의 대화의 폭을 넓혀 대민족회의의 전제를 마련할데 대하여 견해의 일치를 보았으며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합의하였다.
1.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시키고 자주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2.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독재를 철페하고 민주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3. 나라의 영구분렬책동을 배격하고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보장하여야 한다.
5. 통일과 단결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의 대화와 공동행동을 더욱 확대발전시켜야 한다.
회의에서는 민족의 자주권과 민주주의와 나라의 통일을 위한 애국운동을 더욱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음부터는 북과 해외의 광범한 동포들을 망라한 북과 해외동포간의 폭넓은 범동포대화를 쌍방이 편리한 지역에서 진행할데 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회의에서는 그밖에 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세계 여러 나라 국회, 정부와 정당, 단체들, 세계그리스도교단체들, 미국대통령과 일본수상에게 보내는 편지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였다.
이와 같이 거듭되는 접촉과 대화, 협상을 통하여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에는 신뢰의 정이 두터워지고 통일운동에서의 련대가 실현되게 되였다.
공화국정부는 북과 해외동포들사이의 폭넓은 대화를 정상화하기 위한 필요한 기구를 내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1984년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사이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북과 해외동포들간의 범동포대화가 열리고 비상설협의체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되였다.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됨으로써 해외의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있는 동포들간의 단합을 도모하고 그들을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투쟁에 적극 불러일으키며 통일운동의 자연발생성과 분산성을 극복하고 운동을 통일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게 되였다.
여러 대륙의 해외동포들이 민족자주의 리념에 기초하여 하나의 통일애국력량으로 결속되고 북과의 련대가 실현되게 된것은 북과 남, 해외의 민족대통일전선형성에서 하나의 주추돌이 마련된 뜻깊은 사변으로 되였다.
1980년대에 북과 해외사이의 련대가 실현되고 민족대단합의 서장이 펼쳐지게 됨으로써 온 겨레의 소망인 련방통일국가창건의 필수적조건인 3자련대와 민족대통일전선을 이룩할수 있는 토대가 쌓아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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