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연재 55] 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5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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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30 22:2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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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5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5) 련방국가창립을 위한 조치들>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위업을 하루속히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일데 대하여
연설하는 김정일 위원장(1981년 5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5)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련방국가창립을 위한 조치들
공화국정부는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인민이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적극 지지하고있는 조건에서 통일을 념원하는 전민족의 총의를 모으고 단합을 실현하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현실성있는 발기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보고가 발표되자 련방국가창립방안과 련방국가의 10대시정방침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줄기차게 벌리도록 하시였으며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실현을 위한 합리적인 제안들을 련이어 내놓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에 따라 1980년 11월 11일 공화국북반부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은 련석회의를 열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편지에서는 민족의 총의와 온 겨레의 힘을 모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려는 일념으로부터 출발하여 북과 남, 해외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적당한 수의 대표들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준비위원회와 같은 민족공동의 협의기구를 시급히 내올것을 제의하였다.
련석회의는 이러한 협상기구를 북과 남 그리고 해외에서 각각 먼저 내오고 그에 토대하여 전민족적인 통일협상기구를 내오는것이 합리적일것이라고 하면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합의하기 위하여 북과 남, 해외의 각계 인사들사이에 예비회의를 가지는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을 위한 공동의 협의기구는 해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의 단결과 합작의 마당으로, 그들의 대중적인 정치운동을 이끌어나가는 힘있는 추진력으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일떠세울 훌륭한 기초로 될것이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제안을 담은 공화국북반부의 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 편지를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 인사들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발송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1981년 2월 2일 네번째로 유럽에 있는 해외동포들에게 국제우편으로 편지를 발송하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남조선과 해외의 5 300여명의 대상들에 대한 편지발송사업을 결속지으면서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 인사들과 동포들이 공화국의 획기적인 제의에 적극 호응해나서리라는 기대를 표시하였다.
이 제안은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공화국정부는 1981년 8월 6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제67차회의를 열고 정당, 사회단체들의 련합성명을 발표하였다.
련합성명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북과 남의 정당, 단체 대표들과 해외동포들로 구성되는 민족통일촉진대회를 소집하고 거기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비롯하여 통일과 관련되는 제반 문제들과 기타 북과 남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협의할것을 다시금 제의하였다.
민족통일촉진대회는 나라의 모든 애국력량의 단결체로, 거족적통일운동의 모체로 될것이며 현단계에서 통일문제를 전면적으로 협의할수 있고 그 해결을 촉진할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민족협상기구로 될것이였다.
공화국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은 민족통일촉진대회를 소집하기 위하여서는 그 예비적조치로서 대회에 참가하기를 희망하는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대표들사이의 쌍무적, 다무적대화를 광범히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대화를 위하여 전두환일당을 내놓고는 남조선과 해외의 그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으며 그 누구에게나 아무때나 대화의 문을 열어놓을것이라고 하였다. 련합성명이 발표된 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8. 15해방 36돐에 즈음하여 남조선의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과 인민들에게 민족통일촉진대회를 소집할데 대한 편지를 보내였다.
그러나 이 제안도 남조선집권자들의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실현되지 못하였다.
조성된 사태는 남조선집권자들의 분렬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어디까지나 문제해결의 당사자들인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문제를 옳게 풀어야 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남조선집권자들이 분렬책동을 계속하고있는 조건에서 공화국정부가 택할수 있는 통일협상의 길은 민족적량심을 가진 북과 남, 해외의 이름있는 정치인들이 모여앉는 길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982년 2월 10일 성명을 발표하여 북과 남, 해외의 정치인들의 100인련합회의를 소집할것을 제의하였다.
련합회의는 과거여하에 관계없이 통일에 뜻을 둔 개별적정치인으로서 해외인사들을 포함하여 북과 남에서 각각 50명으로 구성하며 회담형식은 북과 남사이의 쌍무회담이 아니라 모든 인사들이 거주지역과 소속에 관계없이 북남을 초월하여 통일문제를 론의하는 다무적원탁회담으로 할것을 예견하였다.
이러한 100인련합회의는 당시 조건에서 민족의 통일념원을 성과적으로 실현할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통일협상으로 될수 있었으며 민족대단결의 마당으로 될수 있었다.
이처럼 공화국정부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하여 실제적인 조치들을 강구하였으며 온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공화국정부가 제기한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북과 남, 해외의 광범한 동포들속에서 절대적인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조국통일기운을 급격히 앙양시켰다.
그러나 남조선집권자들은 공화국정부의 정당한 통일방안에 그 어떤 긍정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았으며 《팀 스피리트》와 같은 대규모적인 전쟁연습을 빈번히 벌리면서 정세를 긴장시키는데로 나갔다.
남조선당국자들의 이러한 행위로 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을 위한 공화국정부의 현실적인 조치들은 응당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공화국정부가 내놓은 이 모든 제안들은 통일도상에 가로놓인 난국을 타개하고 진정한 통일협상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발기로서 하나의 민족적리념밑에 온 민족의 힘과 슬기를 집결하여 통일의 한길로 이끄는 애국지성의 발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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