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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53]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3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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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6 13: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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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3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3) 광주인민봉기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3)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광주인민봉기

 

 

 

1979년 《10월사건》직후 남조선에서 인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지향과 요구는 급속히 높아졌으며 민주세력을 결속하기 위한 정치활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이것은 남조선에서 막을수 없는 하나의 추세로, 사회적풍조로 되였다.

 

민주세력이 급격히 장성강화된 반면에 지배층안에서는 집권문제를 둘러싸고 각파 세력들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그 어느때보다 격화되여 집권층은 심히 분렬, 약화되였으며 《유신》잔당들은 위축되였다.

 

이러한 혼란속에서 미국과 《유신》잔당들은 어떻게 하나 사태를 수습하고 《유신》파쑈독재체제를 유지해보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다.

 

미국의 배후조종과 비호밑에 1979년 12월 12일 《숙군정변》을 통하여 군권을 탈취한 전두환역적은 군사파쑈통치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파쑈적탄압의 선풍을 일으켰다. 《유신》잔당들은 《10월사건》이후 첫 두달동안에만도 각계 주민 2만 5 560여명을 검거구속하였다.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던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은 《유신체제》와 그 잔당들을 청산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또다시 결연히 일떠섰다.

 

《유신체제》와 《유신》잔당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은 학원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학생들의 분출로 시작되였다.

 

1980년 2월초부터 산발적으로 움직임을 나타낸 청년학생들의 학원민주화투쟁은 3월 하순 령남대학교 학생들과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적극적진출을 발단으로 급속히 확대되였으며 4월 중순경에는 남조선전역을 휩쓸었다.

 

남조선청년학생들은 학원안에서 《유신》잔당들을 청산하며 학원을 민주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거둔 성과에 기초하여 5월에 들어서면서 전두환을 괴수로 하는 군사파쑈세력을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보다 높은 단계의 투쟁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갔다.

 

청년학생들의 이러한 투쟁에 보조를 맞추어 생존의 권리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각계각층의 투쟁이 또한 힘차게 벌어졌다.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전역에서 벌어지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냈으며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군사파쑈집단의 죄행을 준렬히 규탄하였다.

 

1980년 4월 23일 남조선청년학생들의 민주화투쟁을 지지성원하는 평양시학생집회가 진행되였으며 집회에서는 남조선청년학생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채택되였다. 또한 5월 5일 남조선당국자들이 생존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로동자들과 청년학생들에 대한 파쑈적탄압을 감행하고있는것과 관련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5월 6일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성명, 5월 7일 조선학생위원회 성명, 5월 14일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이 발표되였다.

 

호소문과 성명들에서는 남조선에서 벌어지고있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은 낡은 《유신》통치질서에 대한 쌓이고쌓인 울분의 폭발이며 《유신》잔여세력들의 반민주적인 통치가 빚어낸 응당한 결과이라고 지적하고 남조선당국자들은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을 위협하며 가로막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민주주의적요구를 지체없이 받아들일데 대하여 촉구하였다.

그러나 군사파쑈집단은 5월 17일 밤 《비상국무회의》를 열고 이미 실시하고있던 《비상계엄령》을 17일 24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남조선전역에 확대실시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17일 저녁과 18일 새벽에 100여명의 학생운동핵심들과 정계, 종교계의 수많은 인사들을 투옥하였다.

 

5. 17폭거는 또다시 온 남녘땅을 인권과 민주가 없는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사실상 이는 《5. 16군사정변》의 재판이며 남조선에서 걷잡을수 없이 무너져가는 《유신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또 하나의 쿠데타였다. 새로운 군사파쑈독재가 공공연한 파쑈공세를 개시한 신호로 되였다.

 

이를 계기로 《유신》잔당을 반대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반파쑈민주화투쟁은 더욱 급격히 확대되였으며 마침내 광주에서 대중적인 인민봉기로 넘어갔다.

 

5월 18일 군사파쑈분자들은 광주의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평화적시위에 대하여 공정부대 병력 500여명을 직승기로 광주에 투입하고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격분한 광주의 청년학생, 시민 5 000여명은 《비상계엄령 해체하라.》, 《〈유신체제〉를 철페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들고 분연히 궐기하였으며 식칼과 쇠몽둥이를 들고 벽돌과 돌멩이를 던지면서 폭압무력과 맞서 격렬하게 싸웠다. 청년학생들의 폭동적진출은 삽시에 온 광주시를 휩쓸었으며 여기에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시내 모든 인민들과 주변의 로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그 수는 무려 30여만명에 이르렀다.

 

봉기군은 도청, 시청을 비롯한 통치기관들을 들이치고 경찰서와 무기고들을 습격한 후 수천정의 무기로 자체무장하였으며 서울에서 급파된 2개 보병련대 5 000명의 병력을 몰아내고 5월 21일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 수중에 장악하였다. 항쟁의 거세찬 불길은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 등 전라남북도의 17개 시, 군에로 번져갔다.

 

광주시민들은 자치조직인 시민위원회와 민주투쟁위원회를 내오고 자위적무장조직인 시민군, 특별경계부대, 결사대를 무어 련일 비행기와 땅크, 장갑차를 앞세우고 덤벼드는 《계엄군》에 대항하여 희생적으로 싸웠다. 봉기자들은 방대한 병력이 사면팔방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조여드는 가운데서도 10일동안이나 광주시를 사수하였다.

 

이에 질겁한 전두환군사파쑈집단은 미국의 조종밑에 5월 27일 새벽 수많은 땅크와 장갑차, 직승기를 동원하여 수만명의 방대한 정규무력을 투입하였으며 대구경포사격과 전쟁력사에서도 전례드문 질식가스탄까지 발사하면서 봉기군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도시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전두환은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 놈은 모조리 죽여버리라.》라는 령을 시달하고 《공수특전단》을 광주살륙작전에 내몰았다. 악당들은 봉기군중을 장갑차로 깔아죽이고 총으로 쏘아죽이고 대검으로 찔러죽이고 군화발로 짓뭉개죽이고 녀대학생들의 젖가슴을 도려내죽이고 로인들의 머리를 까죽이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끄집어내여죽이는 등 온갖 귀축같은 만행을 다 감행하였다. 삽시에 광주는 피바다로 변하였다. 전두환일당의 야수적인 학살만행으로 광주에서는 5 000여명의 시민들이 희생되고 1만 4 0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이에 대해 영국의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자본주의나라들의 여러 통신, 신문, 방송들은 광주를 가리켜 《피의 목욕탕》, 《망령만이 배회하는 죽음의 도시》라고 하였으며 세계의 많은 나라 TV방송들은 광주참상을 방영하면서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TV앞에 오지 말라고 예고하였다.

 

참으로 전두환살인집단의 광주봉기자들에 대한 살륙만행은 그 악착성과 잔인성에 있어서 사상류례가 없는것이였다.

 

공화국정부는 1980년 5월 20일 남조선에서 《전국비상계엄령》이 선포된것과 관련하여 발표한 각 정당, 사회단체들의 련합성명, 5월 23일 남조선사태와 관련한 조선중앙통신사 성명, 6월 4일 남조선에서 류혈적탄압만행이 우심해지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전세계평화애호인민들과 세계각국의 진보적사회단체들과 국제기구들에 보내는 사회단체들의 편지, 6월 5일 영웅적광주인민봉기에서 희생된 용사들을 추모하는 평양시민합동추도회에서 한 추도사를 통하여 군사파쑈집단의 류혈적인 탄압책동과 광주학살만행의 진상을 고발하고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고무하였다.

 

미국은 광주참살만행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휘한 장본인이며 주범이다.

 

5월 22일 백악관에서는 광주사태를 토의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히 열고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을 급히 호출하여 광주인민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할데 대한 작전계획을 작성하였으며 회의결정에 따라 미국방부는 남조선미국《련합군사령부》에 직속된 남조선군 2개 사단을 광주인민봉기를 진압하는데 동원하는것을 허용하고 그에 대한 지휘권을 남조선군부에 넘겨준다는것을 공식발표하였다. 지어 미대통령 안전담당특별보좌관 브레진스키는 《무쇠주먹으로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해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미군까지도 폭동진압에 동원시킬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군부대들에 폭압에 동원할 태세를 갖추게 하였으며 항공모함 《코랄씨》호와 프리케트함 《키크》호, 유도탄미싸일구축함 《파순즈》호 등으로 무어진 기동타격분함대를 전라남도 앞바다에 긴급파견하고 하늘에는 공중경보통제기를 출동시켜 봉기자들과 인민들을 위협하였다.

 

5월 18일부터 27일에 이르는 광주인민봉기의 10일간은 미국과 전두환살인악당이 애국적인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고 닥치는대로 학살한 일대 살륙만행의 10일간이였다.

 

그것은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지향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온 세상에 뚜렷이 과시한 항거의 10일간이였다. 이에 대해 일본주간지 《세까이슈호》는 《10일전쟁이라고도 말하는 광주의 폭동은 그 규모, 격렬성, 특성으로 보아 조선전쟁이래 〈한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태》라고 하였으며 일본 《슈깡아사히》는 광주폭동은 《하나의 콤뮨형태로 볼수 있다.》, 다른 외신들은 《공민전쟁과 같은 사변》이라고 론평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가로막고있는 주범은 바로 외세인 미국이며 반미자주화를 통해서만 민주화와 통일을 이룰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이것은 남조선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의 고조와 함께 통일운동의 본격적발전을 위한 토대로 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미국의 책동과 군사파쑈분자들의 살인만행에 의하여 유린당하였으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성스러운 투쟁사에 또 하나의 장을 아로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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