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연재 51]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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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3 23:4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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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51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1) 련대성운동 세계적범위에로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주체104(2015)년 8월 16일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1)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련대성운동 세계적범위에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지위가 비상이 높아짐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기운이 전례없이 앙양되고있었다.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위업에 유리하게 전변되고있는 조성된 환경을 옳게 리용하여 조선의 통일에 대한 국제적지지와 련대성운동을 크게 불러일으킨다면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분쇄하는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수 있었다.
1973년 4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2차회의에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외국의 내정간섭을 종식시킬데 대하여》를 토의하고 4월 6일 세계 각국 국회와 정부들에 보내는 편지와 미국국회에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다.
편지에서는 조선에서 민족분렬을 지속시키며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있는 기본요인을 제거하고 조선인민자신의 손으로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밝히고 세계 각국 국회와 정부들이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다 리용하여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공화국의 조국통일방안을 적극 지지하며 그 실현을 위한 조선인민의 성스러운 투쟁에 굳은 련대성을 표시하여줄데 대하여 호소하였다.
수많은 나라 국회들과 정부들 그리고 국가지도자들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보낸 편지를 적극 지지찬동하여 회답편지와 전문을 보내왔으며 성명과 담화를 발표하였다.
또한 아시아아프리카인민단결기구, 꾸바상주 미국인련맹을 비롯한 수많은 국제기구들과 각종 단체들은 이 편지를 지지하는 성명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전문, 편지를 보내왔으며 스웨리예공산주의청년동맹 제30차대회와 단마르크공산주의청년동맹 제30차대회는 조선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였다.
뿐만아니라 《아까하다》, 《아사히신붕》들과 신화, 따쓰, 지지 등 세계의 수많은 나라 신문, 방송, 통신들이 최고인민회의 편지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공화국정부는 1978년 2월 정부비망록을 발표하여 미국의 부추김밑에 감행되고있는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의 반동적본질과 그 변종인 《유엔동시가입안》, 《교차승인론》, 《힘의 균형론》 등의 부당성을 전면적으로 발가놓았으며 반제자주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정부와 인민들에게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짓부시고 나라를 자주적으로 통일하려는 조선인민의 투쟁에 련대성을 표시하여줄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이해 6월 외교부비망록, 12월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비망록 등을 통하여 이른바 《철군》의 간판밑에 감행된 미국과 그 추종자들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예리하게 폭로규탄하였다.
1980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세계 각국 국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남조선에서 전례없는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연습소동과 파쑈적폭압책동 그리고 미국과 그 추종분자들의 민족분렬책동을 전면적으로 폭로규탄하고 모든 나라 정부와 국회들이 조선인민의 투쟁에 대한 지지와 련대성을 표시하여주리라는 기대를 표시하였다.
공화국정부는 비망록, 성명, 편지 등을 발표하는 한편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련대성조직들과 친선단체들 그리고 여러 인사들을 초청하여 그들과의 사업을 강화하였다. 1979년 한해에만도 유엔사무총장,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국제련락위원회 위원장,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지지 일본위원회대표단, 조선통일지지 가이아나위원회 서기장 등 세계 여러 나라, 대륙 및 지역에서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대표와 대표단, 인사들이 조선을 방문하였다.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지지성원운동이 강화되는 속에서 그를 더욱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조선의 통일지지련대성조직들이 수많이 태여났다. 1974년 12월 《조선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캄보쟈련대성위원회》의 결성을 시작으로 하여 197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조선인민과의 련대성위원회, 조선통일지지위원회 등 련대성조직들이 나와 활동하였으며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나 1980년에는 250여개에 달하는 조선통일지지위원회들이 무어져 활동하였다.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련대성조직들은 점차 지역별, 대륙별,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조직으로 확대발전하였다.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라틴아메리카 및 까리브지역위원회, 조선인민과의 친선 및 련대성 북유럽협조위원회, 조선인민과의 친선 및 련대성 아프리카지역위원회를 비롯한 대륙별 련대성조직들이 무어졌다. 1977년 2월 벨지끄의 수도 브류쎌에서 진행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세계대회》결정에 따라 6월에는 조선인민과의 련대성 국제련락위원회가 결성되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당 및 국가수반들, 지도자들, 사회단체들, 각계각층 인사들은 공화국에서 새로운 조국통일방안을 제시할 때마다 그를 적극 지지찬동하여 수많은 축전과 편지, 서한을 보내여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보내온 축전과 편지는 《6. 25-7. 27 반미공동투쟁월간》에 더욱 많아졌는데 자료적으로 보면 1974년에는 115건, 1976년에는 220건, 1977년에는 100여개의 나라에서 290건에 이르렀다.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위업에 대한 지지성원은 세계 많은 나라들, 여러 사회단체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조직적인 정치행사로 전개되였다.
조선인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적련대성운동이 세계적규모에서 빠른 속도로 확대강화되는 가운데 1977년 2월과 이듬해 11월에는 벨지끄의 브류쎌과 일본의 도꾜에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세계대회》가 진행되였다.
벨지끄에서 진행된 대회에서는 조선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문제의 하나라는것을 강조하고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였다. 도꾜에서 진행된 대회에서는 공화국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을 한결같이 지지찬동하고 조선인민과의 국제적련대성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대회결의와 세계 여러 나라 정부, 정당, 사회단체, 종교단체, 국제기구 및 전세계 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위업에 대한 국제적련대성운동은 전세계적범위에서 활발히 벌어진 조선의 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적서명운동을 통하여 더욱 고조되였다.
1979년 3월 로마에서 진행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국제련락위원회 확대회의의 호소에 따라 1979년 4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간에 전세계적규모에서 힘차게 벌어진 남조선에서 미군의 철거를 요구하는 국제적서명운동에는 여러 나라 국가수반들과 당 및 정부지도자들로부터 각계각층 군중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계층이 적극 참가하였으며 국제기구들과 지역기구들도 참가하였다. 자료적으로 보면 서명운동에는 아시아에서 24개 나라, 아프리카와 중근동에서 57개 나라,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20개 나라, 라틴아메리카에서 23개 나라를 포함한 세계 128개 나라와 31개의 국제기구 및 지역기구들이 참가하였는데 서명자들은 무려 10억 8 000만명에 달하였다.
이와 같이 1970년대말에 이르러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국제적인 지지와 련대성운동은 세계적범위에서 더욱 조직화되였을뿐아니라 보다 넓은 규모에서 심화발전되였다.
이것은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음모를 짓부시고 조국통일을 위한 온 겨레의 투쟁에 대한 힘있는 고무로 되였다.
▲북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열린 국제련대성행사 참가자들과의 상봉모임, 1974년 감보디아 조선통일지지위원회 결성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50여개가 넘는 국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조선통일지지위원회에서 최근 몇 년사이 조선평화통일지지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진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2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세계대회가 열린이후 지금까지 매년 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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