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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 47]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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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09 22: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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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47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8-04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47) 민족통일준비위원회 창설제안 기사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주체104(2015)년 8월 6일 《우리 민족끼리》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47)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민족통일준비위원회 창설제안

 

날이 갈수록 북남관계에서 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자 남조선당국자는 1978년 6월 23일 이른바 《남북경제협력협의기구구성》에 대한 제의를 내놓았다. 그 골자는 《남북간의 교역, 기술협력, 자본협력의 길을 열고 이를 효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쌍방의 민간경제대표들이 참여하는 〈남북경제협력추진을 위한 협의기구의 구성〉을 제의》한것인데 이것은 철두철미 분렬을 노린 《두개 조선》정책의 산물이였다.

 

공화국정부는 이와 관련하여 7월 1일 《로동신문》 론평을 통해 《남북경제협력협의기구구성》제의를 《남북의 통일을 위한것이 아니라 〈두개의 조선〉을 목표로 한 분렬주의정책에서 나온 〈6. 23선언〉의 재판》이라고 그 정체를 까밝히고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조선당국이 《6. 23선언》을 취소하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철수시키며 《반공정책》과 애국인사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는 동시에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하신 197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30돐기념 중앙경축대회 보고에서는 공화국정부가 조국통일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대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대화의 문도 열어놓고있고 남조선의 당국자들,각 정당들과의 대화의 문도 열어놓고있다고 하면서 분렬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를 촉진할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이 《승공》을 부르짖으면서 공산주의자들과 《경제협력》을 하겠다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으며 그것은 분렬주의자의 정체를 가리워보려는 서툰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는것, 만일 남조선당국자들이 우리와 진심으로 대화를 하고합작을 하려고 한다면 민족분렬정책을 통일정책으로 바꾸고 《반공정책》을 련공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이것은 분렬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를 통해 나라의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는것이며 북남대화를 당국자간의 회담에 국한시킬것이 아니라 당국자들뿐만이 아니라 각 정당들과의 폭넓은 대화로 전환시키자는것이였다.

 

이로부터 1979년 1월 23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북과 남이 7. 4공동성명의 본래의 리념과 원칙으로 되돌아가며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과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위협하는 모든 군사행동을 무조건 즉시 중지하고 북과 남의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의 소집을 내용으로 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제안에 대하여 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나자 남조선당국자들은 1월 26일 이에 형식적으로나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 없었다.

 

공화국정부는 북남대화를 실현시키려는 일념에서 1월 31일 조선중앙통신사 성명을 통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1월 23일 성명에 지적된대로 지난날 그러하였던것처럼 앞으로도 7. 4공동성명의 리념과 원칙을 성실히 리행할것을 재확인하고 2월 1일 오전 10시를 기하여 상대방을 비방중상하는 모든 선전과 행사를 일방적으로 중지할데 대한 주동적조치를 취한다는것을 내외에 천명하였으며 남조선측에서도 해당한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은 남조선측이 1월 31일 조절위원회를 재개할것을 제의하여온것과 관련하여 2월 5일 성명을 발표하여 전민족대회와 같은 방도로 온 민족의 총의에 의하여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력사적과제가 일정에 나서고있는 조건에서 조절위원회와 같은 제한된 기구대신 전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을 마련하기 위한 예비적협의기구로서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킬것을 제의하였다.

 

이 건설적인 제안에 의하여 2월 17일 판문점에서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마련하기 위한 쌍방련락대표들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후 3월 7일과 14일 모두 세차례의 접촉에서 공화국측은 일관하게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참가하는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할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남측은 당국자들만이 참가하는 북남조절위원회를 재개할것을 집요하게 고집하였다. 공화국측은 남측의 주장이 부당함을 까밝히고 어떻게 하나 대화를 전진시키려는 일념에서 남조선측이 조절위원회를 대표하는것을 취소하는 조건에서 쌍방련락대표의 명칭을 각각 북측 또는 남측 《정당, 사회단체 및 당국련락대표단》으로 하고 접촉을 정상화하며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할데 대한 새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남측은 그 무슨 《실무대표접촉》이라는 엉뚱한 문제를 들고나와 접촉앞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는 4월 5일에 제4차접촉에 나오라는 권고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화국이 남조선에 대한 비난을 전면적으로 중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지방의 모든 선전수단을 총동원하여 공화국의 제도와 리념을 헐뜯는 비방선전을 전례없이 강화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을 일삼았다. 특히 남조선당국자들은 나라의 동서를 가로지른 군사분계선 전구간에 《철의 장벽》으로 불리우는 철근콩크리트장벽구축을 더욱 다그쳤다.

 

남조선당국자들의 이러한 대화파탄책동으로 말미암아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북과 남의 련락대표들의 접촉과 때를 같이하여 진행된 북과 남의 탁구협회대표들의 접촉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모든 사실은 남조선측이 대세의 압력에 못이겨 대화에 응하군 하지만 문제토의에 성실히 참가하지 않고 생억지로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여 대화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지연전술을 쓰다가는 종당에 대화를 파탄에로 끌어가는 상투적수법에 매달리고있다는것을 증명해주었다.

 

 

 

북측이 비무장 지대 콘크리트장벽을 촬영한 사진. 자료에 의하면 남측 군대가 1976년 8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3년 동안 군사분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콘크리트장벽을 축성하였는데, 그 길이는 240km에 이른다고 한다. 군사분계선 길이가 238km이므로 비무장지대콘크리트장벽은 조국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관통하여 축성된 것이다. 또한 북이 밝힌 바에 따르면, 남측이 철근콘크리트로 축성한 그 장벽은 높이가 5~8m, 아래쪽 두께가 10~19m, 위쪽 두께가 3~7m라고 한다. 1979년 1월 23일 북측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에 제안인 민족통일위원회 구성 제안에 따라 남측은 대화를 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연말 비무장지대콘크리트 장벽을 축성으로 대화 파탄을 냈다. 콘크리트장벽은 남북분단고착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분단의 상징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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