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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40]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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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24 19: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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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7-24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40) 폭넓은 북남정치협상방침과 그 실현조치>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1971년 9월 20일 남북적십자대표들의 첫 남북가족찾기 상봉회담이

판문점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공개로 열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40)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폭넓은 북남정치협상방침과 그 실현조치

 

 

공화국정부는 1970년대에 들어와 국내외에 조성된 유리한 정세에 맞게 통일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여러 갈래의 대화와 폭넓은 협상제안들을 내놓고 그 리행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정세는 공화국정부와 인민으로 하여금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나라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것을 더욱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당시 미국은 윁남전쟁과 세계도처에서 얻어맞고 국내에서의 반전투쟁과 심각한 정치, 경제적위기에 빠져 더는 《힘의 립장》에서 세계제패의 야망을 실현할수 없는 상태에 직면하고있었다.

 

이 시기 백악관에 들어앉은 닉슨은 《힘의 정책》으로부터 《대화》와 《공존》, 《협상》에로의 정책전환을 표방하면서 큰 나라들과는 관계를 개선하고 분렬된 나라들에 대하여서는 《현상고착》정책을 실시하는 교활한 《평화전략》을 내세웠다.

 

1971년에 닉슨의 중국방문이 이루어졌다. 닉슨의 중국방문은 패배자의 행각이였으며 국내외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빠진 미국의 운명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이러한 중미관계개선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은것은 남조선집권자들이였다. 그들은 미국의 버림을 받은 장개석의 가련한 처지에서 저들의 앞날을 보았고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싸여 인민들에 대한 파쑈적폭압과 반북대결에 더욱 열을 올리였다.

 

한편 군사파쑈독재의 탄압이 강화되는 속에서도 1970년 11월 13일 남조선로동운동에서 분기점을 열어놓은 전태일분신자결사건, 각 대학을 휩쓴 1971년 3∼4월 반교련투쟁, 1971년 4월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 등 대중적투쟁이 격화되여 식민지통치체제는 치명상을 입고 심히 흔들리고있었다.

 

안팎으로 곤경에 빠진 남조선당국자들은 북남협상의 마당에 나와 평화통일을 표방하면서 《승공통일》정책을 《공존》정책으로 바꾸는것으로 민중을 기만하고 고립된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획책하였다.

 

이렇듯 변화된 정세에 대처하여 공화국정부는 북남당국자사이의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혁신적인 제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1971년 4월 12일부터 14일사이에 열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5차회의는 《현 국제정세와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촉진시킬데 대하여》를 토의하고 공화국정부가 이미 오래전부터 제의한 평화통일방안들에 기초하여 8개 항목의 방안을 담은 호소문을 남조선의 제 정당, 사회단체인사들과 인민들에게 보냈다.

 

8개 항목의 평화통일방안은 나라가 하루빨리 통일되기를 바라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반영하여 조국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현실적방도들을 집대성한것으로 하여 전체 조선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열의를 크게 북돋아주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71년 8월 6일 당시 캄보쟈국가원수 노로돔 시하누크의 평양방문을 환영하는 군중대회에서 하신 연설에서 폭넓은 북남협상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남조선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인사들과 아무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 방안은 대세의 흐름을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 최대한으로 리용하여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 가장 적극적이고도 공명정대한 제안이였다.

 

북남협상에 대한 내외의 지지와 여론의 압력이 강화되자 《선건설, 후통일》, 《승공통일》론을 내들고 통일에 대한 론의와 북남간의 그 어떤 접촉도 완강히 거부하여오던 남조선당국자들은 하는수없이 북남적십자회담형식으로나마 대화마당에 응해나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공화국정부는 이러한 정황에서 북과 남으로 흩어져 오랜 세월 안부조차 모르는 가족, 친척들의 인도주의적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주며 적십자회담을 성사시켜 그것을 디딤돌로 하여 대화의 격을 높여 정치회담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이것은 북남대화를 통해 하루빨리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출발한것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1971년 8월 14일 남조선적십자사 총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남측의 제의는 끊어진 겨레의 혈맥을 잇고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남조선당국에 시종일관 제기한 합리적인 방안들에 부합되는것으로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편지에서는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 친우들의 절절한 념원에 비추어볼 때 다만 《가족찾기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인정하면서 회담에서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 친우들의 자유로운 래왕과 호상방문을 실현하는 문제,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 친우들간의 자유로운 서신거래를 실시하는 문제, 가족들을 찾아주고 상봉을 마련하여주는 문제들을 토의할것을 제의하였다.

 

편지는 또한 판문점에서 회담할것과 10월이 아니라 9월안으로 쌍방대표들의 예비회담을 열것을 제의한다고 하였다.

 

공화국정부는 북남적십자예비회담이 시작된 첫날부터 민족분렬의 고통을 덜고 조국통일의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하여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애국애족적립장에 서서 문제토의에 림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적십자단체들의 회담에 응하기는 하였으나 처음부터 지연전술을 쓰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도발행위로 회담앞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1971년 12월에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같은 류례없는 파쑈악법을 조작해내여 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킴으로써 쌍방적십자단체회담을 방해하고 통일위업수행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공화국정부는 대화와 통일을 위하여 적십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공화국외무성 대변인은 1971년 9월 15일 북남조선적십자단체 대표들의 예비회담이 열리게 되는것과 관련하여 발표한 성명에서 남조선당국자들이 동포애와 인도주의적립장에 서서 북남조선적십자단체 대표들의 회담을 성사시키고 북남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 친우들사이의 자유로운 래왕과 서신거래, 가족찾기 등을 마련하여줄 의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방해책동을 당장 그만두고 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도록 협력할데 대하여 촉구하였다.

 

공화국정부의 주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북남조선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이 시작된 때로부터 1년이 지난 1972년 8월까지 25차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하여 서로의 의견상이를 극복하고 본회담을 열기 위한 일련의 절차상문제들과 함께 본회담 제1차회의를 평양에서, 제2차회의를 서울에서 진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져 8월 30일 평양에서 제1차 본회담이 열리게 되였다.

이렇게 북남조선적십자단체 대표들의 회담으로 북남대화가 실현되였다.

 

공화국정부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하여 적십자회담을 계속 추진시키는 한편 보다 높은 북남정치협상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인내성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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