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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 35]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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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18 19:5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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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7-18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35) 전민족적반미반일투쟁>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35)

 

 

 

▲1965년 한일협정 반대투쟁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전민족적반미반일투쟁

 

 

자주적평화통일촉진방안 제시에 따라 남조선인민들은 미일침략자들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을 짓부시고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에 궐기해나섰다.

 

이 시기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사건》을 조작하고 4월인민봉기때 앞장섰던 애국적청년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처형하려는 군사파쑈도당의 탄압책동을 반대하여 일떠선 남조선청년학생들의 투쟁은 1961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32돐을 맞으며 단행된 서울의과대학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계기로 급속히 앙양되였으며 이 투쟁은 점차 미제침략군의 만행을 반대하는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남조선에서 제멋대로 살인과 폭행을 일삼아온 미제침략군은 1962년 5월 29일 경기도 파주에서 무고한 조선청년을 잡아다 쇠바줄로 목을 매여 끌고다니다가 발가벗겨 전주대에 거꾸로 매달고 란타하여 빈사상태에 빠뜨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인민들의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1962년 6월 7일 미제침략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반미시위투쟁이 벌어졌으며 뒤이어 서울대학교, 대구대학교 등 남조선의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미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선언문과 결의문들을 채택하고 반미시위투쟁을 광범히 벌리였다. 남조선의 광범한 사회계와 출판물들이 미제침략군의 만행을 규탄하며 청년학생들의 반미투쟁을 적극 지지하여나섰다.

 

바로 이러한 때인 1962년 6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1차회의에서는 《남조선에서 미국군대를 철거시키기 위한 전민족적투쟁을 전개할데 대하여》를 토의하고 남조선《국가재건최고회의》 및 남조선사회정치활동가들과 전체 인민들에게 보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편지를 채택하여 남조선으로부터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킬데 대한 투쟁에 전민족적력량을 단합할데 대한 제반 조치를 강구하였다.

 

이어 1962년 10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력사적연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당면과업에 대하여》에서는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구체적방도들이 다시금 천명되였다.

 

시기적절한 때에 나온 이 조치는 전체 조선인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들속에서는 반미감정이 더욱 높아갔으며 도처에서 반미투쟁이 계속 줄기차게 벌어졌다.

 

한편 이 시기 남조선인민들은 남조선일본《회담》을 결사반대하는 반일투쟁을 통해서 반외세자주통일의지를 과시하였다.

 

미제는 남조선일본《회담》을 통해 일제와 남조선당국을 결탁시켜 침략적인 《동북아시아군사동맹》을 조작하려는 의도에서 그것을 적극 떠밀었다. 일본반동들 역시 미제의 조선과 아시아침략정책에 편승하여 조선에 대한 재침야망을 실현할 목적을 추구해나섰다. 남조선당국은 미일침략자들에게 아부굴종하여 민족의 리익을 파는 대가로 장기《집권》야망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군사파쑈독재자는 선행자들도 성사시키지 못하였던 매국적인 남조선일본《회담》을 성사시키려고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을 내들고 1964년 3월 12일부터 범죄적인 남조선일본《회담》을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남조선일본《회담》을 반대하는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3. 24, 6. 3투쟁이 벌어지게 되였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3. 24투쟁은 삽시에 남조선 전지역에 파급되였다. 《일본제국주의를 박살하라!》, 《미국은 〈한일회담〉에 관여하지 말라!》 등 구호를 들고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계속된 이 투쟁에는 서울을 비롯한 38개 지역의 37개 대학, 163개 중고등학교의 21만 7 000여명의 학생들, 1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이 거족적인 투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1964년 3월 2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3차회의에서는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분쇄하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할데 대하여를 토의하고 남조선인민들과 제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 및 남조선《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에서는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의 본질을 까밝히고 이것을 분쇄하고 민족적재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민족이 하나로 뭉쳐 거족적인 구국투쟁을 벌릴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호소문은 전민족적인 반미반일구국통일전선을 결성하며 구국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시급한 시일안에 북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를 소집하거나 또는 북남조선 각계 대표들간의 호상접촉과 의견교환을 통하여 민족적단합을 도모할것 등을 제의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지지성원에 끝없이 고무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리였다. 70여일동안이나 줄기차게 벌려온 3. 24투쟁은 점차 반《정부》적성격을 띠게 되였으며 그것은 대중적 6. 3봉기로 확대발전하였다.

 

1964년 6월 3일 서울의 17개 대학과 2개의 지방대학 3만 2 800여명의 학생들은 《박정희〈정권〉 사퇴》를 행동강령으로 내세우고 시위에 들어갔으며 이에 1만여명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적인 반《정부》폭동에로 넘어갔다. 서울《시청》, 《중앙청》, 《국회의사당》일대는 완전히 시위자들에게 제압되였으며 남조선《정권》의 폭압기능도 일대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였다.

 

3. 24, 6. 3투쟁을 통해 남조선인민들은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적자주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그것을 실지투쟁으로 구현하였다.

 

1965년에 들어서면서 군사파쑈독재자는 인민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지시에 따라 2월 20일 남조선일본《기본조약》에 가조인하고 《협정》체결을 서둘렀다. 이에 격분한 남조선인민들은 《제2의 을사조약을 무효화하라!》, 《매국노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자!》 등 구호를 들고 서울, 인천, 대구, 광주, 제주 등에서 또다시 대중적투쟁에 떨쳐나섰다.

 

이러한 시기인 1965년 5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4차회의에서는 전민족이 단합하여 범죄적인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분쇄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을 채택하였다. 결정은 이 《회담》에서 군사파쑈집단이 일본당국과 조인하는 어떠한 《협정》이나 《조약》도 그것은 하등의 법적근거도 없는것으로서 무효로 선포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확고한 립장과 방침을 찬동하면서 조국의 운명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정견과 사상의 차이, 신앙의 유무와 과거의 여하를 불문하고 굳게 단결하여 전인민적구국통일전선을 결성하고 매국적인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분쇄하며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한 거족적투쟁에 나서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4차회의결정은 남조선과 일본사이의 《회담》을 반대배격하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를 대변한것으로서 이것은 민족의 단호한 선언이였다. 이 결정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커다란 고무적힘을 주었다.

 

그러나 군사파쑈독재자는 《일본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래일은 없다.》, 《제2의 리완용이 되더라도 〈한일회담〉은 꼭 끝을 맺겠다.》고 하면서 총칼로 인민들의 투쟁을 억누르고 강도적인 수법으로 1965년 8월 14일 매국배족적인 남조선일본《협정》을 정식 조인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이에 분격하여 또다시 일떠섰고 이 대중적항쟁의 폭풍은 삽시에 서울과 지방을 휩쓸었다. 

 

그러나 조일량국인민들의 강력한 항의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1965년 11월 12일 야밤에 강권을 발동하여 협잡의 방법으로 일본과 남조선사이에 맺은 《조약》의 《국회》통과를 선포하였으며 12월 18일에는 서울에서 군사파쑈독재자와 《조약비준서》교환놀음을 벌리고 이른바 《국교정상화》의 개시를 선포하는데 이르렀다.

 

이로 하여 일본군국주의침략세력이 공공연히 남조선에 기여들게 되였으며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새로운 엄중한 장애가 조성되였다.

 

그러나 투쟁을 통해 남조선인민들은 보다 각성되였고 북남련방제방안을 지지하는 통일기운은 더욱 드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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