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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19]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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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4 19: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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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6-24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19)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 (1)> 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19)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 (1)

 

 

 

▲북과 유엔군과의 휴전회담 첫날

 

 

 

미제가 태평양지역의 미군의 무력을 총동원하고 15개 추종국가군대들까지 끌어들여 전면적무력간섭으로 나옴으로써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고 조국의 통일과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공화국정부의 투쟁은 장기적이고도 간고한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 직면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공화국정부는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극복타개하고 전체 인민을 전쟁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 적극 동원하는 한편 전쟁의 조속한 종식과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하였다.

 

공화국정부는 1950년 7월 1일과 13일, 8월 5일 공화국외무상의 성명과 서한 등을 통해 미제의 무력간섭에 단호히 항의하고 그를 중지시킬 대책을 취할것을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한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1950년 8월 14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성명을 채택하고 미제의 무력간섭을 즉시 저지시키며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을 철거시킬데 대한 긴급한 조치를 취할것을 요구하는 《조선인민의 성명서》에 대한 전인민적서명운동을 벌렸다.

 

당시 1950년 8월 14일 조국전선의 발기에 의해 미제무력간섭을 즉시 중지할것을 유엔안보리사회에 요구하는 《조선인민의 성명서》서명운동에는 불과 열흘남짓한 기간에 16살이상의 조선인민 1 331만 9 102명이 참가하였다. 그중 북조선인민 539만 9 341명, 남조선인민 791만 9 761명이였다.  

 

그러나 미제는 조선인민의 이 정당한 요구에 응할 대신 태평양지역의 침략무력과 추종국가군대를 동원하여 공화국북반부를 침공하면서 야수적인 대량학살만행으로 대답하였다.

 

조성된 사태하에서 공화국정부는 1950년 8월 29일과 9월 4일, 9월 7일과 9월 16일 등 여러 기회를 통해 적들에게 결정적인 군사적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놈들의 침략적정체와 야수적만행을 온 세상에 폭로하여 놈들을 국제적으로 철저히 고립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면서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보내는 성명과 편지를 통하여 조선에 대한 미제의 침략정책을 폭로하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선인민에 대한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계통적으로 조사폭로하였다. 또한 세계평화옹호대회를 비롯한 국제회의들에 대표를 파견하여 미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야수적만행을 낱낱이 발가놓았다.

 

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전쟁을 종식시키며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은 국제적으로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세계 81개국 대표들의 참가밑에 1950년 11월 16일부터 22일까지 와르샤와에서 진행된 제2차 평화옹호세계대회는 조선전쟁을 평화적방법으로 종식시킬것을 주장하면서 조선에서 감행한 미제의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그것을 유엔기구가 즉시 심의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조선에 대한 미제의 무력간섭을 반대하여 이전 쏘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나라들과 프랑스, 영국, 오스트랄리아, 이딸리아, 파키스탄,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들, 심지어 미국자체내에서도 《미국은 조선에서 손을 떼라!》는 구호를 들고 대중적인 항의투쟁을 광범히 벌리였다.

 

공화국정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따라 전선과 후방에서 전례없는 대중적영웅주의를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전체 인민을 발동시킴으로써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고 적들을 다시금 38°선이남으로 격퇴하였다.

 

조선전쟁에서 거듭되는 참패와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압력 그리고 자체내부에서의 모순의 격화로 궁지에 빠진 미제는 1951년 6월 30일 하는수없이 공화국정부에 정전담판을 진행할것을 제의해왔다.  

 

물론 미제가 정전담판을 제의한것은 저들의 군사, 정치, 도덕적패배를 만회할 시간을 얻자는데 그 진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공화국의 합법적지위를 인정하지 않던 미제가 정전담판을 공식적으로 제기해오고 공화국정부의 전권대표와 마주앉아 담판을 하겠다고 구걸해나서게 된것은 그자체가 조선인민의 승리였다.

 

1951년 7월 1일 공화국정부는 적들이 정전담판을 통하여 음흉한 목적을 추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평화를 바라는 조선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미제의 정전담판제의에 동의하였으며 회담장소를 38°선의 개성지구로 할것을 주동적으로 제의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전을 하자고 먼저 제의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의도가 어떠하든지간에 항상 평화를 교란하던자들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는데 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것을 제의하였고 또 그것을 지금도 원하고있으며 앞으로도 주장할 우리가 무엇때문에 이자들의 제의에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먼저 미국을 치러 간것이 아니고 미국놈들이 태평양을 건너와서 우리 나라를 정복하려다가 그것이 실패하게 되니 싸움을 그만두겠다고 하는데 우리 조선사람들이 평화애호인민으로서 왜 전쟁을 중지하자는 제의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선인민은 정전회담을 요구합니다. 우리 인민들은 언제든지 평화를 요구하며 또 주장하고있습니다.》

 

1951년 7월 10일부터 개성에서는 력사적인 조선정전담판이 시작되였다. 공화국은 대표를 정전담판에 참가시키였다. 이것은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일방으로 하고 미국을 타방으로 하는 정전담판이였다.

 

전체 조선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은 조선정전담판의 성립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거기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이와 반면 리승만역도는 미제의 조종밑에 《유엔군사령부》에 정전담판을 반대하는 진정서를 내고 정전반대시위를 벌리는 등 민족의 원쑤, 평화의 원쑤로서의 정체를 다시금 낱낱이 드러내놓았다.

 

정전담판에서 공화국측은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평화적조국통일의 실제적대책까지 토의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미제는 당초의 예견대로 전선에서의 군사적패배를 정치외교적방법으로 만회하며 시간을 끌어 새로운 공격의 기회를 얻어보려고 획책하였다.

 

이러한 실정에서 공화국측은 전선에서 계속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한편 정전담판에 모든 성의를 다함으로써 안팎으로 적들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하여 애당초 초기 미제의 교활한 획책은 파탄되였으며 끝끝내 미제는 우리 공화국의 정전담판토의제안에 응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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