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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6.25전쟁 당시 있었던 전 민중적 애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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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24 17:5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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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있었던 전 민중적 애국운동

 

 

편집국

2015-06-24

 

 

25일자 <우리민족끼리>는 “1950년 6월 25일과 더불어 새겨진 공화국인민들의 애국의 모습” 제목의 기사에서 민족이 당한 최대 불행이며 조국의 운명이 판가름되는 전쟁이라는 비상한 국면에서 ‘전선탄원”과 “애국증산운동” 같은 투쟁들이 각계각층 전 민중적인 규모로 일어난 것을 전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후손들이 이 땅을 지켜서있음을 침략자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1950년 6월 25일과 더불어 새겨진 공화국인민들의 애국의 모습

 

 

 

1950년 6월 25일은 흘러간 력사의 하루이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날을 잊지 않고있으며 그 준엄하고 비상한 시각에 자신을 세워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시련속에서 자기가 세운 새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바쳐 싸웠습니다.》

 

한 나라, 한 민족에게 있어서 전쟁, 그것은 가장 큰 불행과 고통이며 최대의 재난과 손실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세워주신 참다운 인민의 공화국을 따르고 받들어가는 우리 인민의 굽힘없는 신념과 의지를 순간도 꺾지 못하였으며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서 혁명적열의와 애국심이 스러지게 하지는 못하였다.

 

전쟁발발이라는 준엄한 시련앞에서 우리 인민은 당과 수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쳤으며 애국심을 최대한으로 폭발시켰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중앙방송국은 이날 이른새벽 남조선괴뢰군이 38°선전역에 걸쳐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한데 대한 내무성보도를 전하였다.

 

그 소식은 한순간 많은 사람들을 굳어지게 하였다. 그처럼 유유하고 기세찬 우리 인민의 생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쳐 잠시 흐름을 멈춘듯싶었다.

 

쇠물뽑던 용해공들, 화물을 싣고 두줄기 궤도우로 내닫던 기관사들, 모내기를 끝낸 기쁨에 넘쳐있던 농장원들을 비롯한 온 나라 전체 인민은 방송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에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 에익, 개놈들! 제땅에서 마음껏 잘살아볼가 했더니…

 

재령군의 한 농민이 김매던 호미를 버쩍 쳐들고 남쪽을 향해 터친 이 절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심정을 대변한것이였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분노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평양곡산공장의 한 로동자는 남조선괴뢰군이 불의에 침공한데 대한 공화국 내무성보도를 듣고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놈들의 무분별한 전쟁도발은 제놈들의 최후의 멸망을 초래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배우 문예봉은 침략자들에 대한 분격과 증오가 불길처럼 치솟아오른다고 하면서 리승만도당들이 38°선이북지역에 대한 모험적전쟁행위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적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결정적대책을 취하게 될것이라는 내무성보도를 무한한 격동속에 들었다고 하였다.

 

당시 인민들속에는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료양소나 휴가길에서 들은 사람들도 있었고 멀지 않아 있게 될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학업에 열중하던 청년들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여도 서로의 희망과 포부는 달랐지만 조국의 운명이 판가름되는 전쟁이라는 비상한 국면앞에서 전체 인민의 마음은 하나로 되였다.

 

전선탄원!

 

일터에서도 마을에서도 교정에서도 이 목소리가 높이 울려퍼졌다.

 

6월 27일,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집회가 진행되고 2 800여명의 남녀청년학생들이 전선으로 보내줄것을 열렬히 탄원하였다.

 

같은 날 평양공업대학에서도 500명의 청년학생들이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였으며 28일에는 평양사범대학, 평양음악학교, 평양미술학교, 평양농업전문학교, 평양철도전문학교, 녕변잠업전문학교 등 각지의 수많은 대학, 전문학교, 초고중학교들에서 청년학생들이 전선으로 나갈것을 탄원하였다. 불과 3~4일사이에 온 나라 청년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이 전선으로 탄원하였다.

 

리수복영웅도 바로 그 시기에 《나는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자란 해방된 조선청년이다. 나는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장군님의 명령대로 미제강도놈들의 침해로부터 행복한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손에 총을 잡고 전선으로 나갈것을 피끓는 조선청년의 심장으로 탄원한다. …》라는 탄원서를 썼다.

 

로동계급도 전선탄원운동의 앞장에 섰다. 6월 26일에 평양철도공장, 사동련탄공장, 평양견직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 기업소로동자들이 종업원궐기대회를 열고 전선으로 출동할것을 결의하여나섰다. 평양, 송림, 라남, 함흥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공장지구들에서는 로동자들이 로동자련대를 조직하여가지고 전선으로 출동하였다.

 

해방후 땅의 주인으로 된 농민들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땅과 민주주의제도를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보위하고 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할 굳은 결의밑에 련일 열성자대회, 총회 등을 열고 전선으로 나갈것을 탄원하였다.

 

 

 

 

-▲ 전선으로 탄원하는 청년들 -

 

 

도적고양이들처럼 이른새벽에 전쟁을 도발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지만 전쟁 첫날부터 된몽둥이질에 내쫓기는 비참한 개신세가 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명철하게 가르치신것처럼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우리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우리 인민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고도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만 해야 했던 1900년대 초엽의 약소한 인민이 아니였고 일제에게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령도의 중심, 단결의 중심이 없어 방황하던 불행한 인민도 아니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새 나라에서 참된 주인으로 다시 태여나 자기 힘을 가슴뿌듯이 자각한 자주적이고 존엄높은 인민이였다.

 

민주건설의 나날 한마음한뜻으로 새 나라 건설자가 되였던 그들이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오자 한결같이 총을 잡은 군인이 될것을 열망하였다.

 

전선에 나갈것을 탄원하였지만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과 소년들과 부녀자들, 로인들은 또 그들대로 할 일을 찾았다.

 

전쟁개시와 함께 공화국의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시간외 로동이 활발해졌다. 인민군대에 더 많은 원호품을 마련하여 보내기 위해서였다.

 

군기기금헌납운동이 전인민적애국운동으로 확대발전되여 로동자, 농민, 사무원, 청년학생, 애국적인 상공인, 소년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이 앞을 다투어 참가하였다.

 

공화국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민청호》, 《대학생호》, 《녀성호》, 《소년호》 등의 이름을 단 비행기, 땅크, 함선들을 인민군대에 헌납할것을 결의하고 그를 위하여 각종 자재절약, 로동생산능률제고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애국적인 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

 

 

 

 

 

 

▲전시생산을 다그치며 싸우는 고지에 더많은 탄약을 보장하는 인민들

 

 

신의주시에서는 1 300여명의 녀성들이 궐기대회를 가지고 열흘안으로 《녀성호》비행기 1대이상을 전선에 보낼것을 결의한 후 재봉기, 금비녀, 시계 등 70여점의 물품과 5만여원의 현금을 그자리에서 바치였다. 강원도안의 녀성들은 《녀성호》비행기, 땅크기금으로 986만원을 헌납하였다. 전쟁개시이후 한달 남짓한 기간에 헌납된 군기기금총액은 1억 7 449만 7 000여원, 8월말까지는 무려 4억원이상에 달한다.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불타는 원쑤격멸의 의지와 조국결사수호정신이 그대로 담긴 군기기금은 침략자들의 가슴팍에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는 총포탄으로,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전쟁의 승리를 촉진하는 무적의 힘으로 되였다.

 

침략자들이 저지른 전쟁개시와 함께 온 나라는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는 전민항쟁의 싸움터로 변하였으며 전체 인민은 그 가렬한 전장에서 피와 살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우는 불굴의 투사들로 되였다.

 

1950년 6월 25일과 더불어 벌어진 많은 사실들은 력사의 거울과도 같이 위대한 수령의 손길아래 가장 존엄높은 인민, 힘있는 인민으로 자라난 우리 인민의 장한 모습을 뚜렷이 비쳐주고있으며 우리 인민의 3년간의 전쟁이 자기의 촌토와 제도를 수호하려는 필승의 전민항쟁으로 될수밖에 없은 력사의 비결을 가장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고있다.

 

침략자들이 강요한 6. 25!

 

우리 인민이 멸적의 기세로 화답해나선 6. 25!

 

그것은 결코 65년전의 과거가 아니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또다시 《6. 25》를 강요하려든다면 우리 인민은 1950년 6월 25일의 그 열렬한 애국심과 오랜 세월 다지고다져온 증오를 총폭발시켜 침략자들을 지구상에서 씨도 없이 모조리 소멸하고야말것이다.

 

평범한 날과 달이 흐르고 세대와 년대는 바뀌여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1950년 6월 25일의 공화국인민들의 불같은 애국의 모습이 간직되여있다.

 

바로 그 후손들이 이 땅을 지켜서있음을 침략자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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