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 [연재 14]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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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9 19: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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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2015-06-19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13) 쏘미량군의 동시철거 주장> 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14)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헤쳐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 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쏘미량군의 동시철거 주장
전민족의 총의에 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 이것은 조국의 통일과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거대한 력사적사변이였다.
우리 공화국정부앞에는 창건 첫날부터 나라와 민족의 분렬을 영구화하려는 미제의 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의 통일과 국토의 완정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중대한 민족적투쟁과제가 나서고있었다.
공화국정부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쏘(이전 쏘련)미량군의 동시철거를 첫째가는 중요과업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관철시켜야 하였다. 그것은 일본이 항복한지도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북남조선 전체 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가 수립된 지금에 와서까지 우리 조국강토에 외국군대가 계속 주둔해있을 아무런 리유와 명분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더우기 미제는 미군의 남조선주둔을 《합법화》하고 그를 통해 남조선에 대한 신식민지통치를 강행실시하려 하고있었다.
미제는 1948년 11월 21일 남조선《국회》에서 《미군계속주둔요청결의안》 (미군남조선주둔승인안)을 강압통과시키게 하였으며 12월 9일에는 유엔 제3차총회에서 거수기를 발동하여 남조선《정부》를 조선의 유일한 《합법적정부》로 《인정》한다는것을 날조하였다.
조성된 정세는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미제의 민족분렬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을 벌려나갈것을 요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는 조성된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인 평화통일방안을 제기하였으며 쏘미량국에 우리 나라에서 자기 군대를 철수할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북남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통일적중앙정부의 이름으로 우리 나라에서 쏘미량국군대의 즉시철거를 요구한것은 전체 조선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쏘미량군의 동시철거, 이것은 조선에서 량국군대를 철거하는것이 우리 조국을 통일시키고 그를 경제적, 문화적으로 부흥번영시키며 평화애호민주독립국가로 만드는 가장 절박한 조건으로 되기때문이다.
이미 1947년 6월초에 조선인민의 요구에 따라 북조선주둔 쏘련군대를 대폭 축소한바 있는 쏘련정부는 1948년 9월 18일에는 조선최고인민회의의 요구에 즉시 호응하여 그해말까지 자기 군대를 북조선지역에서 철거할것을 공화국정부에 통보하면서 동시에 미국군대도 이 기간내에 남조선에서 철수할것을 미국정부에 제기하였다.
공화국정부의 외국군대철거요구에 대한 쏘련정부의 이러한 옹호적태도는 조선인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948년 12월 26일에는 조선인민의 환송을 받으며 북조선주둔 쏘련군사령부가 철거하였으며 그로 하여 북조선지역에서 쏘련군대의 철거는 성과적으로 종결되였다.
그러나 미군은 조선최고인민회의의 요구와 쏘련정부의 동시철거제안을 묵살하고 남조선에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일본군대까지 끌어들이려 하였다. 그것은 남조선의 망국적반동《정부》를 조종하여 남조선을 영원히 예속하며 우리 민족을 또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기 위한 책동의 일환이였다.
미제의 이러한 침략정책을 절대로 용인할수 없는 우리 인민은 미군철거를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일떠섰다.
미군즉시철거를 위한 투쟁은 1948년 11월 21일 남조선《국회》가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을 채택한것을 계기로 더욱 고조되였다.
전민족이 미군철거를 절박한 요구로 내세우고있을 때에 미군의 무기한 강점을 애걸하는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이 통과되였다는 보도는 전체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북조선각지의 도시와 농촌, 공장과 광산, 철도 등 방방곡곡에서는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을 배격하고 미군즉시철거를 요구하는 군중집회들이 련속 벌어졌다.
이 집회들에는 로동자, 농민, 문화인, 종교인 등 전체 인민이 빠짐없이 참가하여 매국노들의 미군장기주둔《요청》을 절대부인배격하며 공화국정부주위에 굳게 뭉쳐 미군의 즉시철수와 친미《정부》타도를 위한 거족적투쟁을 벌릴 굳은 결의를 표시하고 그 투쟁방책들을 열렬히 토의결정하였다.
또한 공화국의 각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는 미군즉시철수와 매국노들의 미군주둔《요청》을 절대반대하며 조국의 자주적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아갈것을 결의한 담화 등을 련속 발표하였다.
남조선에서의 미군즉시철수를 위한 투쟁은 이미 1948년 9월 18일 쏘련정부가 외국군대철거에 관한 조선최고인민회의 요구에 즉시 호응하는 편지를 보낸 이후부터 힘있게 전개되였다.
인천부두로동자들을 비롯한 각지 인민들은 《미군도 쏘련군대와 동시에 철거하라!》는 구호밑에 미군철거를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 동맹휴학 등을 단행하였다.
지어 남조선《국회》내부에서까지도 미군즉시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국회》에서는 미제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은 리승만반동집단의 발악적인 책동으로 말미암아 끝내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이 조작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이에 격분하여 11월 30일 오후 1시부터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을 반대하는 총파업투쟁에 들어갔다.
파업로동자들은 《미군즉시철퇴!》, 《리승만〈정부〉 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등의 구호를 들고 대중적으로 진출하였다.
11월총파업투쟁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결사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또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시위로 되였다.
전체 조선인민은 이와 같이 미군즉시철거를 강력히 요구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였으며 《미군주둔승인》의 매국적행동을 전민족적분노로 절대배격하였다.
쏘미량군의 동시즉시철거를 위한 투쟁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대한 신심을 확고히 하였으며 조선민족의 자주적능력을 뚜렷이 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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