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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북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박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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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2 18:5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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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박승진

 

 

편집국

2015-06-12

 

 

<조선신보>가 12일 월드컵 100번째 꼴을 기록한 북의 축구 천재 박승진 선수에 관하여 보도하였다. 그는 ‘축구의 요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세계의 국제경기들에서 보여준 축구묘기는 언제나 관중들을 열광하게 하였다. 그의 등번호 101번은 당시 승리의 대명사였다.

 

눈부신 활약으로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조선팀의 8강 진출을 성공케 한 박승진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공을 받았을 때 평양을 떠나는 자기에게 조국의 은혜에 꼭 보답하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힘이 백배해지는 것을 느끼며 조국이 자기에게 맡겨준 마지막 ‘포탄’을 기어이 명중시켜야 한다는 일념이 넘쳐났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전문을 소개한다.

 


 

<조선신보>

 

〈조선의 체육명수〉축구의 《요술사》, 박승진

 

 

월드컵 100번째 꼴을 기록

 

1966년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비롯한 여러 국제경기들에서 박승진선수가 보여준 축구묘기는 그에게 《요술사》라는 별칭을 안겨주었다.

 

 

 

공을 몰고 돌입하는 박승진선수

 

 

 

대칠레전에서의 장거리슛

 

영국에서 진행된 월드컵, 미들즈버그의 경기장에서 치르어진 칠레팀과의 경기. 전반전 27분 11m벌차기로 먼저 한점을 잃었지만 조선선수들은 락심하지 않고 경기를 운영해나갔다.

 

73분경 박승진선수가 강하게 차넣은 공이 문대를 맞히고 튀여나온 이후에도 이들은 맹렬한 속도로 상대를 공격하였다.

 

경기마감을 가까이하면서도 조선팀의 공격이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하자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서고있었다.

 

기적은 이때에 일어났다.

 

 

 

김일성경기장에서 공을 다루는 박승진씨

 

 

경기마감시간 2분전 조선팀의 중간방어수가 상대방 문전으로 띄워준 공을 공격서렬에 있던 최종방어수가 박승진선수에게 넘겨주었다.

 

박승진선수는 달려드는 2명의 칠레방어수들을 감쪽같이 속여넘기고 문전 25m 되는곳에서 강하게 차넣어 귀중한 꼴을 안아왔다.

 

순간 경기장은 열광과 환희의 도가니속에 잠겨들었다.

 

미들즈버그시장은 《수십년만에 이런 경기를 보았다.》고 하였으며 국제축구련맹 위원장도 높은 기술과 속도에 감탄하며 처음 보는 훌륭한 경기로 평가하였다.

 

프랑스신문 《데끼쁘》는 조선팀중에 제일 첫번으로 꼽아야 할 사람은 박승진이라며 그는 중간방어수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후반전에는 참다운 전초병의 역할도 하였다, 칠레방어수들앞에서 요술사처럼 재주를 부리면서 여러번 위험한 국면을 열어놓군 하였다고 하였다.

 

DCM경기대회에서 우승

 

지금도 조선의 축구애호가들은 박승진선수의 눈부신 활약과 귀중한 한꼴이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조선팀의 8강진출을 성공케 한 첫 쾌거였다고 이야기하고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공을 받았을 때 평양을 떠나는 자기에게 조국의 은혜에 꼭 보답하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힘이 백배해지는것을 느끼며 조국이 자기에게 맡겨준 마지막 《포탄》을 기어이 명중시켜야 한다는 일념이 넘쳐났다고 말하였다.

 

당시 조선팀은 월드컵 우승후보로 지목되던 뽀르뚜갈팀과의 경기에서 첫 24분안에 세꼴을 넣어 세계축구계를 경악케 하였다. 그때의 첫 꼴도 박승진선수가 넣은것이였다.

 

박승진선수가 넣은 이 꼴은 세계축구선수권대회의 100번째 꼴로 력사에 기록되였다.

 

그는 4.25체육단 축구선수로 1972년 인디아에서 열린 DCM경기대회에 참가하여 조선의 우승쟁취에 기여하였다.

 

세계축구강팀들인 브라질팀, 서도이췰란드팀들이 참가한 이 경기대회에서 조선팀이 1위를 하였을 때 인디아의 《느에 빨라뜨타임스》는 10번 박승진이 상대방 방어수들앞에서 교예사처럼 재주를 부리다가도 일단 기회가 조성되면 저격수처럼 단방에 명중시킨다고 하면서 그를 축구의 명장이라고 하였다.

 

 

 

 

경기에만 나서면 이악하게 뽈을 차군 한 박승진선수는 일단 공을 잡으면 쇄골과 다리가 부러져도 득점을 하고야 마는 성미였다.

 

이딸리아와의 경기때 그들이 자랑하던 《콩크리트방어》에 혼란을 조성하던 조선팀이 문전앞까지 공을 몰고 들어가자 이딸리아주장은 박승진선수를 넘어뜨릴 작정으로 뽈이 아니라 그의 다리를 향해 달려들었었지만 박승진선수가 살짝 떠서 상대가 헛다리질을 하고 넘어지게 만들었다.

 

이딸리아팀 주장은 그로 하여 제 허벅다리를 꺾고 담가에 실려나가지 않으면 안되였으며 반칙까지 당하였다.

 

10번은 승리의 대명사

 

당시 10번이라는 그의 등번호는 조선팀의 승리의 대명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1959년부터 1973년까지의 선수생활기간 200여차의 국제경기들에서 250여개의 꼴을 넣었다.

 

168쎈지의 키와 68키로의 체중으로 축구선수치고 체격이 작은편이였지만 속도빼몰기와 높은 조약, 등지고 강한 돌려차넣기 등 재치있는 공다루기솜씨와 기술수준은 축구애호가에게는 하여금 매력과 경탄의 상징이였다.

 

1972년 6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를 부르시여 당시 4.25축구선수단의 주장으로 임명하시고 수십여차례나 만나주시며 경기와 훈련을 지도해주시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박창진씨(36살)는 김형직사범대학 체육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체육부문사업을 맡아보고있다. 그는 오늘날 조국의 축구경기장을 누비는 어린 선수들에게서 축구거장으로 불리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군 한다고 한다.

【평양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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