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5]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5)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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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연재 5]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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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0 18:0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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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를 연재하며

 

 

편집국

 

 

북은 해방 후부터 통일에 역행하는 남쪽의 친일친미 사대매국노 집권무리들과 반대로 지금까지 조국의 자주평화 통일을 위하여 줄기차게 노력해온 사실들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 지금 <우리민족끼리>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 기사도 있다. 이 기사를 읽다보면 북의 전쟁없이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단이후 지금까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않고 줄기차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촉구한 북의 참모습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해온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감춰지거나 왜곡되게 남쪽에 전해진 사실도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연재기사를 통해 독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노력해온 북의 진실된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같이 일관되게 노력해온 북의 참모습을 알면 조국통일이 더 쉽게 더 빨리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누가 매국노인지 누가 애국자인지 잘 가려보아야 할 것이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단결 단합하여 반통일세력을 짓부수고 조국통일 이룩하여 민족번영을 맞이하자.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5) 전체 인민을 미《군정》반대투쟁에로기사를 원문그대로 소개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 (5) 

 

 

력사의 온갖 도전을 과감히 뚫고 걸어온 우리 공화국의 력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력사적책임감을 다한 성스러운 로정이였으며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락관을 심어준 숭고한 통일의 년대기였다.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시였으며 그길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한평생업적을 영원한 토대로 하여 존엄높고 부흥하는 통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밑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온 겨레는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전체 인민을 미《군정》반대투쟁에로

 

해방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는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였다.

 

그러나 당시 남조선에서의 가혹한 미《군정》통치는 해방후 우리 인민의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차단하는 근본장애물로 되였다.

 

미《군정》은 인민들의 초보적인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마저 가차없이 유린하고 애국적민주력량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응당 우리 인민의 소유로 되여야 할 남조선경제를 《적산》의 명목으로 예속시켜 식민지지배자로, 략탈자로 군림하였다. 또한 남조선을 저들의 군사기지로 만들고 북조선의 민주건설을 파괴하려고 획책하면서 리승만역도를 내세워 《단독정부》까지 수립하려고 책동해나섰다. 남조선에서 미국식생활양식과 양키식문화를 퍼뜨려 사람들의 머리속에 미국에 대한 환상과 숭미사대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나선 미국의 책동에 리승만을 비롯한 친미반동분자들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있었다.

 

 

▲1945년 9월, 미군이 코리아반도에 입성했을 때 발표한 통치에 대한 포고문이다. 이 포고문을 통해 미군이 직접 한반도를 통치하는 미군정을 선포하였으며, 건국준비위원회는 물론,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도 불인정하여 한국인의 자주적 통치활동을 부정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친일파들을 대거 미군정이 고용, 편입하였고, 한민당을 비롯한 우익세력을 지원하였다.

 

 

 

미제의 이러한 반동적책동은 조선에 통일적민주주의림시정부수립에 관한 《모스크바3국외상회의》결정을 파탄시키고 통일적인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을 가로막아나서는데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속에서는 미제가 제2차 세계대전때 련합국측에 가담하였고 전후에는 《해방자》, 《원조자》로 나서고있다는데로부터 미국의 이러한 침략적, 략탈적본성을 예리하게 가려보지 못하고 그에 환상을 가지고있었다.

 

이런 형편에서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은 미제의 침략적, 략탈적본성을 폭로하고 대중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데서나 애국적민주력량을 강화하여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과 통일적인 완전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해 절실한 요구였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리지 않고서는 조국의 통일과 민주주의발전을 위한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수가 없다는것이 해방후 정세가 내린 진단이였다.

 

이러한 정세적요구에 대처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6년 9월 18일 미《군정》을 반대하는 전민족적인 투쟁을 호소하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를 소집하시고 《미제의 반동적책동을 폭로분쇄하자》라는 력사적인 결론을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력사적인 결론에서 남조선에서의 미《군정》의 반동정책을 낱낱이 폭로하시고 미《군정》과의 투쟁을 위한 원칙적립장과 구체적인 방도들을 명백히 제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호소에 따라 미《군정》을 반대하는 투쟁은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힘있게 벌어졌다. 북반부인민들은 미《군정》의 반동적책동을 반대배격하는 군중대회들을 각지에서 진행하였다.

 

1946년 9월 22일 평양시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참석밑에 첫 반미군중대회와 시위가 벌어졌다.

 

서평양운동장, 동평양광장, 사동탄광광장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된 미《군정》을 반대하는 반미군중대회에서는 《미〈군정〉의 반동정책을 절대 반대하자!》, 《우리는 남조선인민들의 모든 민주주의적권리, 언론, 집회, 결사, 출판의 자유를 요구한다!》, 《조선인민의 자유행복을 위하여 싸우는 애국자들을 감옥에서 석방하라!》는 구호를 웨치면서 미《군정》에 보내는 항의문을 채택한 다음 군중시위를 진행하였다. 이날 평양시에서뿐만아니라 북반부의 중요 도시들에서도 일제히 군중대회가 열리였다.

 

또한 미《군정》의 폭정을 반대배격하는 군중대회와 함께 미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항의문들도 수많이 채택하여 미《군정》당국에 보냈다.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제6차회의에서 채택된 항의문은 1 300만 북반부인민들의 이름으로 미《군정》당국에 모든 비민주주의적정책의 즉시 철페, 살인, 방화, 략탈 등 야만적행동의 즉시 중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빼앗는 반민주주의적폭압의 즉각 중지, 체포된 애국자들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모든 정권을 인민위원회에 넘길것과 모든 산업, 교통, 운수, 체신, 은행, 상업, 문화기관들을 인민의 소유에로 넘기며 《신한공사》와 봉건적토지제도의 철페, 로동법령의 실시, 반동적교육정책의 철페, 조선을 또다시 침략전쟁기지로 만들려는 음모를 철회할것 등을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이러한 항의문은 9월 28일 제2차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선전원문화인련석회의와 11월 20일 북조선직업총동맹 제5차 확대집행위원회 등 수많은 회의들에서도 채택되였고 평양에 있는 미군련락기관을 통하여 남조선 미《군정》당국에 전달되였다. 미《군정》의 반동정책을 반대하는 항의문채택에는 북반부 각지에서 250여만명의 각계각층이 참가하였다.

 

북조선에서 벌어진 이와 같은 적극적인 미《군정》반대투쟁은 조국의 완전자주독립과 민주주의적발전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크게 고무격려하였다.

 

해방직후 북조선인민들의 민주건설성과에 고무되여 거듭 대규모의 투쟁을 벌려온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1946년 여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고 북반부에서와 같은 민주개혁실시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발전되였다. 6월초 삼척탄광 4 000여명의 로동자들의 파업을 비롯하여 8월 15일 광주 화순탄광 로동자들의 투쟁, 8월 700여명의 하의도농민폭동 그리고 8. 15직후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첫 대중적반미투쟁으로서 미제에 의해 조작된 《국립서울대학교안》을 반대하는 투쟁 등 남조선에서의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항거하는 로동운동이 급속히 앙양되였으며 그 영향밑에 농민운동, 청년학생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이렇듯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마침내 1946년 9월에 이르러 식량보장과 임금인상, 미《군정》의 온갖 폭압의 즉시 중지, 민주주의적로동법령의 실시를 요구하여 벌린 로동자들의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 1947년 3. 22총파업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은 북반부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받았다.

 

북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는 주체35(1946)년 9월 28일 남조선로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남조선로동자들의 요구조건은 전조선인민의 절실한 요구이라는것, 북조선직업총동맹산하 전동맹원이 이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할것을 결의다졌다. 그러면서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남조선형제들에게 우리의 심혈을 짠 정신적, 물질적원조를 주자.》고 하면서 《북조선직업총동맹산하에 단결된 전동맹원들은 로동시간을 한시간 연장시켜 조선민주건설의 토대를 더욱 공고히 닦는 동시에 한시간 연장임금으로 파업기금을 조성할것》 등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제2차 북조선 각 도인민위원회 선전원문화인련석회의에서는 남조선로동자들의 총파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파업로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원조를 보낼것을 결정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원산철도공장과 평양담배공장, 로동신문사를 비롯한 북조선 각지 공장, 기업소 로동자들과 사무원, 문화인 등 전체 인민은 남조선로동자들의 투쟁을 지지성원하는 직장대회와 군중대회, 시위들을 진행하고 증산돌격운동을 벌려 일요일은 물론 매일 로동시간을 연장하고 그로부터 받은 로임의 전부를 남조선로동자들에게 지원금으로 보내였다.

 

이렇듯 남조선의 광범한 애국적인민들은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 3. 22총파업 등을 벌렸으나 미제의 탄압으로 하여 좌절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인 반미구국투쟁과 그를 적극 지지성원한 북조선인민들의 투쟁은 통일적완전자주독립을 위한 온 민족의 열의를 드높여주고 통일위업을 힘있게 추동하는 커다란 힘으로 되였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 전진의 력사에 한페지를 기록하게 되였다.

 

 

 

 관련기사

 

►  [연재 4]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연재 3]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2]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 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  [연재 1] 이북을 알면 조국통일이 보인다.-조국통일을 위한 공화국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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