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조선신보】바다를 건너 66년, 조선에서 맞은 100살/《귀화한 일본인》안미호녀성의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8-05 20:02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바다를 건너 66년, 조선에서 맞은 100살/《귀화한 일본인》안미호녀성의 삶

100살을 맞은 안미호할머니(사진은 모두 김숙미기자촬영)
【평양발 전기일기자】2월 23일 평양시 모란봉구역에서 살고있는 안미호할머니가 백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일본에서 태여나 1960년 남편인 강영훈씨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온 그는 조선로동당과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공화국공민으로서의 값높은 삶을 누리였다.
안미호할머니가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고 찍은 사진이였다.
사진에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함께 있었다.
안미호할머니는 1926년 니이가다현 미나미우오누마군의 한 농촌마을에서 1남7녀의 둘째딸로 태여났다. 조국해방후 도꾜에서 일하던 그는 재일조선인운동에 공감과 동경심을 품고있었으며 그 활동과정에 강영훈씨를 알게 되였다.
강영훈씨는 경제적형편이 어려워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재일조선인들을 위한 진료소개설에 한몫 하였으며 그 운영도 맡았다. 안미호할머니도 그곳에서 일하게 되였다.
두사람은 1950년대초에 결혼을 하였다. 그후 안미호할머니는 도꾜도의 가쯔시까구에 있던 조선학교의 의무실에서도 일하며 학생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두사람의 결혼을 안미호할머니의 친정에서는 처음에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례절이 밝고 성실한 그의 인품을 알게 되면서 가족들의 마음도 차츰 그에게 기울어졌다고 한다.
1960년 5월 안미호할머니는 어린 두딸과 같이 조선사람인 남편을 따라 조선으로 건너왔다. 그후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의 서신래왕은 세계적인 악성전염병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강영훈씨와 안미호할머니의 일가는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였다.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안고 딸(오른쪽)과 함께
안미호할머니는 사리원편직공장에서 일하였다. 어느 일터에서나 맡은 일을 성실히 하였으며 남에게 도움을 주는것을 자신의 기쁨으로 간주하였다.
사리원에서는 셋째딸과 아들을 낳아 키웠다. 자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자기 초소에서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성실히 일하고있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의 한생에 대해서는 좀처럼 내세우지 않는 그도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남편 강영훈씨는 7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안미호할머니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정상적으로 의사가 집을 찾아와 필요한 진료를 해준다. 가족뿐 아니라 동네사람들도 그의 생활을 살뜰히 보살피고있다.

안미호할머니
사람들이 《자녀들이 잘 돌봐주었기에 100살까지 장수하신것입니다.》고 말하면 그는 곧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오래 살수 있은것은 국가가 로인들을 귀중히 여기고 보살펴주었기때문입니다.》
(조선신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