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기고] 이재명의 유럽행은 왜 적대행위로 규정되었나 - 유럽의 환대 뒤, 조한관계의 바늘구멍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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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6-13 19:4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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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유럽행은 왜 적대행위로 규정되었나 - 유럽의 환대 뒤, 조한관계의 바늘구멍은 막혔다
윤현일 (자유기고가)
1. 외무성 10국 대변인 담화, 한국의 이중성을 겨냥하다
6월 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10국 대변인은 한국 대통령이 유럽연합 정상들과 발표한 공동성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담화의 제목부터 직설적이었다.
“한국은 역시 적대와 대결을 체질화한 불변의 적국이다.”
이 담화의 핵심어는 주권침해와 적대행위다. 조선은 한국이 유럽연합과 함께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고 조러군사협력을 규탄한 것을 단순한 외교적 표현으로 보지 않았다. 조선의 주권적 권리행사와 대외관계를 부정한 행위로 보았다. 그래서 담화는 평화의 가면, 미국의 단검, 불변의 적국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담화는 한국의 이중성도 겨냥했다. 한국은 국내에서는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 평화공존을 말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했다. 조러협력을 규탄했으며 조선 인권과 국제기구 접근 문제도 공동성명에 넣었다.
조선 입장에서는 혼란이 아니라 확인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 유럽에 가자 말의 방향이 달라졌다. 어느 모습이 진짜인가. 이것은 대화의 손짓이 아니었다. 평화의 신호도 아니었다. 평화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조선을 압박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담화는 유럽에서 보여준 한국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이 평화의 가면을 벗고 적대적 본색을 드러냈다고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표현은 “미국의 단검”이다. 조선은 한국을 미국과 무관한 독자적 행위자로 보지 않는다. 미국이 조선과 아시아대륙을 압박하기 위해 앞세우는 공격기지로 본다. 한국의 유럽행도 그 연장선에서 본다. 미국의 동맹전략, 유럽의 안보방위 구조, 한국의 대조선 압박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같은 날 나온 조선 외무성 대외정책실장의 입장은 이 판단을 보완해준다. 대외정책실장은 미국의 한국 무기판매를 전쟁수출로 규정했다. 미국산 무기의 도입은 긴장과 대결의 축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무장화해 “단검”으로 사용한다는 조선의 인식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이 두 입장을 함께 보면 조선의 인식이 분명해진다. 조선은 미국의 무기판매와 한-EU 공동성명을 별개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 무기를 판다. 한국은 유럽과 안보방위 공동성명을 낸다. 그 공동성명은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고 조러협력을 규탄한다. 한국은 무장화되는 동시에 유럽 전쟁구조에 무기를 공급하는 국가로 재배치된다.
미국의 무기수출은 한국의 군사적 역할을 키운다. 유럽에서 핵보유국 지위 부정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조선에 대한 외교적 압박이다. 조러협력 규탄은 조선을 유럽 안보문제 안으로 끌어넣는 국제적 압박이다. 이 압박들이 유럽의 안보방위 구조와 결합할 때, 한국은 코리아반도 문제를 넘어 서방 대결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한국은 서방 전쟁구조의 하위 수행자로 밀려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조선의 담화는 과잉반응이 아니라 예상된 행보였다. 공동성명이 발표되는 순간, 한국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관점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를 명분으로 재무장하는 유럽에서 조선을 적대시하고 규탄한 것은 한국에 돌이킬 수 없는 악재를 자초한 것이다. 한국이 유럽과 한팀이 되어 유럽 전쟁구조에 발을 들인 행위다.
지금은 무기와 방산협력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합이 깊어질수록 한국이 감당해야 할 정치·군사적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단순한 조선압박이 아니다. 조한관계 개선의 방향 자체가 틀어졌다는 데 있다. 한국은 국내에서는 평화와 대화를 말했지만, 유럽에서는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고 조러협력을 규탄했다. 이것이 조선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한국이 의도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아니면 유럽이 내민 경제·방산 성과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것인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한국은 한-EU 공동성명을 통해 조선을 압박하는 서방 대결구조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조선의 담화는 바로 그 현실에 대한 반응이었다.
6월 14일 한국 정부는 긴 안목을 가지고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공존이 조선을 규탄하고 적대시하는 것인가.
2. 조러협력 규탄을 넘어, 조선의 지위까지 부정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들어 서발칸 반도 국가들, 멕시코, 아르메니아, 인도, 요르단 등 여러 나라와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과의 공동성명은 조선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 직접적이었다. 한국 공동성명은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했고, 조러군사협력을 규탄했으며, 조선 인권 문제까지 포함했다.
조러군사협력 규탄 자체가 한국 공동성명만의 문구는 아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다른 일부 공동성명에서도 조러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결해 문제 삼아왔다. 이것은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압박 문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조러협력을 연결해 국제안보 문제로 다루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 공동성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압박 문법에 한국의 대조선 압박 문법이 결합했다. 바로 여기에 한국 공동성명의 특수성이 있다.
첫째,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공동성명은 조선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우려를 표명하고 코리아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더 나아가 조선은 NPT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될 수 없고, 그와 관련한 어떤 특별한 지위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조선 입장에서는 이것이 핵심이다. 조선은 이미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했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유럽연합 정상들과 함께 그 지위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것은 조선이 보기에 주권적 권리행사에 대한 침해다.
둘째, 조한대화와 비핵화를 한 문장 안에 묶었다. 공동성명은 조한대화 재개, 교류 확대, 관계 정상화, 평화공존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비핵화를 다시 목표로 넣었다. 이것은 대화의 문을 여는 방식이 아니다. 대화의 입구에 조건을 다시 세우는 방식이다.
미국이 그토록 조선과 정상회담을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비핵화 주장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도 실패한 조선과의 대화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한국은 평화를 말하면서 조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조건을 다시 꺼냈다. 조선 입장에서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압박이다.
셋째, 조선 인권과 국제기구 접근 문제까지 포함했다. 이것은 조선의 체제 문제를 국제적 압박 의제로 끌어올리는 문구다. 한국이 유럽과 함께 조선의 핵문제, 조러관계, 인권문제, 국제기구 접근 문제를 한 문서에 묶은 것이다. 상투적인 서방의 조선 비난 선전에 한국이 동참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 공동성명이 다른 공동성명과 구별되는 특수성이다. 조러군사협력 규탄만 있었다면 유럽만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공동성명은 거기에 조선 핵보유국 지위 부정, 조한대화와 비핵화의 결합, 조선 인권 문제까지 더했다.
결국 한국은 유럽의 안보문서 안에서 유럽과 손잡고 조선을 다시 적대대상으로 규정했다. 공동성명은 경제협력 문서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선 관련 대목의 본질은 조선과의 대결 문서였다.
조선이 이번 공동성명을 강하게 비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평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조선의 국가전략과 체제를 압박하는 문구에 동참했다. 조선 입장에서 이것은 관계개선의 분위기 조성이 아니다.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결장이다.
3. 관여에서 압박으로, 경제협력에서 안보방위로
한-EU 정상회담은 2002년부터 2026년까지 11차례 열렸다. 공동성명에는 조선 관련 내용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 성격은 계속 바뀌었다.
초기에는 조선이 압박과 제재의 대상이라기보다 대화와 관리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관여와 협력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 관련 문구는 점차 압박과 규탄의 언어로 바뀌었다.
특히 조선인민군의 쿠르스크해방작전 참여 이후, 유럽은 조러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더 노골적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선 문제는 코리아반도 현안이 아니라 유럽 안보문제의 일부로 재배치되었다.
2026년 제11차 회담은 유럽의 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유럽은 조러군사협력 규탄을 공동성명에 명시하면서 한국을 유럽의 안보방위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을 더 깊이 연동시키려는 흐름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한계를 느낀 유럽은 조선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 변화는 중요하다.
유럽은 이제 조선을 러시아, 우크라이나, 인도태평양, 안보방위, 공급망, 정보전 문제와 연결해 본다. 한국은 그 유럽의 시각에 동참했다.
이것은 단순히 조선의 행동에 대한 대응만이 아니다. 유럽이 인도태평양으로 전략적 관심을 확장하고, 한-EU 관계를 경제협력에서 지정학적 안보협력으로 재편한 결과이기도 하다.
즉 한-EU 관계는 점점 경제협력 중심에서 안보방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조선 관련 문구의 변화는 그 흐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조선의 담화는 단순한 반발문이 아니다. 한-EU 관계가 경제협력에서 안보방위 구조로 이동했고, 그 구조 안에서 조선이 적대대상으로 다시 배치되었다는 데 대한 반응이다.
4. 국내에서는 평화, 브뤼셀에서는 규탄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에서 평화공존을 말해왔다. 조한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긴장완화와 신뢰구축도 말했다. 조선과의 대화 가능성도 닫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 자체는 필요했다. 조한관계가 막혀 있을수록 대화의 틈은 더 중요하다. 긴장을 낮추는 언어도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이다.
국내에서는 평화를 언급했다. 유럽에서는 압박의 문서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조한관계 관리를 말했다. 유럽에서는 조선 핵보유국 지위 부정과 조러협력 규탄에 동참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 수위의 차이가 아니다. 국내용 평화담론과 국제용 안보담론의 충돌이다.
한국 정부는 유럽과의 공동성명을 성과라고 평가한다. 방산수출 확대와 디지털통상, 공급망 협력, 에너지대화가 실리외교라고 말한다. 서방 책임국가로서 국제규범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실리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고 조러협력을 규탄했다는 사실이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조한대화를 말하면서 비핵화를 다시 조건처럼 묶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의 모순은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는 평화를 말한다. 국제무대에서는 기존 미한동맹과 서방 안보방위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이런 구조는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었다. 판문점선언 등으로 조한대화의 문을 여는 것처럼 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조선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동참하도록 호소했다. 오죽했으면 러시아에서 문재인에게 핀잔을 주었겠는가.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끝내 경질하지 못했던 문제도 이와 닮아 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심을 외면한 문재인 행보의 속내가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결국 미국의 계산된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와 위성락 문제도 같은 구조에서 볼 수 있다. 민심은 위성락 경질이었다. 그러나 위성락은 오히려 유럽행에 동행했다. 조선과의 평화적 공존, 대화의 물꼬를 말하면서도 유럽에서는 조선을 비난했다. 문재인과 꼭 닮은 행보다.
이번 공동성명을 보자. 이재명 정부는 평화공존을 말했지만, 브뤼셀에서는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 부정과 조러협력 규탄에 동참했다.
조선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평화의 신호로 보겠는가. 아니면 적대의 확인으로 보겠는가. 조선의 담화는 바로 그 이중적 발언에 대한 반응이다.
모순된 사고구조를 바꾸지 않고 평화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렇다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5. 실리주의의 함정, 방산수출의 대가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조선과의 대화 가능성을 말하며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맞았다. 조한관계가 아무리 막혀 있어도 대화의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EU 공동성명은 그 바늘구멍마저 막아버렸다.
이것이 실리주의인가. 방산수출은 자본주의 이익극대화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조선을 적대시하면서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실리가 전쟁위험을 키운다면 그 실리는 잘못된 것이다.
흔히 현실정치에서는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타협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면, 그런 타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방산업은 평화의 산업이 아니다. 무기수출을 위해 국가를 위기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이익극대화를 앞세운 일방적 사고방식이다.
제2의 문재인 행보가 아른거린다. 문재인 정부도 평화를 말했지만, 결국 미한동맹의 틀과 대조선 제재 구조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도 국내에서는 평화공존을 말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 부정과 조러협력 규탄에 동참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구조는 닮아 있다.
이재명의 유럽행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유럽의 인정과 환대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외교적 성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조선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행과 한-EU 공동성명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6. 바늘구멍을 다시 열려면
지금 한국이 몰두해야 할 것은 유럽의 안보방위 구조에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최근 조중정상회담을 비롯해 동북아 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국은 이 변화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자주성과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교류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류가 전쟁위험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유럽과의 관계도, 미국과의 관계도 평화안정을 위한 경제협력이어야 한다. 전쟁위험을 키우는 안보방위 결합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전쟁위험을 키우면서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전쟁과 평화는 공존하지 않는다.
조선을 적대하는 말과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국내외의 발언은 일관되어야 한다. 행동도 일관되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평화공존을 반복하고, 국외에서는 조선을 규탄하는 정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중성은 관계개선과 인연이 없다. 조선과의 관계개선을 말하려면 먼저 조선을 적대시하는 공동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출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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