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국제] 시위가 아닌 혼란 : 누가 이란의 거리들을 급진화하려 했으며 –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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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6-01-16 20:5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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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시위가 아닌 혼란: 누가 이란의 거리들을 급진화하려 했으며 – 왜 실패했는가
통일시대번역팀
급진화, 디아스포라 정치, 그리고 외국 개입에 대한 공포가 대중적 불만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다
저자 및 출처: 파르하드 이브라기모프(Farhad Ibragimov) – 러시아 인민우호대학(RUDN) 경제학부 강사, 러시아 대통령 산하 국립경제·공공행정아카데미 사회과학연구소 방문강사
/ RT(러시아 투데이) 2026년 1월 14일자 칼럼.
번역: 통일시대번역팀
원문제목: Disorder instead of protest: Who tried to radicalize Iran’s streets –\and why it failed
원문출처: https://www.rt.com/news/630957-disorder-instead-of-protest-iran/

이란 수도 테헤란, 소요를 일으킨 군중들[사진출처: ©Anonymous / Getty Images]
이란에서 일어난 시위의 물결은 점차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불안정 지역도 감소했으며, 국가 기관들은 서서히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는 시위가 정점을 지나 점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시위는 그 성격이 일관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처음 시위가 발생했을 때, 그 원동력은 사회·경제적 문제였다.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압력, 고용 문제, 삶의 질 저하 등이 핵심이었다. 이러한 요구는 매우 실용적이었으며, 실제 사회 집단, 특히 이란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상인 계층에서 나왔다. 또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역시 공개적으로 국민의 시위할 권리를 인정하며, 불만과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변했다. 1월 3~4일경이 되자 초기 시위대는 시위를 멈추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 틈을 타 급진적 요소들이 빠르게 거리로 침투했고, 사회적 의제를 구실로 삼았다. 시위의 격화는 대규모 폭동,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그리고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이 상황은 이란 내부와 국제사회에서 다르게 인식되었다. 이란 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공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해외 망명 공동체와 비체제적 야권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시위운동의 ‘결연함’과 ‘되돌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초기에는 치안 당국이 자제된 태도를 보였다. 시위 첫 며칠 동안 여러 지역의 법집행 기관은 무력 사용을 자제했고, 무장을 하지 않은 채 거리 순찰을 하며 최소한의 질서 유지 조치에 의존했다. 이에 반해 급진화된 집단들은 화염병, 냉병기, 총기를 사용했고, 그 결과 사상자가 발생하며 폭력이 격화되었다. 이란 사회의 상당수에게 시위는 더 이상 ‘평화로운 사회적 불만 표출’이 아니라, 이른바 ‘색깔 혁명’의 논리와 유사한 폭력적 불안정화 시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시위의 ‘사회적 기반’을 급격히 축소시켰고, 당국이 상황을 다시 장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현재의 시위 국면은 강도가 약해졌을 뿐 아니라, 대중의 눈에서 정당성 또한 상실했으며, 이는 추가적인 격화 가능성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이란의 인구는 약 9천만 명에 달하며 사회는 매우 다양하다. 이 때문에 이란의 시위는 대개 국지적으로 발생한다. 이번 시위는 경제 문제에서 비롯되고, 어떤 것은 청년층이 주도하며, 또 다른 경우에는 특정 도시에서만 발생한다. 이러한 개별적 시위들은 명확한 지도부와 실행 가능한 의제를 갖춘 하나의 대규모 시위운동으로 결집되지 않는다. 일부 시위대의 급진적 구호와 혁명 이전 이란 국기의 사용은 급진 야권 세력이 얼마나 절박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디아스포라는 이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인지도 높고 권위 있는 지도자를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디아스포라는 이란 내에서는 주변적 존재에 불과한 레자 팔라비에게 집착하고 있다. 대다수의 이란인들은 그를 정치 지도자로 보지 않으며, 특히 2025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그의 발언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외부 압력과 갈등 속에서 이러한 입장은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를 이란 대중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또한 레자 팔라비가 이슬람을 버리고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했다는 소문이 이란 내에 퍼져 있다. 팔라비 본인은 이를 직접 부인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영적 정체성’에 대해 모호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이슬람이 여전히 문화적·사회적 정체성의 핵심인 사회에서 이러한 모호함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며, 그를 이란 사회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란 국민의 시위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지난 15년간의 지역적 경험이다. 이란인들은 아랍 세계 전반에서 일어난 시위의 물결을 면밀히 지켜보았으며, 특히 리비아, 예멘, 그리고 무엇보다 시리아의 사례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시리아 분쟁은 내부 반대 세력이 외부 개입과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였다. 정치 개혁이 이루어지기는커녕, 국가는 장기 내전에 빠졌고, 결국 국가 붕괴와 심각한 사회 분열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험은 이란 사회 전반에 거리 정치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심어주었다. 정부와 사회·경제 상황을 비판하는 집단들조차 점점 급진적 정치 전환이라는 개념과 이러한 문제들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있다. 혼란, 국가 해체, 주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시위에 참여하려는 욕구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역사적 경험과 비교 분석은, 제도적 틀이 경직되어 있고 강력한 안보 기구를 갖춘 국가에서 외부 지원 없이 성공적인 시위운동이 일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재정적, 정보적, 외교적, 조직적 지원이 포함된다. 이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존재한다. 디아스포라의 개입, 선전 활동, 서방 정치인들의 발언 등을 통해 외부 개입이 드러나는 순간, 시위는 이란인들의 눈에서 정당성을 잃는다. 그것이 내부의 사회적 과정이 아니라 외부 압박의 도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제재와 이른바 ‘하이브리드 압박’ 상황에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화된다.
그 결과 이란의 시위는 딜레마에 빠진다. 외부 지원이 없으면 실질적인 정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외부 지원이 과도하면 국내적 호소력을 잃게 된다. 이는 최근의 시위들이 국제적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던 이유를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현재의 시위는 이란 정치 안정성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기보다는, 국가 내부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사회적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개혁, 사회·경제 모델의 변화, 그리고 정부와 사회 간의 소통 메커니즘 재검토에 대한 요구를 보여준다.
지역적 경험과 이란 자체의 역사적 기억은 거리 정치가 변화를 이끄는 효과적인 수단인지에 대해 이란인들을 점점 더 회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충분한 내부 지지가 없고, 외국 개입과 연관된 시나리오에 대한 대중적 신뢰도 없는 상황에서, 시위는 이란 내부 역학의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1월 12일, 약 20만 명이 테헤란과 엔겔라브(혁명)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동시에 다른 도시들에서도 수만 명이 현 정권과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다. 이러한 집회는 공개적이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는 정부에 대한 실제 대중적 지지 수준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들은 현대 이란의 정치적 회복력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만약 집권 당국과 하메네이 자신에게 정당성이나 실제 대중적 지지가 없다면, 이렇게 많은 지지자들을 거리로 불러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낮 시간에 국기를 흔들며 정권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이는 그 체제를 공개적으로 수호할 의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디아스포라는 이러한 집회를 ‘연출된 것’ 또는 ‘돈으로 동원된 것’으로 묘사하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면밀히 살펴보면 설득력이 없다.
경험적으로 볼 때, 강압이나 금전적 대가가 개입될 경우 사람들은 아예 집에 머물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반면 진정한 대중 참여, 감정이 실린 구호와 피켓은 실제 동기의 존재를 보여준다. 또한 사회가 임박한 ‘혁명적 전환점’을 감지할 때에는, 이러한 집단들은 기존 권력 구조를 지지하기보다는 승자 편에 서는 경향이 있다.
친정부 집회와 급진 단체가 벌이는 시위 간의 대비 또한 뚜렷하다. 현 체제 지지자들은 낮에 얼굴을 드러내고 거리로 나서지만, 급진 세력은 주로 밤에 얼굴을 가린 채 활동하며 파괴 행위와 폭력에 집중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정치적 행동이며, 이란 사회는 그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 모든 점은 이란의 정치 체제가 여전히 안정적이며, 집권 당국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의지가 있는 상당한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불만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정부에 대한 대규모 거부나 정당성 상실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나라의 문제는 이란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다.
[출처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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