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 [옥중 기고] 서울 구치소에서 쓰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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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2-30 19:1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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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기고] 서울 구치소에서 쓰는 칼럼
이정훈 前 연구위원
이정훈 前 연구위원이 서울구치소에서 보낸 옥중칼럼을 전해드립니다.

이정훈 전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1. 파쇼적 판결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교훈
필자는 지난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그리고 법관 최소한의 양심에 대한 기대가 여지없이 깨지는 황당한 재판 결과였습니다(윤영수 판사). 마치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판결문으로 베껴 쓰던 것과 같은 선고였습니다. ‘국가보안법’ 판결이 객관적 증거나 법정 증언보다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고, 사람의 내면 정신세계와 의도를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처럼 추정해 판단하며, 형량 또한 고무줄처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상 당하고 보니 허탈하고 황당한 심정으로 처음 며칠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 사건을 요약하면, 책 2권(‘87·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을 저술한 것과, 고니시라는 국외교포를 서울에서 만난 일입니다. 만나서 한 일이라고는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다가 연락이 중단된 것이 전부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으로 제 저술 물은 갑자기 ‘이적표현물’로 기소되었고, 제가 만난 사람은 ‘북한 공작원’이라고 공소장에 적혀 있습니다. 저의 무죄 주장과 후속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다른 경로를 통해 계속 알려 나갈 것이며, 이 칼럼에서는 제가 평소 느껴 온 진보 진영의 ‘정세관’과 문제의식 몇 가지를 간략히 서술합니다.
2. 한반도 정세를 보는 몇 가지 편향에 대하여
감옥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무겁고 현안인 주제를 다루는 것이 적당한지 모르겠으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한반도 정세를 해석하는 다음 3가지 흐름에 관해 서술해 보고자 합니다.
① 기존 통일론에 대한 ‘집념과 집착’의 흐름
②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조기 폐기론’의 흐름
③ ‘전쟁 불가피론’의 흐름
▶ 1. 기존 통일론에 대한 ‘집념과 집착’ 경향
먼저 기존 통일론에 대한 집념과 집착의 경향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북(조선)의 통일 정책 전면 폐기(조선로동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도 불구하고, 계속 6.15 공동선언 실현과 3자 연대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 대부분은 열렬한 통일 투사이시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분들의 입장을 ‘집념’과 ‘집착’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변화된 현실과 이를 타개하려는 주체 역량에 대한 평가, 그리고 실행 방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정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지상 최대 과제인 통일을 폐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폐기한 이유는, 지난 시절 해 왔던 방식으로는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평화도 통일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길게는 80년 분단사, 반세기 이상 진행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에 대한 총평입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통일운동과 통일 역량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한의 현실은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 한계 지점이 현재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현실을 타개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관성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통일 운동가들의 평생 통일운동 공식이 깨지고 전혀 새로운 정세와 정책들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아직 지난 관성과 이론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변화된 정책과 그에 따른 현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ⅰ 북은 남한을 한국이라는 ‘국가’로 상대한다(교전 중인 적대 국가).
⊙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 정책 폐기
ⅱ 한국이 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선도 한국과 국가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는다.
⊙ 한국이 대북 적대 정책의 법적 표현인 ‘헌법 제3조’(영토조항)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이상, 한국을 적대적 관계에서 전환하지 않는다.
ⅲ 한국-조선 관계의 현안은 ‘전쟁 방지’와 ‘전쟁 문제’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가 폐기된 환경에서, 현재 한국-조선 관계의 초점은 단 하나, 적대적인 ‘전쟁 관계’만 남게 됩니다. 남측이 원하는 남북 군사 합의의 복원도 과거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북은 특수관계가 아니라, 한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폐기한 정상적 국가 관계 속에서 이를 처리할 것입니다. 북이 민족 이론이나 민족을 부정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타개하는 방식은 장기적인 ‘현실주의 통합노선’으로 바뀌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노선을 ‘통일’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또한 신년에 열리는 9차 당대회에서 남한과의 통일 과제를 당면 과제에서 제외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 2.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조기 폐기론’ 경향
지난번 경주 APEC 행사를 앞두고 조-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다룬 기사가 잇따르더니, 최근에는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을 예상하는 보도와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필자는 이 또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예측이라고 봅니다. 이를 기대하면서 한국 통일부와 외교부가 대북정책 타개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허망한 기대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기사와 분석이 자주 나오는 것은 트럼프의 적극적 대북 대화 제스처와 쇼에 분석가들조차 현혹되어 따라가는 경향도 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재 조-미 관계의 현주소와 향후 전개될 조-미 중장기 ‘강 대 강’ 대결 추이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난 칼럼에서 저는 여러 번 트럼프가 대조선 적대 정책을 전환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오콘의 대립은 미국이라는 제국 지배계급 내부의 변종 분파 간 싸움이지, 그것이 네오콘을 대체하는 대외정책의 질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군산복합체와 트럼프는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현재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힘’입니다. 힘이 있으면 지배하고 전쟁도 하는 것이며, 힘이 없거나 잃어 가면 전쟁을 피하거나 선별적으로 동맹을 부추겨 전쟁을 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말이나 쇼가 아니라 실질적 관계 개선을 위한 조처를 취하면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정책은 트럼프의 쇼나 말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발표한 미국 국가안보 전략(NSS)을 보니 미국 패권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자기 고백서’ 같았습니다. 여기서 미국은 조-중-러와 전쟁을 할 수 없음을 돌려서 표현한 것입니다. 미국이 속으로 가장 고심하는 ‘조선 핵’ 문제는 아예 언급도 못 하는 지경입니다.
조선 문제를 언급하고 다루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미국은 대안이 없습니다. ‘조선 비핵화’를 넣는 순간 조-미 ‘강 대 강’ 대결을 부추기는 것이 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회동 쇼는 그 제안조차 불가능하게 됩니다. 미국 국가안보 전략(NSS)이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드러낸 대북정책의 기본 내용은 적대적 현상 유지 전략입니다. 트럼프는 과거 2018년 조-미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조선은 이를 폐기한 지 오래입니다. 대표적 현상 유지 전략이 ‘전쟁 연습 지속’과 ‘대화 타령’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인정에 기초한 새로운 대북정책 복안을 가지고 있고, 북도 이에 대해 일말의 기대가 있다고 보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현실은 이와 다르다고 봅니다.
▶ 3. ‘전쟁 불가피론’의 경향
인류를 대재앙으로 몰고 갈 전쟁의 불씨를 안고 사는 것이 우리 민족입니다. 동북아의 한반도와 대만은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도화선이자 폭발 지점입니다. 더구나 이 전쟁은 상호 적대적 군사동맹(조-중, 조-러, 중-러 ↔ 한미일)으로 연동되어, 대만 전쟁은 자동으로 한반도 전쟁으로 확대되고, 이어서 러시아가 참전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전쟁 가능성이 높은 이 지역의 전쟁을 막는 것은, 개별 국가의 통일과 아시아 문제를 넘어 세계 인류의 사활을 건 문제가 됩니다.
제국주의의 전쟁 본성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세계 3차 대전을 저지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것은 세계 진보 진영의 당면 과제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도 ‘정의의 전쟁 론’이 아니라 실질적 ‘전쟁 억제’입니다. 전쟁 억제력의 압도적 힘으로 전쟁 의지와 기도(企圖)를 선제적으로 제압·차단하는 정책이 우선이며, 현재 중국과 조선의 통일 과제가 아무리 중요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이 원칙을 앞세우는 것이 조-중 국제 공조의 기본 방향이라고 판단합니다. 중국 공산당도 미국과 대만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이상, 전쟁에 의한 통일을 선제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저는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 주도권을 잃었다고 봅니다. 과거처럼 전쟁을 미국 마음대로 개시하고 승리로 이끌 힘을 미국이 잃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북(조선) 하나를 상대하는 한반도 전쟁만으로도 미국은 현재 감당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저는 미국이 조-중-러 전략동맹에 대해 승산이 없는 선제 전쟁 전략을 폐기하고, 대결적 ‘현상 유지(관리) 전략’으로 후퇴했다고 봅니다.
이 대결적 ‘현상 유지 전략’도 미국 혼자는 감당할 수 없어, 한국과 일본을 ‘동맹 현대화’란 명분으로 재구조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 한-미 동맹 현대화의 본질은
ⅰ. 승산이 없고 미국 본토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 전쟁 전략’을 ‘적대적 현상 유지’ 전략으로 전환해 유지한다(전쟁 가능성은 남아있음).
ⅱ. 주한미군의 역할과 한국군의 역할을 ‘대북 전쟁’ 수단에서 대중국 동북아 전선 역량으로 전환한다.
ⅲ. 한국 자주국방 요구와 명분을 활용하여 한국군의 전략 자산을 한국 비용 부담으로 늘리되, 작전 지휘권과 전쟁 계획과 권한은 그대로, 또는 변형된 형태로도 미국이 행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조선)은 ‘통일 전쟁’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배제하는 선언을 합니다. 앞으로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는 침략전쟁에 대한 전면적인 반격전일 뿐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무자비한 전략·전술핵을 총동원한 전례 없는 전쟁 양상이 되리라 봅니다.
또 이 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전쟁의 한국전쟁화’입니다. 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은 빠지겠다는 태도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이 쳐 놓은 ‘한국 자주국방, 한국전쟁의 한국화’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3. 정세관보다 더 중요한 근본 문제
격변하는 정세와 새로운 정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모두 한국 진보의 발전을 위한 충정에서 나온 주장들입니다. 따라서 과도한 혹평이나 비난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 가면서 민중에 봉사했으면 합니다.
정세 분석이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니며, 한 사람의 주장이 전부 옳을 수도 없습니다. 민중께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제공하여, 세상의 주인인 민중이 정세를 개척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진보에서 ‘정세와 정치노선’보다 더 중요하고 부족한 문제가 ‘사상 노선’, ‘사상 사업’의 문제라고 봅니다. 정세관은 사상사업의 중요한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한국 진보가 사상 노선, 사상 사업, 정치 사업, 사상전에 대한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것이 결국 진보정당, 전선, 대중단체의 선전·교육 체계와 대중 사업 방식이 부실해진 근본 이유라고 봅니다. 한 번 무너진 사상사업 체계를 세우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며, 수십 년이 걸리는 사업입니다.
사람은 ‘사상적 존재’입니다. 사상은 진보적 지식이 아니며, 삶을 개척하고 세상의 주인인 사람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입니다. 대중 사업의 관점과 태도 역시 사상으로부터 나옵니다.
정세가 어디로 흘러가든, 시간이 십 년, 이십 년이 걸리든, 이것이 한국 진보가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 중 하나입니다.
4.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일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고, 옥에서 칼럼 같은 글을 계속 쓰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며 재판을 잘 준비하는 것, ‘국가보안법’ 폐지와 피해 사례를 해외까지 널리 알리는 것, 감옥을 인권이 보장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것 정도입니다.
감옥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감옥의 인권 무시는 여전합니다. 무죄추정은 법전에나 있는 말이고, 현실적 정서는 유죄 추정·죄인·수용자 처우입니다. 양심수는 감옥에서도 인권을 주장하고 지키는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수들과 함께 감옥 관련 법령들을 연구하고 교정 당국의 위법 사항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개선을 계속 요구할 생각입니다. 또 이와 관련된 헌법소원 청원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 항소 이유서는 영어로 번역하여 국제 인권 단체와 UN 인권 기구에 보낼 예정입니다. 또 검찰이 기소한 ‘87·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를 영어와 외국어로 번역하여 ‘국가보안법’이 없는 외국에서 출판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해외 학술단체와 인권 단체에 보내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해 실태를 알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법정구속 되자마자 서울구치소를 바로 찾아와 응원하고 격려해 주시고, ‘국가보안법’ 폐지 · ‘이정훈 무죄 석방’ 현수막을 걸어 주시고, 또 부당한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조직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정훈 대책위,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 행동, 양심수 후원회, 통일시대 연구원, 자주연합, 향린교회 등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난은 있어도 우리가 갈 길을 막을 힘은 세상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필자가 수감되어 있는 서울구치소 앞에 이정훈 대책위 회원들이 건 현수막-편집자 [사진제공 이정훈 대책위]
[출처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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