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 【재미동포 기고문】바람개비를 든 이 대통령과 미완의 과제 -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이 던진 신호와 한국이 짊어진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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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12-03 18:2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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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를 든 이 대통령'과 미완의 과제 -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이 던진 신호와 한국이 짊어진 책임
김범(재미동포)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의장연설
12월 2일, 일산 킨텍스.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평화가 경제이고 밥이고 민생이며, 곧 실용”이라고 말했다. “분단 80년, 정전 72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을 멈춘 상태일 뿐”이라며, “전쟁 걱정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 완성과 국가 발전의 길”이라고도 했다. 남북 대결을 끝내고 “평화 공존•공동 성장”의 남북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은, 한국 내부만 놓고 보면 분명 반가운 메시지로 들린다.
그러나 이 연설은 진공 상태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불과 2년 전 2024년 1월 15일, 평양에서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시정연설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헌법에서 “북과 남은 동족•동포”라는 전제와 “독립•평화적 통일•민족적 화해”를 뜻하는 표현들을 삭제할 것을 공개 지시했다.
이어 평양 남쪽 입구에 세워졌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통일문)’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 상징”이라는 평가와 함께 실제로 철거되었다. 조선은 대남 사업 기관들을 정리하고, 남과 북의 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공식 규정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한쪽에서는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을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주적”과 “점령•평정”을 말한다. 이 모순된 두 연설 사이의 거리를 과장된 감정이 아니라, 가능한 한 과학적•논리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의 민주평통 연설은 ‘말 자체’보다 그 말이 놓인 구조가 더 중요하다. 국가가 안전 보장을 판단할 때, 구호가 아니라 구조와 조건을 본다는 점은 국제정치의 기본이다. 같은 구조에서는 같은 결과가 반복되고,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언어를 바꿔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지금 코리아반도 주변 구조를 사실에 기초해 차근차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이미 2022년 국방백서에서 조선의 정권과 군대를 다시 “우리의 적(敵)”으로 명기했다. 2018년 문서에서 사라졌던 “적” 표현이 6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문서에는 “북이 우리를 ‘의심할 바 없는 적’으로 규정하고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으므로, 북 정권과 북 군대는 우리의 적”이라는 문장이 들어 있다.
둘째, 윤석열 정권은 이른바 ‘3축 체계’를 국가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첫째 축인 ‘킬체인(Kill Chain)’은 북측의 미사일 징후를 탐지할 경우, 선제 타격으로 상대 전력을 제거하는 구상이다. 미국 외교협회(CFR)와 각종 안보 분석 기관들도 이 점을 지적하며, 한국의 킬체인은 “상대가 핵 사용을 고민하는 국면에서 오히려 선제 사용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셋째, 2023년 캠프 데이비드 미•일•한 정상회의 이후, 세 나라는 연례적인 다영역 군사훈련과 실시간 미사일 정보 공유, 확장억제 강화를 제도화했다. 미 백악관과 국방부 자료는 미국이 일본•한국에 대해 “핵을 포함한 모든 능력에 기반한 확장억제”를 공언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2024년에는 한•미가 코리아반도 주변에 미 전략 핵자산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합 핵억제 지침’까지 체결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세 가지 사실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과 미국•일본은, 문서와 훈련, 작전 개념에서 조선을 “적”으로 상정한 채, 필요 시 선제타격과 핵 억지까지 포함하는 군사 구조를 만들었다.
조선은 바로 이 구조를 전제로 스스로의 노선을 수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이 자신들을 향해 “불변의 적”이라고 못 박고 있음을 들어 “이제 한국을 더 이상 동족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규정하든, 상대가 이미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를 먼저 보라”는 논리를 편다.
이 논리는 동의 여부와 별개로, 구조분석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하다.
A가 B를 ‘적’으로 명기하고, A•C•D가 함께 B를 상대로 한 연합 작전•선제타격•핵억제 구조를 강화하면, B는 A를 ‘주적’으로 본다. 그래서 조선이 한국을 주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는 도덕적 수사보다 인과관계가 먼저 작동한다. 조선은 이 인과관계를 ‘과학적’이라고 부르고, 그 위에 새로운 헌법•노선을 세우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구조를 외면한 채 “상대가 너무 나갔다”고만 말하는 방식으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는 “전쟁 상태 종식”, “핵 없는 한반도”, “평화 공존•공동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이 말들 사이에는 전제가 빠져 있다. 지금의 구조 속에서 이 표현들이 어떻게 들릴지를, 특히 평양이 어떤 데이터와 구조를 근거로 자신의 노선을 “과학적”이라 주장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 코리아반도 주변에서 작동하는 핵 구조는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 미국은 문서상, 한국•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과 확장억제를 재확인했다.
@ 한국은 자체 핵무장은 하지 않지만, 미 전략자산의 상시 전개와 통합 핵운용 계획 참여 비중을 늘려 왔다.
@ 조선은 자국 핵전력을 스스로 생존 보장 수단으로 규정하고, 헌법과 법률에 그 지위를 명시했다.
이 구조에서 “핵 없는 한반도”를 이야기할 때, 만약 이 표현이 현실에서 “특정 방향”으로만 적용된다면, 상대는 즉시 그 방향성을 읽어낸다. 한쪽의 핵우산과 확장억제, 전략자산 전개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다른 쪽 핵전력만 문제 삼으려 한다면, 그것은 언뜻 중립적인 언어로 포장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일방적인 무장 해제 요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조선이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학적 사고는 대칭성과 조건을 중시한다.
같은 조건을 양측에 적용했을 때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느냐, 조건이 다른데도 언어는 대칭적인 척하지는 않는가, 이 점이 검증의 핵심이다. “핵 없는 한반도”는, 조선 입장에서 볼 때 여전히 “우리만 내려놓으라는 말”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당장은 서로를 실존하는 국가로 인정한 위에서, 전쟁을 피하고 군사충돌을 관리하는 최소한 “평화 공존”이 무엇인지를 먼저 그려야 한다.
“핵 없는 한반도”를 입에 올리려면, 그 말이 어느 한쪽만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술적으로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구호 차원이 아니라, 실제 정책 문서와 군사 지침, 동맹 구조 속에서 일정한 조정 의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은 남측 내부의 언어로는 진전이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구조를 건드리지 못한 채 수사에 머문다. 조선은 이미 자신들의 노선을 “조건과 구조에 따른 필연적 선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이 진정으로 “평화가 경제이고 밥”이라고 믿는다면, 그 평화를 가로막는 구조를 하나씩 해체해 나가는 쪽으로, 더 과감하고 논리적인 걸음을 옮겨야 한다.
언젠가 코리아반도에서 “주적”이라는 말이 양쪽 문서에서 동시에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날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지도 모른다.
“한쪽이 감정적으로 먼저 물러난 것이 아니라, 서로가 구조를 바꾸기 위한 더 논리적인 쪽으로 움직이자 전쟁 가능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민주평통 22기 출범 연설은 그 방향을 향한 첫 신호가 될 수도 있고, 또 하나의 허공에 사라지는 문장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이제 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려는 용기의 유무가 정하게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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