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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기고] 반북의식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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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5-01-13 07:3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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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북의식과 트라우마

김영종 다극화포럼 이사, 작가

 

변혁운동은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지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달동네에서 쫒겨나는 민중, 일터와 생계 불안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민중, 하루하루 빚더미에 허우적거리는 민중, 입시교육을 통해 신분을 세습하는 이세 삼세 들 .... .

이들을 다 버리고 단지 민중을 수식어로만 입에 올리며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는 민주 정치인의 현실. 

우리사회의 트라우마가 치료되는 과정은 민중을 대변하고 조직화하는 일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변혁의 전망이 태어나며 인간해방이 가시화된다고 믿는다.

김영종 다극화포럼 이사, 작가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반북反北 의식은 외상성 신경증이다. 즉 노이로제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이 정신병에 걸려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진실이다. 윤석열은 12.3 전쟁내란을 일으키면서 극적으로 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이용했다. 어떤 트라우마인가? 분단과 한국전쟁과 냉전이 낳은 트라우마다. 민족상잔의 전쟁이 그 내용물이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이 외상은 너무나 커서 의식 위로 올라올 수가 없다. 우리는 죽기살기로 그 트라우마를 억압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땅콩회항 같은 갑질에는 전 국민이 분노를 아끼지 않지만 천안함 사건을 빌미삼아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전 민족적 재난임에도 반대 목소리가 없는 현실이다. 이번 12.3도 그렇지만 우크라 참전 문제를 포함해서 전쟁에 관한 한 우리는 침묵하는 국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얼마나 불안한 국가인가.


왜 우리 정부가 민족상잔전쟁 도발을 획책하는 것에 분노하지 못하는지, 반대하지 못하는지 우리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냥 당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때 내 아들이 차출된 해병대였기 때문에 투입 대기조였다. 전쟁 일촉즉발이었으니 가슴 조린 것은 말할 수가 없다. 그때 국회를 포함해 전쟁을 반대하는 어떤 언론도 어떤 기관도 없었다. 너무나 황당한 경험이었다.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군중에 손짓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출처: VOA한국어]


트럼프 2기 정권에서 대중국 전쟁에 우리 자녀들이 대리군으로 투입될 개연성이 농후해졌다. 실랑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국민의 침묵 속에 한미일동맹의 이름으로 투입이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제어장치 없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전쟁 트라우마를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진출처: 위키백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이 트라우마는 강박적으로 의식의 표면 위로 기어올라온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억압된 것의 회귀>라고 했다. 그런데 왜 반복적으로 기어올라올까? 해결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트라우마는 정체가 밝혀져야 비로소 해결된다. 그러나 너무나 고통스러우므로 억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라우마는 해결해달라고 우리 의식의 문을 강박적으로 반복해서 두드린다. 우리는 그 노크에 응답해야 한다. 전 사회적 정신병을 고치는 길이다. 이 노이로제를 치료하지 않고는 감히 말하건데 가공할 혐오사회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당연히 어떠한 진보도 이룰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아이엠에프'와 '국민의 정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때부터 중하층/저학력 민중의 의식이 급속히 변화한다. 이것은 소외에 따른 결과다.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조중동 등 기득권 세력은 민중을 극우화하는 전략에 집중한다. 아이엠에프/신자유주의는 이를 위한 옥토였다. 그 결실로 일부가 훗날 태극기부대가 돼 나타난다. 


나는 산동네 달동네에서 70년대 후반 긴급조치 등 수배로 도피생활을 했고, 2001년부터 3년 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에서 주민들과 섞여 지내면서 다큐사진작업을 했다. 그래서 서울의 도시빈민에 대해 애착도 있고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다. 달동네 주민은 거의 다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이 민중의 기본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달동네라는 공간 속에서 주민들은 떡 한조각도 나눠먹은 정겨운 이웃을 이루었다. '서울의 달'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난 드라마다. 



[사진출처: 비마이너]


민중의 삶터인 산동네 달동네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세우는 재개발사업은 쫒겨난 민중의 극우화를 가속화했다. 자료를 보자. '전두환 정권은 집권 과정에서 훼손된 정당성을 복구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재개발의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 전략은 중간층을 목표집단으로 삼는다. 경제적 수혜를 통해 정치적 동의를 확보하는 '중간층 포섭 전략'이 모색된 것이다. 이는 주택 5백만호 건설 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철거민이 본 철거>> 한국도시연구소. 필자가 윤문을 봄) 목동 신도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철거민의 투쟁은 가열찼다. (소설 <<난쏘공>>은 철거민의 현실을 고발한 보기 드문작품이다.) 그럼에도 민중과 민주진보세력은 <재개발 민영화 정책>을 막지 못했다. 이 정책은 한국정치에서 민중의 참여를 뿌리째 뽑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후로 중간층의 체제내화된 민주적 요구가 민중의 현실을 덮어버리기에 이른다. 


‘국민의 정부’는 이런 한계를 안고 태어났다. 민중의 지지를 받은 정부지만 ‘민중의 정부’로 나아가지 못했다. 여기서 DJ정부를 다루는 것은 문제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히 남북관계에서 역대 가장 훌륭한 업적을 이뤘지만, 트라우마의 처리에 가장 적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요인을 짚어보기 위해서다.


조중동은 최초의 정권교체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한국사회를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으로 양분하는 구도를 전개한다. 전자를 보수, 후자를 진보로 명명함으로써 구체제 청산을 배제한다. 이를 통해서 '독재권력'은 산업화세력이자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한다. 현재 한국정치의 혼란과 혼동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문제는 커다란 주제이므로 다른 기회로 미룬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다시 트라우마 문제다. 우리 국민은 자각하지 못한 채로 반복강박 속에 살고 있다.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단어가 말해주듯 이 강박은 억누를수록 스프링처럼 튀어오른다. 혐오감정의 게이지를 극도로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없다. 그럴수록 무의식에 더욱 고착될 뿐이다. 왜 그렇게 될까? 답은 간단하다. 이 녀석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적인 용어로 '내 안의 타자'인 것이다. 


나를 강박하는 이 타자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대면하기조차 끔찍히 두려워하며 '대체물'을 찾아 도망친다. 이 상태에서 한미합동심리전은 최고의 유력을 발휘한다. 나는 대체물로 피난가는데, 그 대체물이 무엇인지는 곧이어 설명하겠다.


노이로제 환자가 가장 진저리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진실'이다. 정신분석의 고고학이 찾아낸 진실ㅡㅡ 민중의 무의식에 있는 트라우마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못 배운 열등감'의 신체라는 진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잘 보여 준다. 법정에서 자신이 글자 모르는 문맹이란 게 공개되는 것보다 자살을 택하는 주인공! 


그런 형태[‘못 배운 열등감’의 신체]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민중은, 민주진보 인텔리가 자기를 깨어있지 않다고 무시하면서 우중愚衆으로 대할 때 격분한다. 격렬하게 태극기와 성조기와 일장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드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강박된 트라우마의 자해적인 반발이다. 그리하여 민족, 민주, 통일, 종북(친북)을 적대하는 혐오 강도는 비례적으로 강렬해진다. 정신분석학의 ‘전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자해적 반발을 트라우마와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서 트라우마를 기억해낼 수 없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박은 반복되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못 배운 열등감을 신체로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치부 아닌 이 치부를 건드리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트라우마를 억누르는 것은 트라우마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뜻밖에도 트라우마의 억압자는 무의식에 있는 자아다. 이 자아는 교육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원한과 숭배(구체적으로는 르상티망ressentiment과 물신숭배fetishism). 이 자아는 무의식에 있기 때문에 충동적이다.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식층에서 그 정체가 밝혀져야 하는데 무의식층의 자아가 훼방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억압은 달리 말하면 저항이다. 위상변화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주도자가 되면 자아는 저항자가 된다. 그 역일 경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아는 억압자가 된다. 


 

[이미지 출처: 국가보안법폐지우리힘으로]

 

 

왜 저항할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전쟁-트라우마의 원류가 미국(서구)의 인권, 자유, 민주주의란 사실을 의식 표면에 떠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보안법이란 공포. 종북으로 매도되는 공포, 12.3에서 보는 바처럼 국가적 척결대상이 되는 공포... . 그리고 공산주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북 동포를 사랑하게 되는 공포. 이렇게 되면 자기의 존립 근거를 잃는다. 자기가 존립할 수 있었던 모든 가치가 뒤바뀌어서 자기를 존립할 수 없게 만든다.


이를 피하기 위해 트라우마는 변형된 형태로 의식층에 자리잡는다. 그게 대체물이다. 이 변형은 무의식층의 자아가 기어올라오는 트라우마에 충동적으로 저항함으로써 이뤄진 것이다. 반북의식과 반북감정은 이렇게 대체물이 된다. 그것들은 트라우마의 변형된 발현이요 기표다. 어떤 외마디인 것이다! 


이 변형은 쾌락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래야 마음에 평온이 오고 삶에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이것을 쾌락이라고 한다. 쾌락을 주는 것은 미국/반민족정권이다. 따라서 대증치료가 아닌 진정한 치료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다.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 의식이 현실원칙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현실원칙은 현실reality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전제한다. 


불행하게도 '국민의 정부' 시기 민주진보세력은 조중동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삶터에서 쫒겨나고 생존이 무너지는 민중을 방치했다. 아니 배신했다. 끝없는 민중의 쫒겨남과 이들을 극우로 의식화.조직화 하는 조중동의 전략. 그런 반면 제적된 명문대 출신은 복학해서 유학길에 오르기도 하고 학계, 언론계, 정계, 사법계 등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난다. 이들은 한때 민중과 함께했던 인텔리겐치아들이었다. 


조중동 들은 향후 자신들이 짠 프레임으로 정치적 기틀을 마련한다. 이 프레임을 수용한 민주진보세력은 민중 기반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빼앗긴다. 참패한 것이다. 오직 여론에 의존해야 하는 후자는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전자에 타협을 읍소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변혁의 원천인 민중 대신 팬클럽에 가까운 쁘띠부르주아의 인기를 동원해야 하는 비루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 현상은 사필규정이요 자업자득이다. 태극기부대를 욕할 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변혁운동은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지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달동네에서 쫒겨나는 민중, 일터와 생계 불안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민중, 하루하루 빚더미에 허우적거리는 민중, 입시교육을 통해 신분을 세습하는 이세 삼세 들 .... . 이들을 다 버리고 단지 민중을 수식어로만 입에 올리며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는 민주 정치인의 현실. 



[사진 출처: 국가보안법폐지우리힘으로]


그러나 이 정치인들 역시도 트라우마가 자신의 의식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억압하고 있다. 현실원칙이 아니라 쾌락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인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로남불이라고 욕먹는 것도 현실원칙을 앞세우지만 쾌락원칙에 입각해 있는 까닭이다. 


글을 마치기 위해 성급히 결론을 내리면 우리사회의 트라우마가 치료되는 과정은 민중을 대변하고 조직화하는 일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변혁의 전망이 태어나며 인간해방이 가시화된다고 믿는다.


[출처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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