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투고】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조국에서 쓴 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12-16 09:10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투고】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조국에서 쓴 일기
9월 24일 화요일/김윤아(문학력사학부 어문학과 4학년)
나의 조국방문일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아마도 영원히 이날을 기억할것이다.
몇시간전에 평양의 비행장에 내려섰을 때 말그대로 꿈결에도 안기고싶었던 조국에 난생처음으로 왔는데 랭정했던 자신에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두려웠다는 말이 보다 적합할것이다.
그러다 뻐스를 타고 숙소로 오는 길에서 우리 말로 씌여진 안내판이며 영화속에서만 보아오던 풍경들을 직접 보게 되니 너무도 큰 감동으로 하여 온몸이 굳어지는것만 같았다. 사람이란 감동때문에 굳어질수도 있는것일가.
굳어진 몸이 풀릴무렵에는 나도 동무들과 함께 《주체사상탑》이며 《개선문》, 《천리마동상》이며 《전위거리》… 변모한 조국의 모습들을 보면서는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나에게는 소년단넥타이를 멘 어린 학생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의 감동이 정말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컸다. 어째서 … ? 나도 모른다.
확실한것은 나는 지금 조국에 와있다!
앞으로 어떤 《매일》이 기다리는것일가. 25일후 조국을 떠날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여있을가. 내 겉과 속은 …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은 뭉클하다.
이제 눈을 붙이면 래일이 온다.
조국땅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 기다려진다.
10월 14일 월요일/허공욱(문학력사학부 력사지리학과 4학년)
웅변발표모임을 끝내고 나는 오늘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본에서 2년간 떨림이 멈추지 않던 내 팔이 조국에서 치료를 받은지 사흘째에 그 떨림을 멈추었던것이다. 내 팔이라고 나자신이 믿을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온 나의 《모습》을 본 동무들은 눈물을 흘리며 반겨주었다.
투구부에 속해있는 나는 2년전 여름 일본대학과의 시합에서 어깨를 다쳐 《亜脱臼》와 《本態性振戦》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시간과 더불어 팔의 기능을 되찾을것이라고 의사는 말했고 나도 그런것으로만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날과 달이 흘러도 팔은 계속 떨려 나의 학업이며 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있었다. 일본에서 한다하는 병원들은 다 찾아다녔으며 치료에 효과가 있을거라는 방법들은 다 취해보았다. 그래도 안되였다. 나의 대학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었던 투구를 마음껏 못하는 내게 주어진 현실은 내 마음까지도 꺾어놓았다. 그런 속에서도 모처럼 마련된 조국방문의 기간에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하리라 다짐하였다.
조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자마자 강습소의 선생님들은 나의 상태를 알아보시고 평양의학대학의 이름난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셨으며 참관사업이 이어지는 바쁜 일정속에서도 내가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수 있도록 해주시였다.
지금 혼자 눈물을 머금으며 일기를 쓰고있는데 내 팔이 이제는 떨리지 않는다는것을 그냥 믿어도 되는지, 래일 아침에도 정말 떨리지 않을것인지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엉켜 진정할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조국을 믿는다.
《정성이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라는 말이 있다. 그 정성이란 정성을 바친 기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바쳐진 정성이라면 하루아침에 돌우에 꽃을 피울수도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여있는것이 아닐가?
나는 평생토록 내 팔을 볼 때마다 내 조국이 이역땅 철부지에게 안겨준 은혜로운 사랑을 되새기게 될것이다.
나는 조국에서 다시 태여난것 같은 심정이다.
10 월 18 일 금요일/량례의 (문학력사학부 어문학과 4학년)
래일이면 벌써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외삼촌할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내가 조선대학교에 진학한 리유의 하나는 조국에 계시는 외삼촌할아버지를 꼭 뵙고싶다는것이였다. 고3시절 악성비루스때문에 조국방문을 이룰수 없었던 나는 조대에 가서 4년후에는 기어이 조국으로 가리라는 생각을 안고 대학교문을 들어선것이다.
지금도 기억한다. 대학 1학년시기에 조국에 계시는 외삼촌할아버지를 어서 만나고싶다는 시를 창작했었던것을.
… 어서 뵙고싶습니다 / 할아버지 저를 안아주십시오 …
이처럼 간절했던 내 소원을 김정은원수님께서 풀어주신것이다.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외삼촌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릴수 있었으나 이제 곧 외삼촌할아버지곁을 떠나야 하니 상봉의 감격은 가슴속에 남아있는데도 무어라 말할수 없는 심정이다. 또다시 슬픔이 더 커져가는것일가.
일본에서 온 내가 기관지천식이 심하다고 꿀과 오미자단물약을 주시면서 더는 아프지 말라고 걱정해주시고 어문학과학생답게 앞으로도 시나 가사를 자주 써서 꼭꼭 보여달라고 해주신 외삼촌할아버지…
나는 조국을 떠난다고 슬픔에 잠겨 눈물만 흘려서는 안될것 같다.
일본에 가서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한시도 잊지 않고 조국에 계시는 그리운 외삼촌할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애국의 대오에 떳떳이 서있으리라.
민족교육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훌륭한 교원이 되여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리라.
외삼촌할아버지와의 상봉을 다시 꼭 이룩하리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