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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총련의 힘〉조선의 넋, 민족의 얼을 심어준 청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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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10-26 10:2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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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의 힘〉조선의 넋, 민족의 얼을 심어준 청년학교

 

《우리말을 배우는 기쁨》, 《가르치는 보람》


《일본학교에는 信川라는 통명을 쓰고 다녔는데 모진 차별을 받았습니다.》

 

오사까에서 나서자란 강영자씨(84살)는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다. 학생시절의 쓰라린 추억은 일본 소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교원으로부터 폭력을 당하여 상처를 입은것이다. 화가 난 어머니가 학교에 달려와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전교집회가 열렸다. 조선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보면서 폭력사건을 일으킨 교원은 결국 사직서를 냈으나 어린 녀동생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차별로부터의 도피


그는 민족적인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조선사람임을 숨기고 살았다. 일본 중학교를 졸업하고 양재학교를 다녀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 信川라는 이름으로 양재사로 일하면서 허무감에 휩싸였다. 왠지 모르게 일본사람의 안 좋은 점이 눈에 띄게 되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현해탄을 건너온  1세들이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조선사람이였지요. 내가 조선말을 하면 부모들이 기뻐하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거지요.》

 

강영자씨는 당시의 총련 기다오사까본부 북지부의 사무소를 찾았다. 1961년의 일이다. 지부일군과의 대화는 일본말이였다.

 

《노부까와의 따님이 무엇하러 왔니. (信川の娘さん、なにしにきたん)》

 

《조선말을 배우고 싶어요. (朝鮮語を習いたいんです)》

 

지부일군의 안해가 아이를 돌보면서 조선말을 가르치게 되였다. 강영자씨는 처음 해보는 조선말공부에 푹 빠져들었다.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습니다. 아버지가 전등불을 끄고 빨리 자라고 재촉하는데 이불에 들어가서 잠시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결국 아버지가 집의 차단기를 내려서 야밤에는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답니다…》

 

김립혜씨(81살)는 강영자씨와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일본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서로 면식이 없었다.

 

《〈죠셍징〉이라며 놀림과 왕따를 당했습니다. 중학교에 오끼나와출신인 녀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왕따를 당해도 〈나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오끼나와인이다.〉고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나는 그렇게 못했지요. 오사까에 조선학교가 있는것을 알았는데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교하기가 섫어서 일본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김립혜씨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양재학교에서 배웠다. 그때 북지부의 조청원들이 그를 찾아왔다. 동포청년들이 모여 조선말을 배우고있으니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1961년의 일이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청년들이 책상을 나란히 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배우고 싶다는 충동에 휩쌓이고… 조선학교의 교원이 강사를 맡아한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선말 그리고 조선의 력사를 배워서 우리가 왜 일본에 살고있는가를 알았고 조선사람은 억압받고 학대받는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청년학교에서 배운 덕분이지요.》

 


총련의 각급 기관들에서는 성인학교와 함께 조청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학교가 운영되였다.

 

우리의 풍속, 우리의 양식


총련은 결성당시로부터 재일동포들속에서 비식자자(非識字者)를 퇴치하기 위한 성인교육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우리는 제일조선동포자제들에게 모국어와 글로써 민주민족교육을 실시하여 일반 성인들속에 남아있는 식민지 노예사상과 봉건적유습을 타파하고 문맹을 퇴치하며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당시 총련강령에는 규정되였다.

 

총련의 각급 기관들에서는 성인학교와 함께 조청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학교가 운영되였다.

 

청년학교 수강생들이 배운것은 조선말만이 아니였다. 조청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수령과 조국에 대하여 깊이 알게 된 강영자씨는 조선말을 배운지 2년만에 결심을 다졌다.

 

《귀국의 배길에 오를것인가, 조청전임일군으로 나설것인가. 나는 둘중 하나를 선택할것이라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많이 고민하신것 같은데 딸과 떨어지고싶지 않으셨나 봅니다. 3개월후에 조청전임일군으로 나설것을 허락해주셨습니다. 》

 

강영자씨는 1963년에 조청전임일군이 되였다. 이전에는 싫었던 치마저고리를 스스로 입고 다니며 동포청년들속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조청 북지부에서는 그에게 청년학교의 강사가 될것을 권유하였다. 그래서 전임강사양성소에서 한달간 교수법을 비롯한 전문지식을 배웠다.

 

《1964년 처음으로 맡은 수강생은 19명. 大阪環状線의 고가아래에 위치한 지부사무소는 소음이 심해서 큰 소리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수강생의 수가 한사람 두사람 줄기 시작한겁니다. 나의 가르치는 방법이 나쁜가? 마음이 초조했지요. 다른 일군들은 이악스럽게 달라붙어 동원하자고 하였으나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될것 같지 않아 나는 결석한 동무 집에 찾아가 가르쳐주기로 했습니다. 》

 

강사의 성실함이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였다. 그들은 강영자씨를 보고 《우리 언니》,《우리 누나》라는 말로 부르게 되였다. 처음에 19명이였던 수강생은 34명으로 불어나고 전원이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게 되였다. 수료식에 모인 24명의 녀청년들은 난생 처음으로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나왔다. 양재사의 경혐을 가진 강영자씨가 수강생들과 함께 만든것이였다. 수료식에 참가한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넘쳤다.

 

《내가 전임강사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가족들도 변했습니다. 언니한테서 조선말을 배운 녀동생은 우리 학교를 다니게 되고 아버지는 총련 부분회장, 어머니는 녀성동맹 분회장을 맡았습니다. 월에 한번은 우리 집에서 분회모임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장만한 생선회를 맛보고난 후에는 술기운이 돌아간 동포들이 장고를 치고 노래 부르며 춤판을 벌리고… 우리 민족의 풍습을 느낄 때면 마음이 편안했지요. 》

 

한편 김립혜씨도 조선말을 배운 다음에 전임은 아니지만 강사의 역할을 놀았다. 지부일군에게서 《동무가 배운것을 다른 동무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하지 않겠소.》라고 지시를 받은것이다.

 

첫 수강생은 일본학교에 다니는 사촌동생이였다. 할머니가 살던 집에 칠판이 있어 그곳이 교실로 되였다. 그후에는 지부사무소에서 주에 3번 진행되는 청년학교의 교단에 섰다.

 

《매번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른 다음에 수업이 시작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조선글을 배운 청년들이 〈조선신보〉를 읽으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학습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조청반에서는 아침 6시에 동네의 공원에서 〈회상기〉학습을 진행했지요. 일본사람처럼 살던 시절의 나에게는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그 시대를 살던 동포청년들의 생활양식이였습니다.》

 


1965년 오사까에서 진행된 청년학교 강사 강습회에 참가한 김립혜씨(앞줄 왼쪽)과 강영자씨(왼쪽에서 3번째)

 

《모란봉》을 함께 브르던 시절

 

강영자씨에게는 잊을수 없는 수강생들이 있다.

 

《깡패조직에 몸담고 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진지한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는 외모였지요. 녀청년들은 지부사무소에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얼굴을 찡그리며 수업이 끝난 후에는 나를 보고 그 청년과 함께 있는게 싫다고 하소연하는겁니다.》

 

 

총련은 재일동포들속에서 비식자자를 퇴치하기 위한 성인교육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는 결국 청년학교에 오지 않게 되였다. 강영자씨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기력을 잃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청년은 강사가 자신을 가디리고있는것을 보고 놀랐다. 자택의 작은 방에서 두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조용하던 그가 책상우에  놓여있던 청년학교의 교재를 집어들고 내 눈앞에서 펼쳐보이는겁니다.  교재의 첫 페이지는 김일성주석님의 초상화이지요.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겁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훌륭한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느냐고요. 지부사무소에서 다른 청년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 그도 나름대로 자기자신을 돌아보게 된거지요.》

 

그후 강영자씨는 그의 자택을 자주 방문하여 개별수업을 진행하였다. 조선말과 글을 배우는 과정에 청년도 변했다.

 

《그는 귀국의 배길에 올랐습니다. 깡패조직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교또로 이동해 숨어있다가 귀국선을 탔지요. 세월이 흘러 그가 조국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여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일한다는것을 전해들었을 때 강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가슴뿌듯했습니다.》

 


총련은 재일동포들속에서 비식자자를 퇴치하기 위한 성인교육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민족의 넋을 되찾은 수강생이 강사가 되여 또다른 조선사람을 키웠다.

 

당시 일제식민지하에서 배울래야 배울수 없었던 동포들속에는 조선말은 알지만 조선글은 모르는 동포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또한 1960년대 중엽 일본학교에 재학하고있는 동포자녀들의 수는 근 10만명에 달했다. 일본 각급 학교에서 매년 졸업하는 약 1만명 가까운 청소년들은 대다수가 조선말과 글을 모른채 성인비식자자의 수에 포함되여가고있었다.

 

강영자씨가 청년학교의 전임강사로 된 1964년 총련은 성인교육사업을 전기관적, 전군중적으로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성인학교, 청년학교 1천개소 설치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해에 성인학교, 청년학교에 망라된 동포는 연 3만 9천여명에 달하고 그중 2만 2873명이 수료하였다.

 


1965년에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성인교육 열성자대회가 진행되였다.

 

총련은 민족차별과 천대가 횡행하는 일본땅에서 조선사람을 되찾고 그들의 열의에 의거하여 운동을 벌렸다. 조청 북지부에서 함께 활동한 강영자씨와 김립혜씨는 동포들속에서 비식자자를  퇴치하기 위한 운동이 줄기차게 벌어지던 당시의 동네풍경을 지금도 떠올리군 한다.

 

《청년들이 모이면 흥이 나서 조청지부 부위원장인 강영자동무와 지부위원장이 2중창을 부르곤 했어요. 명창가수들의 십팔번은 〈모란봉〉. 청년학교에서 배우던 노래가 울려퍼지니 우리 모두 덩실덩실 신나는 어깨춤이 저절로 나왔지요.》(김립혜씨)

 

《동포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과 일체감. 돌아보니 그것이 총련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변곡점이였습니다.》(강영자씨)

 

오사까의 한동네에 살던 강영자씨와 김립혜씨는 민족허무주의와 결별하고 조선말과 글을 배우는 과정에 서로 알게 되였다. 조청활동을 통해 맺어진 그들의 우정은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았다. 팔십고개를 넘어 서로 다른 곳에 살지만 지금도 총련의 한성원된 긍지와 자부를 안고 마음의 뉴대를 잇고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조선말과 글로 맺어진 이전 강사, 이전 수강생들은 일본 방방곡곡에 수없이 많다. 그들의 소중한 추억속에 총련의 눈부신 력사가 새겨져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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