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 [지창영의 자주문학] 달라·1 - 미국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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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9-25 10:3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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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영의 자주문학] 달라·1 - 미국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고발
지창영 시인, 미군철수투쟁본부 공동대표
그러나,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일제가 패망했듯이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미국 패권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달러 패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달러 패권을 힘으로 뒷받침하던 미군도 힘을 잃고 이곳저곳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전사로서 치열하게 싸우던 김남주는 이 시대를 보고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 지창영 시인, 미군철수투쟁본부 공동대표
달라·1 / 김남주
달라가 간다 어딘가로
지구 어딘가로 달라가 간다
어디로 가는가 달라는
어디로 가는가 달라는
살찐 땅에서 오히려 부황 뜬 얼굴
누런 바탕의 아시아로 간다
황금으로 오히려 가난한 대륙
검은 태양의 아프리카로 간다
빚에 눌린 빈사의 항구
바나나 공화국 라틴아메리카로 간다
왜 그리로 가는가 달라는
왜 그리로 가는가 달라는
그곳에 빵을 기다리는 굶주린 인류가 있어서인가
그곳에 평화를 그리는 부러진 날개의 새가 있어서인가
그곳에 자유를 꿈꾸는 가위눌린 나무가 있어서인가
아니다 거기 가면 아시아에 가면
보다 넓은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거기 가면 아프리카에 가면
보다 값싼 노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거기 가면 라틴아메리카에 가면
보다 높은 이윤이 있기 때문이다
달라가 간다 어딘가로
지구 어딘가로 달라가 간다
원조라는 미명으로 가고
오늘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차관의 너울을 쓰고 가고
내일은 빛 좋은 개살구
경제협력이란 망또를 걸치고 간다
미국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고발
이 시는 1987년 발행된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려 있다. 시집이 발행될 당시 김남주는 전주교도소에서 8년째 복역 중이었다. 집필이 허용되지 않는 감옥에서 못처럼 뾰족하게 간 칫솔 자루로 담배 은박지에 눌러쓴 여러 편의 시가 감옥 밖으로 유출되어 자주·민주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되어 주었다.
전사라 불리기를 바랐던 김남주 시인은 작품을 어렵게 쓰지 않았다. 누가 읽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줄로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느낌을, 때로는 투지를 나누었다. 그의 시는 문학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무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무기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더 좁혀 말하면 미 제국주의를 겨누고 있었다.
「달라‧1」은 군사력과 함께 미국 세계 지배 전략의 한 축인 달러를 통렬하게 비판한 시다. 미국 달러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가는 이유는 굶주린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직 이윤 추구가 그 목적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내세우는 명목은 늘 그럴싸하다. 원조, 차관, 경제협력의 이름으로 달러는 세계를 누빈다.
세계 경제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음모는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런 일을 앞장서서 실행했던 존 퍼킨스(John Perkins)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그 일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했던 일을 2004년에 책으로 펴냈다. 그의 고백을 살펴보는 것은 「달라‧1」을 더 실감나게 음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전 세계의 금융 기관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기업, 정부, 은행이 결탁하여 만들어 낸 시스템에 다른 나라들이 복종하도록 만드는 엘리트 집단이다. 마피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먼저 호의를 베푼다. 우리의 호의란 상대국이 발전소, 고속도로, 항만, 공항, 산업 단지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다. 차관을 제공하는 조건은 이 모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업체가 반드시 미국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차관해 준 돈은 대부분 미국 국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워싱턴의 은행에 있던 돈이 뉴욕, 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있는 토목 회사나 건축 회사로 옮겨갈 뿐이다.
돈은 다른 나라에 건네지는 즉시 기업 정치 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미국 기업(채권자)으로 흘러 들어가지만, 돈을 빌린 나라는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서 차관을 갚아야 한다. 만일 경제 저격수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내면 엄청난 금액의 돈을 빌린 나라는 몇 년 뒤에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 존 퍼킨스, 『경제저격수의 고백』, ㈜황금가지, 2005, 21~22.
시인 김남주 [사진출처: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달러를 무기로 한 미국의 패권적 행태를 김남주는 정확히 지적하고 시로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달러 패권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미군의 행태 또한 통렬하게 비판했다. 김남주에게 미군은 ‘나는 자본가의 재산을 지켜주고/ 구전을 따먹는 월가의 총잡이/ 나는 자본가의 생명을 지켜주고/ 땡전을 따먹는 텍사스의 카우보이’(「달라·2」)에 불과하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다. ‘텍사스의 카우보이 내가 가는 곳에/ 성한 땅은 없다/ 성한 바다는 없다/ 성한 하늘은 없다/ 대기는 오염에 죽어 밤별을 키우지 못하고/ 바다는 폐유로 썩어 병든 고기로 누워 있고/ 토지는 금비료 농약으로 중독되어/ 새로운 아기를 탄생시키지 못한다’(「달라·3」).
김남주를 앞서 보낸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많은 이들이 자주를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달러의 위력 앞에서 저항을 포기한 이들도 많다. 막강한 미군의 힘에 주눅 들어 지레 꼬리를 내린 이들도 많다. 문학에서 반제‧자주정신은 가뭄으로 메말라 있다. 일제 말기에 많은 지식인과 문인이 저항을 포기했던 것처럼, 지금 반미를 외치는 지식인과 문인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일제가 패망했듯이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미국 패권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달러 패권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달러 패권을 힘으로 뒷받침하던 미군도 힘을 잃고 이곳저곳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전사로서 치열하게 싸우던 김남주는 이 시대를 보고 있을까. 살아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계급사회에서 있어서 시인은 해방전사와 동의어입니다.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 시인은 항시 있어야 하고 저 또한 있을 생각입니다.”
1988년 12월 21일, 김남주 시인이 전주교도소를 나오면서 한 말이다. 미국의 패권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나라에서 자주를 염원하는 시인은 곧 전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출처 : 통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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