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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3편 – 가짜 민주주의의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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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4-01-18 06:0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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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심층분석 –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3편 – 가짜 민주주의의 기만적인 구성원리


이 연재글은 미국이 자랑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실상을 역사적으로, 자료적으로 낱낱이 파헤쳐 그 추악한 실상과 멸망의 불가피성을 살펴봅니다. 이 연재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과 의존심, 공포심을 버리고 맞서 싸울 때만이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 나갈 수 있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 안광획.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3편 –가짜 민주주의의 기만적인 구성원리

 


 

이번 연재에서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만적인 구성원리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반동 정치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기구와 정치제도의 총체인 국가정치체제의 기능과정입니다. 이러한 국가기구와 정치제도의 구성과 운영원칙을 규제하는 원리가 이른바 ‘자유’, ‘평등’, ‘주권재민’, ‘대의제’, ‘권력분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공포와 함께 법적으로 보장되고 현재까지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받들고 유지해 온 이 정치체제의 구성 원리들은 가짜 민주주의로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미국식 ‘자유’, ‘평등’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성원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와 ‘평등’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다른 모든 원리들을 규제하고 관통하는 출발 전제, 기초 원리로 되고 있다.

 

‘자유’와 ‘평등’에 관한 자본가계급의 견해는 미국 독립선언과 헌법에 미국 정치제도의 기초 원리로 고착되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헌법 수정을 통해 그 내용이 보충됐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옹호자들은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이 있는 미국이 바로 ‘자유’와 ‘평등’의 ‘천국’이며 ‘자유’와 ‘평등’은 미국의 건국 이념, 정신이라고까지 떠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전제로서의 자유, 평등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자본가계급의 강도적 소유권의 자유이고 기만적이며 형식적인 평등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성원리인 ‘자유’는 진정한 자유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민중의 정치・경제적 예속을 낳는 근원이다.

 

 

(그림: 필라델피아 제헌회의)

 

미국의 ‘건국자’들이 제창한 정치체제의 구성원리, 정치이념으로서의 ‘자유’는 본질에 있어서 소수 착취계급의 소유권과 치부의 자유였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호프스타터(Richard Hofstadter, 1916~1970)에 의하면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열렸던 미국 제헌회의 참가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자유를 원하는 흑인 노예와 노동자 등과 같은 계급에게 자유를 확대하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배심제도, 정당한 법절차, 부당한 수사와 체포로부터의 보호 등과 같은 실질적인 자유를 요구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그 헌법의 반대자’들이었다.

 

미국의 ‘건국자’들이 헌법에 규정한 ‘자유’란 공동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합된, 무산자 다수로부터의 자본가들과 농장주들의 소유권의 자유였다. 그런 데로부터 미국 부르주아지가 정치체제로부터 담보 받은 자유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방해하는 ‘재정적 불확실성과 통화의 불규칙성으로부터의 자유, 여러 주 사이의 무역 전쟁으로부터의 자유, 강력한 정부에 의한 경제적 차별로부터의 자유’였으며 특히 ‘채권자 계급과 소유에 대한 공격으로부터의 자유, 민중 반란으로부터의 자유’가 주된 내용이었다.

 

이처럼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에서의 자유, 사적소유를 위협하는 민중에 대한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바로 미국 부르주아지가 추구한 정치이념이었으며 ‘미국식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다.

 

미국 부르주아지가 획득한 소유란 실제에 있어서 ‘강탈된 장물’에 불과했다. 총칼과 대포만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 원주민에 대한 학살을 통해 빼앗은 토지와 재부, 자원을 토대로 흑인 노예를 비롯한 민중을 가혹하게 착취해 이루어진 피 묻은 재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기본 목적이었다.

 


 

파렴치한 강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긍정하고 그것을 정치체제 구성의 기초 원리로 삼은 미 제국주의는 침략전쟁으로 독립 당시에 대서양 연안의 13개 주에 불과하였던 영토를 오늘과 같이 확장하고 세계에 대한 침략과 약탈을 거리낌 없이 감행하면서도 그것을 소유권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강도적 소유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중에 대한 정치적 지배와 억압, 나아가서 세계에 대한 패권적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 미국의 독점자본가계급에는 ‘합법적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자유’를 무한히 숭상하는 미국의 독점자본가계급이 전 세계를 저들의 사적소유의 자유를 확대할 대상으로 삼고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림: 평등-형평-실상 풍자화. 미국식 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첫 번째 그림도 아니고 사실 세 번째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성원리로서의 ‘평등’ 역시 기만으로 가득 찬 법적, 형식적 평등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의 자본가계급에 있어서 평등은 절대로 접수될 수 없는 사회적 폐단의 근원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 현상’이라는 것이 건국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으로 되고 있다.

 

그 후 평등에 대한 민중의 요구에 못 이겨 1787년의 헌법 초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국민의 평등한 자유와 권리’가 1791년에 10개 조의 수정안으로 채택되어 헌법에 보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가계급의 대표자들은 추상적으로 ‘모든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형식적으로 규정하였을 뿐 국민의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문화적인 실제적 평등에 대하여서는 꿈도 꾸지 않았다.

 

미국의 한 인권학자까지도 “사실상 우리는 ‘모든 사람’이 전 인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미국 헌법이 모든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노예에게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생명권, 자유권, 행복 추구의 권리)가 없으며 기타 흑인, 미국 원주민과 여성(심지어 백인 여성)도 백인 남자와 같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없으며 동등한 헌법상 보호에 대하여 논할 수 없다.”라고 ‘미국식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법적, 형식적 평등의 기만성을 폭로하였다.

 

미국에서는 그 후 1865년의 노예제 폐지 수정안, 1870년의 흑인들의 참정권 보장에 관한 수정안, 1920년의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수정안, 1964년의 참정권 제한 폐지 수정안 등이 채택되어 헌법에 보충되어 왔으나, 이것들은 모두 착취계급이 민중을 기만하기 위한 거짓 공약에 불과했다.

 

 

(자료 1: 미국 참정권 제한의 실체 – 2011년 기준으로 13개 주에서 선거인 등록 기간을 줄이거나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을 신설했다. 이 때문에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의 투표권이 제약받고 있다.)

 

 

(자료 2: 미국 참정권 제한의 실체 – 미국인 중 10%, 흑인 중 25%가 신분증이 없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특히, 이들 대다수는 소수민족이며, 대체로 1년 총소득이 3만 5천 달러를 넘지 못하는 빈곤층이다.)

 

참정권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까지 미국에서는 엄격한 투표자격 제한 때문에 수많은 소수민족과 빈민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문자 해독 능력과 조부조항*, 선거세, 대통령 후보 지명 예비선거에서의 흑인의 제외**, 거주 연한 등의 제한조건이 정치적 불평등을 합법화하고 있으며 인종주의적 차별로 흑인이나 소수민족 출신들은 선거장에 나서기조차 꺼리는 형편이다. 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불평등이 공공연히 사회의 당연한 현실로 합리화되고 정치적 불평등이 지배하는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평등’의 결과인 것이다.

 

* 1870년 이전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직계 후손에게만 투표권을 한정하는 조항.

** 그나마 2009년에는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독점자본의 기만적 술수에 불과하다. 오바마 역시 집권 기간 동안 미 제국주의 침략 정책을 철저히 수행했다.

 

이처럼 ‘미국식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는 착취계급의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 무제한의 치부 자유이며 ‘평등’은 민중을 배제하는 착취계급 내부의 평등이다. 위선과 기만에 불과한 미국식 ‘자유’, ‘평등’을 근본원리로 하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위선적인 민주주의, 가짜 민주주의로 되는 것은 응당한 이치이다.

 

2. 위선적인 ‘주권재민’과 ‘대의제’

 

위선적인 ‘주권재민’과 ‘대의제’ 역시 ‘미국식 민주주의’의 구성원리 중 하나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국가 주권의 조직 원리로서의 ‘주권재민’과 ‘대의제’는 민중을 주권의 조직과 실현에서 배제하기 위하여 꾸며진 기만적이며 파렴치한 자본가계급의 통치원리이다.

 

 

(그림: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의 ‘리바이어던’) 

 

원래 ‘주권재민’과 ‘대의제’의 원리는 유럽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론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제창된 ‘사회계약설’에서 유래되었다.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 1642~1651)으로 불리는 부르주아 혁명 시기부터 왕정복고 시기의 기간에 활동한 영국의 토머스 홉스(Thomas Hobs)는 자기의 ‘사회계약설’에서 인간이 처음에 ‘만인을 반대하는 만인의 투쟁’으로 특징되는 ‘자연 상태’에서 살다가 이성에 기초하여 ‘자연법’을 발전하고 평화를 요구하게 되며 결과 매 개인의 ‘자연권’을 포기하고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국가의 주권행사를 담당한 군주(‘리바이어던’(Leviathan))는 ‘사회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자연권’을 체현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절대왕정을 옹호했으며 주권은 군주에게 있다는 반동적 견해에 떨어졌다.

 

영국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 시기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토머스 홉스의 이 이론을 발전시켜 ‘주권재민’의 원리를 내놓음으로써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집권을 합리화해 나섰다. 그는 토머스 홉스와는 달리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권’과 함께 ‘자연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전제 아래 이러한 ‘자연권’을 매 개인이 제멋대로 행사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계약을 체결한 결과 국가가 생겨났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사회계약’을 통하여 추구한 것은 ‘자연권의 포기’가 아니라 그것을 더 잘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이러한 계약은 군주와 정부도 구속하는 지상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자연권’의 연장으로서의 국가 주권은 원래 국민의 것이며 ‘자연권’을 더 잘 보장하기 위한 계약의 당사자인 군주와 정부가 이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인민이 그러한 군주와 정부를 반대하여 싸울 권리가 있다는 ‘주권재민’의 원리가 처음으로 표방됐다.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소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이론의 대표자인 장 자끄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88)는 『사회계약(Du Contrac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주권은 어떤 개인 혹은 계급에게가 아니라 전체 민중에게 속한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몽떼스끼외(Montesquieu, 1689~1755)가 ‘명예혁명’ 후의 영국의 정치형태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찬양한 데 대하여 그것을 부정하면서 “영국인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오이다. 그들은 국회의원을 선거하는 순간에만 자유로우며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된다. 의원은 지배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영국식 ‘대의제’ 정치를 배격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루소에 의하여 이미 ‘주권재민’을 표방하는 영국식 ‘대의제’의 착취 계급적 성격이 폭로된 것은 그것이 민중은 물론 중소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실현할 수 없는 거대 부르주아지의 통치원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의 작성자들은 루소의 이러한 견해를 극도로 위험시하면서 로크의 사상을 왜곡해 채용하고 영국의 ‘대의제’를 모방한 ‘주권재민’과 ‘대의제’를 정치체제의 구성원리로 삼았다.

 

1797년에 매디슨은 『연방주의 교서』에서 미국의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주권재민’, ‘대의제’의 원리를 변호하면서 “루소가 주장하는 순수한 민주주의는 당과의 해악을 조성하며 사적안전과 소유권과는 양립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는 ‘악’을 가져올 수 있는 ‘대중의 지배’를 대신하는 최상의 방도가 바로 ‘대의제’에 의한 통치라고 하면서 다수에 의해 선출된 소수의 시민에게 주권을 위임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였다.

 

매디슨에 의해 ‘국가의 진정한 이익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는 애국심과 정의에 대한 애정을 지닌 선택된 시민의 항시적인 조직체’로서의 의회를 통한 정치가 인민대중에 의한 ‘혼란과 악’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었다. 여기서 ‘국가의 진정한 이익’이란 두말할 것 없이 미국 자본가계급의 착취적, 약탈적 이해관계이며 ‘애국심과 정의를 지닌 선택된 시민’이란 제헌회의 참가자 가운데서 90%를 차지한 자본가들과 노예농장주와 같은 착취계급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건국자’들이 정치체제를 구성하면서 ‘주권재민’의 원리를 왜곡, 도용하여 원래 민중의 것이어야 할 주권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착취계급의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의회에 합법적으로 넘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대의제’를 추구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과의 ‘독립전쟁’ 이전 시기를 미국의 ‘자연상태’로 가정한다면 주권의 소유자가 군주 대신 부르주아지의 대표기관인 의회로 바뀐 것을 내놓고는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설’이 그대로 미국의 현실에 옮겨지고 인민은 주권을 빼앗긴 주권의 행사대상이 되었다.

 

 

(그림: 제레미 벨크내프, 벤자민 러시)

 

당시 뉴잉글랜드(New England)의 성직자 제레미 벨크내프(Jeremy Belknap, 1744~1798)는 한 편지에서 “정부는 민중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을 원칙으로 세워두시오. 그러나 민중에게 그들 스스로가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오.”라고 썼다. 이것이 미국 정치체제의 설계자들이 지니고 있던 민중에 대한 관점이었으며 정치원리로서의 ‘주권재민’의 기만적 본질과 ‘대의제’의 진상을 자체 폭로한 것이었다.

 

하기에 미국 독립선언의 서명자인 벤자민 러시(Benjamin Rush, 1746~1813) 조차도 이에 대해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서 나온다고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선거할 때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권력은 인민의 지배자 소유로 되고 만다.”라고 개탄하였다. 한편 미국의 ‘건국자’들은 ‘선거할 때 뿐의 주권행사’마저 ‘다수에 의한 선거전제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면서 기만적 ‘주권재민’에 기초한 ‘대의제’가 철저히 착취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매디슨은 ‘주권재민’의 기만성을 자인하면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위한 ‘대의제’를 유지하기 위해 선거자격의 제한을 널리 이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에 의하면 “일정한 시기가 오면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의 수를 능가할 수 있으며 그때는 ‘평등한 선거 원칙’에 따라 틀림없이 권력이 후자의 손에서 전자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다.”라는 것이다.

 

‘주권재민’을 표방하는 미국에서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제한하는 각종 선거자격 조건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 건국자들의 충고를 ‘대의제’의 원칙으로 삼아온 데 있다.

 

 

(그림: 미국 대의제의 실체 – 대다수 시민은 외면하는 자본가계급만의 민주주의)

 

‘미국식 민주주의’ 설계자들이 추구한 ‘주권재민’과 ‘대의제’의 원리란 이처럼 자본가계급에게 장악된 국가 주권의 반동적 본질을 은폐하고 민중의 주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무마하며 저들의 정치적 지배를 유지, 공고화하기 위한 것이다.

 

‘주권재민’의 간판 아래서 진행된 2021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22년 미국 중간선거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수많은 유권자들이 자기의 참정권을 박탈, 제한당하고 있으며 국가 주권을 합법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전속적 권리로 만드는 ‘대의제’에 의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 근대 초에 부르주아지가 ‘사회계약설’에서 표방한 ‘민중에 의한 정부의 구성 및 반대의 권리’란 미국에서 언제 한 번 행사된 적도 없고 행사될 수도 없으며 미국의 정치체제, ‘미국식 민주주의’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어떠한 대상이나 요소에 대해서도 가혹한 탄압이 가해지는 것이 미국 사회의 현실이다.

 

‘대의제’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는 국회는 오늘 독점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법제화하고 행정부의 반민중적이며 침략적인 대내외정책을 합법화하는 시녀로 되고 있다.

 

미국식 ‘주권재민’과 ‘대의제’는 참정권이 오직 부르주아지에게만 있게 하는 반면에 민중을 국가주권의 조직과 실현에서 배재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통치원리이다. 민중의 정권에 대한 참가를 배제하는 기만적인 ‘주권재민’과 ‘대의제’를 국가권력의 조직 원리로 하는 미‘미국식 민주주의’가 위선이고 가짜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3. 허구적인 ‘권력분립’

 


 

‘권력분립’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주요 구성원리이다.

 

‘권력분립’의 원리 또는 ‘권력분립주의’로 불리는 미국의 국가구조와 국가기관들의 권한 분담을 규정한 이 원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특이한 ‘우월성’의 하나로 광고된다.

 

‘권력분립’의 원리는 자본가계급의 중앙집권적이며 행정 독주적인 독재정치를 목적으로 고안되어 미국의 정치체제에 구현된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국가구조원리로서의 ‘권력분립’은 자본가계급의 반동통치를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하여 담보하며, 민중을 분열시키기 위한 통치전략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변호론자들은 연방정부와 주 사이의 ‘권력분립’에 의해 매개 주가 다 자기의 헌법을 가지고 있고 해당 지역의 특성에 따르는 다양한 법제도 하에서 사람들이 ‘개성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또한 각 주들이 상원에 2명, 하원에는 인구비례에 따라 자기들의 대표들을 국회의원으로 두고 있으므로 주의 이익이 연방정부를 동해 보장된다고 한다. 한편 연방정부를 통하여 주들 사이의 연계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전 국민적 이익이 보장되며 미국의 ‘강대한 국력’이 유지되는 그야말로 ‘집권화와 분권화의 이상적인 융합’이라는 점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국가 형성과정에서 논의된 연방 구성의 진의를 은폐하고 피상적인 현실을 과장하여 찬미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미국의 동부해안 지역에 위치한 13개 주의 연합으로부터 이루어졌다. 「독립선언」에서 ‘아메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당시까지는 아직 통일적 중앙정부도 없고 오늘날 국제무대에 존재하는 국가연합보다도 연계가 약한 개별적 주들 사이의 일시적인 연합에 불과했다.

 

‘독립전쟁’ 이후 이 연합을 국가연합의 형태로 유지하는가, 아니면 통일적이며 강력한 중앙정부를 가진 연방 국가로 강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제헌희의에서 13개 주의 부르주아 대표들이 갑론을박하던 끝에 연방주의자들의 주장이 지지를 받아 미합중국은 연방제 국가로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연방주의자들과 그들을 지지한 자본가계급의 진의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매디슨은 『연방주의 교서』에서 연방 구성의 필요성에 대하여 “사회가 작을수록 나머지 시민을 억압하는 다수를 형성하기 쉽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영역을 확대하라. 그러면 다양한 부분과 이익들을 수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전체의 다수가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동기를 공통으로 가지는 것이 다소 가능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러한 동기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을 발전시키고 서로 연합하여 행동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즉, 동일한 국가권력을 13개 주 전체에 확대하면 다양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가진 서로 다른 계급과 계층을 더 많이 체제 안에 들여놓을 수 있으며 민중을 분열시켜 단일한 절대다수로 뭉치지 못하게 하고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매디슨은 훗날 연방 형태의 미국의 정치 현실을 정당화하면서 “많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확대된 공화국인 미합중국에서는 다수의 연합이 정의와 보편적 선에 의거하지 않는 다른 원칙을 위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확대된 영역 안의 이익의 다양성’으로 하여 어떻게, 그리고 왜 ‘다수의 연합이 정의와 보편 선을 원칙으로 취하게 되는가’는 일언반구도 없다. 매디슨은 확실히 연방제로 구성된 미국의 반인민적 통치체제가 자본가계급의 분열 통치전략에 따라 민중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노예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대해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방주의 교서』에서는 또한 다수의 ‘정의로운 연합’과 ‘정의롭지 못한 결합’을 어떻게 누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는 것, 예시로 부르주아지의 사적 재산권을 반대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다수, 즉 민중이 왜 ‘정의롭지 못한 결합’인가 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는 시종일관 ‘다수’는 ‘부정의’와 결부되고 ‘소수’는 ‘다수’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가정하고 연방 구성의 필요성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부르주아지가 ‘독립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민중의 힘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면서 그것이 저들의 사적 소유를 침해하는 데로 돌려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역량 상 우세를 보장하기 위하여 연방의 구성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교서』에서 연방 중앙정부의 ‘장점’에 대하여 “계몽된 견해와 덕망 있는 감정으로 지역적 편견과 정의롭지 못한 결합을 압도할 수 있으며 지역적인 당파의 영향이 전체 연방에 미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연방제가 부르주아지의 민중에 대한 독재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채택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위 ‘계몽된 견해와 덕망 있는 감정’을 가졌다는 자본가와 노예농장주 등 사회의 상류층이 ‘정의로운 소수’로서 ‘부정의’를 판단하고 ‘정의롭지 못한 다수’인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고안된 국가구조가 바로 미국의 연방제인 것이다. 중앙과 지방의 ‘권력분립’의 원리에 그 어떤 ‘민주’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해당 지역의 자본가들이 지역의 특수성을 내세워 저들의 이익을 제 뜻대로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이다.

 

미국의 국가구조는 건국 당시부터 오늘까지 자본가계급의 중앙집권적 독재정치를 유지, 강화하는 독재구조로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실현에 복무하고 있다. 이처럼 종적인 ‘권력분립’을 표방하는 미국의 연방제는 민중에 대한 착취자들의 중앙집권적 독재를 실현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통치구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 미국의 기만적 ‘삼권분립’. 실상은 입법부, 사법부가 행정부에 사실상 종속된 상태이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횡적인 ‘삼권분립’이라는 것도 독점 자본가 계급의 행정 만능주의 반동통치를 은폐하는 기만적인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입법, 행정, 사법을 분리해 독재정치를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부르주아지가 내놓은 ‘3권분립’의 원리 자체가 모순적이며 기만적인 것이다. 이른바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불리는 이 원리는 부르주아지에게 통일적으로 장악된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각 기관 사이의 기능 분담을 나타내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권력분립’의 원리를 지배계급의 요구에 맞추어 행정 만능주의 부르주아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근거로 도용했다.

 

『교서』에서는 입법부를 여러 개로 나누는 반면에 행정부는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까지도 미국에서는 헌법에 의해 2년을 주기로 하원의원의 전부를, 상원의원의 1/3을 선거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다수당의 선거전제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고안되고 헌법에 고착된 것이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이에 대해 “만일 민주주의자들에게 더 많은 몫의 주권이 차례 된다면, 다시 말해 그들에게 입법부에서 압도적인 우세와 통제력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당신들, 귀족들의 손에서 모든 소유를 전부 거두어들이려고 투표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입법부를 부르주아지의 대표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대의제’의 원리도 모자라 그것이 민중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바뀌지 못하도록 여러 개의 부분으로 갈라놓은 미국의 ‘건국자’들은 의회의 입법권에 대항하는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까지 규정해 놓았다. 그들은 대법원 판사들의 선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임기를 종신제로 함으로써 행정부에 철저히 종속시켰다. 행정부의 시녀로 된 사법부에 무엇이 ‘정의’이고 ‘헌법에 일치하는가’를 결정하는 ‘위헌심사권’과 같은 최종 결론권이 부여되어 결국은 입법과 사법이 모두 행정부의 독재정치를 보장하는 들러리 역할을 하게 하였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초기의 설계자들이 구상한 대로 대통령 행정부의 권한이 계속 증대되어 전제군주와 같은 수준에 이르고 입법부와 사법부는 그에 철저히 아부하는 행정 만능주의 부르주아 독재체제로 강화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바이든 정권이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 기만적인 ‘삼권분립’의 혜택을 입어 자본가계급의 독재정치를 자의대로 실시하는 행정 만능주의 정치체제의 전형으로 되고 있다.

 

이처럼 ‘횡적 권력분립’이란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직접적으로 집행하는 행정부의 전횡을 합법화하기 위한 교활한 사기 논리이다.

 

즉, 미국의 국가구조와 국가기관들의 권한 분담을 규정한 ‘권력분립의 원리’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부르주아 독재적 성격을 은폐하기 위한 기만적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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