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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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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9-02 10: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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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재] 나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17) 

 

 


 



제 1장 주체사상의 창시와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심화발전

 

 

제2장 김일성주의의 견인력의 원천

 

 

제 3장 인간위주의 철학적 세계관의 독창성문제

 

 

제 4장 민중중심의 사회역사관의 독창성 문제

 

 

제 1절 사회의 본질과 구성요소

 

 

제 2절 사회역사적 운동을 보는 주체적 시각

 

 

제 3절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문제에 관한 논의

 

 

제4절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

 

 

나: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자연의 운동과 사회역사적 운동이 다 물질적 운동이라는 공통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역사적 운동의 원리를 전개한 것이라면 주체사관은 자연의 운동과 구별되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적 특성에 기초하여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밝혔다고 앞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그것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해설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  주체사상은 사회역사에 작용하는 물질세계의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시인하면서 사회역사적 운동에 고유한 합법칙성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노동자계급의 사회역사관을 완성하는 데서 주체사상이 이룩한 중요한 공적이 있습니다.

 

나: 그러면 먼저 주체사관이 밝힌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의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주: 주체사관이 밝힌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에 대하여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밝혀주시었습니다.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며 사회역사적 운동은 인민대중의 자주적, 창조적 운동이며 혁명투쟁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적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회역사원리는 주체사관의 기본내용을 이룹니다. 이것은 주체의 운동인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과 성격, 추동력에 대한 새로운 해명으로 됩니다."(27)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원리는 주체사관의 기초적인 문제에 해답을 준 근본원리, 즉 사회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해명한 원리이며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원리는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을 밝혀주는 원리입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의 창조적 운동이라는 원리와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라는 원리는 주체의 운동인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과 추동력을 밝혀주는 원리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그 어느 사회역사관도 이렇게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 성격, 추동력을 체계정연하게 밝힌 사회역사관이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순차적으로 고찰해 보겠습니다.

 

(1)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와 '계급투쟁 지상론'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계급투쟁 지상론적' 시각에서 인류역사는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주체사관의 원리를 ‘비역사적이고 비계급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남의 한 ML론자는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명제는 구체적 조건을 밝히고 이것으로부터 다른 사회에로의 구체적인 이행의 전제를 제시하는 주장이 못되기에 우리는 이 명제가 단호히 철폐되어야 하며 ‘계급투쟁의 역사;'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교체의 역사’라는 유물사관만이 올바르다고 선언한다."28)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급투쟁의 역사’를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교체의 역사’로 보아야만 어떻게 노예적 해방이 새로운 봉건적 예속으로, 농노해방이 자본주의적 예속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주: 그러한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29)고 주장한 맑스주의의 명제도 비역사적이고 비계급적인 것으로 되고 맙니다. 이 명제 자체에는 각이한 역사발전의 단계에서 다르게 표현되는 계급투쟁의 구체적 동기와 계급분화의 과정, 구체적으로 어떤 계급들간의 투쟁이 진행되는가 하는 문제의 명시가 없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일반명제, 일반원리는 언제나 ‘비역사적’이고 ‘비계급적인’ 것이며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오직 일반적 명제나 원리로 일반화할 수 있는 구체적 과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일반적 원리와 명제를 구체적 사회역사적 단계에 적용하여 음미할 능력이 없을 때 일반적 원리와 명제는 언제나 '공허하게’ 울릴 뿐입니다.

 

이남의 ML론자들은 맑스가 정식화한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명제의 의미와 내용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급투쟁 지상론’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계급투쟁 지상론'은 계급투쟁의 거부, 계급투쟁의 포기를 노리는 자들의 변신술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실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계급투쟁으로만 설명하면 계급적 원칙이 관철되는 것이 아닙니다. 맑스는 그가 정식화한 명제에서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라고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급사회의 발전의 노정을 개괄한 것이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정식화임을 말하여 줍니다. 맑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했으며 또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의 면모와 그 발전에 대하여서는 가정과 예측을 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계급사회에 한정시켜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그것을 인류사회의 발전의 전역사에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릇된 이해입니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에도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이 남아있고 외부의 제국주의 세력과 손을 잡은 자들도 있으며 제국주의자들이 침투시킨 적대분자들도 존재하는 조건에서 계급투쟁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과 관련된 사회주의 사회발전 과정의 기본내용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주권과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사회의 주인으로 등장한 민중이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사상, 기술, 문화 분야에서의 낙후성을 초극하고 자연과 사회와 인간자신을 개조하여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3대혁명, 즉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사회발전의 기본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맑스주의의 명제자체의 이론적 한계성은 없는지요.

 

주: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맑스주의의 명제자체도 생산양식의 결정론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 한계성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은 계급간의 충돌로 발현된다."(30)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계급투쟁을 격렬하게 벌리게 하는 객관적 조건으로 될 수 있으며 또한 민중의 경제적 자주성을 유린하는 것은 민중으로 하여금 계급투쟁을 벌리게 하는 원인의 하나로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계급투쟁이란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을 정치, 경제, 사상, 문화적으로 억압하는 반동적 착취계급을 반대하는 투쟁이지 결코 생산력의 성격에 생산관계를 적응시키기 위한 투쟁은 아닙니다. 계급투쟁을 통하여 낡은 반동적 착취계급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세우는 것은 생산력 발전의 넓은 길을 열어놓는 것으로 됩니다.

 

또한, 계급투쟁이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분석하는 중요한 원리로 된다고 하더라도 계급사회의 모든 사회역사적 현상이 계급투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계급투쟁이 크게 정치투쟁, 경제투쟁, 사상투쟁의 영역에서 진행됩니다. 여기서 경제투쟁은 민중의 자주적,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는 투쟁입니다. 그러나 생산력을 발전시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과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 그 자체가 곧 계급투쟁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자연을 인간에게 더 잘 봉사하도록 하기 위한 투쟁은 곧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 민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입니다.

 

민중의 <자주성의 실현>을 잣대로 하여 사회역사적 현상을 분석해야 계급투쟁 뿐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 등 사회역사적 운동의 모든 내용을 포괄적으로 일관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맑스주의의 ‘계급투쟁의 역사’에 대한 정식화에는 역사발전의 주동과 피동이 명백하지 않으며 역사발전의 근본방향이 예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계급투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었습니다.

 

"계급사회의 전노정은 역사의 창조자와 역사의 반동, 혁명의 주인과 혁명의 대상, 다시 말하여 근로인민대중과 반동적 착취계급사이의 첨예한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31)

 

주체사관이 계급사회의 전노정을 역사의 창조자, 혁명의 주인과 역사의 반동, 혁명의 대상과의 첨예한 투쟁의 역사로 정식화함으로써 역사의 창조자, 혁명의 주인과 역사의 반동, 혁명의 대상인 반동적 착취계급을 구체적 내용을 가지는 역사적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역사를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이 실현되어 온 역사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역사적 운동을 ‘계급투쟁의 역사’로 정식화한 맑스주의의 명제는 일면성과 원리적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산양식의 주재론에 익숙한 독경주의자들은 이것을 올바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인류역사를 사구체의 교체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ML론의 원리적 한계성과 일면성은 이미 앞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나: 그러면 인류역사는 민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주체사관의 원리가 어떻게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을 명시한 원리로 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주: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혀주시었습니다.

 

“인류사회의 발전역사는 자주성을 용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입니다."(32)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하여 민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자주적 운동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이 민중의 자주적 운동으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민중이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데 그 근거가 있습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은 주체의 운동이며 그 본질은 주체인 민중의 본질적 속성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민중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으로 하여 그의 모든 운동은 자주성을 옹호하며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됩니다.

 

또한,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이 민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기 위한 투쟁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역사적 운동의 근본원천과 방향, 내용과 기본흐름, 사회관계 발전의 합법칙성을 일관하게 규정하는 원리라는 데 있습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의 근본원천은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에 대한 요구와 지향이며 그 근본목적은 자주성의 실현에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발전의 전과정은 자주적으로 살려는 민중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시작되고 이 투쟁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역사발전의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다양한 운동으로 충만되고 각이한 성격의 역사적 운동으로 엮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은 자연과 사회의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려는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역사의 주체인 민중의 자주성에 대한 지향과 요구의 내용과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발전과정이 곧 사회역사적 운동의 발전과정으로 됩니다. 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역사적 운동의 근본방향은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입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이 자주적 운동이라는 것은 사회역사적 운동이 자연의 구속과 사회적 예속, 낡은 사상과 문화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연개조, 사회개조, 인간개조 활동을 기본내용으로 하여 진행되며 사회관계 발전의 합법칙성이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합법칙적 과정으로 되는데서 노출됩니다. 사회정치적 변혁이 진행되고 그에 기초하여 경제와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의 변혁이 수행되는 것이 사회관계 발전의 합법칙성입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사회주의혁명의 경험에 토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는 사회정치적으로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입니다."(33)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정치적 변혁이 선차적으로 나서는 것은 정권의 본질, 역할과 관련됩니다. 민중은 정권의 주인으로 되어야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실제적 지위를 차지하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이 자연의 구속과 낡은 사상문화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본열쇠로 됩니다.

 

경제생활, 경제관계는 정치관계, 정치생활에 의하여 규정되며 정치적 권력의 승인과 보호하에서만 경제권도 소유하고 행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자주성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자기의 요구에 맞게 생산의 규모와 내용, 속도와 수준을 조절할 수 없고 생산력을 발전시켜도 그것을 자기자신의 자주적 생활을 누리는 데 효율적으로 봉사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사회정치적 자주성이 없으면 민중의 자주성을 구속하는 낡은 사상과 문화를 없애고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창조하는 사업도 성과리에 진행할 수 없습니다.

 

사회가 적대계급들로 분열된 이래 인류사회의 지나온 역사는 반동적 착취계급의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진보적인 사회정치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회혁명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사회혁명에 의해 정권을 쥔 계급은 정권에 의거하여 경제와 문화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변혁하여 새로운 경제체제, 문화체제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진행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하여 밝힌 사회관계의 발전의 합법칙성입니다.

 

생산양식을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재자로 본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생산력의 발전생산관계의 변혁정치적 변혁사상문화적 변혁을 사회관계의 발전의 합법칙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새로운 생산관계의 발생을 근거로 하여 이것을 논증하였습니다. 스탈린은 유물사관의 이 원리를 견지하면서도 이전 사회의 태내에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생이 없이 정치적 변혁이 선행된 데 대하여 그것을 사회주의적 변혁의 특성으로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물사관의 이 원리가 사회주의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만 적용되는 한계적이고 일면적인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역사관의 원리는 인류사회의 전과정을 관통하는 원리로 되어야만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로 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주체인 민중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관계 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힌 주체의 원리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담당한 계급의 출현사회를 변혁하는 진보적 사상의 출현민중의 혁명역량의 장성정치적 변혁경제적 변혁사상문화적 변혁으로 그 합법칙성을 명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새로운 생산관계가 발생하며 새사회를 담당한 계급이 출현합니다. 유물사관은 이것을 경제의 변혁으로 보았는데 낡은 사회의 태내에서 발생한 새로운 생산관계는 아직 그 사회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지배적인 경제체제는 아닙니다. 정권을 전취한 다음에야 정치적 권력에 의거하여 전사회적 범위에서 경제적 변혁을 이룩할 수 있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는 이 이전의 생산관계,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태내에서 발생할 수 없지만 고도의 생산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의 매장자인 노동자계급을 대량적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이 민중의 자주적 운동이라는 것은 사회역사 발전의 기본단계와 흐름이 민중의 자주성 실현과정의 기본단계와 흐름으로 된다는 데서 표현됩니다. 민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확립을 분기점으로 하여 구분되는 사회에서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단계와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기초위에서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한 투쟁단계는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기본노정이며 곧 역사발전의 기본노정, 흐름입니다.

 

이와 같이 민중중심의 주체사관에 의하여 사회역사적 운동이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으로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짐으로써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역사의 발전과정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던 이해로부터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에 대한 이해에로의 근본적 전환이 이룩되었습니다. 또한, 민중의 자주성의 실현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는 역사발전의 기본줄기를 바로잡고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노정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민중의 창조적 운동과 '혁명성' 논의

 

나: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의 창조적 운동이라는 주체사관의 원리에서 '창조성'의 개념은 바로 ‘혁명성’의 개념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아마도 '창조성’이란 '인민대중’이 지니고 있는 ‘혁명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34) "맑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이외의 계급, 특히 ‘중간계급’이라는 범주에 '인민대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 이외의 계급이 포함되는 것은 명백하다...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만큼 혁명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혁명운동을 '인민대중’의 혁명성에 의거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35)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 창조성이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입니다. 사회적 인간은 자주적 요구를 창조적 능력과 힘으로 실현해 나갑니다. 자주성이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표현하는 속성이라면 창조성은 세계의 개조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표현하는 속성입니다. 인간의 창조적 활동의 대상은 자연과 사회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창조자는 민중입니다. 민중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창조할 것을 요구하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각이한 계급, 계층의 혁명성은 자주적 요구의 내용과 수준에 의하여 규정되며 자연과 사회를 개조변혁하는 창조적 활동에서 발현됩니다.

 

그러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혁명성'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전개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이 외우고 있는 것은 노동자 계급만이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것 뿐입니다. '민중’의 개념을 역사적 개념으로 그 말의 뜻을 음미할 능력이 없는 이들은 주제사관이 민중의 개념 속에 노동자계급과 함께 농민 그리고 ‘중간계급’을 포함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민중의 창조성에 의거한다’는 것은 곧 '중간계급’에 의거하는 것으로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그들은 비노동자 계급적 사관의 감투를 주체사관에 씌우려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중의 혁명성에 대하여 말한다면 각이한 혁명발전 단계에서 역사의 발전과 사회의 개조변혁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계급, 계층이 그것의 구성원으로 됩니다. 민족해방혁명 단계에서는 노동자 계급과 농민 뿐 아니라 애국, 애족, 애민의 사상을 가진 광범위한 계급, 계층, 즉 청년학생, 지식인, 민족자본가, 종교인들도 반제적 혁명성을 가집니다.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현시기 이남에서 전개되는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에서도 오직 가장 혁명적인 계급인 노동자계급만이 주체세력으로 될 수 있지 청년학생, 지식인, 민족자본가, 애국적 종교인들은 변혁운동의 주체세력으로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체사관을 반대하기 위한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논리적 궤변은 실천활동에서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나:  ‘창조성'을 ‘혁명성'으로 바꿔치기 하고 노동자계급만이 ‘혁명성’을 가진다는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의 주장은 참으로 위험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사회역사적 운동이 민중의 창조적 운동이라는 원리가 어떻게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을 밝혀주는 원리로 되는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지요.

 

주: 사회역사적 운동의 본질과 함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사회역사관의 확립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을 정확히 규명하여야 사회역사적 운동의 고유한 특성과 합법칙성을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사관에서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문제가 사회역사적 운동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데서 독자적인 의의를 가지는 문제로 설정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것에 대한 체계화된 논술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운동의 성격은 사물현상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무엇이 주동이며 주되는 힘은 어떤 것이냐, 상호작용이 어떠한 방식을 취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이해로 규정됩니다. 동물과 주위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는 주동과 피동이 없으며, 주되는 힘은 객관적으로 작용하는 힘입니다. 동물은 주위환경에 맞게 자기의 육체구조와 생물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생존을 유지하여 나갑니다. 따라서 동물의 운동을 한마디로 순응운동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세계에는 적자생존의 자연생물학적 법칙만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인간과 주위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주되는 힘은 인간의 창조적 힘입니다. 자기의 창조적 능력에 의거하여 세계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고 변혁하여 새것을 창조해가는 것이 인간과 세계와의 작용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자주적 요구를 창조적 능력으로 실현해가는 인간활동의 기본방식은 창조라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게 됩니다.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의 창조적 운동이라는 원리가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을 명시해주는 원리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인 민중의 고유한 활동방식이라는 데 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활상 요구를 창조적 활동을 통하여 실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36)

 

민중의 생활상 요구는 자주적인 요구이며 따라서 그것은 객관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중의 창조활동의 대상은 자연과 사회입니다. 자연과 사회는 인간생활의 물질적 원천이며 환경이지만 민중의 생활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과 수단들을 기성의 형태로 스스로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민중은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변혁하여 자기에게 봉사시켜야 자주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창조적 활동의 담당자는 민중자신이며 민중은 주동적으로 자기의 창조적 힘을 발동하여 자연과 사회를 개조합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유일한 창조자는 민중입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자연을 개조하는 것도 민중이며 투쟁을 통하여 사회를 변혁하는 것도 민중입니다. 민중은 자기의 힘에 의거해서만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사회세력이며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하는 실천활동의 담당자입니다. 민중은 사회에서 절대다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역량이며 인류가 역사적으로 축적한 모든 지혜와 힘을 체현하고 있는 무궁무진한 창조적 힘과 거대한 사회적 힘을 체현한 존재입니다. 민중은 사회역사적 운동을 주동적으로 일으키고 추진시켜 나가는 역사의 유일한 창조자입니다.

 

이처럼 사회역사적 운동은 민중이 주동적으로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것을 창조해 나가는 창조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창조하는 민중의 활동방식을 규정해주는 원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주체의 운동인 사회역사적 운동의 성격을 명시해 주는 것으로 됩니다.

 

(3) 변혁운동에서 민중의 자주적 사상의식의 결정적 역할과 '관념론’

 

나: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변혁운동에서 민중의 자주적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주체사관의 원리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발전에서 인간의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주장은 결국 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절대화시키며 사회적 의식을 제1차적인 것으로, 사회적 존재를 2차적인 것으로 보는 결과 관념론의 입장에 서게 된다."37)고 말한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되뇌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인간의 사상의식이라는 것은 '사상만능주의,’  '주관주의’이고 '현실적 조건을 경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주: 그러한 이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세계의 시원문제와 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거나 의식적으로 같은 것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둘째로 사상의식의 본질을 선행한 고전가들의 이해의 틀에 맞추어 단순히 객관적 물질세계의 반영으로만 보는 그릇된 이해에 기초한 것입니다. 셋째로 사상의식의 역할을 선행한 이론의 틀에 맞추어 객관세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나: 그러면 먼저 세계의 시원문제와 사상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의 차원이 다르다는 데 대하여 설명하여 주시지요.

 

주: 사상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정확히 하려면 먼저 세계의 시원을 보는 시각과 사상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이 무엇이며 그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사상론을 주장하는 것은 관념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원래 유물론과 관념론은 세계의 시원을 보는 시각에서 갈라지는 철학의 조류입니다. 물질과 의식의 관계, 자연과 정신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1 차적이고 시원적인가, 즉 물질, 자연이 의식, 정신에 선행하는가 아니면 의식, 정신이 물질, 자연에 선행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물질이 1 차적이라고 하는 철학자들을 유물론자라 불렀고 의식, 정신이 1 차적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을 관념론자라고 불렀습니다. 관념론은 유물론을 반대하면서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의 각종 형태를 취하나 본질에 있어서 의식의 객관적 원천을 부정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의식에 의하여 물질세계가 창조되고 규정된다고 주장합니다.

 

주체사상은 세계의 물질성과 그 운동발전의 객관적 합법칙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세계의 물질성과 그 운동발전의 객관적 합법칙성의 단순한 인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누구인가, 객관적 운동발전의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운동이 어떤 운동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체철학은 물질세계의 주인, 지배자, 개조자는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가장 힘있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며 현실세계는 가장 힘있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되는 물질세계라는 것을 새롭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주체철학의 논리에서 객관적 물질세계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간을 놓거나 인간의 의식을 놓는 그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철학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사상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에 대하여 고찰해 보지요. 사상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은 두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세계의 시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하는 전제에 의하여 사상의식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근본성격이 달라지며, 둘째로 사상의식의 본질과 내용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첫째로 의식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유물론도 관념론도 나름대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시원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느냐에 따라 의식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근본성격이 달라집니다. 관념론은 세계의 시원을 의식, 관념으로 보는 데로부터 의식의 역할을 신비화하여 의식을 세계의 창조주로 보고 있습니다. ‘절대이념’이나 ‘이데아’를 세계의 시원으로 본 객관관념론에서는 ‘절대이념의 자기운동과정’, ‘절대이념의 자기 인식과정’이 곧 물질세계의 형성과 발전과정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신의 세계창조’에 대한 종교적 신비설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감각,’ ‘지각’이 세계의 시원이라고 보는 주관관념론은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며 존재는 곧 '감각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러한 주관관념론은 감각, 지각을 가진 인간 이전에 이미 자연이 존재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쉽게 논박됩니다.

 

그러나 세계의 물질성을 인정하고 의식을 물질세계의 반영으로 보는 유물론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의식의 역할을 신비화하거나 의식을 세계의 창조주로 전환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의식의 역할을 보는 시각은 세계의 시원에 관한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하고 그 위에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둘째로 세계의 시원에 관한 문제를 유물론적으로 해결한 유물론 철학이 의식의 역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의식의 본질과 내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세계의 시원문제를 유물론적으로 해결한 철학도 역사적으로 의식의 본질과 내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식을 단순히 객관세계의 수동적 반영으로 보는 관조적 유물론, 의식을 객관세계의 적극적 반영으로 보고 의식이 객관적 물질세계에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고 본 맑스주의, 그리고 의식을 사회적 인간의 자주적 요구와 객관세계에 대한 주동적 반영으로 보고 인간의 활동을 통해 객관세계가 주동적으로 개조변혁된다고 보는 주체철학으로 구분됩니다.

 

나: 그러면 사상의식의 본질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여기서 주체철학의 독창성은 무엇인지요.

 

주: 사상의식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자면 사상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사상의식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사람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며 사람을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에로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된다."(38)

 

사상의식은 한마디로 말하여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입니다. 이것이 주체철학에 의하여 처음으로 밝혀진 사상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입니다.

 

사상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의식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부터 음미해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사상의식도 의식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선행한 유물론은 의식을 물질세계의 반영으로 보면서 반영되는 객관세계가 있고서야 그것을 반영하는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객관세계가 1 차적이고 의식은 2 차적이라고 하였으며 또 의식은 객관세계를 옳게 반영할 수 있다고 보면서 세계의 가인식성을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맑스주의는 유물론적 반영론에 실천을 도입함으로써 실천적 요구에 기초하여 의식은 객관세계를 능동적으로 반영한다는 것, 즉 인식의 대상은 실천의 요구에 의하여 취사선택되며 객관세계를 옳게 반영한 의식은 그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반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맑스주의는 의식을 객관적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상의식을 객관세계를 반영한 지식일반과 동일시하였습니다. 물론 맑스주의도 사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에서 사상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존재’를 반영한 ‘사회적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즉 사회의 물질적 관계를 반영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으며 또한 사회발전 법칙에 관한 지식과 전략전술에 관한 이론의 체계라는 의미에서 '맑스주의사상'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여, 맑스주의는 지식일반, 문화일반과 구별하여 사상의식의 본질을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습니다.

 

"우리 당은 문화일반으로부터 사상을 분리해내고 사상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론을 내놓았습니다." (39)

 

주체사상은 지식일반, 문화일반으로부터 <사상>을 분리해 내고 사상의식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준데 기초하여 사상론을 정식화하였습니다. 문화혁명과 독립적으로 사상혁명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인간을 활동하도록 추동하는 관념적 지향, ‘관념의 힘’에 대하여 강조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즉 인간이 ‘왜 노동하느냐,’ ‘ 왜 인식활동을 하느냐,’ 인간을 활동에로 추동하는 요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데까지 심화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을 활동하도록 추동하는 요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데로 나가야 의식의 본질에 대한 분석을 끝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경제적 관계들 위주로 하여 전개된 이론에서는 인간을 활동에로 추동하는 요인을 객관적 물질세계로 보는 한계성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게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유물론적 견해는 사람의 활동에 미치는 결정적 요인을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에서 찾았다. 사람은 물질세계발전의 산물이며 물질세계에서 살며 활동하는 것만큼 자기 활동에서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의 영향을 받지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이 직접 사람의 활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은 의식을 통하여서만 사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의식을 가지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벌이는 사회적 존재로서 객관적 조건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능동적으로 개변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사람의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상의식이다.”(40)

 

인간을 위주로 하여 전개된 주체철학에 의하여 비로소 인간을 활동에로 추동하며 인간의 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객관적 물질적 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사상의식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인간의 의식은 크게 사상의식과 지식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사상과 지식은 그 원천과 내용을 달리하는 의식의 형태입니다. 지식의 원천은 객관적 물질세계이며 그 내용은 객관적 물질세계의 본질과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입니다. 사상의식의 원천은 사회적 인간의 자주적 요구이며 내용은 인간의 이해관계입니다.

 

인간의 의식을 객관적 물질세계를 반영한 지식일반으로 보는 이해는 의식에 대한 이해의 한 측면에 불과합니다. 물질세계를 반영한 지식에 대하여 분석해 보면 지식의 내용은 객관적이지만 세계의 무수한 사물현상중에서 어떠한 사물현상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은 사회적 인간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의식에는 객관세계의 사물현상들의 본질과 운동법칙만이 반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활동의 계획이라든가 활동의 방법은 객관세계에 기성의 형태로 그 원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반영한 지식과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결합시켜 행동계획과 활동방법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의식은 객관적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이해는 의식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이지만 그것은 의식의 본질과 내용의 한 측면에 대한 이해에 불과하며 그것만으로는 인간을 활동에로 추동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해명할 수 없습니다. 지식일반과 구별하여 사상의식의 본질과 내용을 밝힌 주체철학의 독창성과 정당성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나: 그러면 사상의식이 어떻게 인간의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해 주시지요.

 

주: 이남의 일부 ML론자들은 주체철학에서 사상의식이 물질세계의 운동발전을 직접 결정한다고 해석하면서 그것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사상의식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철학이 밝힌 사상론은 사상의식이 직접 물질세계의 운동발전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개조변혁하는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가 하는 것을 올바로 판별해 보아야 합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상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사상의식이라는 뜻입니다."(4)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객관적 조건은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 의하여 개조변혁되고 이용되는 대상입니다.

 

인간의 활동에서는 또한 객관세계의 합법칙성을 반영하고 있는 지식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학적인 지식을 가져야 객관적 법칙에 맞게 자기자신의 힘과 객관적 조건을 합리적으로 이용하여 세계를 성과적으로 개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인간이 어떤 지식을 체득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여 창조적 능력을 얼마나 높이 발양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사상의식을 가졌는가 하는 데 달려있습니다. 민중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사상의식을 가진 인간만이 자기의 지식과 기술, 지혜와 지능을 민중을 위한 사업에 바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자기의 과학기술과 지식을 민중을 억압하고 살해하는 데 바치거나 이용한 반인륜적 범죄자들을 기록하고 단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주인, 세계의 개조자로서의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사상의식은 <자주적인 사상의식>입니다. 인간의 활동을 규제하는 결정적 요인은 객관적 조건도 지식도 아니고 바로 사회적 인간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한 자주적인 사상의식입니다.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자기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자각이며 자기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입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사람의 활동목적과 방향을 규정하고 활동과정을 조절통제하는 것은 사상의식이다.” (42)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자기의 자주적 본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근본목적은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모든 활동은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며 거기에 복종됩니다.

 

또한, 인간의 활동은 일정한 수단을 가지고 육체적 및 정신적 힘을 써나가는 창조적 활동과정입니다. 자주적 사상의식은 인간의 자주적 본성을 반영한 사상의식인 까닭에 합리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척도로 되며 인간의 정신적 및 육체적 힘을 써나가는 행동의 기풍과 방법을 규정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상의식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사상론의 본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라는 주체사관의 원리가 사회역사적 운동의 추동력을 밝힌 원리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하여 요약하여 설명해 주시지요.

 

주: 사회변혁운동에서 민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원리는 한마디로 말하여 사회변혁운동이 사람들을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각성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자주적인 사상의식으로 정신무장한 민중의 힘에 의하여 승리하게 된다는 진리를 명시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주체의 사회역사원리가 사회역사적 운동의 추동력을 밝혀주는 원리로 되는 근거가 있습니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혁명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43)

 

민중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사회변혁운동에서 민중이 노는 결정적 역할을 직접 규제하는 요인이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사회변혁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행동의 계급적 성격을 규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변혁 운동의 성격과 내용은 민중이 어떠한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느나 하는데 의하여 규정됩니다. 계급사회에서 초계급적인 사상이란 있을 수 없으며 사상의식에서 기본은 계급의식입니다. 계급의식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민족에 대한 각이한 의식도 형성됩니다.

 

물론 사람들의 행동은 <사회계급적 처지>에 기초를 두며 그것에 의하여 제약됩니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민족의 자주성, 근로민중의 자주성의 실현을 위하여 투쟁합니다. 사회적 집단의 계급의식은 그 계급의 사회계급적 처지를 반영한 것인 까닭에 사회적 집단의 활동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사회계급적 처지도 어디까지나 사상의식을 거쳐서 자각되어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행동을 규제합니다. 사회계급적 처지가 곧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개별적 인간인 경우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하여 투쟁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떤 사상을 가졌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역사에는 착취계급 출신의 혁명가도 수많이 알려져 있고 피착취계급 출신의 억압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사상의식>을 가졌을 때에만 민족,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발양되는 사람들의 <의지>와 <투쟁력>을 규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야 자기의 모든 정신적 및 육체적 힘을 최대한 발양하여 부딪치는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활동목적을 실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의지가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에 의해 배양되고 발휘되는 것입니다.

 

자주적인 사상의식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발휘하는 사람들의 투쟁력을 규정합니다. 사회를 변혁하는 민중의 혁명적 능력은 사람들의 단합된 힘입니다. 민중을 하나의 혁명역량으로 단합시키는 것은 바로 자주적인 사상의식입니다.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이 노는 역할과 사회변혁운동에서 민중이 노는 역할을 규정하는 요인이 사상의식이라는 주체철학의 명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부 ML론자들은 객관적 물질세계를 규정하는 것이 의식이며 역사발전을 규정하는 것이 사상이라고 그것을 왜곡하고 주체철학의 사상론을 관념론, 주관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야말로 철학적 희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상론에 대한 주체적 이해의 정당성을 지적하면서 이남의 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종래의 맑스의 주장은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였다. 주체의 사회역사관에서는 ‘사회계급적 처지는 어디까지나 사상의식을 거쳐서 사람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힘으로써 애매모호하게 남아 있던 사회적 존재와 그 행위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확실히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사회계급적 처지가 그대로 혁명적 활동으로 연결되어 버린다면 우리 혁명가가 할 일은 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몰이해가 러시아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44)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의 사회역사원리는 사회역사적 운동의 추동력에 대한 완벽한 해명을 줌으로써 역사의 전진을 가속화해 나갈 수 있는 참다운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27)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P76-77

(28) “한국사회변혁과 철학논쟁," [사계절], P312

(29)”맑스 엥겔스 선집," 1권, P 11

(30) 콘스탄티노프, "사적유물론," [새길], P137

(31)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P17

(32) 위와 같은 책, P19

(33) 위와 같은 책, P21

(34) "한국사회변혁과 철학논쟁," P313

(35) 위와 같은 책, P314

(36)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P27

(37) "유물론과 주체사상," [백두], P116

(38) 김정일,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필수적 요구이다," [근로자], 1995 년 7월호, P6

(39) 김정일,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 P21

(40) 위와 같은 책, P6

(41) 위와 같은 책, P21-22

(42) 김정일, "사상사업을 앞세우는 것은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필수적 요구이다," P6

(43) 김정일, "주체사상에 대하여," P32

(44) "남한의 주체사상 논쟁," [밝은 글],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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