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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위대한 사랑의 전설이 낳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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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3-19 16: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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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랑의 전설이 낳은 기적입니다

 

따뜻한 봄빛이 대지의 언덕을 푸르게 하는 3월입니다.

감옥에서 34, 적구에서 홀로 43년을 보낸 저의 외할아버지 리인모가 죽음과 지옥의 어둠을 박차고 절세위인들의 따사로운 손길에 의하여 통일애국투사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리며 조국의 품에 안긴 때로부터 어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무릇 흐르는 세월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많은것을 지워버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십년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저의 외할아버지 리인모를 혁명승리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을 안고 어떤 난관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투쟁한 전사로 영생의 단상에 높이 세워주시고 가족들에게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신 절세위인들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세세년년 전하고싶어 붓을 들었습니다.

 

1

 

력사의 추억으로 남겨진 주체82(1993)319, 이날은 저의 외할아버지 리인모가 죽음과 지옥의 문앞에서 삶과 락원의 대문으로 들어선 지울수 없는 인생의 봄날이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철없던 그 시절 판문점분리선에서 처음으로 외할아버지를 만나던 일을 잊을수 없습니다.

움푹패인 눈, 앙상히 솟은 광대뼈, 피골이 상접한 솜처럼 풀린 몸에 점적주사기를 꽂은채 《숨쉬는 화석》, 시체아닌 《시체》로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온 외할아버지를 마주한 저의 외할머니와 가족들은 너무 억이 막혀 그만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눈앞으로 다가서는 외할아버지는 안기면 금방 부서져내릴것만 같은, 그러안으면 금시 심장이 멎고 인생태엽이 풀릴것만 같은 처참한 모습이였습니다.

태여나 한번도 안겨본적 없고 외할머니가 오랜 세월 간직해온 색날은 사진으로만 보아오며 꿈속에서 그려보던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한 현실앞에서 나는 두눈을 의심하였습니다.

《여보!, 《아버지!, 《할아버지!》…

수십년 그리웠던 가족들이 웨치듯 달려갔으나 외할아버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반가운 미소도, 이럴 때 있기마련인 기쁨의 눈물도 없었습니다.

어인 일인가!

눈물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세계의 표현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그리고 생활의 여러 경우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현실에 부닥칠 때 인간은 자연히 눈물을 흘리기마련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본래부터 눈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고향 풍산에서 조국해방의 소식을 온 마을에 알려주던 날, 붉은 천을 펼쳐들고 소중한 당원증을 심장에 받아안던 그 못잊을 날, 그리고 눈내리는 지리산에서 피흘려 쓰러진 전우들과 영결하던 가슴아픈 밤들엔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모릅니다.

다만 체포되여 34년간, 돌아올 때까지의 43년간의 긴 세월동안만은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모진 고문으로 육신이 부서져나갈 때에도, 감방안 국그릇우에 비쳐진 자신의 해골같은 모습에서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보았을 때에도 외할아버지는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득부득 이를 갈며 적들에 대한 증오와 반항심으로 눈에 푸른 서리발을 세웠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외할아버지의 가슴에서 영영 눈물이 말라버린것은 아닐가.

하지만 우리 가족, TV를 마주한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꺼질지 모를 외할아버지의 악화된 건강상태가 감각과 감성을 방해하고있음을 그때야 알수 있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가슴에 고패치는 격정을 눅잦히며 외할아버지와 상봉인사를 나누면서도 우리들의 마음속은 걱정으로 꽉 차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과연 평양까지 무사히 갈수 있을가.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살아있는 외할아버지를 볼것같지 못한 심정이였습니다.

그러나 판문점을 떠나 평양으로 향한 그 순간부터 외할아버지에게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판문점을 넘어설 때만 해도 의식마저 혼미하던 외할아버지가 평양으로 오는 차안에서 눈에 뜨이게 활기를 되찾고 목소리마저 생기에 젖는것이였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차창밖을 내다보며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저희들에게 격정에 넘친 심정을 터놓기도 하였습니다.

무슨 힘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던 외할아버지를 이처럼 일떠서게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보다 뜨거운 사랑이 외할아버지의 혈관에 흘러들어 불사의 용기와 힘이 되였던것입니다.

위대한 태양의 품이 있어 전사의 빛나는 삶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남조선의 쓸쓸한 양로원을 거쳐 남해가의 한 농가에 얹히여 살고있던 외할아버지를 데려오시려고 얼마나 마음을 쓰시였는지 모릅니다.

더우기 외할아버지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던 때는 우리 나라에 엄중한 정세가 조성된것과 관련하여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때였습니다.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으로 언제 전쟁이 터질줄 모르는 긴장한 환경속에서 한 전사의 송환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조국의 품에 기어이 안길수 있도록 은정넘친 특전을 베풀어준 사랑은 고금동서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였습니다.

사실 외할아버지의 한생은 수령이 안겨준 정치적생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한생이였습니다.

수십년세월 감옥에서 최악의 고통을 당할 때 육체적생명은 이미 외할아버지의것이 아니였습니다. 임의의 시각에 죽을수 있다는것은 감옥에서 품고있던 항시적인 각오였습니다.

하기에 외할아버지는 조국에 돌아온 후 자식들에게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면 무서울게 없다, 죽고저 하면 살고 살고저 하면 죽는것이 감옥인생이라고 늘 말해주군 하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감옥에서 교형리들과 맞서 피어린 싸움을 벌린것은 육체적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방전부터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나라를 찾기 위한 투쟁에 나섰으며 해방후에는 지방당일군으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종군기자로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투쟁한것이 외할아버지의 한생에서는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경력이였습니다.

인생의 소중한 그 자산을 목숨과도 바꿀수 없어 외할아버지는 몇글자의 전향문이면 넘어설수 있는 감옥의 문턱을 외면하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조국의 품에 안기기를 열망하였던것도 가족과의 재회나 목숨연장보다는 자신이 한생을 바쳐 지켜온 정치적신념의 고향에 안겨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나게 마감하고싶었기때문이였습니다.

부모로부터 넘겨받은 육체적생명은 생활환경에 대한 적응성을 가집니다.

반면에 사회정치적생명은 그 요소를 이루고있는 혁명적신념과 량심, 의지의 불변성에 의해서만 그 진가가 담보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다면 혁명적신념과 량심, 의지의 불변성은 어디에 원천을 두는것이겠습니까.

저의 외할아버지가 다난한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정치적생명을 빛내일수 있었던것은 일찌기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에 완전히 매혹되여 수령님을 따르는 길이 곧 혁명승리의 길이라는것을 자기의 신념으로 새겨안았기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둡던 강산에 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신 전설적영웅의 거룩한 영상을 우러르며 새 조선건설의 선봉대오에서 절대적인 신념으로 간직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매혹과 숭배열은 살인적인 감옥살이에서 육신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되였으며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세워주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사상과 백절불굴의 신념과 배짱을 그대로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에 대한 소식은 통일애국투사들의 가슴에 새겨진 또 하나의 기쁨이였습니다.

세계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의 거만한 코대를 여지없이 짓뭉개놓으시며 행성의 대세를 쥐락펴락하시는 또 한분의 백두령장을 모시여 우리 조국의 강성번영의 앞길이 창창히 열리였다는 확신,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을 어느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당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백방의 조치를 취해주신다는 사랑의 충격파 역시 외할아버지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억척으로 다져주는 원천으로 되였습니다.

하기에 외할아버지는 오랜 감옥살이에 페인이 된 몸이였지만 남쪽에서 자기를 만나러 온 소설가로부터 《남과 북중 조국을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남쪽은 조국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남쪽은 내 조국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며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기어이 안기고야말 확고한 결심을 피력하였던것입니다.

혁명승리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을 안고 어떤 난관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의지를 굽히지 않은 외할아버지를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값높이 내세워주시였습니다.

그 위대한 사랑의 손길아래 《금단》의 장벽으로 넘을수 없다던 분계선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그 어느 영웅호걸이나 개선장군도 받아본적 없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외할아버지는 조국의 품에 안기였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경탄시킨 이 사랑의 신화를 전하며 우주공간을 채운 전파는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인도주의의 승리이며 통일을 달가와하지 않는 반통일책동에 대한 통일정책의 승리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조선식 사회주의의 빛나는 승리이다.》라고 전하였습니다.

참으로 319일은 자연의 계절로서는 준엄한 동토의 겨울을 이기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날의 한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사랑과 정의가 증오와 불의를 타승한 우리 민족사에 기록된 또 하나의 뜻깊은 날이였습니다.

 

2

 

예로부터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일수 없고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일수 없다. 》고 일러왔고 《세상에 닫지 못하는 문은 죽음의 문밖에 없다.》는 말도 전해지고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외할아버지의 경우 인류가 불변의 법칙으로 삼아온 생사의 원리를 부정한 기적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34년간의 모진 옥고를 치르고 살아서 조국의 품에 안긴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죽은자》로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선 외할아버지가 90장수를 누린 그 14년간은 기적에 기적으로 이어진 나날들이였습니다.

당시 외할아버지의 건강상태는 의학술어로 말하면 《악액질상태》였고 극도로 쇠약해진 심장기능, 페농양에다 운동기능상태는 령에 가까왔으며 심한 언어장애, 호흡장애에 음식을 넘기는 기능마저 거의 마비되여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어느 순간에 꺼질지 모를 목숨이기에 시체삼아 넘겨준것임을 그때에야 알았습니다.

외할머니와 온 가족이 조바심을 안고 외할아버지의 손목을 놓지 못하던 그 시각에 친혈육보다 더 다심하고 지극한 사랑이 이미 외할아버지의 신상을 지켜주고있었습니다.

저희들이 외할아버지와의 상봉을 그리며 잠 못이루고있던 바로 그 밤에 벌써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서는 순간 병약한 외할아버지의 신변에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을 두고 심려하시며 만단의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인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또 가족들까지 만나게 되면 외할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고 까무라칠수도 있으니 단단히 주의를 돌리도록 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도 잘 일러주라고, 심장계통과 소생부문을 비롯하여 여러 부문의 유능한 의사집단을 데리고나가 예방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습니다.

하여 개성에서 평양까지 하늘에는 직승기가 날고 땅에는 구급소생차가 달리는 생명구조작전의 감동적인 화폭이 펼쳐졌습니다.

눈물겨운 그 화폭을 바라보면서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던 외할아버지를 기적적으로 살려내시는 우리 장군님의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발산하는가를 절감하였습니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은 사랑의 열쇠로 지옥의 철문을 열어제끼고 외할아버지를 구원해주신 운명수호의 태양이시였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외할아버지가 남쪽에서 판문점을 향하여 떠나오던 그 시각 치료를 담당했던 남조선의 병원측에서는 이제 20일을 넘기지 못할것이라는 확진을 내렸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은 20일간이라는 의미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송환당일인 19일의 다음날 즉 320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에서 내린 진단이였습니다.

그러한 사형선고를 받고 남쪽땅을 떠난 외할아버지가 조국에 첫걸음을 짚으면서 이렇게 기적적으로 소생하였던것입니다.

절세위인들의 끝없는 사랑의 세계속에 생의 활력을 되찾던 주체82(1993)4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양의 미소를 한가득 담으시고 조국의 품에 안긴지 한달도 못되는 외할아버지를 만나주시려 몸소 병원에 나오시였습니다.

수십년세월 자나깨나 그 영상을 우러르며 꺼져가던 육체적생명을 지탱하고 때로는 흔들리려는 마음의 동요도 다잡던 삶의 기둥이시고 신념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

외할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계선을 넘나들던 육신을 자애롭게 쓰다듬어주시는 태양의 존안을 뵈온 신비의 격정과 함께 생명의 은인이시고 겨레의 하늘이신 우리 수령님앞에서 몸을 일으켜세울수 없는 죄스러움에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할아버지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리인모동무는 원쑤들의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적지조와 절개를 지켜 용감히 싸워이겼다고, 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며 자신께서 몸소 수표하신 당원증을 수여해주시고 자신의 존함이 새겨져있는 금시계를 채워주시였습니다. 그러신 다음 전사는 앉히고 자신께서는 그곁에 서시여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불멸의 화폭을 남기시였습니다.

지옥행 수인번호를 달았던 여윈 가슴에 뜨겁게 안겨주신 조선로동당 당원증, 그것은 정녕 정치적생명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이 세상 가장 값높은 인생증서였습니다.

수십년세월 쇠고랑을 차고 때없이 감행되는 뒤틀기고문에 뼈까지 탈린 가는 팔목에 채워주신 금시계, 그것은 정치적생명의 은인인 어버이의 심장에 숨결을 맞추며 영원히 변치 않을 삶의 자욱을 새겨가라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태엽으로 삼아 돌고도는 인생박동기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병원을 떠나가신 다음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오늘의 영광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보살피심과 은정에 대하여 외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드렸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당원증과 시계를 두손에 받쳐들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그날로부터 외할아버지는 어느 한순간도 사랑의 금시계를 벗어놓거나 붉은 당원증을 몸에서 떼여놓은적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는 진짜배기로동당원입니다, 그런 로동당원은 드물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난해 415일에 몸소 병원에 있는 자기를 찾아주시고 친히 수표하신 당원증을 수여해주시였을뿐 아니라 금시계까지 손목에 채워주시였는데 그 믿음과 사랑이 너무 고마와서 그 금시계를 오늘까지 밤이나 낮이나 한번도 팔목에서 벗어놓지 않고 그냥 끼고 지낸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 하나를 놓고보아도 리인모동지는 정말 충실하고 진실한 당원입니다라는 분에 넘치는 치하의 교시를 주시였다고 합니다.

봄명절의 뜻깊은 그날로부터 석달후 외할아버지는 전승 40돐을 맞으며 성대히 진행되는 전국로병대회와 경축열병식에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전승 40돐행사는 외할아버지의 한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사변이였습니다.

남쪽땅 철창속에 갇힌 몸이지만 평양에서 진행된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열병식소식을 전해듣고 그 승리자의 열병대오에 자신을 세우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승리자로서 참되게 살아나갈 결심을 다지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그토록 서고싶던 전승의 단상에 외할아버지는 40년세월이 흘러서야 서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치적신념과 혁명적절개를 지켜낸 외할아버지를 당당한 승리자로 전국로병대회 주석단에 그것도 우리 수령님의 바로 옆자리에 앉혀주시였고 전승경축열병식장의 주석단에도 내세워주시였던것입니다.

그날 외할아버지는 온 가족을 불러놓고 인생의 소원이 다 풀렸다고, 원쑤들이 오늘의 리인모를 보았다면 기절초풍했을것이라고, 강철의 령장을 모시여 이 리인모가 이겼다고 목메인 격정을 터놓았습니다.

후에 전해들은데 의하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퍽 오래전부터 외할아버지의 건강을 빨리 회복시켜 전승 40돐행사들에 꼭 참가시키도록 하며 어버이수령님을 가까이에 모신 주석단에 앉히되 아직 걷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조건에서 삼륜차에 태워서 등단시키도록 할데 대하여 이르시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전국로병대회와 경축열병식에 참가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자기 수령앞에 수십년세월 원쑤들과 맞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지켜온 전사의 정치적생명을 사열받는 격동적인 화폭이였습니다.

그렇듯 혁명전사에 대한 숭고한 동지적사랑의 세계속에 조국에 돌아온 후 외할아버지의 건강은 놀랄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되여 1년남짓한 기간에 체중이 45kg으로부터 67kg으로 늘어났으며 마비상태에 가까왔던 언어장애도 거의 풀리고 글까지 쓰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할아버지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내세워주시고 변함없이 사회정치적생명을 빛내여갈수 있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조국에 와서 체험한 수령복, 장군복, 당복, 인민복을 노래하는 시와 가사, 글들을 여러건 썼다는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오래동안 붓을 놓았고 육체적기력마저 쇠진한 외할아버지가 글을 썼다면 얼마나 잘 썼겠습니까. 글을 썼다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힘으로 붓대를 들고 우리 장군님 틔워주신 종자를 꽃으로 피워 장군님 펼쳐가시는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았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력이나마 바쳐 자기의 정치적생명을 빛내이려는 전사의 심정이 그리도 대견하시여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외할아버지가 쓴 글들을 밑줄까지 그어가시며 한자한자 보아주시였습니다. 그리고 글을 정말 잘 썼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며 당보를 비롯한 출판물들에 싣도록 하는 은정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리하여 외할아버지는 조선인민군 옛 종군기자의 본연의 모습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가는 혁명대오에서 붓대와 함께 자기 위치를 당당히 차지하고 지켜가게 되였습니다.

그뿐이 아니였습니다.

해방직후 학생들에게 음악공부를 가르쳐줄 풍금을 사달라고 한 안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 마음까지 헤아려 친히 피아노를 선물로 보내주시고 남녘의 감방에서 추위에 떨면서 덕지덕지 피가 말라붙은 문둥병환자의 이불마저도 덮어야 하였던 외할아버지의 지난날이 그리도 가슴아프시여 인민들이 지성담아 올린 선물새털이불마저도 외할아버지에게 보내주신 우리 장군님이십니다.

지금도 나는 외할아버지가 조국에 돌아온지 1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어버이장군님께서 하신 교시를 전달받고 잠 못이루던 그날을 잊을수 없습니다.

…우리 당이 1년전에 왜 리인모를 데려오자고 하였는가. 리인모로 말하면 34년동안이나 옥중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 전사이다. 아무리 정세가 긴장하고 준전시상태라고 하여도 리인모를 데려와야 우리가 혁명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것으로 된다. 우리를 믿고 30~40년을 싸워온 동지인데 우리가 그를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원하여주겠는가. 혁명가들에게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의리는 생명과도 같은것이다. 나는 그전에 외국의 한 책을 본일이 있는데 나뽈레옹이 모스크바로 쳐들어갈 때 많은 프랑스병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된 이야기가 씌여져있었다.

그런데 나뽈레옹이 망하고 다른 왕조가 집정한후 프랑스포로를 데려가라고 하였으나 나뽈레옹때의 포로들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프랑스포로들의 운명이 이와 같이 비참하게 된것은 결국 령도자를 잘못 만났기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나는 리인모를 데려올 때 그전에 보았던 이 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면서 어떻게 하나 그를 꼭 데려와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어렵기는 하였지만 투쟁을 벌려 리인모를 데려왔다. 세계에는 옥중투쟁을 한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남조선에서와 같이 3040년을 옥중에서 지조를 지켜 투쟁하면서 인생의 전부를 보낸 그런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투쟁한 동지들에 대하여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나는 이것이 우리 당이 전사들에게 베풀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혁명전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넘친 교시입니까.

진정 사랑과 담을 쌓은 악의 세상에서 사랑이란 말조차 잃어버린 저의 외할아버지에게 새 삶을 안겨주시고 지옥행을 락원행으로 되게 해주시는 절세위인들의 품이 있어 시들어버린 고엽의 인생이 환생하는 기적이 창조될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외할아버지에게 감당할수 없는 크나큰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기둥으로 우러러모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만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싶은 엄청난 비보를 전해듣는 순간 외할아버지는 의식을 잃고말았습니다.

의료진의 극진한 치료와 간호속에 의식은 회복되였으나 정신적타격에 의한 건강악화는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달이 가고 해를 넘기도록 완화기미가 보이지 않자 의사들도 맥을 놓는듯싶었고 우리 가족들도 외할아버지의 최후를 예감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바로 이때에도 외할아버지를 다시 소생시켜주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에게는 아까울것이 없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의리는 그를 회복시킬수 있는껏 최대한 회복시켜주자는것이다, 세상의 유명한 병원과 의사들에게 다 보여서라도 놈들의 갖은 악형과 고문으로 생긴 그의 병을 하루빨리 고쳐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취해주신 사랑의 조치에 따라 한 전사의 병세에 적합한 병원을 물색하는 탐색전이 온 행성을 누비였습니다. 인류사에 처음보는 20세기의 사랑의 신화가 새겨지는 감동적인 나날이였습니다.

외교부문을 통하여 여러 나라 병원들과의 교섭정형을 료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를 뉴욕에 있는 병원에 보내여 치료를 받게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친히 평양-도꾜-뉴욕의 왕복항로까지 지정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미국이란 어떤 나라입니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기자로 조국수호의 성전에 나섰던 외할아버지가 총구를 겨누었던 나라, 그후 빨찌산투쟁을 하다가 부상을 입고 체포된 그를 어떻게 하나 매장시키려고 하수인들을 내몰아 34년간이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갖은 살인악행을 가하도록 부추긴 적대국이 아닙니까.

그때까지만 하여도 외할아버지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왜 미국의 병원을 치료대상지로 정해주시였는가 하는 깊은 뜻을 다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한 전사의 삶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도 따오시고 그 어떤 불가능도 가능으로 전변시키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와 혁명적의리가 적대국의 문도 서슴없이 열어제꼈습니다.

하여 외할아버지는 미국을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였습니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압살광풍우에 겹쳐든 자연재해로 우리 인민이 사상최악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한푼의 돈도 쪼개써야 하던 그때에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시고 사그라져가는 한 전사의 운명을 소생시켜주시려고 대륙과 대양을 넘어 지구의 반대켠 머나먼 곳으로 원정치료를 조직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특별조치는 《10대뉴스》의 하나로 온 세상을 들었다놓았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하늘같은 은정과 불같은 사랑에 의해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기고 소생한 외할아버지였지만 남쪽에서 받은 육체적고문과 정신적박해의 치명적후과는 외할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갈 기회를 악착스럽게 노리고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10여년세월 생명을 부지해온것은 최선의 의료조건과 명약의 효과로만 생각할수 없습니다.

외할아버지의 병치료에는 사실상 현대의학이 무기력했습니다.

《숨쉬는 화석》에게 90장수를 준 결정적비결은 외할아버지전신의 억만세포를 활력에 뛰게 한 비상한 정신력에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조국의 품에 안긴후의 삶은 해수로 14년간이였지만 외할아버지는 그 14년세월에 유년시절로부터 청춘시절, 장년기의 감정정서를 다 느끼는 남다른 체험을 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수표가 새겨진 당원증을 통해 해방후 새 생활창조에로 대중을 불러일으키며 밤낮을 모르고 뛰여다니던 당일군의 보람도 더듬어보게 하시였으며 외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파발리소학교를 찾아 파발강에서 물장구치던 유년시절의 꿈세계에도 잠겨보게 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도 못다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과 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은 외할아버지에게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가장 값높은 인생평가를 주신데 이어 생일 80돐에는 공화국2중영웅의 영예를, 그 영광의 가슴에 조국통일상까지 안겨주시였습니다.

육체적생명은 자연과 더불어 사멸하지만 정치적생명의 최고가치는 영생에 있습니다.

영원히 변색도 퇴색도 모르는 혁명적신념의 원천을 주시고 량심의 청결한 꽃을 피워주시고도 외할아버지의 신념과 의지를 그리도 높이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할아버지가 육체적생명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으시자 영생의 언덕에 높이 세우도록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이 땅에는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민족과 미래를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을 위한 국가장, 사회장, 기관장은 있지만 아직 인민장이라는 장의형식은 없었습니다.

인민이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영원성을 띠는 사회정치적개념입니다. 인민은 력사의 창조자로서 생명력의 무한성에 그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할아버지가 인민이라는 무한의 존재와 더불어 영생하도록 인민장이라는 새로운 장의형식을 내오시고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인민문화궁전에서 인민장을 크게 하도록 하시였으며 애국렬사릉에 령구를 안치하도록 하는 특전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간지 1년이 되는 해에는 평양의 남쪽관문 통일거리에 반신동상을 세워주시는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습니다.

진정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것이 혁명전사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의리의 세계입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러갔건만 절세위인들의 사랑은 저 하늘의 태양처럼 끝없이 따사롭게 비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주체104(2015)110일 저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것과 관련하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시고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장의를 잘해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신 이야기는 만사람의 심금을 크게 울려주었습니다.

외할머니로 말하면 락동강의 불바다를 헤쳐온 전쟁로병도 아니며 부강조국건설에 크게 이바지한 공적도 별로 없는 너무도 평범한 녀성입니다.

남다른데가 있다면 조국해방전쟁시기 남편(리인모)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후 40여년세월 생사를 알길없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맡은 직책에서 성실하게 일해왔을뿐입니다.

하건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정초부터 천만인민을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총공격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것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대해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고 외할아버지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시대에만 나올수 있는 신념과 의지의 전형이라는 최상의 믿음과 영예를 또다시 안겨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안겨주신 믿음과 사랑에는 신념을 지켜 싸운 전사 리인모에 대한 혁명적의리와 함께 외할아버지를 신념과 의지의 전형으로 영원히 내세우고 우리 후손들이 신념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도록 하시려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도 담겨있다고 봅니다.

하기에 오늘 우리 유가족들뿐 아니라 안겨주신 사랑과 믿음에 충정으로 보답할 신념으로 만장약한 천만대오가 경애하는 원수님따라 힘차게 나아가고있습니다.

위대한 태양의 전설같은 사랑으로 빛나는 외할아버지의 삶은 이 신념의 대오속에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오정혜


[출처:우리민족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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