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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태양이 떠올린 인민의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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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1-05-08 10: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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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떠올린 인민의 보금자리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의 터전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며

 

 

누구나 바라본다. 볼 때마다 새 모습이다.

수십일전 형성안에서 보았던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가 벌써 눈앞에서 아침저녁이 다르게 솟구쳐오르고있다.

당중앙위원회가 직접 틀어쥐고 진행하는 건설이다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불과 며칠사이에 두차례나 현지를 돌아보신 곳이다.

밤이 사라진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건설장은 통채로 불도가니가 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세차게 끓어번지는것은 이 땅의 민심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이민위천의 한생으로 인민을 키우시고 조선을 빛내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사상과 업적을 귀감으로 삼고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할것이며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실현해나갈것입니다.

보통강개수공사로 민주주의 새 조선건설의 첫삽을 박던 때로부터 어느덧 75년이 흘렀다.

공화국의 수도 우리 평양이 젊음과 기백에 넘쳐 눈부시게 천지개벽되여온 나날에 이 땅의 명당자리들에 우후죽순처럼 일떠선 새 거리들은 얼마나 인민의 마음을 벅차게 했고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그칠새 없던 새집들이경사는 또 얼마나 시대를 격동시켰던가.

하지만 장장 수십년세월 새 거리, 새 살림집의 주인으로 살아온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처럼 그렇듯 큰 충격을 준 건설은 없었다.

조선로동당을 우러러 끓어넘치는 격정을 터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어 심장의 고백을 불같이 토로하는 이 나라 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은 우리에게 서둘러 펜을 들게 하였다.

현대적인 다락식주택구가 일떠선다는 환희보다 그 터전에 깃든 이민위천의 숭고한 세계,  위대한 불멸의 이야기를 후손만대 전해갈 인민의 감사의 노래가 더 눈물겹고 절절한것이기때문이다.

 

* *

 

지난 3 26일 《로동신문》을 받아안은 인민들은 북받치는 감격에 누구나 눈시울을 적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보통문주변 강안지구에 호안다락식주택구를 새로 일떠세울 구상을 밝히시고 현지를 돌아보시였다는 소식은 만사람을 격동시켰다.

불과 며칠전에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에 참석하시여 몸소 뜻깊은 연설까지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이시였다.

천만자식들의 정든 보금자리를 위해 가장 어려운 나날에 허리띠를 더욱 힘껏 졸라매고 무거운 짐을 기꺼이 웃으며 걸머진 고마운 어머니당의 진정이 가슴사무치게 미쳐와 잠 못 들었던 이 나라 인민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과는 별도로 보통문주변 강안지구 호안다락식주택구 800세대 건설을 발기하시고 당중앙위원회가 직접 틀어쥐고 건설을 내밀어 올해중에 완공하여 당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복무하고있는 각 부문의 로력혁신자, 공로자들을 비롯한 근로자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하시였으니 인민의 보금자리를 위해 기울이시는 그이의 헌신과 로고의 끝은 그 어디인가.

보통문주변 강안지구를 찾으신 그날 보통강반을 따라 현대적인 다락식주택구를 형성하고 다층, 소층살림집들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이 지구를 특색있게 변모시킬 구상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문득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용하시던 저택이 있습니다. 그전에는 그 저택을 5호댁이라고 불렀습니다.

5호댁위대한 수령님께서 금수산의사당(당시)이 건설될 때까지 오래동안 리용하신 저택이였다.

일군들의 눈굽은 저도 모르게 젖어들었다.

얼마나 하많은 인민사랑의 이야기가 5호댁과 더불어 엮어졌던가.

돌이켜보면 전쟁시기 우리 수령님께는 저택이 따로 없으시였다.

산골의 수수한 농가와 동기와집들에 자리잡았던 최고사령부지휘소 집무실이 그대로 우리 수령님의 숙소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살림집부터 걱정하시면서 저택건설을 만류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저택을 보수하는 문제는 평양시에 당시 륜환선거리가 형성되고 인민들의 새집들이가 한창이던 1950년대 중엽에 가서야 실현되게 되였다.

어느날 저택설계가 다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설계가들을 부르도록 하시였다.

그런데 설계도면을 주의깊이 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안색이 점점 흐려지시는것이 아닌가.

동무들이 잘못 생각하고 설계를 하였다고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에 설계가들은 그만 가슴이 철렁하였다.

《동무들이 잘못 생각한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와 인민을 분리하여 본것입니다.라고 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대원들과 한가마밥을 먹으며 혁명을 해왔다. 나는 사령관이였지만 언제나 대원들과 생사를 같이하였다. 해방후에도 인민들과 생사를 함께 하며 새 조국을 건설하였고 전쟁시기에도 그렇게 하였다.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 우리도 조밥을 먹었고 인민들이 토굴집에서 살면 우리도 토굴집에서 살며 일하였다. 인민들과 생사를 같이하는것은 나의 생활준칙이다.

이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설계의 수정방향을 지적해주시였다.

대리석을 쓰거나 수입자재를 쓰면서 장식하는것을 그만둘것.

조선식으로 소박하게 꾸리도록 할것.

설계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의 고매한 풍모에 눈시울을 적시며 설계를 다시 하였다.

하지만 두번째 설계도, 세번째 설계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결하시였다. 설계가들은 어려움을 잊고 이보다 더 소박하게 할수는 없다고 간절히 아뢰였다.

동무들의 심정은 자신께서도 안다고, 하지만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우리들에게는 크고 화려한 집보다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 더 좋다고 하시며 수령님께서 하신 그날의 교시는 얼마나 설계일군들을 울렸던가.

이제 평양에 소년궁전을 크게 짓자고 하는데 동무들이 그것을 설계할 때는 하고싶은대로 마음껏 크고 화려하게 설계하라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

우리 아이들과 인민을 위해서는 세상에 없는 특전과 특혜를 베풀어주시면서도 자신을 위한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불허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보통강기슭의 그 수수한 저택에 남기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은 정녕 그 얼마이던가.

생각해보면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보통강은 참으로 사연도 추억도 많은 곳이였다.

선조대대로 살아오던 좋은 집터들은 침략자들에게 다 빼앗기고 해마다 물란리에 혈육들을 잃으면서도 빈민굴이며 오물구뎅이였던 토성랑을 떠날수 없었던것이 바로 해방전 이 나라 인민의 운명이였다.

어린시절부터 그 비참한 현실을 체험하시면서 근로하는 인민이 잘살수 있는 사회를 갈망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첫 대자연개조사업으로 보통강의 물길을 다스리도록 하시였다. 그 물길자리에 남아있는 락후와 빈궁의 흔적까지 말끔히 가셔 인민의 락원을 펼쳐주시였다.

눈물의 강, 한숨의 강과 더불어 가장 불행했던 토성랑사람들이 로동당세월이 준 생활의 기쁨속에 복락을 누리며 사는 행복의 모습을 대하실 때마다 우리 수령님의 마음은 얼마나 즐거우시였던가.

돌이켜보면 5호댁은 온 나라를 돌보시느라 늘 바쁘신 우리 수령님께서 계신 날보다 안 계신 날이 더 많았고 언제한번 발편잠에 드신적 없는 로고의 집이였다.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찬눈비 맞으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던 우리 수령님그이께서 바치시는 헌신만큼 인민의 행복이 커가던 그 나날에 바로 천리마시대가 태여났고 우리 조국이 거창하게 전변되였다.

하지만 인민에게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주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은 당의 은덕으로 궁궐같은 집을 쓰고살게 되였다고 인민들모두가 고마움의 노래를 부를 때에도 여전히 그 수수한 집에서 평민으로 살고계시였다.

시련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우리 조국의 눈부신 전진과 비약의 력사가 어려있는 그 저택에 자그마한 사적비조차 세우지 못한 죄스러움을 늘 안고 사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5호댁자리는 보통집터가 아니였다위대한 수령님의 사적관을 세우고싶은 숭엄하고 신성한 사적지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 근로자들의 현대적인 살림집을 일떠세우실 용단을 내리셨던것이다.

우리가 5호댁을 철거하고 그 구역에 국가기관이나 문화회관같은 공공건물을 짓는다면 인민들이 섭섭해할수 있다고, 우리는 그 구역에 공공건물이 아니라 인민들이 쓰고살 살림집을 지으려고 한다고 하시며 그렇게 하는것이 바로 우리 당의 정책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우러르는 일군들의 가슴은 불덩이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용하시던 저택을 철거하고 그 구역에 자기들이 쓰고살 살림집을 짓는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후더워질수록 그들의 심장은 더욱 세차게 높뛰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과 이웃하시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시며 한생의 많은 추억을 남기신 곳그이의 체취와 발자취가 어디라없이 력력히 어려있는 5호댁쪽을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뜨거움에 젖어 말씀하시였다.

《사실 5호댁을 혁명사적관으로 꾸려 인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적풍모를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것은 좀 아쉽습니다. …누구나 5호댁을 돌아보면 그 집이 한 나라 주석의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수수한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수수한 저택에서 오래동안 검박하게 생활하시였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검소한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적풍모를 따라배워야 합니다.

바로 얼마전에 돌아보시였던 5호댁의 수수한 전경, 볼만 한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소박한 그 저택이 다시금 떠오르시는듯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끝없이 물밀어드는 우리 수령님 생각에 5호댁을 보고 또 보시던 그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심중에선 얼마나 하많은 생각이 고패쳤으랴.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끝난지 몇해가 지난 그 봄날에도 정원에 채소를 많이 심자고, 갖가지 채소를 다 심으면 신선한것을 먹을수 있으니 좋고 농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니 좋다고 하시며 몸소 터밭도 가꾸신 어버이수령님,

오로지 우리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잘 입히고 잘 먹이시기 위해 자나깨나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기에 그이의 저택은 말그대로 종합농사시험장이였고 식물연구소였으며 또한 가금연구소였다.

다른 일군들과 별로 차이가 없는 생활비를 다달이 받으시면서도 나의 생활비에는 내가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할것을 바라는 당의 기대가 담겨져있다고,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입고 어떻게 생활하는가 하는것이 우리 생활의 기준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교시는 진정 얼마나 간곡한것이였던가.

산에서 싸울 때는 천막도 치지 못하고 한지에서 잘 때가 많았다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뜨겁게 새겨보시며 머지않아 우리 나라 주택구의 본보기로 훌륭히 건설될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형성안을 뜨거이 안아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안광에 높고낮은 살림집의 창문들이 유정히 안겨들었다. 그 창가마다에 비낄 집주인들의 밝은 웃음을 정깊게 그려보시는 경애하는 그이의 마음속에 더 우렷이, 더 뜨겁게 어려온것은 진정 어버이수령님의 해빛같은 미소였으리라.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내가 우리 집을 다시 지으면 우리 인민들의 집을 지을 자재를 더 쓰게 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지은지 오래된 금수산의사당지구(당시)의 작고 소박한 저택에서 생활하신 어버이수령님,

우리 인민모두에게 좋은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려고 심혼을 다 바치시던 수령님의 그 념원을 안으시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5호댁을 철거하고 그 구역에 현대적인 다락식살림집을 지어 인민들에게 안겨주려고 한다는것을 아시면 아마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기뻐하실것입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하여 일부러 이런 좋은 자리를 묵여두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강은 소리없이 흘러가건만 일군들의 가슴속에선 세찬 격류가 일어번졌다.

락원의 강이여, 우리 어버이의 이 말씀 고이 싣고 인민의 거리로 흘러가라.

봄이여, 하늘도 감심할 어버이의 그 열과 정으로 인민의 마음속에 꽃을 피우라.

수령의 평범한 저택자리에 일떠서는 백성의 호화주택, 이것이야말로 이민위천, 위민헌신에 대한 제강없는 강의, 조선로동당 정치의 본태이며 산 화폭이 아니겠는가.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에 새집들이날이 오면 누구보다 기뻐하실 위대한 수령님들과 마음속대화를 끝없이 나누시며 보통문주변 강안지구를 돌아보신 그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보통문주변 강안지구에 현대적인 호화주택들이 건설되면 수도의 면모가 크게 달라질것입니다. 앞으로 여기에 일떠설 살림집들을 상상만 해보아도 흐뭇합니다.

앞으로 보통문주변 강안지구에 건설하는 주택지구는 평양시에서 도시문화가 제일 발전하고 풍치가 제일 좋은 지구로 될것입니다.

경애하는 그이께서 오고 또 오시여 남기신 사랑의 자욱을 마음속으로 따라걷는 우리의 귀전에 날마다 새 모습으로 솟구치는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를 바라보며 고마움에 목메여 터치던 인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4 15, 전체 학급동무들이 닭털에 물감을 들여 만든 꽃으로 온 한해 정성껏 엮은 꽃바구니를 안고 어버이수령님의 저택에 찾아갔던 평양련광중학교(당시)의 학생들은 오늘까지도 고이 간직하고있다.

황홀하고 으리으리하리라고 상상했던 우리 수령님의 저택에 들어서던 순간 너무도 큰 놀라움과 섭섭함에 저도 모르게 불쑥 솟구치던 눈물을.

옛날 산골지주도 솟을대문을 높이 세우고 아흔아홉간짜리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살았다 하건만 온 나라 인민들에게 좋은 살림집을 그처럼 많이 지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저택은 어쩌면 그리도 작고 소박하단 말인가!

바로 그 저택자리마저 인민에게 안겨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열화같은 인민사랑을 누구보다 크나큰 충격속에 받아안은 그들은 반세기전 그날을 되새겨보며 이렇게 토로했다.

《금은보화로 덧집을 지어서라도 어버이수령님의 그 저택을 천년만년 보존하고싶은것이 이 나라 인민의 마음일진대 우리 원수님의 심정이야 얼마나 더 뜨겁고 극진하시였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듯이 인민을 받드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위민헌신의 세계를 온넋으로 느꼈습니다!

되새겨보면 흘러온 10년세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제일 마음쓰시고 천만자루 품을 들여 마련해주신것은 우리 인민의 보금자리이다.

평범한 근로자들의 새집들이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경애하는 그이께서 몸소 찾아가시였던 창전거리와 더불어 이 땅에 앞을 다투어 일떠서던 희한한 새 거리, 따뜻한 보금자리들이 가슴뿌듯이 안겨온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집터를 돈으로 팔고산다.

재부의 크기, 권력의 높이, 사회적지위의 등급만큼 집터의 좋고나쁨이 결정되는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가난하고 무권리한 인민은 자기 집터라는 말자체를 생각할수 없다.

하지만 사회주의 이 땅에서 제일 좋은 집터는 인민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러하시였듯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인민을 위한 집터를 설계도에서 보지 않으신다. 직접 현지를 밟아보시면서 마음으로 보신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멋쟁이농장도시 장천지구, 천도개벽된 섬마을들, 명당자리들에 일떠선 애육원과 육아원, 금천군 강북리, 은파군 대청리, 세상에 없는 광산도시로 변모될 검덕지구…

미처 다 셀수 없다. 그러나 정녕 다 헤아릴수 없는것은 그 행복의 보금자리들에 넘쳐날 인민의 웃음을 위해 10년을 하루와 같이 자신의 고생을 묻으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이어가시는 위민헌신의 장정이 아니랴.

위대한 어버이의 그 열화같은 심장에서 분출되는 애민헌신의 진정이 수천만 심장을 울리고 그이께 깡그리 매혹된 이 나라 인민이 우리 당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받드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인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인민들이 기뻐하는것을 보시는 멋에 혁명을 하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위대한 위민헌신에 받들려 온 나라 인민의 마음속에 5호댁은 더욱 거연히 솟아 빛나거니, 진정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야말로 위대한 김정은시대가 안아올린 로동당의 이민위천사적관이 아니겠는가.

백성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왕궁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어느 력사에나 있었다. 그러나 수령의 저택자리에 백성들의 호화주택이 일떠섰다는 사실은 오직 조선로동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구현되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만 있다.

사회주의 우리 집, 그 집터는 단순히 땅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인민의 심부름군이 되시여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이민위천의 위대한 사상이다.

인민이 하늘로 된 사회주의 이 땅에서 그 하늘을 떠인것은 우리의 위대한 태양이거니태양이 떠올린 인민의 보금자리는 영원히 따뜻하고 굳건하리라!

이 땅에선 모든 꿈 이루어지리라!

* *

 

원래 새 거리, 새 집에 대한 이야기는 완공의 날에 하는것이 상례이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살게 될 집주인들에게 꼭 먼저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함께 축복해주실 새집들이 그날에 로동당 만세를 부를 때,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를 때 부디 잊지 마시라.

세상에 없는 그대들의 보금자리에 얼마나 위대하고 뜨거운 이민위천의 사랑이 어려있는지…

그리고 자자손손 전해가시라.

이곳에서 세상에서 인민을 제일 사랑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소박하게 사시였다고!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호화주택 우리 집이 일떠섰다고!

   

본사기자 조 향 선


[출처: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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