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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식

북녘 | 김일성주석님의 의 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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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7-08 11: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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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님의 <이민위천>의 한생

 

 

 

 

 

나는 1989 7월 처음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접견한 이래 그를 나의 마음의 기둥신념의 기둥으로  생각하며 살아 왔다주석님께서 항일혁명의 투쟁 속에서 창시한 주체사상은 바로 나의 생의 나침반이 되었고 모든 종교와 사상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나는 지금 다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세기와 더불어]를 읽으며 주석님의 위대한 생애를 돌이켜보고 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은 바로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준 지도사상으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자주성>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어떤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써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인 <자주성>실현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이며 보람이고 인민의 자주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역사라고 주석님은 밝혀주시었다나는 주석님을 접견한 후부터 그가 저술한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고 그의 사상을 심화발전시켜 [김일성주의]체계화 시키신 김정일위원장님의 논문들도 모두 읽었다그리고 주체사상을 전공한 이름있는 조선의 학자들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론하였다.


나는 주석님의 글들을 읽을 때마다 넘쳐나는 그의 인민에 대한 사랑믿음헌신성소탈함을 느껴왔으며 그가   곁에서 나를 지도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인 속에 계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셨기에 가장 곁에서 그를 보좌했던 김정일위원장님은 주석님의 유훈을 어떻게 해서라도 실천하기 위하여 일생동안 작업복을 입으시고 주석님의 동지로서제자로서일꾼으로서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의 삶을 살다가 작업복차림으로 열차에서 서거하셨다.


 분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고  분의 사상성품일본새가 모두 하나였다 분을 잃은 조국의 인민들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나는 신학과 철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기독교의 부활신앙을 새롭게 생각해 보곤 한다.

 

 

3년간 공생애(공인으로서의 생활공적인 생활) 나선 예수를 따라 다니며 일생을 의탁했던 자신들의 스승이 어이없게 십자가에  박혀 죽자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시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 본업에 종사하였다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3년간 함께 지낸 스승과의 생활경험이 살아 있었다스승의 말씀비유결단행동십자가 사건마음속에 새겨진 스승 예수가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그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하였고 그들 속에 되살아나는 스승의 가르침들을 전파할 필요성을 느꼈다제자들 속에 예수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그것이 초대교회의 탄생이었다부활사건은 바로 예수의 제자 자신들의 새로운 인간에로의 부활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인간 각자 자신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부활보다   부활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의 기둥신념의 기둥을 잃은 조국 인민들에게 만약에 주석님과 그대로 닮으신 후계자가 없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상실의 슬픔을 극복할  있었겠는가대중군대의 일심단결체인 <사회정치적 생명체>중심뇌수로서의 수령의 계승이 있어 일찍부터 조국의 인민들 마음 속에 김정일위원장님과 김정은국무위원장님이 신념의 기둥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조국의 인민들은 다시 힘과 용기를 내어 그들의 주체사회주의 혁명조국통일세계의 자주화위업을 계속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후계자에 의해 선대 수령이 부활하였고 인민의 마음 속에 선대 수령들이 부활할  있었다고 생각된다.


김일성주석님의 사상과 인민적 품성그의 헌신성등의 위대성에 대하여 직접 나의 접견경험과 최근에 다시 읽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통하여 조금이나마 여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주석님의 위대성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김일성주석님을 처음 만나뵈온 것은 1989 평양에서 진행된 13 세계청년학생축전 때였다재미동포들도 70여명이 참석하였고 그때 나는 재미동포 대표들  분들과 함께 주석궁으로 가서 존경하는 김일성주석님을 직접 뵙는 기회를 가졌다주석님께서는 우리 대표들을 보시자 반갑습니다우리 연설은 생략하고 식사나 같이합시다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하시었다나는 그때 대표들 중에서 나이도 제일 어렸고 콧수염을 하고 있었다내가 제일 말석자리에 앉다보니 주석님과 바로 마주보며 앉게 되었다주석님께서는 긴장한 우리들을 의식하시고 여기 까만 감자떡이 있는데 한번 맛을 보라고 하시며 감자는 얼어도 먹고 썩어도 먹습니다감자는 버릴게 없습니다나는 감자박사입니다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시면서 손수 감자떡을 우리에게 권하시었다그러시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인민들이 산에서 감자를 캐는  하면서 유격대를 위하여 남겨놓은 것을 알면서도 적과 대치한 상태에서 감자를 캐러 내려가지 못해 감자가 썩는 경우가 있었으나 나중에 적들이 후퇴한  썩은 감자를 캐서 떡도 해먹고 국수도 해먹던 일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시었다주석님은 국가원수라기보다는 가까운 이웃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그날 주석님께서는 우리 재미동포 대표들에게 많은 동포대중을 묶어 애국사업에 기여하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단결해야 힘이 있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19914월 태양절과 1992 주석님 생신80돌이 되는 4 명절때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대표들과 함께 주석님을 다시 만나 식사를 같이하는 기회를 가졌다. “여러분들은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니까 미국실정에 맞게 애국운동을 해야 한다강조하시던 주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주석님을 뵈올 때마다 계속 강조하신 것은 재미동포들의 통일단결이었다.


주석님을 마지막으로 뵙고 난지 2  뜻하지 않게 존경하는 주석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평양을 향하여 달려갔다주석궁에 계신 주석님의 영구 앞에 나는 엎디어 엉엉 울었다. “2주후면 김영삼대통령과 만나시어 조국의 통일을 의논하시기로 해놓고 이렇게 아쉽게 떠나가시면 조국통일은 어찌되는 것입니까” 하고 나는 속으로 외쳐대며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존경하는 김일성주석님을 생각하며 자주 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전집 그리고 전기를 읽으며 역사에는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주석님께서 인민의 지도자로서 그렇게 존경을 받으시게  것은 우선 그이의 가족의 전통적인 애국심 특히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어머님 강반석여사님의 애국심의 영향이 컸으며 아버님께서 남겨놓으신 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19173 23 결성회원들의 도움의 영향이 컸다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사상>개인의 출세를 위한 원대한 뜻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혁명적 인생관>가지고 대를 이어가며 투쟁하여 기어이 나라의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뜻한다.


언제인가 김형직선생님은 아드님이신 주석님과 주석님의 할아버님할머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지원의 사상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 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 놈들과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김형직선생님의 사상을 김일성주석님 자신이 그대로 이어받아 항일혁명투쟁을 전개하셨고 다음으로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대를 이어 민족의 자주위업을 수행해나가셨고 지금은 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서 대를 이어 주체혁명위업을 계승하고 계신다이러한 조선의 최고지도자의 계승은 결코 왕조의 계승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적 해방을 위한 <혁명전통의 계승>이다.


또한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주석님께서 가장 깊게 받으신 교훈은 <혁명동지>대한 사상이다주석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께서 조선독립을 위한 길에서 동지 한명을 얻기 위하여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니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시었다.


주석님께서는 나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아버지를 통하여 동지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도리를 배웠다.라고 자신의 회고록에 쓰시었다.


또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에서 나라와 인민을 위한 진심만 있으면 좋은 동지는 얼마든지 얻을  있다문제는 뜻이고 마음이다돈은 없어도 뜻만 통하면 서로 동지가   있다동지를 위해 죽을  있는 사람만이 좋은 동지를 얻을  있다 하신 아버님의 동지애의 사상에 대한 말씀을 회고하시면서 그때 아버님께서 해준 말씀은 지금도 자신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아버님께서 한평생 어느 당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어떤 권력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나라의 해방과 근로민중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서슴없이 바치셨다고 회고하시었다그리고 아버님은 물욕과 사리사욕도 없었으며 자신을 생각하기에 앞서 민족을 생각하고 자신의 가정을 생각하기에 앞서 조국을 먼저 생각하며 찬바람을 맞받아 일생을 쉬임없이 걸어가심으로써 인간으로서도 청렴하게 살았고 혁명가로서도 결백하게 살았다고 회고하시었다그래서 주석님께서는 어떻게 하나 아버지의 뜻을 이어 한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겠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언급하시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주석님께서는 아버님의 혁명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고 아버님이 조직하신 <조선국민회> 조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시었다한창 혁명활동을 하시던 과정에서 철주동생과 형권삼촌을 잃으시었고 그리고 어머님도 병으로 잃으셨다그리고 그이를 지도자로 아끼며 따르던 김혁차광수최창걸리광 혁명동지들을 수없이 잃으셨다이러한 피바다위에서 주석님의 오늘의 위대성이 형성된 것이다그이의 위대성은 결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요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라 그이의 희생적 민족해방운동과 항일투쟁이라는 혁명적 투쟁 한가운데서 이룩된 것이다주석님의 항일혁명활동에 대한 기록을 읽노라면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한 우리 인민대중들의 투쟁의 역사가 소상히 눈에 어리여 온다그러면 나는 김혁이 작사작곡한 <조선의 >노래를조용히 불러본다.


주석님의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그분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을 갖게 되는 점은 또한 그이의 인민에 대한 깊은 사랑의 정신때문이다그이의 위대성은 바로 그분이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시고 인 속에 들어가시어 인민과 더불어 인민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데 있다이러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시는 사상에서 주체사상이 태동하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자신의 인민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시었다.


〈이민위천〉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생활의 본령이었다.


 <이민위천>사상이야말로주석님의 모든 노작의  페이지마다 흐르는 근본사상으로서 그이께서 어려서부터 아버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상이다그이께서 어리셨을  중국으로 이주해서 사시게 되었지만 아버님은 그이를 일부러 고국에 보내어 학교를 다니시게 했다 깊은 뜻은 바로 주석님께서 조선의 현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회고하시었다그이께서는 어려서 아버님의 권고로 조국에서2년간 공부한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시었는데 당시의 우리 조선인민에 대한 감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시었다.


가장 귀중한 체험은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를 깊이 리해하게  것이었다우리 인민은 소박하고 근면하면서도 용감하고 강의한 인민이었다어떤 곤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억센 인민예절이 바르고 인정이 풍부하면서도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인민이었다민족개량주의자들은 연정회의 간판을 가지고 반동적인 〈자치〉운동을 벌리고 있었으나 노동자와 농민청년학생들을 포함한 광범한 인민대중은 피를 흘리면서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힘으로써도 훼손시킬수 없는 민족의 존엄과 강철같은 독립의지를 뜨겁게 감수하였다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인민을  조직동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라를 찾을  있으리라는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아버님의 의도대로 조선민족조선인민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주석님의 혁명사상은 인민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만 보아오던 종래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인민이야말로 스승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고 간주하게 되었다.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구호는 주석님의 전생애를 관통하는 좌우명이 되었다주석님께서는 실로 인민적 품성과 인민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지도자로서 인민들 속에 들어가 직접 그들의 육성숨결눈빛표정말투손짓몸가짐을 자신의 눈과 손으로 손수 접촉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강조하시었다그것은 인민들 속에는 철학도 있고 문학도 있고 정치경제학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속에 들어가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과 같고 들어가지 않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믿고 계시던 주석님께서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생을 총화하시었다.


나는 인민들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였고 오늘도 인민들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혁명을 계속하고 있다그리고 인민들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을 총화하고 있다.


주석님께서 자신의 생신때마다 생일잔치상을 차려주려는 간부들의 성화를 뿌리치시고 인민들 속에 들어가 현지지도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시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주석님께서는 두메산골외딴섬농장도시공장  조선 어느 곳이나 현지지도하지 않으신 곳이 없을 정도로 사면팔방을 오가시며 인민들과 대화하시고 부탁하시고 인민들에게서 배우시며 한생을 사셨다그이께서는 항일혁명당시에도 혁명을 한다는 사람들이 자꾸 사대주의에 빠져 국제당에 승인이나 받으려 하고 윗자리나 차지하려는 것을 비판하시면서 무산대중을 위한 혁명을 한다면서 대중을 떠나 자꾸 위로만 올라가면 어떻게 하는가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자아래에 내려가 노동자농민들 속으로 들어가자고  세대 청년혁명가들에게 당부하시었다.


주석님께서는 위로 올라가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아래  인 속으로 내려가자고 호소하시면서 《혁명가의 생명은 군중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며 군중을 떠날  끝이 난다고   있다.》라고 강조하시었다주석님께서는 선행세대의 운동 전략이나 노선 그리고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운동 전략이나 노선은 결국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의 추동력인 인민대중을 믿지 않고 외면한 것이었기 때문에 붕괴된 것이라고 진단하시었다수백만 인민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  있겠는데 지난 시기 운동가들은 혁명도 독립운동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초기 혁명 운동가들도 기초축성은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로써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쉽게 만들었으며 인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1, 51파식으로 서로 분열되어 헤게모니싸움이나 벌렸다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의 몰락도 결국 따지고 보면 인 속에 들어가 인민을 조직사상적으로 통일단결시켜야 했는데 단지 정권차원에서 행정명령식으로 내려 먹이는 방법으로 인민을 통치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혁명의 실패는 혁명의 주체이며 추동력인 인민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인 속에 들어가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출신이 좋은 몇몇 사람들만으로는 혁명을   없기 때문에 인민을 대담하게 믿고 그들을 조직사상적으로 조직해야 된다고 그이는 믿으시었다.


내가 주석님을 존경하는  하나의 이유는 그이께서 인민을 통일단결시키셨기 때문이다옛날이나 지금이나 혁명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운동가들의 통일단결과 조직성원들과 인민대중의 일심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


주석님께서 초기혁명투쟁을 전개하실 때도 운동권이 사분오열되어 있었다민족진영과 공산주의진영 속에서도 수많은 파들이 서로 싸우고 중상모략하며 역량을 낭비하고 있었다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도  속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고 실제로 희생도 많이 되었다.


공산주의진영의 엠엘파화요파서상파, 종파분자들은 하나같이 공명주의와 소부르죠아영웅주의에 물젖은 행세군 들이었고 고질적인 사대주의자교조주의자들로서 운동을 파괴분렬시키는데 광분하였다엠엘파들은 노동자와 빈고농만이 혁명의 동력이 될수 있다고 믿고 테로나 일삼고 김일성주석님을 중심으로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애써 꾸려놓은 조직을  파괴시키곤 했다이리하여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인민을 이간시켜 놓곤 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애국심>이라는공통적인 사상감정만 있으면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다같이 민족해방을 위한 하나의 궤도에서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고 협력할  있다고 보시고 부단히 민족주의자들과의 연합전선을 시도하시었다물론 그이께서는 <민족주의운동>한계점을  알고 계시었다.
민족주의운동은 인민대중을 떠나 상층운동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인민들과 이탈하여 상층의 몇몇 사람들끼리만 모여앉아 말공부와 권력다툼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계급혁명이라면 엠엘파들이 주장하듯 노동자와 농민대중만이 혁명의 동력으로 되겠지만 조선혁명의 성격자체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인만큼 노동자농민은 물론 청년학생지식인애국적인 종교인민족자본가들도  혁명의 동력으로 보고 <민족해방>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반일애국역량을  집결하고  동원하자는 것이 주석님의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이었다.


그이께서는 민족해방이라는 대전제를 첫자리에 놓는다면 어떤 민족운동진영과 어떤 계급계층과도 손을 잡을  있다고 보시었다. <민족> 첫자리에 놓고 모든 문제를 생각해야 된다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고 주의도 있지 민족이 없이 공산주의민족주의는 해서 무엇하며 하느님은 믿어 무엇하겠는가고 주석님께서는 물으시었다.


그이께서 생전에 차광수김혁최창걸을 포함한 무수한 혁명동지들을 잊지 못해하신 것은 그들이 과거운동에서 통일단결의 중심이 없이 각당각파가 저마다 영웅호걸행세를 하면서 파쟁으로 혁명운동을 말아먹던 교훈을 찾고 <영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고 주석님을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워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단결의  역사를 피로써 개척했기 때문이었다.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나라 사회주의운동에서 처음으로 영도자와 인민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역사를 이들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이룩했기 때문에 주석님께서는 항일투쟁에서 그리고 해방   조국을 건설하는 데서도 혁혁한 업적을 남기실  있었다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자리다툼 때문에 조직에 불화를 조성한 적도 없고 의견의 차이로 그들이 생명으로 내세운 통일단결을 파괴해본 적이 없었다고 주석님께서는 회고하시었다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역사적 공적은 지도자를 내세우고  지도자의 두리에  마음  뜻으로 뭉쳐 혁명투쟁을 전개한 바로 그때로부터 조선의 민족해방투쟁은 파쟁과 혼란으로 얼룩진 과거의 분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통일단결의 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석님께서는 회고하시었다.


주석님을 중심으로 철통같이 뭉친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국적계급사상신앙재산정도남녀노소의 차이를 뛰어넘어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전조선민족의 항전으로 나라를 찾겠다고 생각했다주석님께서는 전한장(진한장), 장워이화(장울화같은 부자 중국청년들도 공청생활을 잘했다고 회고하시었으며 손정도목사 같은 종교인들민족자본가들까지  동원하여 거족적인 반일항쟁을 전개하시었다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애국애족심>갖고 있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위대하고 순결하고 신성한 감정이며 민족단합정신이야말로  애국애족심 중에서도 정수를 이루는 최고의 넋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가 주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의 사상의 위대함 때문이다그이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은 <사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강조하고 있다주석님께서는 사상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었다.


사상적 결합이 아니고서는 아버지의 친구도  소용없다지난날의 친분관계나 인정만 가지고서는 혁명투쟁을 함께 해나갈  없다는 것이 그때에 얻은 뼈저린 교훈이었다.
사상이 변하고 신념만 변하면 의리나 인정도 동시에 변하는 법이다지난날 죽자 살자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 틈이 생기고 인간적 결렬이 생기게 되는 것도  어느 한쪽의 사상이 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하던 우정이나 동지적 유대도 어느 일방이 사상적으로 변질되면 금이 가기마련이다사상을 고수하지 않고서는 의리나 친분관계도 지켜낼 수가 없다는 것이 그후 장구한 혁명투쟁과정을 통하여 내가 얻은 하나의 교훈이다.


주석님의 위의 고백은 그이 자신이 혁명투쟁과정 속에서 동지적 배신과 그로 인해 많은 동지들의 희생과 살을 에는  같은 고통을 맛본 무수한  체험의 기록인 것이다사람들이 어려운 기로에 처했을 이해관계가 맞부딪쳤을   진가  그의 <사상성>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주체사상에서는 <지식><사상> 구별해보고 있으며 사상을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정의내리고 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 한가운데서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고 많은 동지도 잃었는데 막상 어려운  생명까지도 서슴지 않고 의탁할  있는 결백하고 견실한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는 역시 근로하는 인민대중들 속에 있음을 체험으로 깨달으셨던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 지배나 착취받지 않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세계를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려는 근로인민대중의 주인정신이 바로 <자주사상>이다그이를 단결의 중심으로 믿고 따르던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사람들을 대할  그들의 명성경력지위를 보기에 앞서 그의 자주사상과 혁명에 대한 입장인민에 대한 관점부터 먼저 보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이러한 자주사상을 생명으로 여기고 일심단결한 이들은 조선혁명은 조선사람들 자신이 책임지고 조선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승리할  있으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투쟁했다그들은 과거의 민족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진영의 노선과 전략들이 조선의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하고 사대사상에 빠져 남의 것을 모방이나 하는 심중한 약점을 갖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주석님과 그이의 동지들은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 나갔다조선사람이야 <조선의 >가지고  나라 혁명을 잘하기 위해 힘써야지 젊은이들이 자기 얼도 없이 남들의 명제나 맹목적으로 외우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는 종파주의사대주의교조주의를 주석님께서는 시종일관 비판하시었다.


인간은 자기의 사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스스로 통제하고 조정할 능력을 갖고 있다문제는 동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동요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있다혁명가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줄 아는 강의하고 창조적이고 희생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석님께서는 결론내리시었다.


소박한 인민의 아들로 태어나 오로지 조선인민을 위하여 인민과 더불어 한평생을 바쳐 오신 주석님의 생애를 회고하며 나는 인간이 참으로 바른 사상을 갖고 올바른 대의를 위해 살아갈  얼마나 고상해질  있으며 얼마나 위대하고 성스러워질  있는지 알게   같다결국 위대하다는 것은 남을 위하여 특히 억압받고 소외되고 착취받는 인민대중을 위하여 얼마나 자기 자신을 희생시켰는가에 달려있다그이의 전생애에 흐르는 넓고 높은 도량과 고매한 덕성탁월한 영도력 그리고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숭고성은 우리 민족민과 더불어 영생할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주석님의 생애와 사상을 회고하면서 계속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았다만약 주석님과 그이의 혁명동지들이 혁명에 대한 책임감을 내동댕이치고 만주 눈벌판에서 좌절해 버렸다면 과연 조선의 미래아니 세계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조선과 세계의 <자주의 역사>, <정의의 역사>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아니 조선의 자주의 역사가 과연 제국주의연합세력의 맹공격 앞에 생존이나 했을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시었다.


나는 그때 우리가 주저앉으면 조선이 다시 소생하지 못한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우리가 죽어도 조선을 구원할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더라면 우리는 라자구등판의 눈사태 속에 파묻혀 더는 일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혁명에 대한 책임감은 결국 우리에게도 지금 무겁게 엄습하고 있다우리 재미동포들도  책임감만 없다면 모두 자본주의물결 속에 매몰되어 물질위주의 삶이나 살아갈 것이다주석님의 생애는 과거의 일로그저 재미있는 회고거리로 넘겨버릴  없는 무서운 채찍을 동반하고 있다우리도 지금 여기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한 변혁운동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고 있다이것이 바로 지원의 사상이며 계승의 의미이다.


우리도 김일성주석님의 일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 <애국애족의 >, <통일단결의 >, <자주의 >걸어가야 한다주석님을 회고만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처럼 살아야 한다그럴  우리도 주석님처럼 영생의 삶인 <사회정치적 생명> 얻을 것이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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