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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대결굿판의 어리광대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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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6-13 11: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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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대결굿판의 어리광대 태영호

 






지난 5월31일 미국정부와 깊은 연관이 있는 민간단체들의 지원을 받는 일부 탈북자 단체에서 대북삐라살포행위를 자행함으로 남과 북 해외의 온겨레의 지탄을 받고 있다.


 

4.27판문점선언에서 남과북은 군사접경지대에서 일체 대북삐라살포등 군사적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온겨레의 지지를 받으며 합의된 사항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측에서는 여전히 탈북자단체의 대북삐라살포가 자행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이같은 망동은 남북관계 파탄과 전쟁위기 고조 주범이 된다. 탈북자들이 그런 짓을 할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의 삶 자체가 쓰레기때문이다. 

 


평양출판사는 2017년 《거짓과 진실 》 책을 출판하면서 "지금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미국을 등에 없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모략적인 《북 인권문제》라는것을 여론화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다. 가관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합리화하고 신빙 성을 부여하기 위해 내돌리는 자료라는것이 거짓을 팔아 잔명을 부지해가는 추악한 《탈북자》쓰 레기들이 밥값이나 벌자고 아무렇게나 씨벌여댄 것을 고스란히 주어담은것이라는것이다. 거짓을 전제로 하여 도출되는 결론은 역시 거 짓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평양출판사는 너절한 《탈북자》쓰레기들의 추악성을 발가놓아 반공화국적대세력들이 벌리는 《북인권》소동의 기만적정체를 고발하기 위해 련 속본으로 된 이 책을 출판한다."고 밝혔다. 


재미동포전국련합회 편집국은 탈북자들의 너절한 삶을  폭로한 《거짓과 진실》에 나오는 탈북자들을 연재로 소개하려 한다. 고의적비밀루설범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 교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탈북자 태영호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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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굿판의 어리광대 태영호

 

지금 남조선집권세력은 그 누구의 《 붕괴 》라는 허황한 망상에 사로잡혀 이른바 《 북급변사태 》 를 떠들면서 여론을 오도하며 세상을 어지럽히고있다.

남조선보수패당은 반공화국대결을 고취하는 굿판에 내세웠던 《 탈북자 》 들의 서툰 연기로 하여 그것이 산산쪼각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이번에는 인간쓰레기 태영호를 저들의 장단에 춤추는 꼭두각시로 내세우고있다.

큰무당인 남조선보수집권자들이 선출한 어리광대 태영호!

혀바닥을 열백번 바꾼다고 해도 인간추물들의 입에서는 악취만 풍겨나올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오물로 버림받은 태영호와 같은자를 《 북에서 온 엘리트 》 라고 춰주어 저들의 비위를 맞추는 어리광대로 내세운것을 보면 반공화국모략책동이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놓여있는가 하는것을 가히 알수 있다.

 

더러운 인간추물

 

예로부터 물에 빠지면 지푸래기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헤여나올수 없는 궁지에 처한자의 단말마적인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미국과 남조선대결광들이 조작하는 《 북인권》무대에 나선 태영호는 악덕과 범죄로 얼룩 진 제놈의 더러운 몸값을 올려세워보려고 갖은 거짓과 협잡을 다하고있다.

인간으로서의 리성과 자각은 물론 초보적인 의리마저 모두 저버리고 정보원이 써주는 대본을 앵무새처럼 외워대는 이자의 행위야말로 돌부처도 앙천대소할노릇이 아닐수 없다.

오물에서는 악취밖에 더 풍길것이 없다.

어리석게도 공화국의 존엄높은 영상에 먹칠을 해보겠다고 미친놈처럼 놀아대는 인간추물 태영호의 망동은 우리 인민들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감출수도, 지워버 릴수도 없는것이 바로 조국을 배반한 죄악이다.

얼마전 우리 취재진은 태영호와 그 처자들의 생활일면에 대해 알아보려고 그자들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을 찾아 떠났다.

우리는 먼저 태영호가 일하였던 외무성으로 취재의 첫걸음을 옮겼다.

그자와 한부서에서 일했으며 해외생활도 같이하였다는 김수영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 사람이라는게 뭡니까? 부모가 준 생명과 이름을 가졌다고 하여 인간으로 되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태영호와 오래동안 생활하면서 그자야 말로 몇푼의 돈을 위해서라면 부모형제는 물론 고마운 조국도 서슴없이 팔아먹을수 있는 수전노라는것을 짐작했습니다.

그의 말마디마다에는 격한 심정이 그대로 배여있었다.

《 저는 그자의 더러운 생활관습과 인생관을 두고 여러번 비판도 하고 또 인간적인 충고도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놈은 제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노라구 말하군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조금이라도 가리워보려는 수작이였습니다.

그자는 조국에 있을 때에는 항상 제 진속을 가리우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 가서는 본색을 드러 내고 나중에는 쉬파리처럼 썩고썩은 오물장으로 기여들어간 버러지같은 놈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귀중한것은 량심과 의리이다.

그러나 태영호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초보적인것도 갖추지 못한자였다.

태영호는 칠면조도 무색케 할 변신술로 오래동안 자기의 죄과를 교묘하게 감출수 있었다.

그자는 다른 사람들이 범한 자그마한 잘못에 대해서는 좌경적인 언사를 발설하면서 길 길이 날뛰군 하였다.

오죽했으면 옆사람들이 태영호의 언행을 두고 《생사람 잡아먹을 무서운자》, 《기회가 조성된다면 조국도 서슴없이 배반할자 》 라고 말하였겠는가.

대중의 눈은 현미경이다.

김수영은 계속하여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6 3월경이였다.

외무성에 배치받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달 군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던 태영호가 갑자기 남다른 《열성분자》로 둔갑해나섰다.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또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밤늦게 일하는 그자의 모습은 부서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이 저렇게도 달라질수 있는가? 태영호는 류학까지 했다고는 하지만 경력에 비해 그의 지적수준은 너무도 낮았다. 그자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생각은 없이 겉멋만 잔뜩 들어 일은 하는둥마는둥하 면서 이방저방으로 빈둥빈둥 돌아다니기만 하던자였다.

사람들은 태영호를 두고 《 물우에 뜬 기름 방울같은자》, 《집단의 독초》라고 질시하며 멀리하였다.

그런데 하루밤새에 이렇게 딴 사람으로 변했으니

휴식날에도 태영호의 발길은 자기가 꼭꼭 찾군 하던 호텔과 식당이 아니라 사무실로 향해지군 했다.

사람들은 그자의 검은 속심을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부서에서는 한달후에 단마르크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에 여러명의 일군들을 새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바로 이 소식이 태영호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원인으로 되였던것이다.

오래동안 류학생활을 하면서 자본주의생활 풍조에 물든 이자는 어떻게 하나 외국으로 나갈 궁리만 하고있었던것이다.

하나의 거짓말을 통과시키려면 열가지 거짓 말을 해야 한다.

이자는 남들에게 일에 파묻힌 일군처럼 보이려고 늘쌍 사무실의 콤퓨터앞에만 마주 앉아있었다.

그러나 실지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면 콤퓨터오락이나 하는것이 고작이였다. 그러다가도 누가 방에 들어오면 머리쉼을 한다느니, 다른 나라들의 경제생활실태를 연 구한다느니 하는 변명으로 자신을 비호하군하였다.

어느덧 기일은 박두하여 외무성에서는 단마르크로 파견할 사람들을 선발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태영호는 부서일군들앞에 몇가지 자료들을 내놓았다.

그자가 내놓은 자료들은 단마르크를 비롯한 북유럽나라들의 현 경제발전추세와 주권 시세들이였다.

대사관에 파견되는 일군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지식들이였다.

외무성에서는 태영호를 젊고 전도양양한 외교일군으로 키우려고 그자를 단마르크주재 대 사관성원으로 파견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료들의 출처였다. 후에 밝혀진데 의하면 태영호는 자기의 리기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비렬한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자는 유럽에 나가 오래동안 외교사업을 한 경험이 풍부한 부서의 나이많은 일군인 박준호의 콤퓨터에서 그 자료들을 몰래 훔쳐냈던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소리를 보충하여 마치도 제가 주재국의 실태를 잘알 고있는것처럼 남들을 속였던것이다. …

《 이 얼마나 유치하고 너절한 행위입니까.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선배의 지적소유물도 거리낌없이 제것으로 만든 태영호, 그자야말로 초보적인 도덕과 의리마저 상실한 인간추 물입니다.

김수영의 말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서로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남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것이 본태로 되여 있는 우리 사회에 어떻게 그런자가 있을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였다.

김수영이 이야기를 마치자 태영호와 한부서에서 오래동안 사업하였다는 박현수과장은 우리를 체육유희오락실로 안내하였다.

아담하고 깨끗하게 꾸려진 실내체육장이 였다.

탁구판들과 정구장, 배구장이 있는가 하면 장기, 바둑, 윷놀이판들이 갖추어져있었다.

《제가 기자선생들을 여기로 데려온것은 우 리 외무성의 대중체육설비들을 보여주자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휴식시간에 이곳에서 즐겁고 흥겨운 시간으로 정신육체적피로를 풀군 합니다. 그렇지만 태영호, 그놈만 나타나면 그 분위기가 한순간에 흐려지군 하였답니다.

박현수의 증언에 의하면 태영호는 골프를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이자는 조국에 있을 때에도 일요일이나 명절날 같은 휴식일에는 골프장에 가지 못하면 오금이 쑤셔 못 견디는 골프미치광이였다.

직장에 출근하여서는 골프장이 없는 관계로 실내체육장에서 탁구를 치군 하였다.

문제는 체육에 대한 태영호의 태도문제였다.

부서에서는 탁구를 치는 경우 복식경기를 자주 하군 하였다.

태영호는 자기의 짝패가 경기도중에 실수하여 실점당하는 경우에는 인상을 찌프리며 짜증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더우기 이자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인 경우에는 《 야, 그렇게나 치는 주제에 탁구판에 들어섰어.》 하면서 남들도 무안할 정도로 신경질을 내군 하였다.

때로는 입에 담지 못할 쌍말까지 하였으며 나중에는 경기도중에 우락부락하면서 탁구알을 집어던지고 퇴장하는 비도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사람들은 태영호의 경솔하고 유치한 태도를 경멸하였으며 비판도 주었다.

《 우리 동무들은 그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태깍쟁이가 온다!>, <독가스가 또 날아드는 군! …>  하면서 그자와 함께 탁구를 치는것을 거절하군 하였답니다. 정말이지 그자는 사람들속에서 배척을 받은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박현수에게 《태깍쟁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쓰겁게 웃으며 《 그건 우리 동무들 이 태영호놈에게 붙인 별명이랍니다. <태깍쟁이>라는 그 부름말을 놓고서도 그자가 얼마나 비렬한 놈인가를 잘 알수 있을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무성의 일군들은 사업상용무로 외국출장을 자주 가군 한다.

그들은 해외에서 돌아오면 같은 부서나 가까운 동무들을 식사에 청하거나 간단한 기념품들을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태영호한테서는 이런 인간미를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2000 9월 어느날 이였다.

이때 스웨리예주재 우리나라 대사관에 나가있다가 조국에 온 태영호는 부서동무들에게 전에 없는 선심과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을 모두 식당으로 초청하였다.

부서사람들은 마른나무에서 푸른 잎을 보는것만큼이나 신기한 일이여서 반신반의하였다.

일은 식사후 료금을 청산할 때에 벌어졌다.

모두들 태영호가 식사비를 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태영호의 언행이였다. 그자는 인원수를 따져가면서 각자 자기 분담을 요구하고는 돈지갑에서 제 몫만 꺼내 식탁우에 놓고 사라져버렸다.

모두들 너무 아연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 허, <태깍쟁이> <태선심>으로 될수야 없지

《 참새목에 굴레를 씌울 놈한테 속지 않는 다구 하면서두

《내 말하지 않던가. 태영호한테서 맹물 한 사발이라두 그냥 받아먹으면 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구.

저마다 쓴입을 다시며 하는 말이였다.

《 태영호는 바로 이렇게 너절한 인간쓰레기입니다. 그자는 탁구공에 <태영호>라는 자기 이름을 써놓군 하였습니다. 그리고 탁구를 치다가도 탁구장을 떠나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가군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태영호의 탁구채에도 <태깍쟁이>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자는 자기 탁구채에 <이 탁구채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100US$를 주겠음! 태영호.>라고 써놓았댔습니다.

언제인가 태영호가 무슨 급한 일이 있었던지 탁구채를 이곳에 놓아두고 자리를 뜬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몇시간후에 탁구채생각이 났던지 여기저기를 돌아치면서 그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색이 거멓게 죽어가지고 마치 진귀한 물건이라도 잊은듯이 이방저방을 분주하게 드 나들면서 사색이 되였던 그자의 몰골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탁구채를 건사했던 동무가 태영호에게 그것을 돌려주었는데 그자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초보적인 도덕은 물론 제 머리털 한오리도 남한테 주기 싫어하는 자가 바로 태영호입니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도움을 청할 때에는 하마주둥이가 되군 하였습니다. 정말 철면피하기 그지없는자였답니다. 집단주의를 사회의 기초로 하고있는 우리사회에서는 도저히 배겨낼수 없는 개인리기주의자였습니다.

문득 우리에게는 태영호놈이 남조선에서 지껄인 소리가 떠올랐다.

그자는 기자회견, 간담회 등에 나타나 《이렇게 늦게 찾아온것이 후회된다.》느니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쓰레기는 쓰레기장으로 가기마련이다. 사람들로부터 시대의 거품으로 버림받는 신세가 된 주제에 이자는 오늘도 갖은 악설과 허위로 사람들의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마비시키는 전염병을 마구 퍼뜨리고있는것이다.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면 물고기가 대하를 얻는것과 같고 대중의 버림을 받는다면 나무가 뿌리를 끊기운것이나 같은 법이다.

우리 사회에는 극단한 개인리기주의에 물젖어 사회와 집단을 외면하는 태영호와 같은자들이 발붙일 틈은 조금도 없다.

우리는 태영호와 같이 일하였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기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 그자의 저속한 생활일면을 더 잘 알수 있었다.

《태영호는 인간이 아니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무역은행 부원 박윤희녀성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 2015 12월에 사업상용무로 영국에 갔다가 귀국할 때 있은 일입니다.

… 그때 박윤희는 조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동행했던 사람들과 함께 뻐스를 타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정다운 부모와 형제, 이웃들과 동무들이 있는 조국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흥분과 격정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태영호만은 심드렁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불만이 가득찬 기색으로 손목시계만 들여다보고있던 그였다.

영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에서 일하던 그 자는 이들을 비행장까지 데려다주고 귀국을 도와줄데 대한 지시를 받은것이다.

어디 몸이 불편한가고 묻는 말에 태영호는 퉁명스러운 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들때문에 오늘 골프장에 가려던 계획 이 다 뒤틀려지구말았단 말이요.

그자는 자기의 언행에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태영호의 행동은 사람들의 기분을 한순간에 흐려놓았다.

그들이 비행장에 도착하여 세관검열을 받을 때였다.

그런데 박윤희의 트렁크가 규정된 무게를 초과하였다.

그속에는 그가 조국에 돌아와 공부할 어학 학습참고서들과 부모와 자식들에게 줄 기념품들이 들어있었다.

외국려행이 처음인 박윤희는 태영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자는 대번에 얼굴이 새파래서 신경질을 부렸다.

《 그따위 물건짝이 뭐길래 그래? … 당장 여기에 버리구가오.

《예?! …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어쩌면 저럴수 있단 말인가. 저 사람한테는 인간성이란 꼬물만큼도 없단 말인가?

모두들 아연해하며 그자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태영호는 그들의 태도에는 무관계하다는듯 항공역의 시계에 눈길을 주며 초조해 있었다.

그자의 속심은 이들의 귀국수속을 빨리 끝내고 골프장으로 가자는데 있었다.

옆에서 세관검열을 하던 그 나라 사람이 박윤희에게 사연을 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세관원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무게가 덜한 다른 사람의 트렁크에 박윤희의 짐을 나누어넣게 하였다.

생각해보니 정말 단순한 리치였다. 세관원은 박윤희에게 저쯤 서있는 태영호를 가리키며 같은 나라 사람인가고 물었다. 박윤희는 그 물음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몰라 주밋거렸다.

세관원은 박윤희의 심정이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

어쩌면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제 나라, 제 조국에서 온 일군인 박윤희녀성에게 이처럼 야비한 언사를 써가며 그의 인격을 모욕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자가 아직도 그 무슨 인간성을 운운하며 남조선에서 누구의 인권에 대해 지껄인다니 사람들이 어찌 경악하지 않으랴.

그자와 같이 일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 태영호놈의 리면을 놓구본다면 사람들을 얼려넘기는데서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위선자, 저 하나밖에 모르는 무서운 린색한, 금전이라면 제 부모형제도 거리낌없이 팔아먹을 수전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과연 태영호에게 웃으면서 추억할 그런날들이 있겠는가?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관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돈과 안락만 추구 하는 자본주의생활풍조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들뿐일것이다.

제 리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 쾌락, 유 흥가에서 누린 부화방탕한 도락의 세계

10여년동안 해외생활을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저버리고 너절한 놈으로 전 락된자가 바로 태영호라는것이 증언자들의 일치한 견해였다.

김수영은 태영호와 함께 해외생활을 하던 때를 돌이켜보며 영국에서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영국에는 《 카 부츠 》 라고 하는 중고 시장이 있다.

《카 부츠》는 이 나라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자동차에 싣고 나와 파는 곳이다.

이곳은 중고시장이여서 다른 상점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였다.

태영호는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느날 김수영이 그자에게 중고시장에는 왜 다니는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러자 태영호는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비록 중고품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중앙 아시아나 아프리카에 넘겨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단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중고품이 아니라 <보물>이란 말입니다.

김수영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더 다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자는 이렇게 영국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카 부츠》에서 수많은 중고품들을 넘겨받아 그것을 다른 나라 장사군들에게 팔아먹으면서 돈벌이를 한 수전노였다.

이처럼 태영호는 돈이 나올수 있는 구멍이라면 악취가 풍기는 오물장에도 서슴없이 주둥이를 틀어박는 돈벌레였다.

한번의 달콤에 백년방탕이라는 말처럼 한번 들인 돈맛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수밖에 없는것이다.

우리는 태영호와 함께 해외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외무성일군인 리태균을 만났다.

《 태영호놈은 돈에 환장이 된 나머지 나중 에는 수많은 국가자금까지 횡령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범죄자입니다.

몇해전 태영호가 유럽의 어느 한 나라에 파견되여있을 때였다.

그때 국가의 조치에 따라 대사관을 다른 나라에 옮기게 되였다.

언제나 돈벌 구멍수만을 노려온 태영호는 건물과 부지를 비롯한 재산들을 정리하는 과업을 스스로 맡아나섰다.

그자는 이 기회를 리용하여 제 돈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야밤의 쥐새끼처럼 분주히 돌아쳤다.

이 기간에 이자는 거간군들과 장사군들에게 대사관의 물건들을 넘겨주면서 협잡의 방법으로 수많은 국가자금까지 횡령하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에는 대량의 국가 및 사회협동단체재산을 횡령한 경우에는 엄중한 법적제재를 받는다고 지적되여있다.

돈에 미친자의 눈에는 자나깨나 금전만이 얼른거리는 법이다.

한푼의 돈을 위해 제 목숨도 내댈 이런 돈 벌레들은 황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짓도 서슴지 않는다.

돈과 사치한 생활이라면 실성한 놈처럼 날뛰는 태영호는 수많은 국가자금을 횡령한것도 성차지 않아 나중에는 적대세력들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에 현혹되여 나라의 국가기밀까지 정기적으로 팔아먹는 반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해당 기관이 조사한데 의하면 태영호는 부패타락한 생활을 추구하던 나머지 주재국에 배겨있는 남조선의 정보원요원들에게 매수되였다.

이자는 여러 호텔과 골프장에서 그자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나라의 중요한 국가기밀들을 넘겨주고 돈을 받는 반역죄를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태영호는 대표부의 자금관계를 맡아보는 기회에 령수증을 위조하여 사취한 돈으로 자본 주의세계에서 특권층의 점유물인 1부류 골프장에만 드나들면서 돈을 물쓰듯 하였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BBC방송 기자까지도 태영호를 가리켜 《 영국의 중산층 같았다. 》 고 기억하고있겠는가.

리태균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 지금 태영호놈이 남조선에서 놀아대는 꼴 은 정말 가관입니다. 그자는 관리원의 채찍밑에서 배워둔 잔재간으로 어린아이들이 던져주는 간식쪼각이나 받아먹는 동물원의 성성이를 방불케 합니다.

정보원요원들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을 바라보면서 풍지박산되여 다 꿰진 반공화국악 선전무대를 꿰매느라 혈안이 되여 날뛰는 어리광대, 태영호라는 명패를 단 성성이를 말입니다.

그자는 지금 <북의 핵시험>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우리의 자위적인 핵억제력에 대해 비 방중상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 들이 남으로 올것>이라느니, <대북인권공세의 승리>이니 하는 허황한 악담을 쏟아내고있으니 정말 삶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질노릇이 아닙니까.

오래동안 해외생활을 하면서 자력자강으로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과 우리 인민들의 존엄 높은 행복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을 돌리지 않고 제 한몸의 안락과 부귀만을 쫓아다니던 그런자가 어떻게 되여 갑자기 <핵전문가>, <정치실무가>로 둔갑했는가 말입니다.

개보다 못한 태영호놈이 그런 악담질로 제 몸값을 올리려고 하는것 같은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울수 없고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울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리치입니다.

저는 그자의 몰골을 보면서 조국을 배반하고 짐승으로 전락된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추악해질수 있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알수 있었습니다.

태영호의 녀편네인 오혜선 역시 그자와 한 치도 짝지지 않는 인간추물이다.

《돈 다음에 태여난 년》, 《돈벌레와 같은 년》

이것은 오혜선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물론같이 살던 동주민들의 반영에서 나온 그년에 대한 대명사이다.

오혜선은 1966 10 16일생으로서 대외 경제성에서 일하면서 평양시 서성구역 상신동 98인민반에서 생활하였다.

우리는 대외경제성 일군들과 상신동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오혜선과 한부서에서 일하였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오혜선! … 그년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조 국을 배반할 년입니다.

《 부귀와 안락한 생활이라면 그 무슨짓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년이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오혜선에 대한 일정한 표상을 가지게 되였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립장에서 그년의 생활을 알고싶어 그들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탁하였다.

《쓰레기와 찌꺼기가 한데 어울리듯이 오혜선 역시 태영호놈과 한바리에 실어도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는 인간추물입니다.

제가 오혜선과 같이 일하면서 가진 인상은 자기밖에 모르고 더우기는 인간성이라고는 꼬 물만큼도 없는 더러운 년이라는것입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뗀 대외경제성 부원 리영순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8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오혜선과 같이 한부서에서 일하던 책임부원 리광현의 집에서 불상사가 생겼다.

오래동안 불치의 병으로 앓고있던 그의 안해가 그만 사망하였던것이다.

고지식하고 부지런하며 말수더구가 적은 리광현의 마음속 상처를 두고 대외경제성의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가슴아파하였다.

그들은 장례식을 도맡아 치르어줄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였다.

너도나도 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며 자진하여나섰다. 사무실의 구석에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있던 오혜선은 맨 나중에야 마지못해 자기가 장례에 쓸 샘물을 맡겠다고 하였다.

남을 위해서는 돈 한푼 내기 싫어하는 린색한인 그년의 행동이 못미더워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라면 두눈이 화등잔만 해지는 오혜선이가 남을 도와주다니? …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다음날 아침 오혜선은 출근하는 길로 부서책임자의 방문을 열었다.

그때 리영순은 책임자와 리광현의 가정을 도와 무엇인가 더 해줄것이 없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오혜선은 들어서는 길로 어제 자기가 장례식때 쓴 샘물값을 물어달라고 요구하였다.

부서책임자와 리영순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아연하여 서로 얼굴만 마주보았다.

남의 불행에 저리도 랭담할수 있단 말인가? 샘물값이 뭐 그리 많다고 온 부서가 리광현 동무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있는데 그를 위로 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참다못해 부서책임자가 이렇게 말했다.

《 어쩌면 그렇게 말할수 있소. 다른사람들은 동무보다 더 성의를 보이고도 미안해하고있는데

그러자 오혜선은 얼굴이 새파래서 《남들이야 어쨌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부모 자식간에도 돈회계는 정확히 해야 한다구 하지 않습니까.》라고 내뱉았다. …

리영순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쓰겁게 웃었다.

《 그 한가지 사실을 놓고서도 오혜선이가 얼마나 비렬하고 너절한 년인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도와주는것이 우리 사회의 생활기풍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남의 불행을 제 고뿔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오혜선이 야말로 우리 사회의 독초나 같은 년이 아니 고 뭐란 말입니까.

사실 그때까지 우리 부서에는 오혜선이만큼 풍청거리며 생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노 상 퇴근시간이면 알지 못할 남자들을 데리고 식당과 호텔에 출입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샘물 몇병을 내고 그 값까지 내라구 하니 이게 어디 인간으로서 할짓입니까.

사람들을 식당에 초청해놓고도 자기의 값만 물고 달아나는 태영호도 그렇고 함께 일하는 부서사람의 집 장례에 쓴 샘물값을 받아내겠다고 하는 오혜선이도 정말 한 저울추 에 올려놓으면 조금도 기울지 않을 돈벌레, 수전노들이다.

리영순은 계속하여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9 8월경이였다.

리영순의 부서에는 긴급물자수송이 제기되였다.

그런데 부서의 남자들은 모두 출장중이여서 이 일은 그와 오혜선이 해야 했다.

물자를 싣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오혜선이 차를 세워달라고 하였다.

무슨 일인가고 묻는 리영순에게 그년은 어데 잠간 들렸다가 인차 따라가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혜선은 두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리영순은 다른 부서 동무들의 도움으로 그 많은 물자들을 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은 그에게 오혜선은 어디에 갔는가고 물었다.

리영순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 아니, 오혜선이가 어떤 녀자인지 몰라서 그걸 승인하니?

《 일하기 싫어서 뺀질뺀질하는 혜선이가 인차 올게 뭐예요.

《보나마나 어느 미용원에 들려 머리치장이나 하겠지 뭐.

아닌게아니라 오혜선은 퇴근시간이 다되여서야 나타났다.

리영순은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년의 달라진 머리모양새를 보고 모든것을 짐작한 그였다.

그러나 오혜선은 미안해하는 기색이란 조금도 없이 오히려 자기의 머리단장이 어떤가 봐달라고 하면서 철면피하게 놀아댔다. …

《오혜선은 바로 이런 년이였답니다. 사회와 집단을 위한 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 으면서도 제 개인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 년이였지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 우리 동무들은 오혜선을 두고 <꽃밭의 잡초>라고 하면서 대상하기 싫어하였답니다. 이렇게 동무들 축에 끼우지 못하고 경멸과 질시의 대상으로 된 그런 년이 갈 곳이란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저 남조선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혜선과 같은 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녀성들에게서도 꼭같은 말을 들을수 있었다. 서성구역 상신동 98인민반에서 사는 김영애와 김설화녀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 저는 오혜선년과 한인민반에서 오래동안 같이 살았습니다. 전 그년과 함께 한아빠트에서 살았다는것을 수치로 생각하고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저만이 아닌 우리 인민반 주민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옷차림은 보기에도 창피할 정도로 허벅다리까지 들여다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서 때없이 불건전한 남자들과 제 집에서 술판을 벌려놓군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민반 주민들은 <매춘부같은 년>이라고 오혜선을 경멸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집을 <기생집>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김영애녀성의 이야기가 끝나자 김설화녀성이 그의 말을 이었다.

《 그때가 아마 몇년전 여름 어느 일요일이 였다고 기억됩니다.

그는 량미간을 쪼프리며 그때의 일을 회억하였다.

… 그날 김설화는 수산물공급표를 주려고 오혜선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마침 문이 열리더니 오혜선이 나오고있었다.

《주혁이 어머니, 인민반에서 주는 수산물공 급표예요. 오늘중으로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그의 말을 들은 오혜선은 난색한 표정을지었다.

《 아이, 어쩌나난 지금 막 거리로 나가려던 참인데

김설화는 그의 말을 리해할수 없었다. 오혜선의 차림새는 실내복같은 차림이였던것이다.

앞가슴은 거의나 드러나고 속옷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잠자리옷을 입고 어디로 나간단 말인가?

《그런 옷을 입고 말이예요?

의문이 실린 그의 물음에 오혜선은 진한 화장을 한 얼굴에 비웃음을 띠웠다.

《 왜요, 이 옷이 어떻다구 그래요. 서유럽에서 만든 제품인데 보기 좋지 않나요?

《 주혁이 엄마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애. 더우기 그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면 오히려 인격에 손상을 줄것 같군요.

오혜선은 연한 코웃음을 흘리며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 이제 보니 진옥이 엄마두 세상물정엔 영 깜깜이군요. 지금 외국녀자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다 이렇게 드러나보이는 옷을 입고 다녀요. 감추고 다니는건 다 구식이란 말이예요.

김설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외국에 몇번 다녀온 다음부터 우리 조선녀성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망각하고 그릇된 생활방식에 물젖은 오혜선에 대한 비난을 인민반주민들로부터 여러번 들어 온 그였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자본주의생활풍조에 물젖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고 우리도 그 들처럼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요. 뭐가 모자라서 우리가 자기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배척하고 남의것을 받아들이 겠나요.

그러자 오혜선은 제켠에서 앙천대소했다.

《 진옥이 어머니하군 도무지 언어가 통하지 않는군요.

그년은 갑자기 정색한 눈초리로 복도를 살피고나서 김설화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 이봐요, 젊음이란 철이 지나면 다예요. 뭣때문에 아까운 시절을 수녀처럼 흘러보내겠는가 말이예요. 살아있을 때 해볼것은 다해봐야해요. 더우기 녀자의 인생은 40대에 더 인기가 있다구 하지 않나요.

김설화는 그년과 더이상 마주서고싶지 않았다.

더러운 독소가 자기의 맑은 정신을 흐려놓는듯싶었다.

오혜선의 생활관은 우리 시대의 흐름에 역 행하는 변태적인것이였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서도 샌다고 그년의 이색적인 생활방식은 직장에서도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대외경제성 도서실에서 사업하고있는 한금순녀성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오혜선은 사람들의 눈길을 무색하게 하는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우리 녀성들의 존엄과 인격을 모독한 년이였습니다.

2010년 여름 그년이 입고 출근한 달린옷을 보니 얼마나 망측했는지 모릅니다.

몸을 앞으로 약간만 숙여도 앞가슴이 다 들여다보이고 또 치마는 너무도 깡충하여 까치다리를 하고있으면 속옷까지 들여다보이는 정도였습니다.

곁에서 보기가 너무 민망하여 같이 일하는 리영순동무가 무슨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는가고 충고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오혜선년은 제켠에서 내가 옷을 이렇게 입든, 저렇게 입든 무슨 상관인가고 하면서 광증을 부렸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녀동무들이 그년의 언행을 두고 하나와 같은 목소리로 비판했답니다.

녀성이면 좀 고상하고 아름답게 몸차림을 하고 다녀야 하지 않는가, 지금 당신의 차림새를 보면 자본주의나라에서 사내들을 꼬이기 위해 거리에 나선 매춘부를 방불케 한다고 말입니다.

외모나 품성에 있어서 아름답고 고상한 인간만이 사회와 집단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리치입니다.

그렇지만 오혜선년은 사회와 집단에 더러운 악취만을 풍기는 독초로서의 자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았습니다.

정말이지 우리 집단에 더이상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꽃밭속의 잡초!

바로 이것이 오혜선에 대한 군중들의 일치한 목소리였다.

두엄더미속에서는 더러운 버러지들만이 서식한다.

썩어빠진 생활방식에 물젖은 태영호와 오혜선과 같은 추물들에게서 꼭같은 쓰레기가 나오리라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리치이다. 그것은 그 년놈들의 새끼인 태주혁과 태금혁의 생활이 증명해주고있다.

맏이인 태주혁은 19908 10일생으로서 우리 공화국의 품에서 돈 한푼 내지 않고 11년제의무교육을 마치고 평양의학대학(당 시)에서 공부한자이다.

고마운 조국의 품에서 대학을 졸업한 태주혁은 학생기간 제 부모들의 그릇된 영향하에 부패하고 타락한 생활만을 추구하였다는 것이 그자와 같이 공부한 동무들의 일치한 목소리였다.

현재 평양의학과학원에서 사업하고있는 전금성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자는 돈이라면 인간의 초보적인 륜리도덕도 다 망각하고 생활한자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뗀 그는 자기가 알고있는 태 주혁의 사기협잡행위에 대해 이렇게 고발하였다.

2010 6월경이였다.

이날 강의가 끝나자 전금성은 동무들과 함 께 대학기숙사로 향했다.

그들이 대학정문을 벗어나는데 웬 처녀가 다가왔다.

그 녀자는 몹시 속상한 표정으로 태주혁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아는가고 물었다.

전금성은 그와 한학급에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처녀는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녀성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은 전금성은 사연을 물었다.

며칠전 그가 출납원으로 일하는 북성식당에 태주혁이 여러명의 녀성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값을 계산하니 돈이 모자랐다.

태주혁은 출납원에게 자기가 가지고있던 사진기를 맡겨두고 래일 값을 청산하자고 사정하였다.

출납원은 그자가 너무도 졸라대기에 그를 믿고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태주혁은 그때로부터 이틀이 지났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더우기 그 사진기는 고장이 나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물건짝이였다.

속상해서 울고있던 출납원에게 태주혁이 앉았던 식탁을 봉사하던 접대원이 그자의 행처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이렇게 되여 출납원이 그자를 찾아왔던것이다.

처녀가 보여주는 사진기를 보는 순간 전금성과 학급동무들은 분격을 금치 못했다.

며칠전 태주혁놈이 학급동무들에게 그 사진기를 보이면서 고장나서 그러는데 누가 수리할줄 모르는가고 물어보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더러운 자식, 고장난 사진기로 협잡행위를 하다니

이렇게 되여 태주혁과 출납원처녀가 마주서게 되였다.

그런데 그자는 오히려 제편에서 큰소리를 치며 아닌보살하였다.

옆에 있던 전금성과 그의 동무들이 그자에게 대학생의 망신을 시키지 말라,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철면피할수 있는가고 하면서 처녀에게 식사비를 물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제서야 태주혁은 마지못해 자기 잘못을 시인하였다.

하지만 이자는 출납원처녀를 피해다니면서 끝내 식사비를 물어주지 않았다.

태주혁은 바로 이렇게 비렬한자였다. 신통히도 애비 태영호와 에미 오혜선의 더러운 생활방식을 유전인자로 받아들인자였다. 안일과 방탕에 물젖어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의 리익만 챙기면 된다는 극단한 개인리기주의자인 태주혁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백해무익한자였다.

그자가 얼마나 부화방탕한 생활에 물젖었는가 하는것은 대학 박사원생인 허수일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 제가 대학기간에 태주혁놈과 한학급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소감에 대해 말한다면 그자의 생활은 돈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는것입니다.

탐욕의 배는 늘 곯아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자는 돈에 중독된 놈이라고 말할수있습니다. 남들을 속여 그들의 돈으로 향락을 추구하다 못해 나중에는 제 집의 돈과 물건을 훔쳐서라도 자기의 탐심을 만족시키고야마는자 였으니까요.

이런 말로 우리의 취재에 응한 허수일은 태주혁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 태주혁놈은 2010 1월경 집에서 많은 현금을 꺼내가지고 식당들을 싸다니며 먹고 노는데만 써버렸습니다.

언제인가는 광복거리의 어느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리다가 분주소에 억류되여 취급을 받은 일까지 있었답니다.

시내의 여러 식당들에서 그자가 돈을 내지 않고 외상으로 식사를 하였다는 신소가 계속 제기되였으며 동무들속에서는 태주혁이때문에 학급이 소란스러워서 공부를 못하겠다, 저런 자는 대학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였습니다.

그때마다 그자는 동무들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잘못을 빌었으며 고치겠다는 말을 입릇처럼 외웠습니다. 하지만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태주혁놈은 자기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집에서 할머니의 돈을 훔쳐내기도 하고 또 제 에미의 금목걸이와 향수 같은것들을 몰래 가져다가 식당에서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군 하였습니다.

언제인가는 어느 한 식당에서 식사비를 물지않고 도주하다가 잡혀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자의 행동 하나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될수도, 허용될수도 없는 행위들이였습니다.

태주혁의 추악한 행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대학때 그자의 담임교원이였던 김진숙녀성을 만나보았다.

그는 태주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얼굴부터 찡그렸다.

《 저는 지금까지 근 30여년을 교단에 서있으면서 숱한 학생들을 졸업시켰습니다. 정말이지 지금도 설명절이나 생일때마다 제자들이 찾아오고 또 그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받아보면서 교육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군합니다. 고마운 조국의 품에서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펴고 강국건설을 위해 자기의 지식과 열정을 바쳐가는 제자들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보는것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이 어데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태주혁이가 제 애비와 에미를 따라 조국을 배반한 역적이 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역시 막돌은 어디까지나 막돌이지 보석으로 될수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태주혁놈은 대학기간 향기로운 곳보다 악취풍기는 곳을 찾아다니는것을 즐겨했던자였습니다. 항상 이색적이고 괴상한 옷차림으로 다니기를 좋아했으며 강의에는 잘 참가하지 않고 식당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안락과 방탕만을 추구했습니다.

자식들이 행실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부모들이 단정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태주혁놈의 행실을 보면서 이자의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가? 부모로서 가정교양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자주 품군 하였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에 시작된다고 대학생활의 첫걸음마를 이렇게 시작한자가 어떻게 옳바른 길을 걸어갈수 있겠습니까.

언제인가 대학교무부에서는 태주혁이 더이상 대학생활을 할수 없다고 인정하고 그자를 퇴학시키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을 저에게 물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번지자 그자는 제 애비와 에미를 데리고 저를 찾아와 잘못했으니 한번만 용 서해달라고, 다시는 그릇된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빌고 빌었습니다.

제가 그때 인정에 사로잡혀 그자를 용서해 준것이 정말 실책이였습니다. 저는 사람이 한 창나이에는 일시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을수도 있다, 이제부터 교양을 잘하여 바른길에 들 어서도록 이끌어주면 되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육자로서의 제 량심에 큰 흠집을 남길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대끝에서 대가 나고 싸리끝에서 싸리가 난다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태주혁놈과 같은 오물들이 제거되면 될수록 우리 사 회는 더 순결해진다고 말입니다.

태영호와 오혜선과 같은 인간추물들의 몸뚱이에서 태여나 그속에서 딩굴며 자란 자식들에게서 어찌 신선하고 깨끗한것을 찾을수 있 겠는가.

꼭뒤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흘러내린다고 애비로부터 시작해서 새끼들까지도 이렇 듯 더러운 생활을 추구한 속물, 사회의 오물들이였다.

 

음탕한 무리

 

인간의 사랑은 탐욕과 대가를 모르며 고상 하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진실한 사랑! 이것은 인간들의 심장속에 우러나오는 열정의 샘줄기이며 인생을 화원으로 가꾸어가는 원동력이다.

돈이나 물건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태영호의 사랑관은 리기적인 목적과 동물적인 성적쾌락으로 일관되여있었다.

1984년 9월부터 1996년까지 모란봉구역 선동에서 태영호와 이웃하고 살았던 장화영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태영호놈은 사람새끼가 아닙니다. 그놈은 총각시절에 처녀와 함께 살자고 약혼식까하였다가 나중에는 헌신짝처럼 차버린 하에 둘도 없는 불망종같은 놈입니다. … 》

태영호놈과 함께 일하였던 차경철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같은 내용이였다.

그자는 원래 젊어서부터 녀성관계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자는 총각때 녀성과 약혼식을 상태에서 다른 녀자와 선을 보았습니다. 녀자가 바로 오혜선입니다.

정말이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영호의 너절하고 비렬한 녀성관앞에 격분을 금할수 없습니다.》

잠시 동안을 두었던 그는 다시 말을 이으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경철은 외무성에 배치되여 태영호와 한부서, 한사무실에서 일하였다.

어느날 태영호가 그에게 한장의 사진을 내보였다.

사진의 인물은 오혜선이였다.

처녀인가고 묻는 차경철에게 태영호는 히죽 웃으며어제 선을 처녀인데 어떨것 같나? 》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차경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무야 이미 약혼녀가 있지 않나?》그의 말에 태영호는 코웃음을 쳤다.

물론 약혼식이라는걸 하기야 했지. 그렇지만 약혼 그자체가 결혼을 의미하는것은 아니지 않나.》

차경철은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가지않았다.

그들이 약혼식을 한지도 반년이나 였다.

그동안 태영호는 약혼녀의 집에서 거의나 살다싶이 하였다.

더우기 녀자측에서는 앞으로의 사위감을 위 해 온갖 성의를 다하며 친아들처럼 대해주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정과 사랑을 바쳐온 처녀와 그의 부모형제들을 배반하고 다른 자를 선본다는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짓이였다.

차경철은 진중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심중히 생각하라구. 진실한 사랑을 안고 있는 약혼녀의 가슴에 못을 박는짓은 사람이 일이 못되네. 》

태영호는 그의 말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임자는 아직 햇강아지로구만. 내가 국제 관계대학(당시)을 졸업하구 중국에 가서 류학할 때 보니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런 일은 상한 일로 여기더구만 뭐. 리혼이라는것은 기나 같은것이란 말이야. 》

차경철은 더는 참을수 없었다.

그는 그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루박듯이 말했다.

태영호, 감히 어디서 썩어빠진 자본주의생활방식을 력설하는거야. 똑바로 명심해라! 다시한번 내앞에서 진실한 사랑을 모독하수작질을 했다가는 뼈다귀도 추리지 못할 알라. 더러운 독버섯같은 ! 》

그때 태영호가 약혼녀를 배척하고 오혜선결혼하려고 한데는 그자의 더러운 리기심깔려있었다.

이자는 오혜선의 가정환경과 그년의 직업리용해서 자기의 전도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였다.

부서사람들은 태영호의 리기적이고 비인간 적인 처사에 침을 뱉고말았다.


태영호놈의 이런 행위는 순결한 사랑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날에 와서 보니 그자는 더러운 색광이였습니다. 다시말해서 태영호놈은 도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부패변질된 인간오물입니다. 》

녀성의 사랑을 지킬줄 모르는 인간이  떻게 신념을 지키고 조국을 지킨단 말인가.

진실한 사랑은 받는것이 아니라 바치는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을 위한 벅찬 생활속에서 서로 돕고 이끌어가는 과정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우리 청년들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관자기 탐욕과 성적만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변태적인 사랑과는 아무런 인연없다.

하기에 태영호와 같은자들은 사회의 속물, 거품으로 우리 인민들의 질시와 규탄의 대상으로 되고있는것이다.


재물을 위하여 상대를 사랑한다면 온갖 덕은 거기에서 빚어지는 법이다.

남녀간의 관계를 금전의 가치나 리속으로 계산한 태영호였기에 부부사이의 진정한 정을 나눌수 없었다.

이자는 해외로 나가기 전까지 불건전한 활방식에 물젖은 녀성을 돈으로 유혹하여 식당과 호텔에 출입하면서 추잡한 성관계를 지군 하였다.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살고있는 심정심녀성이렇게 증언하였다.

저는 지난 시기 돈에 환장이 되여 나라법을 어기면서 비법적인 장사를 녀자입니다.

언제인가 저는 장사를 목적으로 평양에 다가 우연히 태영호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였 습니다. 그자는 내가 평양에 목적을 듣고요구하는 물건들은 자기가 얼마든지 해결 해줄수 있다고 하면서 어느 호텔방으로 리고 갔습니다.

그놈은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저의 손과 몸을 만지면서 치근거렸습니다.

제가 그자의 요구를 뿌리치고 물건을 해결 해줄것을 요구하자 이제 전화만 하면 여기로 도착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저에게 한고뿌를 권했습니다.

그때 저는 목이 마른지라 그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마셨습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알몸이였고 옆에는 같은 몰골을 그놈이 흡족한 웃음을 띠우며 얼굴을 여다보고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그자에게  속히웠다는것알고 소스라쳐 일어났습니다. 》

심정심은 몸서리치는 그때를 생각하며 한동눈물을 흘렸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마음을 진정한 녀자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후 비법적인 장사거래를 한것으하여 법적제재를 받았습니다. 기간 저는 내가 걸어온 수치스러운 생활에 대해 각하게 돌이켜보았으며 어지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참답게, 사람답게 살아갈 결심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태영호놈은 종내 조국과 인민을 반하는 역적놈이 되였다니 정말이지 격분을 금할수 없습니다. 그자도 저와 함께 이미 전응당한 법적처벌을 받아야 했을 놈이였습 니다.

지금도 제가 그때 그자를 법앞에 고소하지 못한것이 정말 죄스럽습니다. 변태적인 성욕으로 우리 녀성들의 존엄을 모독한 그런 놈은 반드시 력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야말것 입니다.》

얼마나 비렬하고 너절한 놈인가.

바로 이러한자였기에 그자는 외국으로 나가며칠전에는 호텔방에서 자기 막내아들보다나이가 어린 미성년을 강간하는 범죄까서슴지 않았던것이다.

태영호는 대동강 유보도에서 곱게 생긴 학생을 보자 그를 불러세우고 장시간 이야기나누었다.

이자는 자기의 신분을 숨기고 그가 중학교졸업하면 좋은 곳에 배치시켜주겠다느니, 대학에 보내주겠다느니 하면서 갖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너는 인물도 고운데 좋은 화장품써야 한다느니, 내가 이제 당장 사주겠다느니 하면서 녀학생을 호텔로 유인하였다.

그리고 심정심녀성에게 하였던것처럼 어린 처녀에게 환각제를 먹이고 강간하는 짐승도 낯을 붉힐짓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태영호는 자기의 행위가 드러나는것이 두려 워 그 학생을 여러가지 감언리설로 얼리다가 영국으로 출국할 날이 다가오자 꼬리를 사리고말았다.

리태균은 우리에게 태영호와 함께 영국주대사관에서 일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자는 비법적으로 횡령한 자금으로 부화 방탕한 생활을  추구하여왔습니다. 》

태영호는 짬만 있으면 구실, 구실을 대면서 대사관밖으로 벗어나군 했다.

어찌나 요리조리 빠지는지 대사관의 일군들과 직원들은 한결같이미꾸라지보다 더 한 이라고 말하였다.

그자는 몇시간이면 마무리할수 있는 면담도 오늘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느니, 래일 다시 만나기로 했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해가면노상 외부에 나가 돌아다녔다.

목적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유흥장이나 호텔을 돌아다니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자는데 있었다.

그자가 도주한 료해한데 의하면 태영호윈덤호텔과 힐든호텔에 자주 나타나 자본 주의나라들에서도 범죄시하는 성록화물을 보고 마약을 쓰면서 여러명의 나라 녀성들과 변태적인 성생활을 하였다는것이 드러 났다.

색에 물젖은자는 자연히 파멸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지기마련이다.

음탕한 동물로서의 추태에서는 태영호의 편네인 오혜선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오혜선과 같이 생활해온 일군들과 서성구 상신동 주민들은 모두가 그년을 가리켜바람난 암개》, 《더러운 매춘부라고 하였다.

대외경제성 도서실 사서인 한금순녀성의 야기가 이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오혜선은 대학때부터 <오석부>라는 명을 가지고다녔습니다. 이것을 풀이한다면<오가성을 가진 석두대가리>, <부화상습쟁이> 라는 뜻입니다.

이년은 처녀시절에는 물론 시집간 후에도 불건전한 사내들을 꼬여 부화방탕한짓을 속해서 부모들의 속을 얼마나 태웠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충고를 주면 해외에 출장간 남편기다리면서 다른 남자와 어쩐다구 일이 나는가, 정조요 뭐요 하면서 수녀처럼 살아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젊은 시절 그렇게 산다구 남는게 뭔가고 하면서 히려 제켠에서 역증을 내군 하는 바람난 개였습니다.》

오혜선과 같은 인민반에서 살았던 신영란녀성은 《그년은 항상 추잡한 옷차림을 하고 녔으며 자기와 같은 추물인 남자를 자기 집에까지 끌어들여 방탕한짓을 서슴없이 하였 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2012년 8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서성구역 식료품종합상점 상신2식료상점에서 점장으로 일하던 신영란은 밤늦게 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불밝은 현관에 들어선 그는 8층에 있는 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개 층을 올라왔는데 어데선가 교태어린 녀성의 웃음소리와 웅글은 남자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들려왔다.

밤중에 남녀일가 하는 생각으로 다음 층에 올라선 그는 깜짝 놀라 걸음을 추었다.

분명 태영호네 집이였는데  출입문은  열려있고 복도에는 반나마  몸이 드러나옷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오혜선이 남자와 서로 껴안고 애무를 하고있었던것 이다.

마치 한쌍의 뱀이 엉켜돌아가는 모양을 불케 했다.

너무도 망측한 행동앞에 신영란은 제켠에서 창피하여 급하게 계단을 밟았다.


오혜선이가 남성들과 불건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지만 이렇게 실지 으로 보기는 그에게 있어서 처음이였다.

활랑거리는 가슴을 안고 집에 들어와 세대주에게 물으니 태영호는 해외출장에 나간 태라는것이였다.

남편이 없는 사이에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부화방탕한짓을 하다못해 헤여지는 순간까지 복도에서 추잡하게 엉켜돌아가며 녀자의 망신을 다 시키는 년이 바로 오혜선이였다.

오혜선은 자기의 리기심과 음욕을 위해서라면 녀성의 깨끗하고 순결한 정조를 스스로 저버리고 불순한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살아창녀였다.

며칠전에 우리와 만났던 중년사나이의 증언이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다.

그는 어느 회사에서 사업하고있는 김정만이라는 사람이였다.

사실 저는 나라앞에 용서받을수 없는 죄를 지은 놈입니다. 그러나 고마운 조국은 제 가 스스로 죄과를 인정하고 자수하였을 때에 저를 관대히 용서해주고 자기 직제에서 계속 일하도록 해주었습니다. 》

이렇게 입을 김정만은 다음과 같은 실을 터놓았다.

김정만은 몇년전부터 오혜선을 알게 였고 자주 련계를 가지였다.

회사의 경영활동을 위해 그는 대외경제성과 일정한 사업관계를 가지고있으면서 그년과 자주 접촉하게 되였던것이다.

오혜선은 자기보다 나이가 5살이나 아래이사내답게 생긴 김정만에 대해 호감을 지고 그를 각근하게 대해주며 그가 요구하는 물자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주었다.

이렇게 되자 김정만은 오혜선을 친누이처럼 여기면서 그를 데리고 식당을 비롯한 여러곳자주 출입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2월 오혜선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즉 오늘이 자기 생일이니 집에 꼭 와 달라는 부탁이였다.

김정만이 그의 집에 도착하니 오혜선은 혼자 있었다.

오늘과 같이 기쁜 날을 홀로 적적하게 보내는가고 그가 묻자 오혜선은 가느다란 숨을 내그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해외에 나갔다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정만은 동정심에 못이겨 그를 식당으로 초청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오혜선은 집에서 둘이 보내자고, 음식들은 준비했으니 걱정말라며 선을 떨었다.

생일을 맞는 사람의 요구여서 김정만은 다른 말을 못하고 자리를 같이하였다.

이윽고 오혜선이 다른 방에 가서 옷을 아입고 나왔다.


새옷을 입은 그년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김정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그의 차림새는 완전한 반라체모양이였다. 깡충한 치마는 허벅다리를 완전히 드러나게하였고 잔그물실로 만든 웃옷으로는 앞가슴이 드러나고 배꼽까지 보이는 정도였다.

얼굴이 화독같이 달아오른 김정만에게 다가오혜선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너무 긴장해하지 말라고, 집에는 우리밖에 없다하면서 그에게 추파를 던졌다.

김정만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집에서 나오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렇지만 자기 일을 도와주려고 노력하였으지금까지 자기를 친동생처럼 대해온 오혜선에게 실례가 되는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못했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둘이서 술을 마시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혜선은 김정만의 옆에 찰거마리처럼 달라붙어 물자를 들여오는 문제자기가 해결하겠으니 너무 걱정말라며 생일을 맞는 자기를 기쁘게 해달라고 하면서 갖은 교태를 부렸다.

김정만은 더이상 오혜선의 요구를 뿌리칠 없었다.

후날에 일이였지만 그년은 자기의 욕을 채우기 위해 저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였던것입니다. 생일도 10월이였지만 저한테는 2월이라고 속였던것입니다. 이때부터 저와 혜선과의 관계는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가 국가앞에 죄를 짓는 죄의 길로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

그때로부터 몇달후 오혜선은 김정만에게 돈을 생각이 없는가고 하면서 그의 속을 든장질하였다.

김정만은 자기는 지금까지 회사의 경영활동을 떠난 돈벌이는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혜선은 그런 멍텅구리같은 생각은 그만두라고, 그렇다면 자기가 도와주겠으회사를 보란듯이 꾸려보라고 하였다.

며칠후에 오혜선이 찾아서 그년의 집에 가니 뜻밖에도 남편인 태영호가 있었다.

태영호는 안해한테서 모든 사연을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는 인차 다시 영국으로 떠나야 하니 그곳에서 회사의 설비갱신에 필요한 기계 설비들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김정만은 오혜선을 믿고 회사의 경영자금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헤여나올수 없는 구렁텅이라는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3개월이내에 설비와 자재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감감무소식이였다.

오혜선은 태영호와 짜고 김정만에게서 수많자금을 뽑아내고는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갔던것이다.


후에야 오혜선과 그의 가족들이 영국으로 갔다는것을 알게 김정만은 머리카락을 여뜯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것은 때늦은 자책이였다.

녀색에 물젖어 옳고그른것도 가려보지 못한 죄의식에 모대기던 그는 스스로 해당 기관에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털어놓았다.

정말이지 지금도 태영호와 오혜선년놈들 당장 찢어죽이고싶은 생각뿐입니다. 남을 속여 리속을 차리고 나중에는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조국도 서슴없이 배반한 그 추악한 무리들은 천벌을 받고야말것입니다. 》

자기의 성적야욕을 충족하다 못해 남을 악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남의 불행으로 들의 안락을 추구한 이자들이야말로 세상, 하늘아래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될 인간추물들인것이다.

악덕과 탐욕, 탐음으로 일관된 버러지들의 결합이 결코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가져올수없다는것은 뻔한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뜻대로 되고 집안이 어수선하면 만사그르친다고 했다.

서로가 금전과 색욕에 빠져 그것을 위해 무엇도 서슴지 않는 태영호와 오혜선사이에는 부부감정이란 꼬물만치도 없었다.

재물을 보고 결혼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를 팔아먹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는 있듯이 리해타산을 전제로 이자들의 결합은 불행의 근원으로밖에 달리될수 었다.

결혼후 몇해가 지나자부터 오혜선은 태영호남편으로, 세대주로 여기지 않았다.

그년은 남편을 항상 닭보듯 하면서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자기의 향락을 추구하군 하였다.

오혜선의 방탕한 생활을 뻔히 알면서도 영호는 뭐라구 뻐꾹소리 한마디 줴치지 못했다.

그것은 그년의 비위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발전에 지장이 있을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비록 남편이기는 하지만 집안에서 목소한마디 낼줄 모르는 태영호를 두고 인민반 주민들은있으나마나한 사람》, 《안해에게 쥐여서 사는 사내라고 말하군 하였다.

태영호는 외국에서 돌아와 다시 출국할까지 10여일간이나 있으면서도 중환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있는 아버지  태형길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고 오혜선의 비위를 추는데만 돌아쳤다.

또한 오혜선이가 어머니를 구박하고 대하는것을 뻔히 보면서도 한마디 못하는 천하의 바보였다.

마른 나무가지는 부러지기 쉽고 허위에 사랑은 깨지기 쉬운 법이다.

각자의 리해와 타산으로 결합된 이자들의 관계는 오직 금전에 의해서만 존재하였다. 태영호는 안해를 배척하면서 밖에 나가 다른 녀성들과 접촉하고 오혜선은 자기대로 남편을 놓고도 다른 남자의 품에서 성적 만족을 찾았다.

년놈들은 서로가 앙숙이 되여 가정불화일으키며 싸우다가도 돈앞에서는 승냥이와 여우가 되여 남을 속여넘기는데 이골이 난자들이였다.

자식에게 있어서 가장 값비싼 재산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미덕이다.

부모가 착해야 효자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에 대한 교양에서 부모들의 실천적모범이 매우 중요하다.

어릴적부터 애비와 에미의 부화타락한 생활 방식을 그대로 보아온 자식놈들도 구정물흡진기처럼 빨아들였다.

맏아들 태주혁은 대학기간에 녀성들과의 당한 관계를 추구한 색광이였다.

동창생인 전금성은 그자에 대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태주혁은 녀자라면 오금을 쓰는자였습니다. 그자는 방탕한 생활을 추구하는 한 녀자와 함께 식당들을 돌아치며 진탕치듯 먹고 마시고는 음침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불순한 성관계를 가지군 하였습니다.

대학생활기간 그자는 학급동무들에게 자본 주의나라들의 성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자기는 외국에 가있으면서 나라 녀성들과 여러번 성관계를 가졌다고 자랑하듯 말하군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불순한 행동을 비호하며 자본주의독소를 우리에게 침습시키려고 했습니다.》

해외생활기간 자본주의생활방식에 물젖은 이자는 조국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자기의 동이 얼마나 치사스럽고 너절한 행위인가 는것을 감각하지 못하는 속물이였다.

전금성은 우리에게 2010년 4월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날 전금성과 태주혁은 학급동무네 집에 갔다가 밤늦게야 돌아오고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걷던 태주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그자는 전금성에게 자기는 볼일이 있어서 그러니 먼저 가라고 일렀다.

무슨 일일가 하는 생각으로 전금성은 거리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태주혁의 비명소리 들려왔다.

전금성이 달려가니 여러명의 청년들이 그자에게 뭇매를 안기는것이였다.

《이 더러운 색마같은 놈!》

이런 작자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배겨 있어!》

그들의 옆에는 처녀가 코피를 흘리며 못을 비는 태주혁을 쏘아보며 서있었다.

모든것이 짐작되였으나 전금성은 그들에게 사연을 물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태주혁이가 으슥한 에서 처녀를 무작정 부여안고 신체를 마구 만지면서 강간하려고 하였다는것이다.

처녀가 항변하며 귀쌈을 때리자 그자는 냥이의 기질을 드러내며 주먹으로 녀성을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때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청년들이 이것을 목격하고 달려와 그자에게 응징을 안겼던것이다.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 애비, 에미가 그렇듯 색에 미친 짐승들인 어찌 피를 받은 새끼가 달리될수 겠는가.

그자와 대학의 한학급에서 공부하였고 금은 대학 박사원생인 박성근은 이렇게 말하였다.

태주혁놈은 2011년 여름부터 대외봉사학원의 녀학생을 꼬여 앞으로의 결혼을 약속하면서 오래동안 자기의 방탕한 생활에 리용하다가 끝내는 처녀를 차버리고 애비를 따라 영국으로 갔습니다. 》

애비와 에미의 음탕에 조금도 기울지 않을 태주혁이였다.

자기에게 진심을 바친 약혼녀를 배반하고 오혜선과 결혼한 애비의 몰골 그대로이다.

참으로 태영호놈과 처자들의 구린내나동물적인 생활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 을수록 우리는 그자들에 대한 역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아름다운 화원을 어지럽히는 잡초와도 이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더이상 살 수 없는 인간추물들이라는것을 다시금 확신하는 계기였다.

 

 

버림받은 인생

 

태영호와 오혜선은 집단과 동무들, 인민반 주민들은 물론 낳아준 부모들과 피를 나눈 제들에게서도 버림받은 가련한자들이였다.

예로부터 자식들이 부모가 사랑하는 절반만큼이라도 부모를 생각하면 효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태영호와 오혜선은 부모들의 대에 어긋나게 그릇된 길을 걸었으며 종당에그들이 늙었다고 배척하는 불효막심한짓도 서슴없이 자행한자들이다.

리차돌의 이야기가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는 태영호와 어린시절부터 함께 생활하였외무성에서도 같이 일하였기때문에 그자의 부모들에 대해서도 알고있었다.

2003년 10월 태영호의 아버지인 태형길불치의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고있었다.

리차돌을 비롯한 부서의 동무들은 그 소식을 듣고 태영호를 대신하여 자주 면회를 갔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리차돌은 퇴근하는 길에 병원을 또다시 찾았다.

태영호의 아버지는 자기를 친부모처럼 여기시간이 있을 때마다 병문안을해주는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우리 영호가 임자네들의 절반만큼이라두 된다면 정말 한이 없겠네. 》

아버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이제 그도…》로인은 손사래로 그의 말을 막았다.

아니, 나를 위안할 생각은 말라구. 제 자식을 보는데는 부모만사람이 없네. 》

늙은이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돈에 주리고 허영에 뜬자들이 제구실을 하는것을 보지 못했네.》 그러면서 늙은이는 자기가 자식을 잘못 웠다고, 쭉정이같은 태영호때문에 제대로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하다며 한탄했다. …

저는 그날 많은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한생을 바쳐온 부모들이 우리 식들한테서 바라는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는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어떤 값진 물건아니라 키워주고 내세워준 조국앞에 부끄 럼없이 사는것을 바랄뿐입니다.

그렇지만 태영호놈은 아버지의 념원고사하고 자식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도리마저도 저버린자였습니다. 그자는 자기 아버지가 병환으로 생의 마지막고비를 넘기는 그 순간조차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태영호의 아버지는 <그놈은 자식아니다!>라구까지 말했겠습니까.

정말이지 짐승보다 더한 놈입니다. 어떻게 생명을 주고 키워준 부모를 이렇게까지 면할수 있단 말입니까. 》

울분이 서린 리차돌의 이야기는 상신동 민들의 증언과 일치하였다.

태영호가 그렇게 불효하니 그의 녀편네도 같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오혜선년은 자기 어머니인 김명덕을 옆집출입도 못하게 하면서 구박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운신하지 못하여 집안살림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게 되자 학대하고 괄시하면서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그년이 시어머니를 굶겨죽였다는 여론까지 제기되였는데 그것은 우연한 리가 아니였습니다. 》

강금한녀성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말 좀 합시다. 》 우리앞에 나선 녀성은 상신동 98인민반에서 살고있는 김인옥녀인이였다.

《 나는 올해 78살이 되는 로친네웨다. 그 김명덕늙은이와 동년배여서 우린 자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군 했지요. 서로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느라면 자연히 자식과 며느리에 대한  말을 하는게 우리 늙은이들이지요.

그때마다 그는 나를 몹시 부러워했수다. 내가 아들과 며느리복이 있다구 말이우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은 외국에서 돌아오면 부모들은 물론 형제에 대해서도 전혀 심을 두지 않았다구 말을 하군 했지요. 직장에서 돌아와도 <어머니, 식사를 하셨나요?> 하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나요.

게다가 며느리라는것은 집에 돌아오면 노상 신경질만 내면서 몸치장에만 빠져있었으니 늙은이의 마음이라는게 오죽하겠나요.

늙은것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게 뭐겠소. 직장에 나가면 남들의 말밥에 오르지 않게 일을 잘하구 집에 돌아오면 자식들을 키우고 부모공대를 잘하면 그만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그 집 아들과 며느리는 그렇지 했지요.

언제인가는 그가 앓는다구 해서 동네늙은 이들이 집에 찾아간적이 있었수다. 몸은 몹시 축가고 밥상우에는 밥이 그대로 있었지요.

내가 식사를 하지 않는가구 물어보니 안이 써서 넘기지 못하겠다구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늙은이들이 가지구 찹쌀로 미음을 쑤어 입에 떠넣었더니  얼마나  잘받아 잡수던지…

그날 우린 한결같이 태영호와 녀편네를 못쓸 년놈들이라구 욕질했수다. 앓고있는 은이에게 미음 한그릇 제대로 대접하지 않아 사람을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그게 어디 사람새끼들인가 하구 말이웨다.

지금도 늙은이를 생각하면 잠이 않수다. 아들을 잘못 키우고 못된 며느리만나 불쌍하게 돌아갔으니… 》

김인옥어머니는 말을 마치고 손수건으로 굽을 찍었다.

인간의 인생사가 생의 말년에 와서 아들 며느리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워졌다는 각에 우리의 가슴속에는 태영호네 년놈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얼마전 남조선의 어느 신문에는 서울 로구의 어느 가정에서 부모의 보험금을 노린 20대의 처녀가 자기 어머니를 칼로 살해한 사건이 특종뉴스로 실렸다.

이를 두고 남조선의 인터네트에는 《 <인왕국>, <자살왕국>인 땅에서 이런 건은 사람들을 놀래울만뉴스감이 못된 .》, 《<대통령>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디찬 바다속에 수장하고서도 눈섭 한오리 딱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쯤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 라고 박근혜와 집권자들을 야유했다.

그러면서어린이들은 배움을 포기하고 은이들은 사랑과 가정을 포기하며 늙은이들 삶을 포기하는 사회에서 과연 정말로 포기해야 할것은 무엇인가? 》 라는 문제를 기하면서그것은 남<한>사회를 <포기하사회>로 만든 보수집권자들의 권력포기, 삶의 포기가 특종뉴스로 되여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

자식이 몇푼의 돈을 위해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는것이 다반사로 되여있는 남조선이야말태영호네 년놈들에게 가장 적중한 시궁창아닐수 없다.

서성구역 상흥동에서 살고있는 태영도(태영호의 동생)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지금까지 남들처럼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얼마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결함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가정을 파괴시킨 장본인은 바로 태영호, 그놈입니다.

비록 부모의 몸에서 한피줄을 잇고 태여형제간이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그자를 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도 어떻게 저런 쓸개빠진 놈이 태여났는지 모르겠다고 입말처럼 외우군 하였습니다.》

태영호는 자기 동생 태영도가 결혼식을 다음날부터 그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무엇때문에 하필이면 그런 돈없는 녀자를 안해로 맞아들이는가, 앞으로 형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있으면 당장 녀자와 리혼하라강박하군 하였다.

태영도가 그자의 요구를 거절하자 태영호는 부모들에게 쏠라닥거렸다.

그러나 부모들은 태영호의 그릇된 생활관을 타매하며사람이 되려다 못된 ! 》 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태영호는 바로 이런 비렬하고 너절한 인간 추물이였다.

얼마 안 있어 여든살에 들어선다는 김상숙은 딸인 오혜선이 남조선으로 도주했다는 식을 듣고 며칠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가슴을 쥐여뜯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년아, 너도 사람이냐? 그래, 엄마네가 돌아오기를 하루하루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에미의 품이 아니라 남조선으달아난단 말이냐. 나에게는 같은 딸이 없다, 없어…

아버지가 네년의 배은망덕한짓을 들으면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너를 후려칠게다. 어릴 적부터 부모들의 속을 태웠구 출가해서도 집살이를 제대로 못해 에미의 가슴을 마나 허볐느냐.

그런데 너는 이 에미와 형제들, 조국을 저버리구 도주했단 말이냐. 더는 나를 어미라구 부르지 말아. 짐승보다 못한 네년에게는 더이상 어머니가 없다! 네년은 이제 조국과 부모를 배반한 죄가 마나 큰것인가 하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게다.》

골깊은 주름발을 타고 흘러내리는 늙은이의 눈물, 그것은 자식을 잘못 키운것으로 하여 흘리는 죄책의 눈물, 원한의 눈물이였다.

부모에게 있어서 훌륭하게 성장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때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다. 그래서 열두자락 치마폭에 온갖 시름이 실려의젓한 자식의 모습에서 인생의 락을 찾는것이 우리의 부모들이다.

그런데 요람속에 잠재우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준 자식이 배신의 나락으로 굴러떨어 졌으니 그때의 어머니의 심정을 과연 뭐라고 표현해야 한단말인가.

우리와 만난 중앙검찰소 수사원은 태영호의 죄행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태영호놈은 영국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에 참사로 일하다가 제놈이 저지른 범죄행위그에 대한 법적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자입니다.

그자는 많은 국가자금을 횡령하고 국가비밀을 정기적으로 팔아먹었으며 미성년강간범죄까지 감행한것으로 하여 우리는 이미 그에 대 한 범죄수사를 위해 지난해 6월에 태영호에게 소환지시를 내린 상태였습니다.

우리 중앙검찰소에서는 태영호놈의 범죄자료를 료해하고 7월 12일 그자가 감행한 고의적비밀루설범죄, 국가재산횡령범죄, 미성년성 교범죄 등에 대한 수사시작결정서를 발급하였습니다.

이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따라 법적처리를 받아야 범죄자입니다. 이놈은 범죄행위가 드러나고 그에 따르는 법적제재가 두려워 처자까지 데리고 남조선으도주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쓰레기로 전락된 자입니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진 인간은 기필코반역과 배신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량심을 지니고있다는데  동물과  점이 있다.

나라의 대외일군으로 키워주고 내세워준 마운 조국을 배반한 태영호놈은 스스로 간이 되기를 그만두고  악취풍기는  시궁창에기여다니는 더러운 벌레로 살기를 택한자 이다.

남조선보수패당이 더럽기 그지없는 이런 간오물을 무슨 고위층이라고 추어올리며 우리 삶의 요람인 사회주의영상을 어지럽히려급변사태 도래, 붕괴조짐이요 면서 아무리 목터지게 짖어대야 그것은 한갖 파멸의 위기에 몰린자들의 단말마적인 비명소리에 불과할뿐이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형벌이며 변절자의 그림자는 처참한 말로이다.

이제 태영호놈은 자기가 차라리 죽기보다 못한 길을 택했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것이다.

죄많은 발편잠을 제대로 잘수 없듯이 자는 매일 천벌을 받는 악몽속에 시달릴 것이며 하루하루의 날들이 또한 악몽의 련속편으로 될것이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쓸어넣을수록 집안은 더욱 깨끗해지며 끓어번지는 용광로의 쇠물에 슬라크를 걷어낼수록 강철의 순도가 더 높아진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리치이다.

부언하건대 더욱 순결해지고 더욱 강해진 우리 공화국의 일심단결은 무엇으로도 물지 못할것이며 위력앞에 적대세력들이 리는 반공화국대결책동은 산산이 부서져버리 고야말것이다.

 관련기사

 

[연재]박상학탈북자의 쓰레기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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