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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박상학탈북자의 쓰레기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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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6-11 13:4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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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박상학탈북자의 쓰레기같은 삶





지난 5월31일 미국정부와 깊은 연관이 있는 민간단체들의 지원을 받는 일부 탈북자 단체에서 대북삐라살포행위를 자행함으로 남과 북 해외의 온겨레의 지탄을 받고 있다.


 

4.27판문점선언에서 남과북은 군사접경지대에서 일체 대북삐라살포등 군사적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온겨레의 지지를 받으며 합의된 사항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측에서는 여전히 탈북자단체의 대북삐라살포가 자행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이같은 망동은 남북관계 파탄과 전쟁위기 고조 주범이 된다. 탈북자들이 그런 짓을 할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의 삶 자체가 쓰레기때문이다. 

 


평양출판사는 2016년 《거짓과 진실 》 책을 출판하면서 "지금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미국을 등에 없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모략적인 《북 인권문제》라는것을 여론화해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다. 가관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합리화하고 신빙 성을 부여하기 위해 내돌리는 자료라는것이 거짓을 팔아 잔명을 부지해가는 추악한 《탈북자》쓰 레기들이 밥값이나 벌자고 아무렇게나 씨벌여댄 것을 고스란히 주어담은것이라는것이다. 거짓을 전제로 하여 도출되는 결론은 역시 거 짓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평양출판사는 너절한 《탈북자》쓰레기들의 추악성을 발가놓아 반공화국적대세력들이 벌리는 《북인권》소동의 기만적정체를 고발하기 위해 련 속본으로 된 이 책을 출판한다."고 밝혔다. 


재미동포전국련합회 편집국은 탈북자들의 너절한 삶을  폭로한 《거짓과 진실》에 나오는 탈북자들을 연재로 소개하려 한다. 먼저 일명 <자유북한운동연합> 이라는 탈북단체를 만들어 대북삐라살포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탈북자 박상학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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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추악한 인간쓰레기가 갈길

 


 

최근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사촉하에 《탈북자》쓰레기 들이 벌리는 반공화국삐라살포망동으로 정세는 날로 험악해지고있다.

 

내외여론은 싸라예보에서의 한발의 총성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군사분계선일대에서 벌리는 삐라살포란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있다.

 

반공화국대결을 선동하면서 삐라살포놀음에 극성스럽게 매달리는자들중에는 《자유북한운동련합》 대표라고 하는 박상학놈도 있다.

 

놈의 죄악에 찬 행적은 돈과 물건에 눈이 어두운 인간쓰레기가 갈길은 범죄와 반역의 길밖에 없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퇴 학

 

밝은 대낮에는 주둥이도 내밀지 못하다가 밤이 오면 제세상 만난듯 돌아치며 쏠라닥대는것이 쥐무리들의 생존방식이다.

 

박상학놈은 이 더러운 쥐굴에서나마 큰쥐노릇을 해보 기 위해 여간 발버둥질이 아니다.

 

놈은 걸핏하면 자기는 북에 있을 때 김책공업종합대학 체신학부를 졸업하였다고 하면서 구린내나는 몸값을 올려 보기 위해 《엘리트》니 뭐니 하고 곧잘 씨벌여대고있다.

 

문명의 세기인 21세기에 어느 사회에서나 흔한게 대학졸업생이지만 길바닥에 흩날리는 가랑잎같이 볼품없는 난쟁 이체모에 으시댈것이란 대학문턱을 넘어보았다는 그 한가 지밖에 없어 횡설수설하는것이겠지만 그 내막을 헤쳐보면 더더욱 구토감을 누를수 없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보과학기술대학 유선통신강좌 교원 한룡호의 증언을 들어보자.

 

대학구내의 휴식터에서 만났을 때 그는 두해전 일을 돌이켜보는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때 인터네트 《우리 민족끼리》 편집국 기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박상학이 1986년당시 김책공업대학 체신학부에 입학하 였다고 하는데 한룡호선생도 같은 해에 같은 학부에서 공부하였다는것을 알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왔다는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까지 보고서야 예비과때 너무도 저질적인 인간이여서 본과에는 올라와보지도 못하고 퇴학된 사실을 상기하면서 짧은 기간 대상하였기때문에 별로 기억에도 없다고 하였다고 한다.

 

박상학이 남조선으로 달아난 사실과 우리를 헐뜯는 삐 라살포놀음에 열을 올리며 돌아치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인간추물들이 갈길은 그 길밖에 없다는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였다며 한룡호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박상학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예비과에서 4개월정도 공부하다가 퇴학되였다.

 

한룡호는 당시 박상학과 기숙사의 한호실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때 입학생들은 누구나 희망과 열정에 부풀어있었다. 향학열로 온넋이 불타는 대학생의 삶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박상학이만은 이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은것 같다.

 

입학한지 한달도 안되여 대학생활이 숨이 차다고 불평을 늘어놓군 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그는 방과후면 이 구실 저 구실을 대면서 기숙사를 나가 여기저기 나돌아다니다 저녁늦게 들어오는 것이 일쑤였다.

 

그러면서 한룡호는 1986 11월 어느날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 그날 대학에서는 주변에 나무를 심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고 한다.

 

모든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대학을 록음이 짙은 교정으로 꾸리는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작업에 빠진것은 몸이 불편하다며 강의에도 참가하지 않은 박상학뿐이였다고 한다.

 

공부는 물론 일하기 싫어하는 그는 공동작업이라면 어 떻게 해서든지 미꾸라지처럼 솔솔 빠지군 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나무심기작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도착하였을 때 거리쪽에서 걸어오는 박상학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아프다고 강의는 물론 작업까지도 빠진 그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비칠거리며 들어서는것이 아닌가.

 

학급동무들과 마주치자 박상학은 당황해하면서 감기에 걸려 한증을 하고 온다고 변명하더라는것이다.

 

박상학의 입에서 풍겨나오는 술냄새가 모든것을 증명해 주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꾸며대는 그의 처사에 분격하여 대학생이 술을 마시면서 다닌다는게 말이 되는가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자 박상학은 그 고약한 술버릇을 감추지 못하고 내가 내 돈으로 술을 마시는데 상관하지 말라며 대들었다고 한다. …

 

그때 일을 돌이켜보며 한룡호는 박상학은 인간으로 갖추어야 할 체모를 상실한 사람이다, 그의 인생관에는 오직 개인의 리익과 안락밖에는 없었다고 하면서 당시 로어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주었다.

 

… 로어교원의 부름을 받고 외국어강좌에 들어서던 한룡호는 그만 목을 움츠리고말았다. 여느때 같으면 부드러운 인상으로 제자를 맞아주던 로어교원이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피뜩 눈길을 돌리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창밖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스승의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것을 짐작한 한룡호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찾았다.

 

《선생님!

 

교원은 여전히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지 않았는가 하는 위구심 에 싸여있는데 교원은 한룡호에게 학급의 초급일군으로서 학생들에 대한 교양사업에 더 깊은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하면서 전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는것이다. 글쎄 늦은 밤에 박상학이 무엇인가 꿍져들고 집에 찾아왔다는것이 아닌가.

 

며칠전에 체신학부 예비과 학생들에 대한 실력판정이 있 었는데 유독 박상학만이 락제를 맞았었다.

 

그 사실을 두고 교원은 교육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 하였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있는데 박상학은 배부른 구럭지안에서 술과 간식 같은것을 꺼내놓으면서 점수를 올려달라고 구걸하더라는것이였다.

 

교원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놀라웠다. 그래도 진심으로 자기의 학과실력에 대해 걱정하는 대학생이라면 이런 음식꾸레미가 아니라 책을 들 고 와서 방조를 청해야 하지 않는가.

 

결국 박상학은 얼굴이 거멓게 죽어 내쫓기다싶이 교원의 집을 나설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박상학의 모든 신경세포들은 오직 돈과 안락만을 추구하는데로 뻗치고있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짓도 서슴지 않는 추물이 박상학이였다.

 

그 생생한 증언을 우리는 한룡호가 소개한 김책공업종합대학 정보과학기술대학 유선통신강좌에서 실장으로 사업하는 허일을 통해 더욱 자상히 듣게 되였다.

 

그와 한룡호와의 관계는 함께 대학공부를 한 동창생 관계였다.

 

그 역시 박상학에 대해 문의하자 아리숭한 기색을 보이 더니 한룡호가 《아, 거 예비과때 가을농촌동원에 나갔다가 개인집 자전거를 훔쳐 망신당한 직통생이 생각나지 않는가 말이요?》라고 설명을 달자 기억을 되살리며 30년 전의 일을 들려주었다.

 

 1986년 가을 대학에서는 농촌지원으로 황해남도의 어느 한 군에 나가 가을걷이전투를 벌리고있는 농장원들의 일손을 도와주었다.

 

학급동무들은 너도나도 농장원들과 함께 성수가 나서 일하였다. 하지만 박상학만은 위병이 도졌다고 하면서 작 업에 빠지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허일을 비롯한 학생들은 뜻밖의 소식에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글쎄 그날 작업에도 빠진 박상학이가 자기들이 숙식하고 있는 집과 처마를 마주한 옆집의 자전거를 훔쳐내오다가 주인에게 덜미를 잡혔다는것이다.

 

모두들 분격해하며 침을 뱉았다. …

 

박상학은 바로 이런자다. 돈이라면 오금을 못쓰는자였다. 대학적으로 실력은 제일 낮지, 밤이면 외박을 하면서 기숙사생활은 전혀 하기 싫어했다. 그는 강의시간에는 교원의 설명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졸거나 허튼 생각에 잠겨 있기가 일쑤였다며 허일이 쓰거움을 금치 못해하는데 한룡호가 강의실에서 있었던 박상학의 《상품명세표》에 대한 이야기를 또 들려주는것이였다.

 

모두가 강의를 받는데 열중하고있을 때 코고는 소리가 나 살펴보니 박상학이 책상에 코를 박고 시체처럼 늘어져있었다고 한다.

 

한룡호가 얼른 그를 깨우려고 하는데 교원이 벌써 다가와 박상학의 학습장을 손에 들고 들여다보는것이였다.

 

이어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교원은 그것을 학급 초급일 군인 한룡호에게 보여주었는데 글쎄 거기에는 강의내용이 아니라 당시 백화점에서 잘 팔리고있는 물건들의 가격과 류행상품명세들이 씌여져있었다는것이 아니겠는가.

 

온 학급을 웃음판으로 만들었던 박상학의 《상품명세표》이야기란 대략 이렇다.

 

허일은 경멸에 찬 목소리로 그루를 박듯 강조하였다. 《모든 일은 실패했을 때 끝나는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법입니다. 대학생이라는 자각이 없는 박상학 은 학업에 대한 아무런 열성도 없이 그것을 아예 줴버리는 길로 나갔습니다. 오직 제 개인의 안락과 편안만을 추구하며 타락한 길을 걸었지요. 그러다나니 그는 더이상 대학생활을 지탱하지 못하고 퇴학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입니다.

 

우리는 박상학이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도중에 퇴학되였다는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싶어 대학의 일군인 김정실을 만났다.

 

40대 중엽의 녀성인 그는 대학의 문건을 펼쳐놓으며 여기에 기록되여있는것처럼 박상학은 1986년도에 체신학부 에 입학하여 다음해인 1987 1 29일에 입학취소되여 나갔다, 1986 9 1일부터 개학되였으니까 예비과에서 넉달만에 퇴학되였다, 본과에는 올라가지도 못했다고 증언하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체신학부 졸업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거짓말로 제 몸값을 올리려는 박상학의 더러운 가면을 낱낱이 벗기며 허일과 한룡호는 그렇게 더러운자와 한교실에 서 짧은 기간이나마 공부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기에 조국도 서슴없이 배반하는것이다, 박상학이와 같은자가 갈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다, 인간적으로 너절하고 지적으로 빈곤한 저능아인 그자가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의 비호밑에 자기의 더러운 잔명을 유지하고있다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는가며 침을 뱉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첫 자욱을 어떻게 내딛는가 하는것은 옹근 한생을 좌우하리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0대에 벌써 퇴학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치욕으로 구만리 같은 인생에 먹칠을 한 박상학은 이후 더욱 추악한 범죄와 배신의 길로 줄달음쳤다.

 

저렬한 속물사회란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집단이며 개인은 사회적관계속에서만 리상과 포부를 실현해나갈수 있다.

 

사람마다 화목과 우의를 두텁게 하고 서로 돕고 이끌 어주는것은 우리 사회의 기풍으로 되고있다.

 

바로 이러한 사회에서 유아독존식으로 남을 깔보고 질 시하며 이웃들과 동무들사이에 불화를 조성하는 인간은 저렬한 속물로 사회적버림을 받기마련이다.

 

박상학이 도주할 때까지 살고있던 북부국경도시 량강도 혜산시 혜신동에 대한 취재과정을 통해 우리가 더 깊이 새긴것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혜신동은 혜흥동과 린접하고있었다. 동 사무소의 일군은 우리를 혜신공원으로 안내하였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여서 공원에서는 대중체육경기가 한창이였다.

 

동사무소 일군은 이렇게 매주 일요일이면 인민반별로 배구경기를 하느라고 온 동네가 들썩하다고 자랑삼아 이 야기하였다.

 

크고 번듯하게 꾸려진 공원에서 벌어지는 열띤 경기는 우리의 흥심을 한껏 돋구어주었다.

 

경기가 끝나자 동사무소의 일군은 박상학에 대해 잘 알고있는 주민들이 모인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그들은 박상학이라는 이름을 듣자 얼굴에 분기를 띠우며 흥분되여있었다.

 

먼저 혜신동 22반에서 살고있는 50대 초엽의 김복희녀성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자기는 박상학이네와 1970년 부터 1998년까지 한아빠트의 아래웃층에서 살았기때문에 그에 대하여 잘 안다고 하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박상학은 기질적으로 포악하고 잔인하고 조폭해서 늘 싸움만을 했다. 상학이는 어릴적부터 흉기를 들고 서로 찌를내기를 하면서 자랐다. 동무들과 마당에서 놀다가 어떻게 되여 다투게 되면 상학이는 집에 뛰여올라와서 도끼를 들고 내려가군 하였다.

 

상학이네 집에서는 부모자식간에도 많이 싸웠다. 그 싸움이란 모두 돈문제때문이였다. 박상학은 부모들이 자기 가 요구하는 돈을 주지 않고 또 누가 싸움을 말리면 그 것을 이기지 못해 벽에 머리를 들이받는다든가 술병으로 자기의 머리를 치는 싸움미치광이였다.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어릴적부터 화목한 집단에 화근의 불씨만을 던져온 박상학의 깡패적인 기질은 사회생활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대학에서 퇴학되여와서는 무직건달을 부리면서 이웃과 동무들사이에 쐐기를 박아 그 들의 우정을 갈라놓는데서 쾌락을 찾군 하던 무서운 승냥이새끼였다.

 

그가 이야기를 끝내기 바쁘게 올해 70살이 된다는 지혜숙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예로부터 집을 잘 짓기보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 동네는 그렇지 못했수다. 다 그 상학이네 집을 이웃하고있은탓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주름발깊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87 6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그날 지혜숙이 아침밥을 짓는데 아빠트밑에 있는 창고에 나갔던 둘째딸이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뛰여올라와 엄지토끼 4마리가 다 없어졌다고 하는것이였다.

 

지혜숙은 딸애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함께 창고에 내려 갔다. 그런데 정말 엄지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7마리의 새끼를 낳은지 5일도 안되는 암컷도 있었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새끼들을 보는 순간 그의 온몸에서는 맥이 쭉 빠지는듯싶었다.

 

분명 도적이 들었는데 누가 그런짓을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동네에서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는 불미스러운 일이였다.

 

그런데 그 사건이 지혜숙의 집과 다른 이웃집과의 사이에 쐐기를 치기 위해 박상학이 조작한것일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날 저녁 지혜숙의 부부는 뜻밖에 다른 인민반에서 사는 장철명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두집사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님, 동생하면서 허물없이 다니며 두터운 정을 나누는 사이였다.

 

지혜숙이 남편과 함께 장철명의 집에 들어서니 푸짐한 식탁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형님,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렇게? …

 

장철명은 지혜숙의 남편이 묻는 말에 얼굴에 벌씬 웃음을 지었다.

 

《오늘이 내 생일일세. 그래서 임자네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라두 함께 하고싶어서 이렇게 찾았네.

 

서로 오가는 두터운 정으로 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방안에 흘렀다.

 

두 가정은 한데 어울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들을 들었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을 때였다. 식탁우에 놓인 토끼고기를 맛보던 지혜숙이 무심결에 이렇게 물었다.

 

《광일이네 집에서도 토끼를 기르세요?

 

《우리 집에두 중토끼 몇마리를 기르구있지요. 이 토끼는 우리 광일이가 내 생일상을 차린다면서 이렇게

 

그는 곁에 앉아있는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지혜숙은 긴 한숨을 내긋고는 토끼건사를 잘하라고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집토끼를 도적맞힌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지혜숙의 말을 듣던 장철명의 아들인 장광일은 어딘가 모르게 미심쩍은데가 있었다. 그 토끼로 말하면 새벽에 박상학이가 생일을 맞는 아버지에게 대접하라며 가져다 준것이였다.

 

장광일은 고등중학교 동창생인 박상학의 성의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혜숙의 말을 듣고보니 께름한 생각이 들었다.

 

제 고뿔도 남에게 주기 싫어할 정도로 린색한 박상학의 《선심》이 의심되였다. 게다가 그의 손버릇이 나쁘다는 것을 이미전부터 잘 알고있는 그였다.

 

장광일은 지혜숙에게 토끼의 생김새와 크기에 대해 물었다.

 

결과는 너무도 명백하였다.

 

장광일은 지혜숙의 부부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사연 을 터놓았다.

 

토끼를 도적질한 장본인은 박상학이였다. 그런데 영문도 모르고 토끼를 받은 장광일이 사죄하는 모습앞에 지혜숙의 부부는 그를 일으켰다.

 

《그게 어찌 네 잘못이겠니. 어서 일어나거라.》 다음날 장광일은 박상학을 찾아가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박상학은 비실비실 뒤걸음을 치다가 펄쩍 땅바닥에 엎드리며 자기의 잘못을 빌었다. 자기의 주먹이 그 한테 비해 약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사연인즉 대학에서 퇴학되여 돌아온 박상학에게 언제인가 장광일이 사람구실을 바로하라고 된욕을 퍼부은적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지혜숙이 직장에는 나가지 않고 놀기만 하는 박상학을 두고 그의 어머니인 리순희에게 자식교양을 잘하라고 신칙한적이 있었던것이다.

 

이에 앙심을 품고 복수할 날만 기다리던 박상학은 두 집사이의 관계가 자별하다는것을 알고 그들사이에 쐐기를 박아 싸움을 시키려고 이런 비렬한짓을 했던것이다. … 옆에서 지혜숙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 던 40대의 중년사나이가 이웃들사이에 독가시처럼 틀어박 히려는 박상학의 너절한 행위는 도수가 넘어서 돌격대생활을 하던 때에 더욱 로골화되였다고 응수해나섰다. 알고보니 그는 박상학이와 함께 돌격대에서 함께 생활한 최주혁이였다.

 

그는 숱진 두눈을 슴벅이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물이 아니면 건느지 말고 인정이 아니면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사람은 참된 마음에서 의리를 가지고 사귀여야지 리속을 차리기 위해서는 사귀지 말라는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겠 습니까.

 

우리는 최주혁의 말에 귀를 강구었다.

 

… 박상학은 초면인 사람과 만날 때면 먼저 그의 주 머니에 돈이 얼마쯤 있겠는가 하는 타산을 먼저 앞세우 군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리득을 볼수 있다고 생각되면 제 간이라도 떼줄듯이 온갖 너스레를 다 부리면서 속에 없는 친근감을 보이군 하였다. 이렇게 얼마동안 《친근한 벗》이 되여 제 리속을 차리고는 헌신짝 줴버리듯 하는 비렬한자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벗을 가지는것은 두번째 삶이라는 말 이 있다. 이렇듯 친우는 인생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박상학은 동무들과의 관계에서 자기 리속만을 추구하군 하였다.

 

하기에 주변사람들은 동무들과 집단을 위한 일에서는 항상 물에 뜬 해파리처럼 행동하는 박상학과는 두번다시 대상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고 집 단생활에는 등을 돌려대다가도 먹을 알이 있는 일이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를 돌격대원들은 《기생오래비같은 놈》, 《놀부도 울고 갈 깍쟁이》라며 타매하였다고 한다.

 

동무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자 박상학은 악을 쓰며 허튼수작질로 사람들사이에 불신을 조성시키고 리간시키는 짓을 계속하였다.

 

못된 개는 가는 곳마다에서 몽둥이에 얻어맞는 법이다.

 

여러차례에 걸치는 그자의 간특한 행위에 더는 참지 못 한 돌격대원들은 박상학에게 징벌을 안겼다. 두무릎을 꿇고 닭똥같은 눈물을 쥐여짜며 자기의 잘못을 비는 그자 의 더러운 몰골에 사람들은 침을 뱉았다.

 

눈물, 코물을 다 흘리며 잘못했노라고 빌고빌던 박상학 이였지만 그 본성은 그후에도 계속 나타났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악습이여서 남에게 떼주기도 아까운 모양이였다. 일하기 싫어하고 남의 등을 쳐서 부화방탕한 생활만을 추구하여온 그자에게 있어서 인간관계도 오직 자기라는 개인적인 울타리안에서 존재하였다. …

 

박상학에 대한 격분으로 좌중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 렀다.

 

잠시후 김복희녀성이 침묵을 깨고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서부터 뿔이 나온다고 박상학이의 방탕한 생활과 리간질은 녀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우심하게 나타났다며 집에 서 벌어졌던 추행에 대해 고발하였다.

 

… 언제인가 김복희네 집의 아래층에서 살고있는 박상학이가 그의 집에 찾아왔다. 목적은 뻰찌를 빌리자는것 이였다.

 

이날 대휴를 받고 집에서 쉬고있던 김복희는 그자가 요 구하는 물건을 찾아보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밖에 서있던 박상학이 언제 들어왔는지 무작정 김복희의 허리를 그러안았다.

 

김복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박상학을 떠밀치며 소리 를 쳤다.

 

옆집에 가있던 어머니와 그 집 아주머니가 황급히 달려왔다. 이렇게 되여 박상학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깨깨 망신당하는 꼴이 되였다. …

 

《상학이는 녀자라면 사족을 못쓰는자였습니다. 내가 저보다 세살이나 우인데도 그자는 그렇게 미친 수개처럼 날뛰였습니다. 이 일로 아빠트에서 망신당한 상학이는 앙 심을 품구있으면서 복수할 기회만 노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달후에 김복희는 한 청년과 선을 보고 그와 약혼식을 하였다.

 

돌격대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던 박상학은 이 사실을 듣고 김복희의 약혼자를 만나자 있지도 않은 트집을 잡으면서 싸움을 걸었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줄 모르던 청년은 그자가 주먹질을 해대자 단매에 박상학의 기를 꺾어놓았다. 일이 이쯤 되여서야 그자는 자기의 잘못을 사죄하였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 온 동사무소의 녀성일군은 박상학이 자기의 사촌녀동생인 김옥임에게도 접어들었다가 망신당하였다며 그에 대해 들려주었다.

 

… 어느날 중앙대학에서 공부하는 김옥임은 여름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가 역전에서 내려 혜장동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데 웬 청년이 다가와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가 들고 있는 트렁크를 자기가 들어주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까지 갈 일이 걱정이던 옥임은 그의 요구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청년은 자기의 이름은 박상학이라고 소개하며 집은 혜신동에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나란히 걷기 시작하였는데 박상학 은 처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자기는 어느 무역회사 부사장이라느니, 공부를 잘해서 류학까지 갔다왔다느 니, 거기에다 체육구락부에서 2년동안 권투를 한 경력이 있어 10명쯤은 단번에 쓸어눕힐수 있다느니, 앞으로 자기와 살면 일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이날의 연고로 하여 옥임은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몇 번 박상학이와 만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사촌언니(동사무소의 녀성일군)네 집에 갔다가 어느 한 골목길로 들어서던 옥임은 깜짝 놀랐다. 박상학이가 두 명의 남자들에게서 매를 맞고 코피까지 흘리고있었던것이다.

 

옥임은 두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달려가 그들의 싸움을 말렸다.

 

매를 들던 남자들이 옥임에게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는데 그에 의하면 박상학이 방금전에 이 골목에서 금방 시집을 간 한 녀인에게 덤벼들었다는것이였다. 그러나 그자의 욕망은 실현될수 없었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던 녀인의 남편과 시동생에게 덜미를 잡혔던것이다.

 

그제서야 옥임이는 박상학이가 얼마나 너절하고 비렬한 인간추물인가를 알게 되였다.

 

잘 짖는다고 해서 좋은 개가 아니며 말을 잘한다고 해 서 현인이 결코 아니였다.

 

처녀는 손등으로 코피를 닦으면서 주접이 들어 구석에 까투리처럼 머리를 틀어박고있는 박상학에게 다가가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흥, 열명쯤은 문제없이 제낀다더니꼴 좋군요. 이 더러운 색광! …

 

이야기를 마친 그 녀성은 옥임이가 이제는 두 아이를 거느린 어머니가 되였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며 박 상학에 대해 치를 떨군 한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 얼마나 너절한 인간쓰레기의 추악성을 신랄히 고발하는 증언들인가.

 

행위란 각자가 자기의 모습을 비치는 거울이다.

 

방금 들은 몇가지 사실을 놓고서도 짐승보다도 못한 박 상학의 인생행적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이번에는 최주혁의 옆에 체육복을 입고 앉아있던 중년 의 사나이가 박상학의 중학교시절 학급반장이였던 박민철 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1989 11월경 박민철은 형네 집에서 박상학과 그의 동생 박영학을 비롯하여 여러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박상학은 박민철과 그의 녀동무인 김복녀가 집안에 남아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들사이의 관계에 대해 배가 아파난 그자는 출입문을 발로 차서 마사버리고 집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리고 박민철과 말다툼을 하다가 끝내 싸움을 하게 되였다.

 

이 일로 하여 박상학은 동네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동무들에게 매까지 맞고 자기의 잘못을 비는 비굴한 행동을 하였다.

 

박상학이 이날 얼마나 미쳐날뛰였으면 그와 같은 인간 쓰레기인 동생 박영학조차 머저리같은 새끼, 망신스러워 함께 다니지 못하겠다며 비난하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마친 박민철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녀자라면 오금이 쑤셔서 못 견디는 박상학은 그 일이 일어나기 한달전에도 자기와 함께 중학교를 졸업한 동창 생의 애인을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했다. 그자는 무려 네차례에 걸쳐 동창생과 관련 하여 꾸며낸 거짓말을 교활한 방법으로 처녀에게 전달하여 나중에는 그들이 서로 다투게까지 하였다. 그리고 며칠후에는 그 녀자를 집에서 끌어내여 위협하고 협박하며 강간하려 하다가 그의 항거로 실패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주민들도 우리도 분격하였다. 얼마나 너절하고 방탕한 사고를 가진자였으면 제 동무 의 애인까지 겁탈하려고 덤벼드는 더러운 인간쓰레기가 되였겠는가.

 

우리가 현지주민들과 동창생들로부터 들은 박상학의 생활 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인간사회에서는 허용될수도 없는 불량배, 깡패식사고방식으로 일관된 변태적인것들이였다.

 

사회와 집단의 화목에 걸림돌같은, 박상학과 같은 저렬한 속물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리치이다.

 


금전에 매인 인생

 

한번의 달콤함에 백년 방탕이라는 말처럼 한번 들인 돈맛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수밖 에 없는 법이다.

 

저렬하고 속된 박상학의 추악상을 폭로하는 체험자들의 증언은 계속되였다.

 

박민철은 퇴학이라는 수치스러운 선고를 받고서도 박상학이 자책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이 오히려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돈벌이를 하게 되였다느니, 돈이 사람의 무게를 결정하는 저울추라느니 하며 술상앞에만 마주앉으면 주절댔다고 하면서 꼭 주인집의 담장밖으로 뛰쳐나간 개몰골 그대로였다는데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박상학의 진면모를 들여다보는 확대경이나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배치된 직장에는 가지 않고 박 상학은 돈벌이구멍수를 찾아 병자년 까마귀 빈 뒤간을 들여다보듯 이리저리 빈둥거렸다. 탐욕의 배는 늘 곯아있 다고 타락한 생활만을 추구하여온 그자에게 있어서 돈에 대한 갈증은 날을 따라 더해만 갔다. 나쁜 씨앗은 언제나 빨리 자라듯이 박상학의 금전의식은 넝쿨을 뻗고 마디를 맺으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칭칭 감아돌아갔다.

 

그자의 그릇된 행동을 두고 박민철은 따로 그를 불러놓 고 직장생활이라도 바로하라고 따끔히 충고를 주었다.

 

그때마다 박상학은 코방귀를 뀌며 직장생활 같은것은 해서 무엇하는가, 돈만 잘 벌면 그저그만이라고 씨벌대군 하였다고 한다.

 

박상학은 무려 3년동안이나 무직건달을 부리며 여러가지 구실로 돈을 꾸고 그것을 물어주지 못해 이웃들의 살 림집에 불법침입하여 돈과 귀중품, 재산들을 훔쳐내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박상학의 이러한 행적에 대해 박민철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는 말처럼 돈에 환장한 나머지 박상학은 고등중학교시절 자기를 배워준 스승의 집에까지 뛰여들어 도적질을 하는 배은망덕 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집에까지 말입니까?!

 

우리의 의문앞에 박민철은 그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1987 5 29일 박민철은 동창생들과 함께 중학시 담임교원네 집에 찾아갔었다.

 

그날이 바로 선생님의 생일이였던것이다. 졸업후 처음으 로 맞는 선생님의 생일이라 제자들의 도리를 다하고싶은 심정에서였던것이다.

 

이날 그들은 자기들이 성의껏 준비해온 기념품들을 선생님에게 드리며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때 박상학은 스승과 동무들의 기대에 어긋나게 퇴학 이라는 불미스러운 오점을 남긴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돌 이켜보아야 하겠으나 몸이 불편하여 스스로 퇴학한것처럼 변명하였다. 그자는 스승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것 이 아니라 뱁새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집안에서 값이 나 가는 물건들이 없는가 하는데만 관심하였다.

 

며칠후 박상학은 대낮에 선생의 집에 뛰여들어 아래방 에 놓여있던 증폭기와 록음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값진 물건들을 훔쳐 그것을 팔아먹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 할수 없는 절도행위를 하였다.

 

예로부터 글 한자를 가르쳐준 사람은 평생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박상학의 행위는 삼년 먹여 기른 개 주인의 발등을 무는 격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박상학은 자기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까밝혀지자 제 부모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닦은 콩에서 싹이 나올리 만무하다고 재물욕에 머리가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박상학은 더욱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길에 들어섰다.

 

증언자들중에는 당시 보안원으로 일하였던 조성민로인도 있었는데 그는 박상학은 강도절도범이라며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듯 량미간을 쪼프렸다.

 

 1998 6월초 어느날 밤, 박상학은 동생 박영학과 함께 혜산시 혜화동 19 3 1호에 뛰여들어 수많은 현금을 훔쳐내는 행위를 저질렀다.

 

이자들은 이미전에 집주인인 강종훈로인의 맏아들 강청 길한테서 돈을 꾸어간적이 있었다. 하지만 박상학에게는 그것을 물어줄 능력이 없었다. 그동안 그 돈으로 타락한 생활을 누려왔던것이다.

 

강청길은 그들이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록 돈을 반환하지  못하자 독촉을 하였다.

 

궁지에 빠진 박상학은 강청길의 부부가 청진으로 나들이간 기회를 리용하여 깊은 밤 복면을 쓰고 이 집에 뛰 여들었다. 그리고는 늙은 강종훈내외를 때려 방바닥에 쓰 러뜨리고 많은 현금을 훔쳐내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얼마나 비렬한자들인가. 자기들을 도와준 사람의 부모들을 구타하고 돈까지 훔쳐가는 박상학이야말로 초보적인 륜리도덕마저 줴버린 인간쓰레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288조에는 사람의 생명, 건강에 위험을 주는 폭행, 협박을 하여 개인의 재산을 강도한자는 4년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지적되여있다.

 

박상학은 그로부터 얼마후 자기의 강도적인 절도행위가 드러나게 되자 남조선으로 도망치고말았다. …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성민로인은 원체 박상학은 뿌리부터 썩은 놈이였다고 하면서 놈의 가정래력에 대해 들려주었다.

 

박상학의 애비 박건길은 한때 량강도 통신기계부속품 공장에서 관리일군으로 일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여나 1960년대초 조국의 품에 안긴 재일귀국공민이였다. 고마 운 조국의 품은 그들의 가정을 따뜻이 보살펴주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공부시켜 사회의 주인, 공장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었다.

 

그러나 박건길은 자기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에 보답은커녕 배신으로 대답해나섰다. 일본에서 물젖은 극단한 개인리기주의에 사로잡혀있던 그자는 자식들과 공모하여 나라의 귀중한 재산들을 훔쳐 팔아먹는 역적짓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박상학은 아버지가 공장에서 비법적으로 빼내오는 물자, 자재들을 동생 박영학과 함께 이웃나라에 팔아넘겨 사복을 채우군 하였다.

 

박상학의 에미 리순희도 남편과 자식들이 국가의 법을 어기고 비법행위들을 하고있는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거기에 공모하여나섰다. 또한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노상 개를 부여안고 방바닥에서 딩굴며 무위도식하던 녀동생 박선화도 집에 들어오는 돈과 물건앞에 입이 함지만 해지 군 했다.

 

결국 박상학의 집안은 애비에미로부터 동생들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재산과 개인재산을 훔쳐 배를 채우는 더러운 도적집안, 인간쓰레기들이 오뉴월 구데기끓듯 하는 오물장이였다.

 

박건길과 그의 자식들은 돈에 환장되여 1986년 조국방문으로 일본에서 온 사촌형의 돈까지 훔쳐냈다.

 

제국주의련합세력들의 고립압살책동과 몇년째 지속되는 자연재해로 공화국이 시련을 겪게 되자 박건길은 조국에 대한 믿음이 없이 배신의 나락으로 영영 굴러떨어졌다.

 

박건길은 기술대표단의 성원으로 1996 5월부터 1997 11월까지 이웃나라에 드나들면서 나라의 귀중한 자금으로 부화타락한 생활만을 추구하였다.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양은 승냥이에게 먹히우는 법이다. 오직 자기의 안락만을 추구하던 이자는 그 나라에 경제교류라는 명목으로 남조선에서 기여든 안기부(당시)요 원들의 눈에 들게 되였다. 언제나 술과 녀색에 미쳐 돌아가는 박건길은 그자들에게 있어서 맛좋은 먹이감이 아닐수 없었다.

 

안기부요원들이 쥐여주는 몇푼의 딸라에 매수된 박건길은 중요한 국가비밀까지 다 넘겨주며 괴뢰들과 밀려다니다가 지은 죄가 두려워 1996 6 9일 남조선으로 도주하였다.

 

이자는 남조선에 나가서도 안기부의 추동밑에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계속 감행하였다. …

 

사람이란 누구나 다 태여나서부터 백지장과도 같은 인 생길을 선사받게 된다. 그 티없는 인생의 시작을 어떻게 떼며 또 무엇으로 수놓아가는가 하는데 따라 그 삶이 규정되고 평가된다. 때문에 누구나 자기의 인생길을 아름답게 장식하려고 노력하는것이다.

 

허나 박건길과 같이 치욕으로 얼룩진 인생은 이웃들은 물론 부모와 형제들에게서도 배척을 받게 되는것이다.

 

나라의 법과 질서를 란폭하게 위반하며 씻을수 없는 범 죄를 저지른 박건길과 그의 가족들의 행적을 더듬어보는 우리들의 눈앞에는 혜산으로 오는 도중 함경남도 함흥시 에서 만나보았던 일가친척들의 격분에 찬 목소리가 귀전에 쟁쟁하였다.

 

함흥시 동흥산구역 서운1 12반에서 살고있는 박상학의 셋째고모이며 박건길의 누이동생인 박혜영을 찾아갔을 때 그는 분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박건길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생일은 물론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은 불효자식이였다. 우리 동생들이 너무도 보기가 민망스러워 《오빠, 아버지가 토의할 문제가 있다고 좀 오시래요.》라고 말하면 《출장갔다가 아직 오지 않았 다구 해라.》라고 하면서 부모들을 박대하였다.

 

이것은 결코 박혜영 한사람의 목소리만이 아니였다. 함흥시 회상구역 해빛동 34반에서 살고있는 박건길의 녀동생이며 박상학의 고모인 박미영도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의 분노를 이렇게 터놓았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들을 생전이나 사후에나 잘 모시는것을 어길수 없는 법도 로, 자식의 응당한 도리와 의무로 여겨왔다. 그런데 박 건길은 집안의 맏아들이지만 부모님들이 살아계실 때 얼 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저 건 내 새끼가 아니다.》고까지 했겠는가. 부모가 살아있을 때 그렇게 불효막심했다면 그들이 돌아갔을 때에라도 채심해서 맏상제의 도리를 해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박 건길은 부모들의 제사 같은데는 아예 관심조차 돌리지 않았다. …

 

부모와 형제들에 대한 정이 없는자는 조국도 쉽게 배반하는 법이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이 추상적인것 이 아니라 자기 부모, 자기 형제에 대한 정과 사랑 등 구체적인 생활세부를 통해 표현되는 고상한 감정세계이기 때문이다.

 

가정에는 불효하고 나라에는 불충한 박건길의 피를 그 대로 이은 박상학이기에 그자는 남조선으로 달아나서도 자기의 일가친척들을 모독하며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리용하고있는것이다.

 

이자는 자기가 반공화국삐라살포에 나서게 된것은 공화 국에서 자기 삼촌과 고모들을 비롯한 친척들을 모두 법 적으로 처리하고 또 사촌형제들이 빌어먹으며 다니기때문 이라고 날강도적인 거짓말로 국제사회를 우롱하고있다. 미국과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에 명 줄을 건 더러운 수전노의 몸뚱아리를 조금이라도 감싸보 려고 이렇듯 자기의 친척들까지 우롱하고있는것이다.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최주혁에게 물었다.

 

《박상학이와 돌격대생활을 함께 하였다고 했는데 그 때 그자가 돌격대의 선전부에서 지도원(당시)을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이 물음앞에 최주혁은 천만뜻밖이라는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전부 지도원이라니요? … 아니, 전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박상학은 무직으로 건달을 부리다가 동주민들과 이웃들의 눈총이 두려워 돌격대에 마지못해 들 어왔습니다. 내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청년돌격대에 입대하였으니 1988 9월초쯤이였을겁니다. 그때 그자 도 저와 같이 입대하여 광복거리건설장에 함께 갔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달도 일하지 못하고 힘들다구 하면 서 집으로 도망쳐온자인데 어떻게 그런 중요한 사업을 맡길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군요. 그런데 박상학은 지금 남쪽에 도주하여 자기는 량강도청년돌격대에서 선전부 지도원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말했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아니, 일하기 싫어하구 뺀둥뺀둥거리던 놈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한단 말입니까?

 

《그건 제 몸값을 올려보려는 허튼수작입니다.》 너무도 황당무계한 거짓말에 최주혁은 쓰겁게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박상학은 선전부 지도원이 아니라 선전대 대원으로 있었습니다. 제가 광복거리건설장에서 돌 아오니 그자가 갓 조직된 기동예술선전대에 다닌다구 하면서 우쭐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웅뎅이안에 있던 미꾸라지가 강에 나갔다구 결코 룡으로 둔갑할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박상학의 돌격대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 노상 안일한 생활과 돈벌 구멍만을 찾아다니던 박상학은 새로 조직되는 돌격대 기동예술선전대에 타악기 한조를 들여놓으며 선전대 대원이 되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돈벌레인 그의 처사는 마른나무에서 잎이 피는것을 보는것만큼 희한한 일이였다.

 

여기에는 박상학의 음흉하고 교활한 목적이 깔려있었다. 그자는 선전대에 적을 걸어놓고 물자구입을 한다고 하 면서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장사와 거간, 협잡질로 제 리 속을 차리는데만 골몰하였다. 돈에 환장이 된 박상학은 나중에는 나라의 귀중한 국보인 민족문화유산까지도 팔아먹는 반역행위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

 

우리는 당시 보안원이였던 조성민로인에게 박상학의 죄행자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것을 부탁하였다.

 

그가 들려준데 의하면 박상학은 돌격대생활을 하면서 동생 박영학과 함께 1998 6월초 강종훈로인 내외를 구 타하고 절취한 돈을 가지고 근 한달동안 황해남도를 비 롯한 개성일대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목적은 민족문화유산을 얻어보자는것이였다.

 

그러다가 개성지방에서 옛무덤을 도굴하여 고려청자매 병 2점을 손에 쥐게 되였다.

 

이자들은 1998 7월초 그것들을 혜산시 성후동 대안 을 통하여 이웃나라에 비법월경하여 밀매하는 범죄를 감 행하였다.

 

박상학은 안일하고 부화타락한 생활을 하던 나머지 이 웃나라에서 비법적으로 마약암거래를 하는자와 내통하여 마약을 끌어들였으며 몰래 사용하는 반국가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낯가죽이 두터운 박상학은 온갖 감언리설로 처녀들을 꼬이며 돌아쳤는데 돌격대기간 김경희와 리경희, 김복녀 를 비롯한 여러 녀성들과 부정적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결혼식문제가 상종되면 아버지가 외국출장에서 돌아온 다음에 토의하자느니 뭐니 하면서 게면쩍게 놀아대군 하였다니 이 얼마나 추악한 협잡배인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1998 8 9일 조성민은 구체적인 물증들과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한데 근거하여 박상학을 호출하였다.

 

자기가 범한 죄과의 엄중성에 대해 잘 알고있는 박상학은 해당 법기관의 호출을 받자 법적제재가 두려워 이날 저녁 집을 나간 후 남조선으로 달아났다.

 

추악한 인간쓰레기가 갈길은 이렇듯 나라와 민족을 반 역하는 길밖에 없는 법이다.

 

박상학은 남조선으로 달아나자마자 미국과 극악한 반통 일세력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꿀꺽꿀꺽 삼키고 컹컹 반공화국대결망발을 짖어대는 미친개로 변하고말았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2014 11 10일 남조선신문 《한겨레》에는 《자유북한운동련합》 대표 박상학과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리민복사이의 더럽고 유치한 개싸움에 대한 기사가 게재되여 남조선인민들은 물론 온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자아냈다.

 

반역죄를 짓고 남조선으로 도주하여 반공화국삐라살포 로 더러운 목구멍을 채우고있는 리민복은 독자투고란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박상학, 이자는 나에게 삐라제작과 풍선날리기를 배운 제자이고 10살이나 어린 놈이다. 그런 놈팽이가 자기 의 홈페지에 스승인 나의 실명을 올려놓았다. 박상학이 란자는 풍선날리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1t짜리 풍선 차를 운영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2.5t짜리 풍선차였고 지금은 7.5t짜리 풍선차를 리용하고있다. 삐라살포용가스통 도 박상학의것보다 거의 23배이상짜리를 리용하므로 그 자는 나와 비교도 안된다.

 

리민복의 반목질시에 약이 오른 박상학도 그자를 헐뜯 기에 나섰다.

 

《리민복이 혼자서 단번에 120만장의 삐라를 북에 보냈다는것이 거짓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

 

그러면서 박상학은 내가 뭐 리민복의 제자인가, 나보고 돈을 바라고 삐라살포를 한다고 하는데 자긴 뭐 아 무것도 바라지 않고 풍선날리기를 하나며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상대를 공격하였다.

 

그야말로 세상에 까나오지조차 말았어야 할 인간쓰레기들의 밥통쟁탈전, 개싸움이 아닐수 없다. 먹이를 앞에 놓고 서로 으르릉거리는 개들도 이자들의 싸움질에 혀를 차지 않고는 못 견딜것이다.

 

이웃나라의 친척방문기간 괴뢰패당에 의해 유인랍치되 여 남조선에 끌려갔다가 고마운 조국의 품, 가족들의 품으로 다시 안긴 박정숙녀성은 인간추물 박상학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였다.

 

《… 나는 박상학이라는 그 인간쓰레기를 알고있다. 그 자는 무슨 <북자유>니 뭐니 하면서 인권나발을 자주 불어대고있지만 그는 원래 인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는 추물이다.

 

그자는 오직 돈밖에 생각하는것이 없는 일등수전노이다. 언제인가는 풍선에 달아보내게 된 딸라라는것을 가짜 종이돈으로 바꾸어놓고 그 돈을 제 주머니에 채워넣 기까지 한 더러운자이다. 그런 푼전에까지 올빼미눈이 되여 돌아치는자이니 사방에서 모여든 인권모략군들의 손 발노릇만 잘하면 뭉치돈이 굴러들어올것 같아 앞장에서 깡패기질을 부려대고있다고 본다. 치마를 둘렀건, 미국땅 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범죄자로 락인찍혔건 관계없이 돈만 쥐여주고 <북인권>소동의 돌격대로 계속 써먹겠 다는 도장만 찍어주면 그만이라는 사고를 가진자가 바로 <자유북한운동련합>이라는 모략단체, 오물집단의 두목노릇을 하는 박상학이다.

 

오물장에 쉬파리가 쓸어드는것은 피할수 없듯이 범죄와 모략이 판을 치는 서울에 온갖 인간쓰레기들이 모여들어 모략광대극을 펼치는것은 어찌 보면 달리는 될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쉬파리들이 계속 쉬를 쓸어대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수 있다는데 있다.

 

 

사람들에게 화를 주는 쉬파리들의 서식장은 철저히 매 몰하여 화근을 제때에 뿌리뽑아야 한다. 때문에 동족대결의 불씨만을 뿌려대는 박상학과 같은 인간쓰레기들, 모 략적인 <북인권>광대들에게는 무자비한 징벌을 가하여야 한다. …

 

이처럼 박상학은 돈을 위해 조국도 거리낌없이 배반한 자이며 또 돈을 위해서라면 제 주인도 열백번 바꿀 너절한 돈벌레, 더러운 인간쓰레기이다.

 

범죄자는 범죄의 형벌에서 벗어날수 없다. 때문에 범죄자는 아무리 숨어지내도 불안과 공포감에 휩싸여 전전긍긍한 날과 달을 이어가는것이다.

 

박상학놈과 같은 추악한 인간쓰레기는 그 어디서 살든 순간도 마음편히 살수 없을것이며 무인지경을 헤매다가 얼어죽는 비루먹은 들개신세가 되여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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