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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피로써 개척한 통일단결의 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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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5-24 09:3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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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써 개척한 통일단결의 새 역사

 

 

 

항일혁명투쟁시기 김일성주석님은 어린 시절부터 혁명을 함께 할 동지들을 얻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었다. 그는 늘혁명은 동지들을 얻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곤 했다. 자본가의 밑천은 <>이지만 혁명가의 밑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본가가 돈을 밑천으로 하여 부를 축적해나간다면 혁명가는 <동지>를 밑천으로 하여 사회변혁을 이룩해나간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석님께서 만난 청년공산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동지들은 차광수와 김혁이다. 차광수는 김주석님보다 일곱살이나 많았는데 10대의 나이에 일본에 건너가 고학을 하며 대학공부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는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지만 마음씨가 무한정 좋아서 청년들을 많이 끌었으며 마르크스주의 전문가로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차광수는 동경에서 서울에 돌아와서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한다면서 무슨 파가 그리 많고 무슨 갈래가 그리도 복잡한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31, 51파식으로 파와 갈래는 수두룩하였다. 각파는 서로 날카롭게 대립되어있었지만 실제로 사상적 입장이나 정치적 견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김일성주석님이 차광수를 만난 것은 그가 육문중학교 학생이었던 1927년 봄이었다. 이국땅에서 찬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차광수는 자기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올바른 투쟁노선과 지도자를 목마르게 기다렸노라고 김주석님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성주, 우리 서로 믿음과 사랑 속에 공산주의운동을 할 수 없을까? 분파와 헤게모니싸움이 없이 말이요!”

 

차광수의 그 부르짖음은 혁명의 길을 찾아 만리타향을 헤매던 끝에 그가 찾은 인생총화이며 교훈이기도 하였다. 김주석님은 그의 손을 잡고 우리 새 세대들은 종파분자들처럼 분열의 길을 갈 것이 아니라 한 마음 한 뜻으로 굳게 뭉쳐 혁명의 곧바른 길을 가자고 흥분해서 말씀하였다.

 

차광수는 처음에 김주석님일행들이 길림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중학생이 맑스-레닌주의를 알면 얼마나 알며 공산주의운동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한번 떠보려는 마음도 먹었다고 숨김없이 김주석님에게 고백하였다.

 

나이도 7살이나 위이고 대학까지 나온 마르크스주의자가 그 당시 육문중학생이었던 김일성주석님을 지도자로 모시고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김일성주석님이 이미 중학생시절부터 <,>와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조직을 갖고 있었고 참된 애국적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큰 감화력과 지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혁도 김일성주석님보다 5살이나 위인 동경유학생 출신이었고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시인이었다. 차광수와 김혁은 일본 동경유학시절부터 막역한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차광수와 마찬가지로 김혁도 조선의 진로를 찾아 만리타향을 속절없이 떠다니다가 김주석님 조직과 손을 잡은 사람이었다. 상해 프랑스조계지의 어느 하숙방에서 남의 눈치밥을 얻어먹으며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차광수가 편지로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소식을 알렸다. 그는 김혁에게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상해에서 아까운 인생을 썩이지 말고 길림으로 오라, 길림에만 오면 네가 찾는 지도자도 있고 이론도 있고 운동도 있다, 길림은 너의 이상향이다!” 

 

차광수는 이런 편지를 한번도 아니고 세번, 네번 김혁에게 보냈다. 그래서 김혁이 길림으로 왔다. 김혁은 김주석님과 통성을 한 후 길림시내를 며칠 돌아보고는 중학생이었던 김주석님의 손을 덥석 잡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성주, 나는 여기서 닻을 내리겠소. 내 인생은 이제부터요.”

 

김혁은 늘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좋은 동지들을 찾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 인생체험이 있었기때문에 김혁은 [조선의 별]이라는 노래까지 지어가지고 혁명조직들에 보급하였다. 김혁은 김주석님 몰래 차광수, 최창걸동지들과 의논해가지고 길림일대에 그 노래를 보급하였다. 그때 김주석님은 그를 <>에 비기고 노래까지 지어부르는데 대해 아주 엄하게 꾸짖었다. [조선의 별]이 보급되던 그무렵부터 동지들은 김주석님 이름을 <한별>이라고 고쳐 불렀다. 동지들끼리 이름을 지어가지고는 김주석님의 의향에는 관계없이 <한별이>, <한별이> 하고 불렀다. 한문자로 표기하면 一星(일성), 즉 한별이라는 뜻이었다.

 

얼마 후 변대우를 비롯한 <오가자>의 유지들과 최일천과 같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김주석님 이름을 <태양>을 표현하는 김일성(金日成)으로 고치자고 제안하였다.

 

이리하여 김주석님은 ,성주>, <한별>, <일성>이라는 세가지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김주석님 자신이 아무리 엄하게 단속하고 설복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동지들은 그가 달가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다. 동지들은 이처럼 새 이름을 지어주고 노래까지 지어부르면서 김주석님을 자기들의 <지도자>로 내세웠다. 김일성주석님을 내세우려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성의는 참으로 극진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이 나이도 어리고 투쟁경력도 짧았지만 동지들이 그를 내세우지 못해 그처럼 애쓴 것은 <통일단결의 중심>도 없이 각당, 각파가 저마끔씩 영웅호걸 행세를 하면서 파쟁으로 혁명운동을 말아먹던 전 세대의 운동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나라를 찾자면 2천만 인민이 합심해야 하며 2천만 인민을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게 하자면 <영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기때문이었다.

 

김일성주석님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 것은 그들이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 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령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력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주석님과 함께 혁명을 한 새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리다툼> 때문에 혁명대오에 불화를 조성한 적도 없고 의견차이로 하여 그들이 생명으로 내세운 <통일단결>을 파괴해본 적도 없었다. <통일단결>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대오에서 진짜 혁명가와 가짜 혁명가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감옥과 교수대로 끌려가면서도 이 통일단결을 목숨으로 사수하였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에게 그것을 재보로 넘겨주었다.

 

김일성주석님과 항일혁명투쟁을 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첫째가는 역사적 공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 지도자를 내세우고 그 지도자를 핵으로 통일단결한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넋은 오늘 조선노동당이 <일심단결>이라고 부르는 통일단결을 낳은 위대한 전통으로 되었다고 김주석님은 회고하고 있다.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지도자>를 내세우고 그 <지도자>의 두리에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혁명투쟁을 전개한 바로 그때로부터 조선의 민족해방투쟁은 파쟁과 혼란으로 얼룩진 지난 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장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이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의 통일단결의 정신이 바로 최고지도자와 인민을 <운명의 공동체>,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본 <주체의 수령관>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이다. 인민은 오직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기의 힘에 의거해 역사를 개척해나간다. 역사의 주체인 인민의 <최고뇌수>는 인민의 수령이며 수령의 사상은 인민 자신의 조직적 의사이고 인민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한다.

 

김정일위원장님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라는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은 집단의 최고뇌수인 수령이다. 수령은 인민의 자주적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다. 수령은 역사의 자주적 주체인 인민의 <최고 뇌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인민과 수령을 <운명의 공동체>,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고찰한 여기에 <주체의 수령관>의 본질적 특징과 독창성이 있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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