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끝까지 가는 참된 애국의 길 > 새 소식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새 소식

북녘 | 변함없이 끝까지 가는 참된 애국의 길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12-04 14:44 댓글0건

본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변함없이 끝까지 가는 참된 애국의 길

사리원시편의봉사관리소 신발수리공 리옥희동무에 대한 이야기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영철
본사기자 신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생의 일분일초를 충성으로 이어가며 아름다운 자욱을 남기는 사람이 오늘 우리 당이 바라는 참된 인간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


인생은 무엇으로 빛나는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그 어떤 책에서가 아니라 이 땅의 한 평범한 녀인이 걸어온 인생길의 갈피갈피를 번지며 찾게 된다.


그 주인공이 바로 사리원시편의봉사관리소 신발수리공 리옥희동무이다.


한 직업에서, 그것도 누구나 선듯 나서길 저어하는 힘든 직종에서 수십년을 일한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잊지 못할 눈물의 자욱도 있고 사연뜨거운 투쟁의 자욱도 있는 리옥희동무의 인생행로를 더듬어보며 어떤 인간이 끝까지 한길을 갈수 있으며 어떤 정신력을 지닐 때 시대앞에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길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의무만으로는 갈수 없는 길


undefined

인생은 곧 선택이라는 말도 있듯이 첫출발의 결심이 매우 중요하다.


리옥희동무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6년전 3월의 그날로 거슬러오른다.


어둠의 장막이 소리없이 깃들던 깊은 밤이였다.


《여보, 난 당신이 신발수리공으로 일했으면 하오.》


당시 도당위원회일군으로 사업하던 남편의 말을 리옥희동무는 처음엔 롱담인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의 표정은 너무도 진중했다. 곡산군장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하다가 조동되는 남편을 따라 이사온지 얼마 안되는 터여서 무슨 일을 할것인가에 대해 무척 고심을 해온 그였지만 신발수리공이라는 직업은 전혀 상상도 못한것이였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녀자가 신발수리를 하다니… 더우기 앞 못 보는 시어머니는 누가 돌본단 말인가.)


남편에 대한 야속한 마음을 안고 그는 방바닥을 손가락으로 긁기만 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깊은 잠에 든 8살 난 딸애의 고르로운 숨소리만이 들릴뿐이였다.


《당신도 지금 많은 당일군의 안해들이 신발수리공으로, 도로관리공으로, 농장원으로 진출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었겠지. 당의 뜻을 받드는데서는 누구보다도 당일군가족이 앞장서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 대중이 당일군을 따르고 우리 당을 따르게 되는거요.》


또다시 침묵…


이윽고 리옥희동무가 조용히 말했다.


《정 그렇다면…》


이렇게 되여 그는 신발수리공이 되였다. 당일군의 안해라는 의무감에서 출발한 결심이였다.


이튿날 편의봉사관리소를 찾아가니 낯익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발수리공으로 탄원한 여러명의 당일군안해였다.


리옥희동무는 그들과 함께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붐비는 사리원청년역가까이에 있는 신발수리소에 자기의 일터를 정하고 일을 시작하였다.

사회적존재인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회와 집단앞에 지닌 의무가 있다.


일군은 일군으로서의 의무가 있고 로동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무만으로는 끝까지 갈수 없는 길이 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리옥희동무는 바느질, 칼질, 못박기 등 모든 일이 서툴었다. 망치로 못을 헛때려 손가락이 부어오르기도 했고 칼에 베여 손에서 피가 나오기도 하였다. 작업장으로 출근하는 길이 몹시도 멀어보였고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그에게 일이 재미가 있는가고 물었을 때였다.


《신발을 수리하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나요. 그저 당일군인 당신의 체면을 봐서 그럭저럭 하는거지요.》


다음순간 남편인 리호성동무가 되물었다.


《그래 당신은 당일군의 안해라는 의무감때문에 마지못해 한다는거요?》


얼마후 귀전에 들려오는 남편의 말이 그의 심장을 쿵 울려주었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살기가 좋아지니 신발수리공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신발수리공의 대가 끊어지게 되였다고 근심하시였다는것이 아닌가.


저도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신이야 제대군인당원이 아니요.》


못 견디게 뵙고싶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눈굽을 적시던 초소의 낮과 밤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영원히 수령께 충직한 전사로 살리라 다짐했던 병사시절의 맹세를 잠시나마 잊고 자기 하나의 체면만을 먼저 생각했다는 자책에 가슴이 미여졌다.


눈물이 글썽해서 남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의무만으로는 끝까지 갈수 없는것이 애국의 길이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았어요.)


다음날부터 그의 발걸음이 달라졌다. 그는 신발수리기술을 배우는데 정열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앞 못 보는 시어머니와 어린 딸애를 돌보느라 누구보다 바빴지만 하루일이 끝나면 기능이 높은 신발수리공들을 찾아가 수리솜씨를 배웠고 집에 들어가서는 가족들의 신발을 수리해보는 일을 계속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인 리호성동무가 출장갔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


불빛이 새여나오는 창고의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안해가 신발을 꿰매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마에 흥건히 내배인 땀방울, 왼손 엄지손가락을 싸맨 피젖은 붕대…


인기척을 느끼고 머리를 들던 리옥희동무가 손을 등뒤로 가져가며 한동안 갑자르더니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구두를 좀 빌려줄수 없어요? 어머니와 딸애의 신발은 이렇게 뜯어놓고 꿰매고 두드려보았는데 남자신발이 어디 있어야지요.》


마음이 쩌릿해졌다. 리호성동무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기의 신발을 안해에게 내놓았다. 물론 이튿날 수리하느라 한심해진 구두를 신고 출근한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몹시 미안해하는 안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오. 당신의 기능이 높아진다면야 뭘 아끼겠소. 오늘 저녁에 또 내 신발을 〈실습용〉으로 바치겠으니 마음놓고 뜯어보라구.》…

리옥희동무의 손에는 늘 신발이 쥐여져있었다.


열정을 기울인 보람이 있어 그의 기술기능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고 손님들로부터 호평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만족을 몰랐다.


리옥희동무는 찾아오는 손님들만 봉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쁜 농사철이면 농촌마을을 찾아다니며 이동봉사도 하였고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문봉사, 송달봉사도 하였다.


특히 그는 오랜 세월 시안의 전쟁로병, 영예군인들에 대한 무료봉사를 진행하고있다. 사실 신발수리에 필요한 자재를 넉넉하게 공급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이렇게 한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리옥희동무에게는 자기와 자기 가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두해전 6월 어느날이였다.


전쟁로병들의 보양이 시작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리옥희동무는 황해북도전쟁로병보양소로 달려갔다.


《전 신발수리공입니다. 혹시 신발을 수리해야 할 전쟁로병동지들이 계실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얼마후 그는 수십컬레의 신발이 든 배낭을 무겁게 지고 보양소를 떠났다.


그로부터 며칠후 보양소일군들은 찌는듯 한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거운 배낭을 지고 찾아온 리옥희동무의 모습앞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새것처럼 번쩍거리는 구두를 받아안고 전쟁로병들도 감동을 금치 못했다.


생활이 풍족해서 하는 일이 아니였다.


오직 자기보다 사회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제 집살림의 유족함보다 조국의 아픔을 먼저 걱정할줄 아는 량심과 의리를 지닌 공민만이 할수 있는 일이고 갈수 있는 길이였다.


그렇다. 의무우에 참된 공민의 자각이 있다.

 

자신을 이기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이기는 일이다. 다진 맹세가 아무리 훌륭해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끝까지 길을 갈수 없다.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10여년전 5월 어느날로 옮겨진다.


리옥희동무는 텅 빈 작업장에 홀로 허전한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금방 마지막사람을 바래워준 그였다.


함께 신발수리공을 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둘 다 떠나갔다. 물론 부득이한 사정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매한가지였다.


분명한것은 이제부터 혼자서 신발수리를 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착잡한 생각에 잠겨 손님이 맡기고 간 신발을 수리하던 그의 입에서 부지중 아- 하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만 바늘로 자기 손을 찌른것이다.


다행히 점심시간이여서 손님들이 없었다.


빨간 피방울이 슴배여올랐다. 손에서는 피방울이 떨어지고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업탁에 떨어지는 피방울과 눈물방울을 바라보느라니 문득 어머니의 사랑을 거의나 받지 못하고 자라는 두 자식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발수리공일을 하는 어머니가 민망스러워 공부가 끝나면 우정 신발수리소를 빙 에돌아 집으로 가는 애들이였다.


언제인가 있은 일이 돌이켜졌다.


그날도 주문송달을 하느라 저녁늦게 집으로 들어서던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불꺼진 방에서 아들이 흐느껴울고있었던것이다. 그래도 누나라고 동생을 달래던 딸이 어머니를 보더니 픽 돌아앉았다.


《무슨 일이냐?》


아들이 밤알마냥 도르르 굴러서 어머니의 품에 매달렸다.


《엄마, 아버지가 당일군인데 왜 꼭 신발수리공일을 해야 하나. 난 막 동무들보기가 창피해.》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당일군의 안해이기때문에 더더욱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것을 리해하기에는 너무도 철없는 자식들이였다.


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어머니가 굳이 험한 일을 하는지 크면 알게 될거다.》…


(나도 그만두면 어떨가. 내가 신발수리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탓하겠는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종잡기 어려운 물음표들이 엉켜돌아갔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아들의 담임교원이 들어섰다.


《선생님이 어떻게… 혹시 신발수리할것이 있는가요?》


그러자 담임교원은 도리머리를 젓더니 가방에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오늘 국어시간에 〈어머니자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짓기를 했는데 유독 진혁학생만은 빈 종이를 냈더군요.》



리옥희동무는 망연한 눈길로 빈종이장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담임교원이 갔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빈종이장, 그것은 자식에게 어머니에 대한 자랑이 하나도 없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었다.


(아들을 탓할것도 못돼. 나에게 무얼 자랑할것이 있겠다고. 고작해야 신발수리를 잘한다는것뿐이지. 하긴 그게 무슨 소용이람.)


작업시간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옷을 갈아입고 수리소를 나섰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거리를 거니는데 어디선가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옥희동무, 무슨 생각을 하길래 몇번씩이나 찾는것도 못 들어요?》


함께 일하던 동무였는데 무슨 봉사기지에서 일한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소리가 오가던 끝에 자기와 함께 일하지 않겠는가고 넌지시 묻는것이였다. 저도모르게 귀가 솔깃해졌다.


그날 저녁 그의 집에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여보, 나도 이젠 가정의 착실한 주부가 되고싶어요. 자식들이 자랑하는 어머니가 되고싶단 말이예요.》


《당신에게 묻고싶은게 있소. 그래 당신이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감사를 받아안았을 때 흘리던 눈물은 거짓이였소? 그때 다진 맹세도? 그 모든것이 가식이였다면 신발수리공을 그만두어도 좋소.》


리옥희동무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한번 다진 맹세는 산이 무너져내려도 기어이 실천에 옮기고 한번 들어선 길에서는 죽어도 물러서지 않고 끝을 봐야 한다고 얼마나 많이 말을 하였던가. 그런데 오늘은…)


《아마 저애들도 크면 사회와 집단의 존경속에 사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자랑이라는것을 알게 될거요.》


그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자기의 가슴에 사정없이 채찍을 얹었다.


이튿날 아침 리옥희동무는 여느때없이 일찌기 신발수리소에 들어섰다.


혼자서 지켜야 할 정든 초소였다.


보람찬 로동생활은 줄기차게 흘러갔다.


이 나날 그는 수리지표를 30여가지로 늘이였으며 점착제, 파차바퀴, 신발실 등 수십종의 수많은 자재들을 자체로 해결하여 수만컬레의 신발을 수리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우리 신발수리공이라고 정담아 부르며 존경하였다.


자식들도 동무들과 함께 신발수리소에 자주 찾아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날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조국은 결코 총잡은 병사만이 지키는것이 아님을 심장에 새기고 초소로 떠나갑니다. 전 신발수리공인 어머니를 자랑합니다.》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때 만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더라면 맛보지 못했을 기쁨이였다.


하지만 생활이 늘 평탄한것은 아니다.


몇해전 12월 그는 뜻밖의 사고로 다리를 다치였고 한달후에는 안면신경마비로 하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가 침상에 누워서 걱정한것은 자기 건강이 아니라 비여있을 일터였다.


관리소의 일군들은 자주 찾아와 걱정말고 치료에 전념하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년로보장나이도 지났는데 이젠 신발수리공을 그만두라고 권고하였다.


(아니다. 내 심장이 고동치는 한 절대로 나의 초소를 비울수 없다.)


얼마후 그는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불편한 몸으로 일터에 섰다.


활짝 열린 신발수리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라에서는 누가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이어가고있는 그에게 공훈편의수리공이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다.


이렇듯 그는 다진 맹세를 지켜 오직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왔다.


그렇다.


당과 조국앞에 다진 맹세를 명줄처럼 간직하고 그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자신을 이기는 고결한 정신력의 강자가 될 때 애국의 길을 끝까지 갈수 있다는것을 그는 실천으로 증명하였다.

 

*      *

 

당에서는 리옥희동무에게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리옥희동무는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이 모셔진 사랑의 금반지를 수여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조국을 받드는 마음이 그 어떤 빈말이 아니라 가장 뜨겁고 가장 깨끗한 진정으로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여있는 참된 공민만이 한번 다진 맹세를 지켜 충성의 한길을 끝까지 갈수 있으며 바로 그 길에서만이 참된 삶이 빛나는것이다.


[출처: 로동신문]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위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빛나는 전변의 력사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7월 21일(화)
조미수뇌회담은 없다./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
더는 피할 곳 없다
[Reminiscences]Chapter 11. The Watershed of the Revolution …
조선의 대학생들이 《코드쉐프》 련이어 우승/6월경연, 2위에 압도적인 점수차이
[특집] 조선, 전승67돐 경축 특집보도
최근게시물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8일(토)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8일(토)
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8월 7일(금)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6권 제 17 장 4. 사진과 추억
[Reminiscences]Chapter 15 6. Living Apart rom the People Is …
화목과 단합의 기초
혁명의 천하지대본
과일향기 넘쳐나고 과일파도 일어나게 하라
인민을 위한 사랑의 자욱 끝없이 이어가시며
김정은위원장,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일대의 큰물피해상황 현지료해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7일(금)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8월 7일(금)
Copyright ⓒ 2000-2020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