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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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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11-21 10:4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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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기]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편집국

<북바로알기운동>을 위해 북녘에서 출판된 도서를 소개합니다.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10권에 나오는 최현 항일혁명투사의 <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을 소개합니다. 최현 항일혁명투사는 1907년 6월 8일 낯설은 중국 땅의 독립군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일찌기 한생을 일제와의 싸움에 바치려는 결심을 품고 어린 나이에 총을 잡고 독립군을 따라나섰다가 7년이 넘는 감옥생활을 하였다. 1933년 9월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반일인민유격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최현 항일혁명투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 투철한 혁명적원칙성과 고결한 혁명가적풍모로 하여 군대와 인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최현 항일혁명투사를 원형으로 하는 예술영화 《혁명가》와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속편이 만들어졌다. 1982년 4월 10일에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묘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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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류경수동무를 회상하여)

 

                                                     최    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인 류경수동무는 대담무쌍한 항일유격대원이였다.


1932년부터 조국이 해방되던 그날까지 나는 류경수동무와 한부대에서 계속 같이 싸웠으므로 그에 대하여 비교적 잘 알고있다.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실한 류경수동무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한 후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일편단심 헌신적으로 싸웠다.


1932년 8월에 항일유격대에 입대한 경수동무는 그때 나이가 17살이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적에 대한 불같은 적개심과 모든 일에서의 남다른 열성으로 하여 그는 지휘원들과 대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있었다.


경수동무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었으며 또한 여간 락천적이 아니였다.


그러나 원쑤 일제를 격멸하는 무장투쟁행정에서의 그의 생활과 성장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유격대의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준엄한 시련과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나가야 하였던것이다.


이러한것을 회상할 때면 나는 지금도 왕우구 남석촌전투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1932년 11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우리 중대는 송림동에서 산등을 타고 남석촌으로 내려오는 200여명의 적과 맞다들게 되였다.


적들은 우리의 집중사격으로 순식간에 50여명이 꺼꾸러졌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당황하여 일부는 뒤로 물러서고 일부는 은페지에 숨느라고 야단법석을 치게 되였다.


이러한 때 중대장은 돌격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집중사격에 적들이 무리로 쓰러지는것을 보고 용기백배한 경수동무는 홍노배라는 별명을 가진 동무와 함께 중대의 선두에서 달려나갔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 일제《토벌대》놈들이 불시에 나타나는바람에 정황이 급변하게 되였다. 유격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한 류경수동무는 그자리에 엎디라는 중대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달려나갔다. 그러다가 함께 달려가던 홍노배라는 동무가 적탄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을 때에야 그는 자기앞에 수많은 일제《토벌대》놈들이 엎디여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나는 경수동무에게 빨리 퇴각하라고 소리쳤다.


그는 눈속에 딩굴면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의 옷과 총은 눈에 뒤범벅이 되여 말이 아니였다.


내옆에 엎딘 경수동무는 격발기를 제끼려고 애를 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총을 쥔채 눈속을 딩굴다나니 격발기가 얼어붙었던것이다.


나는 그에게 얼어붙은 격발기는 어떻게 해야 떨어진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는 꾸물거리다가 이번에는 불에다 녹이지 않으면 뗄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나는 그때에야 경수동무가 당황해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빨리 은페지가 있는 뒤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날 전투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끝났다.


그날 밤 나는 경수동무의 곁에 잠자리를 잡았다. 밤이 이슥해지자 모두 깊은 잠에 들었는데 그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일어나 앉는것이였다.


나도 일어나서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리고 그에게 오늘 전투에서 적을 몇놈이나 잡았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저도 지금 그걸 생각하는중입니다. 첫방에 적 한놈이 꺼꾸러지는것은 보았는데 그다음부터는 알쌈 3개를 어디다 대고 쏘았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이글거리는 불무지를 들여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아직 사상적준비가 잘되여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는 혁명을 위해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겠다고 결심했지만 오늘 홍노배동무가 적탄에 쓰러지는것을 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총도 제대로 쏠수 없었고 또 몸도 제대로 움직일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겁먹지만 않았다면 정말 많은 적을 잡을수 있었습니다. 제가 돌격해나가다가 엎드렸던 눈무지에서 불과 20m도 못되는 곳에 10여명의 적들이 몰켜있는것을 보고도 수류탄을 던질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러고보면 겁에 질린 적들도 총을 제대로 쏘지 못한것이 분명합니다. 놈들은 기관총까지 휘둘러댔지만 불과 20m도 못되는 거리에 있는 나를 끝내 맞히지 못했으니까요.》


자기의 부족점을 뉘우치고 거기서 교훈을 찾은 경수동무의 생활은 그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훈련에 대한 태도부터 달라졌다. 조준련습을 할 때에도 그의 눈에서는 원쑤에 대한 증오의 빛이 이글거렸으며 전투훈련을 할 때에도 실지 원쑤와 맞서 싸우는 그런 정신으로 하였다. 그리고 전투훈련때에는 될수록 어렵고 복잡한 정황속에서 단련되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그러기에 그는 훈련에서도 남달리 우수하였다.


사실 훈련의 성과와 그 질은 마음먹기에 달린것이다. 전투동작을 한번 하고 또 조준련습을 한번 해도 대원자신의 정신상태에 따라 그 질이 규정되는것이다.


경수동무는 이렇게 첫 전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자기를 준비하였기에 그후의 전투들에서는 언제나 용감하게 싸울수 있었다.


우리 중대는 그 전투가 있은지 얼마 안되여 또다시 큰 전투를 하게 되였다. 200여명의 적들이 왕우구 새지팡으로 기여들었던것이다.


이 전투에서 류경수동무는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 중대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을 일격에 격멸하기 위해 지형이 유리한 남석촌 남쪽고지에 매복하였다. 이때 경수동무가 속한 소대는 맨 앞전호에 배치되였다.


이윽고 일제《토벌대》놈들은 2렬종대로 우리 중대가 매복하고있는 앞에 이르렀다.


우리는 중대장의 사격신호와 함께 일제히 명중탄을 퍼부었는데 경수동무도 첫사격에서 적 2놈을 연거퍼 꺼꾸러뜨렸다.


이 전투에서 경수동무는 일상훈련에서 꾸준히 련마한 자기의 사격솜씨를 훌륭히 발휘하였다.


나는 여기에 그날 전투에서 있은 한가지 실례를 더 이야기하겠다.


경수동무가 엎디여있는 맨 앞전호에서 제일 애를 먹은것은 적의 기관총수였다. 그놈은 어찌나 지독하게 기관총을 쏘아대는지 맨 앞전호의 동무들은 머리를 들기 어려운 형편이였다.


동무들은 이놈의 기관총수를 제껴버리려고 자리를 옮기면서 사격하였으나 한길이나 되게 패여나간 물홈에 들여박힌 그놈을 맞힐수 없었다.


이때 불시에 돌개바람이 일면서 기관총소리가 잠간 멎었다. 경수동무는 이 순간에 몸을 약간 일으키면서 그놈의 기관총수를 단방에 꺼꾸러뜨렸다. 여기저기서 경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때 경수동무는 또 한방 갈겼는데 그 총소리와 함께 적기관총이 파괴되였다.


정말 통쾌하였다.


적들은 하늘같이 믿던 기관총이 마사지자 황급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일시에 전호속에서 뛰쳐나와 과감한 돌격전을 하였다.


이날 우리는 적도 많이 소멸하였지만 무기와 탄약도 수많이 로획하였다. 경수동무가 혼자서 쏘아눕힌 적만 해도 30여명이나 되였다.


이때부터 류경수동무는 용감하고 결단성있는 유격대원으로 알려지게 되였다.


이렇게 그는 어렵고 복잡한 전투속에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수양하였다.


우리 중대가 왕우구유격근거지에서 활동하던 1933년 가을이였다.


어느날 나는 상급의 긴급지시를 받고 북하마탕치기에 가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적들의 아성인 동녕현성을 공격할데 대한 작전계획을 세우시고 우리 중대도 부르시였다는것이였다.


나는 그이께서 보내주신 통신원과 함께 중대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대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언제나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흠모하여오던 그이의 부르심을 받게 된 대원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그저 서로 안고 돌아가면서 환성을 올릴뿐이였다.


그때 나는 중대정치지도원으로서 대오인솔을 책임지게 되였다. 중대에서 선발된 40여명의 대원들중에는 나이가 제일 어린 류경수동무도 들어있었다.


나는 항일유격대가 조직된 이후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휘밑에 큰 전투를 하게 되는것만큼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면서 매개 대원들에게 탄알 150발씩 가지게 한 다음 신발도 한컬레씩 여벌로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강행군을 하면서 대원들의 전투준비상태를 검열하였다.


왕우구 북동을 떠난 우리는 빨리 걸어도 이틀길이 잘되는 소왕청 마촌까지의 거리를 하루반동안에 들이댔다.


참으로 모든 동무들이 나는듯이 달려갔던것이다.


나는 중대를 마촌에 남겨두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사령부로 갔다.


사령부는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단풍이 붉게 물든 골안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우리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옵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통신원이 길을 헛갈렸기때문에 우리 중대가 늦게 도착하여 동녕현성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것을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한 지휘관을 부르시더니 마촌에 도착한 우리 중대 동무들의 식사와 잠자리를 잘 보장해주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지 우리 중대 동무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려는 그를 다시 부르시더니 《경비는 2중대 동무들이 서도록 조직하오. 먼길을 급히 오느라고 몹시 피로하겠는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시키지 말고 일찍 재우오. 오래간만에 연길유격대동무들을 만났으니 쉬지도 못하게 할수 있소.


동무는 오늘밤 그 동무들과 함께 자는것이 좋겠소. 아침식사가 늦어지지 않도록 하오.》라고 당부하시였다.


나는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이 깊고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가슴이 뜨거워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눈보라 사나운 날이면 밤늦게까지 회의를 지도하시고도 대원들의 잠자리를 돌아보신 다음에야 자리에 누우신다는 그이, 식량사정이 어려울 때이면 자신은 때식을 넘기시면서도 대원들에게는 풀죽 한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심려하신다는 그이, 오늘은 먼곳에서 싸우다 달려온 우리 중대 동무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나의 마음은 한없는 행복과 감격으로 차고넘치였다.


항상 크나큰 사랑과 보살피심으로 우리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을 혁명승리에로 이끌어주시는 그이께서는 나의 긴장한 몸자세를 보시더니 편히 앉으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연길유격대와 혁명조직들의 투쟁정형과 대원들과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세세히 물으시고나서 당시 조성된 국제국내정세와 조선혁명에 대한 방침적문제들을 알기 쉬운 말로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날이 샐녘에야 자리에 누우시였다.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의 곁에 눕게 된 나의 마음은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좀처럼 진정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잠이 든 나는 누가 조용히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사이에 일어나시였는지 몸차림을 단정히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려는것이였다.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밖으로 나가시려던 그이께서는 돌아서시면서 피곤할터인데 좀 더 자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내가 그냥 일어나 복장을 정돈하니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그럼, 최현동무도 함께 갑시다. 잠자리가 불편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의 새벽날씨는 산산한 기분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그이와 함께 걸음을 옮기게 된 나의 가슴은 뜨거웠다.


그이께서는 우리 중대 동무들이 들어있는 병실문을 조용히 여시였다.


이미 아침식사를 끝내고 전투준비를 갖추고있던 우리 중대 동무들은 일시에 일어섰다.


그이께서는 매우 기쁘신 안색으로 둘러보시며 대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나서 나이어린 경수동무의 어깨를 짚으시며 물으시였다.

《고향은 어디요.》


《함경남도 신흥군 원평면입니다.》


《언제 입대하였소.》


《작년 8월에 입대하였습니다.》


《나이는 몇살이요?》


《18살입니다.》


《18살, 어린 혁명가구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경수동무의 총을 만져보시였다.


바로 이때 망원초에서 적정을 알리는 신호총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품에 안겨 한없는 감격과 흥분속에 휩싸여있던 우리 중대 동무들은 모두 긴장하여졌다.


그이께서는 오래간만에 만난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적들이 기여들었다고 하시면서 덤비지 말고 산으로 오르라고 하시였다.


이리하여 우리 중대 동무들은 마촌에 있던 왕청 2중대 동무들과 함께 고지에 올라가서 적과 원거리전투를 하게 되였다.


그날 덤벼든 적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유격대동무들의 놀라운 사격술을 잘 알고있으므로 절대로 근거리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놈들이 더 기여들지 않으면 싸워보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가 하여 마음이 초조하였다.


그런데 먼곳에서 곡식낟가리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감행하며 돌아가는 적들의 동태를 주의깊게 살피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한번 시범사격을 하라고 하시였다.


제일 가까운곳에 기여든 적과의 거리도 근 500m나 되니 명중사격을 하기에는 어지간히 먼거리였다. 나는 침착하게 조준하여 한놈을 단방에 꺼꾸러뜨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듣던 소문과 같이 과연 명사수라고 치하해주시면서 몸소 보병총을 드시더니 그리 겨냥하는것 같지도 않게 연거퍼 네댓방 쏘시였는데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매번 적병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대원들은 일시에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모두 자신만만한 사격자세로 그 먼거리의 적들에게 맹렬히 명중탄을 안기였다. 경수동무도 그이의 명중사격에 고무되여 몇놈 잘 쏘아넘기였다.


실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투지휘는 령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이 없어하는 대원들에게 이처럼 백발백중할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어 그 먼거리의 적들을 순식간에 격멸하여버리도록 지휘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사격술에 얼마나 감탄하였던지 경수동무는 전투가 끝나자 그이께서 잡으셨던 보병총을 신기하게 살펴보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밤에도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동무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지금 우리 앞에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더욱 강화발전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강화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것은 반일인민유격대를 강화하는것입니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일제를 때려부시는데서 가장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유격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힘을 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유격대원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켜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유격대오를 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것입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성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강력히 추진시켜야 합니다.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전개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실속있게 진행하는것입니다.

또한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통일과 그 순결성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당조직들과 혁명조직성원들에게 종파주의의 본질과 해독성, 종파분자들의 행동수법을 정확히 인식시켜 그들로 하여금 반종파투쟁에 적극 나서도록 하여야 하며 종파주의사상이 우리 혁명대오안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강력적인 교시를 접수한 우리는 모두 흥분된 마음을 안고 귀로에 올랐다. 그때 류경수동무는 그이께서 근거지보초대용으로 사용하라고 선물로 주신 구경이 크고 소리가 요란한 다태갈이라는 총을 메고오면서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중에 뒤에 따라오는 적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승리의 기세드높이 왕우구 새지팡으로 유유히 돌아왔다.


그때 근거지에 남아있던 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돌아오는 우리 중대 동무들을 여간 부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인차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교시를 그들에게 전달하였다. 이틀밤을 꼬박 밝히면서 접수한 그이의 교시를 전달하는데도 몇시간이 잘 걸리였다.


우리는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이 시기 류경수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기 위해 그이의 교시학습에 있는 열정을 다하였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그이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하였다.


우리 중대가 마촌에 갔다오기 전인 1933년 봄에 있은 일이였다.


그해 3월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왕청에서 공청일군회의를 소집하시고 광범한 군중들과 사업하는 청년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작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청년들이야 알아듣건말건 외래어나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 교양사업을 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수 없을뿐아니라 도리여 안한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수도 있습니다. 만일 의식수준이 어린 농민청년들을 모아놓고 부르죠아사회를 타도하고 프로레타리아트가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느니, 쏘베트를 세워야 한다느니,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가 어떻다느니 하는 식으로 멋을 부리며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선전사업을 한다면 거기에 모였던 농민청년들은 <그 청년 참 미친 사람이로군, 조선말도 몰라서 외국말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조선혁명을 한다고 야단인가, 온종일 들어보아야 조선독립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군.>, 이렇게 말할것입니다. 이러한 선전사업은 아무런 성과도 달성할수 없을뿐아니라 청년들을 실망케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청조직들은 멋을 부리지 말고 청년들이 알아들을수 있는 쉬운 말로 교양사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류경수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가르치심을 실천하기에 모든 힘을 다하였다.


그는 유격대에 입대하기 전에 공청지부 서기를 한 경험이 있는 동무였으므로 군중정치사업을 능숙히 하였다.


농민들이 밭갈이를 한창 할 때였다.


우리 중대 동무들은 근거지내의 인민들속에서는 물론이고 적통치구역 농민들속에도 들어가서 군중정치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때 나는 앓는 몸이여서 이 사업에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저녁마다 군중정치사업경험을 교환하는 모임을 통해서 경수동무가 얼마나 훌륭히 사업했는가를 알수 있었다.


그는 주로 로투거우와 해란구의 농민들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했는데 우선 농민들의 밭갈이를 열성껏 도와주었다. 14살때부터 고된 머슴살이로 자라난 그의 일솜씨는 첫순간에 벌써 농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혁명가요를 부르며 밭을 깊숙이 갈아나갈 때면 농민들은 쟁기를 놓고 구경을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농민들의 마음을 틀어잡은 다음 계속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유격대의 사명과 본질에 대하여, 일제의 침략성과 야수성, 지주와 자본가계급의 착취적본성에 대하여 알기 쉬운 말로 꾸준히 해설하였다. 그가 얼마나 이야기를 구수하고 재미있게 하였던지 쉴참이면 늙은이들도 경수동무의 곁에 모여와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연방 고개를 끄덕이였다고 한다.


물론 나는 경수동무와 함께 군중정치사업을 하지 못했기때문에 이상 더 상세한것은 알수 없으나 그가 해란구 인민들속에서 그들을 얼마나 각성시켰는가 하는것은 다음의 실례가 잘 말하여준다.


밭갈이가 계속되던 어느날 우리는 해란구의 인민들로부터 적정에 대한 통보를 받았는데 그에 의하면 위만군놈들이 와서 낮에는 산속으로 다니며 수색을 하고 밤이면 부락에 내려와서 인민들에게 갖은 행패를 다 부린다는것이였다.


우리 중대에서는 이 문제를 심중히 토의한 다음 인민들과의 련계하에 놈들을 소멸함으로써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들을 더욱 각성시키며 한편 놈들의 무기를 빼앗아 우리의 무장장비를 더욱 강화할것을 계획하였다.


이 임무를 해란구의 실정에 밝은 류경수동무를 비롯하여 10여명의 대원들이 맡게 되였다.


그들은 농민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적들이 싸다니는 통로에 매복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매복한 위치는 사방을 감시하기에는 매우 불리한 곳이였다.


그렇지만 그 일대에는 그곳밖에 매복하기에 적당한 곳이 없었다.


농민들은 그 주변에서 밭을 갈았다.


이윽하여 농민들이 소를 몰면서 《이랴 오나》,《이랴 오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적들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그날 농민들은 이런 식으로 적들이 어떻게 행동한다는것을 알려주기로 우리 동무들과 약속하여놓았던것이다.


잠시후에는 아래쪽에서 밭을 갈던 농민이 채찍을 휘둘러 소잔등을 때리면서 《6살이나 먹은 소새끼가 왜 이 모양이냐 뒈질놈의 소새끼.》하고 소리질렀다. 이것은 나타난 적이 6놈이라는 신호였다.


10여명의 우리 동무들은 이렇게 농민들로부터 적들의 움직임에 대한 신호를 일일이 받으면서 은밀히 매복하고있다가 놈들이 앞에 나타나자 서로 분담하여 눈깜짝할사이에 몽땅 쏘아눕혔다.


우리 동무들의 놀라운 사격술에 농민들은 너무 감탄한 나머지 입만 하 벌리고 말을 못했다. 그들은 항일유격대원들의 용감무쌍한 전투소식을 듣기는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눈으로 볼사이도 없이 가증스러운 적들을 몽땅 요정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농민들은 밭을 갈던 쟁기를 던지고 달려와서 우리 동무들의 전투승리를 축하하여주었다.


그들은 우리 유격대원들속에서 류경수동무를 발견하고 일시에 그를 둘러쌌다.


한 늙은이는 경수동무의 손을 잡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임자네들은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총도 잘 쏘누만, 장하네 장해, 내 가슴이 후련하네.》


《오늘 우리가 잘 싸울수 있은것은 여러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유격대를 도와주셨기때문이지요.


여러분들은 앞으로도 무장한 적은 무장으로 치고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한다고 하신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우리 유격대를 적극 도와서 일제와 싸워야 합니다.》


《옳은 말이네, 나도 오늘에야 그걸 알았네. 내 환갑이 지나기는 했지만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임자네들과 한마음이 되여 왜놈들과 싸우겠네.》


우리 동무들은 그곳 농민들에게 이처럼 커다란 정치적영향을 주고 적들에게서 로획한 보총 6자루를 메고 돌아왔다.


류경수동무는 이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군중정치사업을 잘하여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그이의 주위에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해 정력적으로 투쟁하였다.


그리고 그는 항일유격대의 무장장비를 확대강화할데 대한 그이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언제나 앞장에 나섰다.


우리 중대는 왕청현 마촌에서 그이의 교시를 받은 후에 우선 기관총부터 해결하기 위해 달라붙게 되였다.


이때에도 경수동무의 역할이 컸다. 그때 기관총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있어야 하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참으로 자진하여나선 사람들은 류경수동무와 정일권동무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대담하게 왕청시가에 들어가서 큰 자본가인 왕가놈을 붙잡아다가 막대한 군자금을 해결하여가지고 연길유격대의 첫 기관총을 얻어오게 되였던것이다.


바로 이 기관총이 그후 련속적인 전투들에서 수많은 기관총을 새끼쳐서 《큰아매》라고 불리우게 된 그 유명한 기관총이였다.


우리 중대는 이 기관총을 얻은 때로부터 더욱 맹렬하게 활동하여 항일유격대를 확대강화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와 장비들을 해결하였다. 그때는 총만 있으면 부대를 얼마든지 확대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므로 기관총을 가지고있던 우리 중대는 한꺼번에 수많은 무기를 로획한 신안촌자위단습격전투와 8도구시가습격전투를 비롯해서 큰 전투들을 련속 진행하게 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 8도구광산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찾아오는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에게 총을 메워 무장대오를 급속히 확대강화할수 있었던것이다.


그 과정에 류경수동무는 더욱 성장하게 되였으며 특히 그의 백발백중의 사격술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그는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 있는 열성을 다하였으며 특히 사격술을 높이기 위해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노력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경수동무는 훌륭한 사격술을 소유한 명사수가 되였다.


그의 사격술이 얼마나 높았는가 하는것은 다음의 사실이 잘 말하여준다.


1934년 6월, 우리 중대가 적의 군기를 빼앗던 전투때의 일이다.


어느날 오후 5시쯤 되였을 때 망원초에서 일제《토벌대》 300여명이 우리 중대 병실을 목표로 기여든다는 련락이 왔다.


우리는 인차 중대병실을 텅 비여놓고 은밀히 병실뒤의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이미 파놓은 전호들을 차지하였다.


적들은 우리가 아직 병실에 그냥 있는줄 알고 삼면으로 조여들면서 박격포와 기관총사격을 감행하였으며 놈들의 군기수는 병실뒤의 나지막한 고지에 올라서 군기를 휘두르면서 사병들의 기세를 돋구어주느라고 야단이였다.


이러한 때 우리는 놈들에게 명중화력을 퍼붓기 시작하였는데 첫사격에 약 200m의 거리에 있는 적군기수가 꺼꾸러졌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군기를 쥐려고 기여들었다. 그래서 이날 적아간의 전투는 그 군기를 가운데 놓고 벌어지게 되였다.

우리는 군기를 쥐려고 기여드는놈마다 제껴치웠다. 특히 경수동무의 사격에는 실수가 없었다. 한방 갈기면 한놈씩 영낙없이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기주위에는 적들의 시체가 한벌 깔리게 되였다.


날이 어슬어슬해지자 적들의 발악은 극도에 달하였다.


우리도 긴장하여졌다. 거리는 200m정도밖에 안되였지만 날이 어두워지는 관계로 조준을 정확히 할수 없었던것이다. 군기에 접근하는 놈들을 담당했던 명사수들은 자주 눈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경수동무는 군기를 쥐려는 놈에게 계속 명중탄을 안기는것이였다. 그는 군기를 향해 달려드는 적을 잘 조준하지 못해 애를 쓰는 옆의 동무를 보더니 이런 말을 하였다.


《군기를 조준하라구. 그랬다가 얼씬하면 갈기오.》


그는 경수동무의 말대로 군기를 조준하였다가 얼씬하는 놈을 꺼꾸러뜨리고나서 여간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경수동무는 이미 무기의 능숙한 사용을 위한 훈련단계를 벗어나 실지전투속에서 그를 더 깊이 연구하고 세련하는 단계에 들어선 동무였던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왕우구로 들어오는 적들을 통쾌하게 섬멸한 우리는 무기와 전리품들을 수집하느라고 돌아가는데 그는 죽어넘어진 적의 시체들을 주의깊게 살피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건 왜 자꾸 들여다보오?》


《조준이 정확했나 알아보느라고 그럽니다.》


《그래 쏜대로 맞았소?》


《아직 그 수준은 못됩니다. 심장을 조준했는데 배에도 맞고 머리에도 맞고 했습니다.》


경수동무는 이렇게 실지전투속에서 자기를 준비하다나니 그의 사격술은 신기할 정도로 높아지게 되였다.


우리가 그날 끝내 적의 군기를 빼앗을수 있은것도 경수동무의 이와 같은 높은 사격술과 전투경험이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적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군기를 찾아가지고 달아나려고 발악하였으나 우리의 명중탄이 더욱 비발치듯 쏟아지니 너무 급한 나머지 군기와 수많은 시체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이 전투가 있은 후 류경수동무는 분대장으로 임명되였다.


1934년 여름, 우리 중대가 삼도만으로부터 명월구로 넘어가는 일제《토벌대》30여명을 몽땅 녹여내고 기관총까지 빼앗은 전투가 있은 다음의 일이다.


그때 명사수들이 많은 경수동무의 분대는 단독적으로 적을 불의에 요격하는 전투를 많이 했는데 그의 전투지휘에 대한 분대원들의 반영은 아주 좋았다.


어느날 용구촌일대를 싸다니던 적을 요격할 명령을 받은 그는 분대원들을 데리고 가서 산기슭에 매복한 다음 사방이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감시병을 세워놓았다.


얼마후에 100여명의 적들이 나타났다.


경수동무는 사전에 분대원들과 구체적으로 의논한대로 놈들을 쏘기 좋은 거리에까지 접근시킨 다음 불의에 요격하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순식간에 20여명이 쓰러졌다.


경수동무는 분대원들을 일일이 지휘하면서 첫 타격에 정신을 잃은 적들이 력량을 수습하여 저항하지 못하도록 계속 명중사격을 들이댔다.


이렇게 한창 싸우고있을 때 산봉우리에 올라가있던 감시병이 앞산에 메돼지가 나타났다고 소리쳤다. 거리는 450m가량 되였다.


경수동무는 자기까지 포함해서 6명밖에 안되는 분대인원으로 100여명의 적을 요격하는 긴장한 싸움을 지휘하면서도 눈깜짝할 사이에 그 먼거리의 메돼지까지 쏘아눕혔다.


이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도 경수동무가 얼마나 대담해지고 또 긴장한 전투를 얼마나 확신성있고 여유있게 지휘했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그때 그의 나이가 19살이였다는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그날 경수동무의 분대가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한데다 메돼지까지 잡아왔기에 우리 중대 동무들의 기쁨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류경수동무는 이와 같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항일무장대오의 확대강화를 위한 련속적인 전투속에서 훌륭한 초급지휘원으로 자라났다.


혁명은 온갖 반혁명세력과의 치렬한 계급투쟁속에서 발전한다. 경험은 총을 들고 정면으로 덤벼드는 적들과의 투쟁도 어렵지만 대렬내에 기여들어 은페된 형태로 달려드는 놈들과의 투쟁도 또한 어렵고 간고하다는것을 보여준다.


동만유격구에서 활동하던 시기 혁명조직들과 무장대오내에 잠입하였던 종파분자들, 민족배타주의자들과 그에 추종하는 사대주의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끌고나가면서 조선혁명에 일대 위기를 조성하여놓았다.


이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이라는 구실로 동지호상간 불신임을 조성하여놓고는 견실한 조선혁명가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식사때 밥을 흘려도 《민생단》감투를 쓰고 죽어야 하는 판이니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인민혁명군의 련대장으로 임명되여 활동하던 윤창범동무도 《민생단》으로 몰려 희생되였으며 류경수동무가 입대하였을 당시 연길현유격대의 대대장이였던 박동근동무도 역시 《민생단》으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되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하여나서는 사람도 위험한 처지에 놓이군 하였다.


누가 《민생단》으로 몰린 사람을 변호할 때에는 그도 《민생단》감투를 쓰고 죽어야 하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후방부책임자였던 곽찬영동무가 또다시 《민생단》으로 걸려들게 되였다. 그의 《죄명》인즉 입대전에 소학교 교원을 한 일이 있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알게 된 류경수동무와 대원들은 격분하였다.


곽찬영동무는 오랜 혁명가였다. 그는 한때 경수동무가 모진 고생을 하며 자라던 태평구에서 소학교 교원을 하며 혁명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경수동무일가의 기막힌 생활처지와 그리고 실지 자기의 체험을 통해서 교단우에서는 가난한 로동자, 농민들의 자식들을 가르쳐줄수 없다는것을 자각하고 대담하게 교단우에서 뛰여내려와 소작살이의 모진 고통을 겪으며 농민들과 그 자식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이였다.


경수동무도 머슴살이의 피눈물나는 고통속에서 그로부터 혁명적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로동자, 농민들과 그 자식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주다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손에 총을 쥔 사람이였다.


그러므로 연길현유격대의 적지 않은 동무들이 입대전에는 물론이고 입대후에도 그에게서 혁명적교양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였던것이다.


이처럼 견실한 사람을 외눈깔 왕가라는 별명을 가진 김성도 등 종파분자들과 편협한 민족배타주의자들은 인테리의 동요성 등을 운운하면서 《민생단》감투를 씌워놓고 악독한 고문을 들이대다가 나중에는 그를 《군중심판장》에까지 내다세우게 되였다.


이때 나도 《민생단》에 몰려 중대장으로부터 대원으로 강직되여 《감시병》들이 붙어다니는 한심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곽찬영동무를 《군중심판》하던 날 류경수동무까지 《민생단》에 걸려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였다. 사실은 진짜《민생단》을 붙잡고 그놈들의 내막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들은 우리 중대 동무들이였는데 그 투쟁의 앞장에 섰던 우리가 《민생단》감투를 쓰게 되였으니 이런 통분할 노릇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민생단》조직을 적발하게 되였는가 하는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때 보초소에서 근무를 서던 경수동무는 자기가 살던 마을부근의 매봉이라는 산에 기여오른 적 3놈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래서 경수동무는 옆으로 우회하여가고 나는 산마루를 타고 가다가 순식간에 2놈을 쏘아눕혔다.


그러자 살아남은 놈은 질겁하여 내빼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놈을 사로잡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추격하였다. 그런데 그때 감옥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였던 나는 몸이 허약한 관계로 그놈을 따를 재주가 없었다. 그렇지만 경수동무는 잘 뛰였다. 그 일대의 지형에 밝은 그는 어느사이에 적보다 앞서 달려가서 그놈이 달아나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그러자 급해맞은 적이 다리밑에 들어가서 발악하는것을 우리가 붙잡게 되였다.


우리는 이놈을 심문하는 과정에 연길현농민협회 기관지《농민투쟁》의 인쇄소 송령감이 적들에게서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파괴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들어와서 책동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이와 같이 대렬내에 기여든 《민생단》을 처음 적발한 우리들이 도리여 《민생단》이라는 루명을 쓰게 되였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였다.


경수동무는 1933년 여름에도 《민생단》혐의에 걸렸던 일이 있다.


그때 내가 최춘국동무와 함께 국내 온성에 들어가서 악질적인 친일주구인 최순사놈을 처단하고 돌아오니 경수동무가 《민생단》혐의를 받고 놈들의 감시하에 있었다.


그 시기 우리 부대는 왕우구 북동에 있었다.


후에 들은 말에 의하면 날씨가 캄캄한 어느날 밤이였다고 한다.


림수산이란놈이 대원 두사람을 데리고와서 경수동무를 불러내갔다.


그리고 그놈은 경수동무를 데리고 남동고개를 넘으면서 무슨 나쁜 말을 들은것이 없는가고 따지였다.


경수동무는 얼마동안 생각하다가 이런 대답을 하였다.


《나는 공청조직과 상급에서 선전하는 말밖에 들은것이 없소. 혁명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였소.》


경수동무는 심문장소에 가서야 자기가 《민생단》혐의에 걸려들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놈들은 경수동무의 무장부터 해제하였던것이다.

그리고는 《민생단》에 든 내막을 밝히라고 강박하였다.


이런 봉변을 처음 당하게 된 경수동무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는 《민생단》에 든 일이 없다는 말만 계속 반복할수 없어 자기가 자라난 환경과 입대후의 생활을 쭉 이야기하고나서 《내가 무슨 조직에 들었다면 그것은 소년선봉대와 공청조직에 든것뿐이요. 나는 지금도 공청원이요. 이것도 <민생단>조직이요.》하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놈들은 할 말이 없었던지 당치도 않은 리유를 붙여가며 당장 죽일것처럼 한참 을러메다가 하루밤 여유를 줄테니 자면서 생각하라고 하였다.


자리에 누워서 이 궁리 저 궁리하던 경수동무는 자기 곁에 누워있는 놈들이 수상하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그놈들은 자는체하면서 경수동무의 동태를 살폈던것이다.


경수동무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소변보러 나가는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니나다를가 자기곁에서 자던 두놈이 뒤따라나와서 몸을 숨겨가며 감시하는것이였다.


경수동무의 머리는 복잡하였다. 그놈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뛰고싶은 마음도 치밀어올랐던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두놈쯤 제껴치우고 뛰기는 그리 어려울것 같지 않았던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잘못한것이 없는데야 무엇때문에 뛰겠는가, 죽어도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로서 조선혁명을 위해 싸운 사람이라는것을 끝까지 밝히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든든해진 그는 감시병들을 못본척하고 되돌아들어와서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경수동무를 《민생단》으로 몰 구실을 잡지 못하게 되였다. 놈들은 나어린 경수동무에게 공포심만 안기면 들구뛸것이라고 타산했는데 오히려 그는 태연자약하게 행동하였던것이다.


그 어떠한 구실도 잡지 못하게 된 놈들은 경수동무를 무한정 억류할수가 없어 중대로 돌려보내게 되였다. 그러나 2놈의 감시병은 계속 붙여놓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그 감시병놈들을 당장 쫓아버리고말았다.


이런 일을 알고있는 나는 경수동무가 또다시 《민생단》에 걸려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통분해하지 않을수 없었다.


류경수동무는 1933년 여름에 처음 《민생단》으로 몰렸을 때에는 놈들의 심문에 대응하는 정도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후인 이때에는 오직 그이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견결히 싸웠다.


놈들이 곽찬영동무를 학살하기 위해 《군중심판장》에 내다세우고 터무니없는 《죄명》을 들씌우자 이를 선참으로 반대하여나선 사람은 류경수동무였다.


그는 《군중심판장》에 끌려나온 인민들과 유격대원들에게 이렇게 웨쳤다.


《이자리에 모인 사람들가운데 곽동지의 혁명적교양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군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의심과 불안에 싸인 군중들의 마음을 속시원히 틔워주는 경수동무의 말은 계속되였다.


《만일 곽동지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태평구일대의 동무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주고 특히 김일성장군님께서 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시자 우리들이 손에 총을 잡고 장군님을 따라나서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었겠습니까?


나는 곽동지를 <민생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의심스럽습니다.》


이렇게 되자 《심판장》에 모였던 군중들은 일시에 들고일어나게 되였다.


그러자 종파분자들과 편협한 민족배타주의자들은 군중의 이 기세에 눌리여 《심판》을 일단 중지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놈들은 그대신 곽동무를 변호하여나섰던 류경수동무를 《민생단》으로 몰아 구금하였다. 그리고 매일같이 악독한 고문을 들이댔다.


그러나 경수동무는 자기의 혁명적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김성도의 졸개 한놈은 류경수동무를 《심문》하려다가 도리여 그의 맹렬한 반문에 진땀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당신은 무엇때문에 목숨을 내걸고 일제와 싸우는 사람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죽이려고 하는가. 당신은 왜 혁명하겠다고 나선 곽동지를 <민생단>으로 규정하는가, <인테리의 동요성>을 운운하는데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지난해 <동기토벌>때 곽동지가 유격대원들을 고무하며 희생적으로 싸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곽동지로부터 계속 혁명적교양을 받은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당신도 곽동지의 강의를 받지 않았는가, 우선 이 문제부터 말해보라.》


류경수동무를 《심문》하던 놈은 그의 이 날카로운 반문에 질겁하여 《그래 삼손이는 끝까지 <민생단>을 변호할 작정인가, 어디 두고보자.》고 고함을 지르며 나가버렸다.


저주로운 종파분자들이 제놈들의 만행을 이렇게 정면으로 들고일어나서 폭로하는 경수동무를 가만히 둘리 없었다.


놈들은 그다음부터는 악독한 고문으로 그에게서 《내가 민생단이요.》하는 《항복》을 받으려고 더욱 미쳐날뛰였다. 그러니 류경수동무가 얼마나 혹독한 악형을 당했겠는가.


그러나 그 어떤 악형도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께 자기의 모든것을 의탁하고 그이를 철석같이 믿고있는 류경수동무의 마음을 굽힐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를 꼭 구원해주실것이다.) 그의 마음은 이 하나의 확신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추호의 동요도 모르고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끝까지 놈들과 맞서싸웠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온갖 우여곡절을 명철하게 판단하시고 우리들을 준비시켜주시지 않았더라면 정신적시련이라고는 전혀 겪어보지 못한 우리가 어떤 화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놈들은 공개적으로 조선사람이 열이면 아홉은 《민생단》이라고 떠들어대는 판이니 과연 동만에서 싸우던 조선혁명가들치고 《민생단》으로 몰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였겠는가? 모두 침울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격이 치밀어오르군 한다.


바로 이 험악한 사태를 수습하시고 조선혁명을 구원하여주신분은 영명한 우리의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제1차북만원정을 끝마치고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일신상의 위험을 생각지 않으시고 다홍왜회의와 요영구회의에서 놈들의 죄악을 전면적으로 폭로하시고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였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 《이제는 살았다, 조선혁명은 승리한다!》고 환성을 올리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고 보다 광활한 지대에 진출하여 혁명의 씨앗을 뿌리며 항일무장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할데 대한 그이의 방침을 전달받았을 때 우리는 온몸에 새로운 혁명적열정과 힘이 북받쳐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고있는 크나큰 영광과 무한한 긍지를 안고 그이의 가르치심따라 광활한 지대에로, 국내에로 투쟁무대를 힘차게 넓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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