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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젖빠는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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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10-28 09:2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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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빠는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우라.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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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사이 AD 50년 경에 써진 것으로 알려진 [도마복음서]를 읽으며 깊은 사색을 하곤 한다. 내가 [도마복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으로 채색된 4복음서에 비해 도마복음서에는 역사적인 예수의 참모습이 있는 그대로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대기독교회는 역사적인 예수를 솔직하게 전파하기 보다는  예수를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그리스도)로 만들어 곧 닥칠 종말의 때에 재림할 구세주로 만드는데 급급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공관복음서(마가, 마태, 누가)에 묘사된 예수는 사실상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으로 채색된 지극히 비역사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에 반해 [도마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는 전혀 자신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종말의 때>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도마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들과 함께 도를 닦는 도반들을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4복음서에 묘사된 대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단지 도반들과 함께 지내며 지금 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들이 안고 있던 대다수 사람들의 가난의 문제, 질병의 문제, 주택문제, 유대교의 부패문제, 로마식민지 지배문제, 등 구체적인 인간의 생로병사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문제들, 등 역사적인 실제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도마복음서]에는 예수의 살아있는 말씀(sayings)만 기록되어 있고 그 말씀들도 아주 간결하고 보편적이며 역사적이고 구체적이다. 왜곡되고 채색된 부분이 별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처음 도마복음서의 말씀들을 읽으면 참으로 당황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여러 해설자들의 해석을 들으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도마복음서를 이해하는데 나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학자는 도올 김영옥선생이다. 그는 예수를 <유대인>으로 보지 않고 <갈리리 사람>으로 보고 있으며 예수를 <서양인>으로 보지 않고 <동양인>으로 보고 있다. 동양사상의 관점으로 도마복음서를 해석하는 도올선생의 해석학이 나에게 도마복음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도마복음서를 이해하는 문제를 넘어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종교, 사상,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도마복음서 114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2절의 내용을 주로 토론해 보려고 한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가 젖을 빠는 어린이들을 보시고 그의 도반들에게 말하되 이들 어린이들과 같아야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의 도반들이 예수에게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어린이가 되어야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겠나이까?” 하고 물었다.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들이 둘을 하나되게 하고(make the two one), 안을 겉같이 만들고(make the inner as the outer),  겉을 안같이 만들며, 위를 아래와 같이 만들고(make the upper as the lower), 또한,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make the male and the female into a single one) 남성이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 여성이 아니게 되게 만들고, 눈을 눈의 자리에 있게 하고 손을 손의 자리에 있게 하며, 발을 발의 자리에 있게 하고 몸의 영상을 제자리에 있게 하면, 너희들이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여기 도마복음 22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젖빠는 어린이들에게는 <이원론>의 개념이 없다. 어린이의 세계는 융합된 원초적인 하나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 우리는 음과 양, 빛과 어두움, 신과 인간,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 선과 악, 낮과 밤, 여자와 남자, 등 둘로 갈라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둘이 없다. 하나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스님들이 수도하여 해탈하게 되면 그 경지가 바로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코리아의 조상들은 처음부터 이원론을 배격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천지인 합일사상>을 믿었다. 우리 조상들은 인간이 바로 신(인내천)이라고 생각했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계속하여 도반들에게 자신들 속에 있는 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음껏 발휘할 것을 권고했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나라(천국)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반들 자신 속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도반들에게 구세주의 옷자락이나 붙들고 없는 천당에 가려고 헛수고할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신적인 잠재력을 발휘하여 여기서 지금 나라(천국)를 건설할 것을 권고하였다. 

둘째로, 젖빠는 어린애들에게는 속과 겉이 따로 없이 하나이다. 속으로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선한 모습을 한다거나 속으로는 음탕한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점잖은체 하는 이중인격자들이 많다. 위선적인 종교인들과 정치인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이중적 모습을 경고한 것이다.

세째로, 어린이들에게는 위와 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는 양반과 쌍놈이 존재하지 않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가 구별되지 않는다. 계급의 문제를 해결하고 평등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멧세지가 여기에 들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엄연히 높은 자와 낮은자, 부자와 가난한자, 유식자와 무식자, 높은 관리와 평민들이 존재하는데 이 문제는 놔두고 나라(천국)에나 가겠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도마복음의 멧세지이다. 이러한 인간의 위와 아래를 규정하는 원인을 <생산수단>의 사유화로 보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금하고 새로운 사회제도를 구상한 것이 사회주의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제도하에서는 위를 아래와 같이 만들 수가 없다.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리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히 나가 천당에 가려고 기도를 해도 갈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위를 아래와 같이, 아래를 위와 같이 만들어 평등한 사회를 먼저 이땅에 지금 만들어야만 나라(천국)에 갈수 있다는 것이 도마복음의 기본 메세지이다.

네째로, 어린이들에게는 남자와 여자의 개념이 없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창조한 최초의 아담은 원초적 인간으로서 남녀의 개념이 없었다. 아담이 외로워 만들었다는 이브의  타락 후 남녀의 구별이 생겨난 것으로 창세기의 신화는묘사하고 있다. 산 속에서 수행하는 남녀 승녀들의 독신주의나 신부들이나 수녀들의 독신주의를 생각해보라. 참으로 어려운 수행이다. 욕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수행으로 극복하는 경지를 우리는 존중해야한다. 승녀들이나 신부들, 수녀들을 남자나 여자로 보고 정욕을 품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자가 남자되지 않고 여자가 여자되지 않은 남녀가 하나로 된 경지를 우리는 깊이 존중해야한다. 수도승의 금욕주의가 바로 이러한 경지라고 생각한다.

다섯째로, 눈있는 자리에 눈을 만들고, 손있는 자리에 손을 만들고, 발있는 자리에 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모습이 있는 자리에 전체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나쁜 짓이나 하려고 눈을 굴리고 남을 누르고 돈이나 더 벌려고 눈을 돌리던 그 욕심의 눈을 버리고 새로운 눈을 만들어 선행을 행해야하며,  도둑질하거나 약한 여자들을 더듬던 못된 손을 잘라내고 새로운 선한 손을 만들며, 나쁜 짓이나 하러 돌아다니던 발을 잘라내고 새로운 좋은 일을 하러 다니는 발을 만들며, 그리하여 사람 모습전체의 영상이 도둑놈, 착취자, 욕심쟁이, 강도, 강간자, 전쟁광에서 선량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자비로운 영상을 지닌 모습으로 변하면, 즉 젖빠는 어린아이처럼 되면 너희들은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도마는 <천국>이나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말 대신에 <나라(kingdom)>라는 말을 쓰고 있다. 지배 영역을 말할 뿐이다. 어느 사회나 인간이 변해야 인간이 다스릴 수 있는 영역, 새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인간이 인격적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자아, 새로운 영상을 지닌 모습으로 변화될 때 인간이 살만한 이상적인 나라가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위 도마복음 22장이 말하고자 하는 아주 보편적인 멧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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