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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36]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5. 력사의 단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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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9-07 10:4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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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6]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5. 력사의 단죄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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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36 회)

제 7 장

5. 력사의 단죄

 

일본인 아지자와, 렌꼬살인사건은 이렇게 되여 결속되였다.

체포된 츄홍따이는 웅카라에게 인계되였다.

웅카라의 활약으로 방코크에 먼저 나와 챠오프라야강의 떠다니는 수상려인숙에 숨어있으면서 27일부터 방코크에서 진행되는 《강제로동에 관한 아시아태평양지역토론회》라는 국제회의장을 노리고있던 판따시웅과 왕선홍도 체포되였다.

도꾜로 돌아간 무라야마의 일본수사팀은 경찰청의 사건심의위원회에서 수사실패의 책임을 지고 강한 징계처벌을 받았다.

무라야마와 사다께는 제대처리되고 그 후임과장으로는 가니다니형사가 임명되였다.

이마무라에 대한 재판은 그때로부터 거의 한달이 지난 11월 20일부터 도꾜지방법원에서 진행되였다.

재판 역시 비밀리에 진행되다보니 방청석을 채운것은 전부 경찰과 검찰관계자들이였다.

근 한달동안 취조와 예심을 거치면서 아끼꼬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과 사건의 내막을 폭로하지 못하고 붙잡힌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던 이마무라는 어느덧 심중의 안정을 찾은듯 퍼그나 침착하고 의연한 자세였다.

그러나 여전히 사건의 내막을 숨기고 비밀리에 열린 재판인지라 그 눈빛에는 타번지는 분노가 응고되여 발산하는 린광과 같은 빛이 굳어져있었다.

검사는 거의 한시간에 걸친 기소문에서 니시하라의 칸쿤학살만행과 도미꼬의 아끼꼬살인문제는 전혀 거론조차 않고 이마무라와 츄홍따이를 지난 전쟁피해에 대한 과대망상적인 환각에 빠져 살인을 저지른 테로범으로 몰아가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했다.

《… 보는바처럼 오늘날 테로리즘의 야만적인 리유는 가해자들이 자기의 목적을 육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전하고있다는 그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천황>과 <천황>가문을 노리고 자행된 이 야만적인 테로사건의 범인들은 온 국민의 저주와 타매를 받아 응당한자들이라고 규정하면서 본 법정이 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을 적용할것을 제기합니다.》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는 미쯔오가 사전에 파악이 있어 이마무라를 몇번이나 면회하며 받아들이게 한 비교적 진보적인 변호사였다. 나이도 지숙했지만 론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였다.

《검사는 이들이 행한 니시하라, 도미꼬에 대한 응징을 살인과 테로로 묘사하고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나는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조선의 안중근이 할빈역두에서 이등박문을 격살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일본사람들은 안중근을 테로범이라고 력설하고있습니다.

<합병>당한 나라의 국민이 제 나라 추밀원 의장을 쏘아죽였기에 테로라는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테로인가 아닌가 하는것은 테로를 당한 일본이 규정할 문제가 아니라 테로를 한 조선이 규정해야 성립이 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안중근의 기념당을 세워 그의 애국충정을 기념하고 이등박문을 격살하는 영화를 만들자 일본은 그런 테로분자를 어떻게 내세우고 기념할수 있는가고 항의합니다. 일본은 이런 눈으로 세계를 봅니다.

조선을 식민지화한것을 사죄했다면 그 식민지화했던 장본인은 응당 그 잘못의 범인이 되는것입니다. 그 범인을 죽인것이 어떻게 테로이겠습니까?

조선사람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침략의 괴수를 처단한 영웅으로, 애국자로 칭송하는 사람을 우리 일본이 아무리 테로범이라 떠들어야 그것은 공허한 웨침으로 끝날뿐입니다.》

변호사는 추연한 눈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건은 바로 그와 같은 시점에서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자기 부모를 교살한, 자기 애인을 학살한 원쑤에 대한 절규와 울부짖음에 돌아오는것이 비웃음뿐이라면,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는자들의 죽음을 무릅쓴 저항이라면, 꼭같은 보복의 폭력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테로이겠습니까.》

너무도 분석이 명석하고 론리가 당당한 변호사의 주장에 재판정안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재판장이 이마무라에게 물었다.

《피고도 변호사와 같은 주장입니까?》

이마무라는 눈길을 들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재판장이 이마무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고에게 언권을 줍니다.》

이마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막은 나무턱을 짚고 섰다. 숱한 눈길이 자기에게 쏠린 재판정을 둘러보고나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먼저 이번에 나와 아시아 각국 동료들이 행한 살인악귀인 니시하라 겐따로가문에 대한 징벌이 전쟁범죄의 원흉 <천황>에 대한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의 판결집행이였다는것을 부언하고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바로 아시아인민들에게 이름할수 없는 피해를 가져다준 전쟁원흉 <천황>을 작년에 열린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2000년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에서 선고한 유죄판결대로 징벌했을뿐입니다.》

《<천황>에 대한 응징을 그 가문에 대한 살인으로 대체했다는것인가?》

《니시하라와 도미꼬에 대한 처형은 대체가 아니라 <천황>에 대한 직접적인 징벌과 골수에까지 국수주의가 사무친 두 살인악마에 대한 복수의 의미를 함께 담고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장은 표현을 정확히 하기 바랍니다.

살인이 아니라 징벌이고 처형입니다.》

재판장은 이마무라를 쏘아보며 종을 흔들었다.

《피고는 지금 근거없는 자료들을 가지고 고인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고있다.》

《모욕이라구요? 죽은 그자들이 어떤자들인지 재판장은 이미 제출된 저의 신고서를 통해 잘 알것입니다. 타국민에 대한 잔인한 살륙을 도락으로 삼은 니시하라 겐따로는 인도네시아의 쟈바에서, 먄마의 송산과 메꾸데라, 타이의 칸쿤에서 수많은 애국자들과 아무 죄없는 녀성들과 어린이들을 가장 악독한 방법으로 잔인무도하게 학살한 전범자로서 이미전에 력사의 심판대에 올랐어야 할 살인마입니다.

뿐아니라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리사로서 현 일본극우익의 악랄한 궤변가인 도미꼬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청산과 평화와 민주사회건설을 주장했다고 하여 우익깡패들과 공모하여 제 애인을 나의 면전에서 무참하게 학살한 악녀입니다.》

이마무라의 눈은 불을 담은듯 이글거리고 목소리는 주체하기 힘든 분노의 격정으로 떨렸다.

《처음 나는 동료들과 니시하라와 도미꼬를 그 죄악의 근원지이고 원점인 <신성>의 중심,  이 도꾜 지요다구의 신궁, <천황>의 궁성앞에 끌어다 공개적으로 처형하려 했습니다.》

《무엇, 궁성앞에서?! …》

재판장은 놀라며 다우쳐물었다.

《그렇다면 왜 거기서 못 죽이고 타이로 갔는가?》

《츄홍따이를 죽이려던 니시하라의 음모가 실패하자 도미꼬가 살인업자들을 끌고 타이의 니시하라에게 간다는것을 알게 되였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두 년놈을 니시하라가 타이인민을 학살한 그 현장에서 응징하기로 결정하고 도미꼬를 뒤따라 방코크로 갔던것입니다.

그것이 10월 3일이였습니다. 우리는 10월 5일에 놈들을 징벌할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츄홍따이와 동료들에게 정확한 결행날자는 10월 8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면 3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일을 망치려는가며 그들은 무엇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가고 나에게 따져물었습니다. 나는 10월 2일 도미꼬가 타이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하느님이 징벌의 날을 골라준다고 생각했던 그 사연을 터놓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모두는 더더욱 분노와 격분에 떨며 한결같이 응해나섰습니다.》

《그 사연이란 무엇인가?!》

영문을 모르는 재판장은 두눈을 크게 뜨며 거듭 물었다.

《왜 반드시 10월 8일이여야 했는가?》

《거기에 더 큰 력사의 업보가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이마무라는 강개한 어조로 이어나갔다.

《위안부사건의 맥을 따라 올라가면 일본의 근세사에 있어 력사와 미래에 얼굴을 들수 없는, 전인류적죄악의 응어리가 아직 그 한을 못 풀고 아픔을 토해내며 분노하고 두눈 부릅뜨고 소리치는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바로 일본이 행한 조선의 명성황후에 대한 암살사건입니다.

조선의 궁성으로 쳐들어가 그 어떤 외국사절과도 발을 드리우고 대면했던 한 나라 국모의 가슴을 밟고 칼로 란장을 쳤습니다.

모여서서 희희덕거리며 숨넘어가는 국모의 옷을 벗기고 희롱하고 부랑자 하나는 다 지켜보는 속에 릉욕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멍석에 말아 장작우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서는 그 뼈를 련못에 던졌습니다. 이것이 유사이전의 석기시대도 아닌 바로 백년전 일본이 세계앞에 벌거벗고 칼부림하며 저지른 국가적추행입니다. 이 얼마나 얼굴 못 들 치욕입니까?

일본의 남아들의 생식기는 바로 이런 치욕으로 썩은 덩어리입니다.》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적이 깃들었다.

이 비밀재판정에 모인 인간들은 그래도 일정하게나마 지성을 지녔다는 사람들이여서 그들 누구나 백년전 조선의 명성황후암살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두고 일본사람이 저처럼 통렬히 규탄하는것은 처음이였다. 이마무라의 그 단죄에는 아, 우리 일본이 그런 치욕스런 나라였는가 하는 환멸과 자괴감에 모두가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처절한데가 있었다.

이마무라는 계속했다.

《명성황후에 대한 암살은 우리 일본인들에게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씻을길 없는 수치와 오욕을 락인찍어준 최악의 더러운 사건이였습니다. 일본의 인간적인 모든것을 진탕에 처박은 치욕중의 치욕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 국민은 어떠했습니까? 그 살인자들을 하나같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국제적정의, 인간적량심과 만인고유의 도덕적륜리를 무시하고도 만세 부르며 환호할수 있는 그 몰지각, 야수와 진배없는 원시적도덕감각에서 바로 그후 조선의 20만 위안부를 유린하는 만행이 또 벌어졌고 오늘도 그것을 <화장실력사>라고 모욕하고 <매춘행위>라고 위조하고있는것입니다. 생각하면 자다가도 수치감에 몸이 떨리는 일본의 이 죄악, 이 죄악을 다 모아 우리는 바로 그날에 그 년놈들을 처형했던것입니다.》

《저런…》하는 깨달음과 탄성과 비명비슷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장내에 터져올랐다.

《그런데도 일본은 오늘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있습니다.

그처럼 아시아 각국이 항의하고 항의해도 저돌적으로 강행되는 일본지도자들의 진쟈참배, 끝없이 번복되는 사죄와 망언의 유희, 이제 와서 아시아 각국은 항의이상의 무엇을 할수 있겠느냐며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고있습니다.》

이마무라는 몇 안되는 방청객들을 둘러보며 계속했다.

《난 조선사람들, 중국, 필리핀, 아시아사람들모두에게 말하고싶습니다. 수천년력사국이 설마 망하겠느냐는 안일한 인식에 젖어있다가 끝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3. 1봉기, 만주사변, 지나사변을 겪으며 수백수천만 무고한 민중의 죽음을 자초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오늘날 당신들은 재침의 독진이 넘쳐나는 일본군국주의의 몸뚱이를 보며 어쩌나어쩌나 발만 구르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서라도 아시아 각국의 아우성을 칼로 합쳐들고 깨달을줄 모르는 우리 일본의 고름이 가득찬 우둔을 찌르고싶었습니다.

조선의 황후와 꼭같이 미찌꼬황비가 가슴을 밟혀 쓰러지고 칼로 란자당하고 벗기우고 릉욕을 당하고 황태자비가 강간을 당하고 수십수백만의 일본녀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짓밟혀봐야… 그렇게 겪어야만이 정신을 차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판장이 세차게 종을 울렸다.

《지금 피고는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독설을 내뱉고있다. 그런 발언을 계속하면 재판을 중지할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습니다. 방금 내가 명성황후암살사건을 말할 때에는 눈섭 하나 까딱 안하던 재판장이 우리 황비의 참상으로 사태를 바꾸니 경악하듯 이 당신들로 인해 겪은 타민족의 그 뼈저리는 아픔과 분노를 당신들이 과연 아는가?》

재판장은 이발을 사려물며 물었다.

《그래서 그 보복으로 피고는 도미꼬씨를 그처럼 륜간하고 죽였는가?》

《?! …》

이마무라는 어이없어 재판장을 쳐다보았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아무리 피에 맺힌 복수라도 우리는 똑같은 짐승이 되여 그런 너절한짓은 하지 않는다.》

재판장은 격분하여 소리쳤다.

《거짓말말아! 살해된 도미꼬의 부검결과 혼합정액이 발견됐는데도 부인하겠는가. 타이의 츄홍따이, 필리핀의 판따시웅, 중국의 왕선홍과 피고가 야합하여…》

이마무라는 단호한 어조로 재판장의 말을 분지르며 부르짖었다.

《듣기도 추하다. 뜻을 같이한 아시아 각국의 세사람은 바로 그 나라 민심의, 량심의 대변자들이다. 그들의 장한 기개를 당신은 그런 황당하고 너절한 궤변으로 우롱하지 말라.》

이때 변호사가 일어났다.

《재판장! 그에 대해서는 제가 재판정으로 떠나오기 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에 의하면 그 정액은 도미꼬를 죽인 범인들이 아니라 그의 세명의 경호원들의것으로 확인되였습니다.》

《뭐, 뭐라구?! …》

재판장은 너무나 뜻밖의 사실에 아연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판장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것입니다.》

《허 참.》

《저게 무슨 꼴이야!》

방청석에서 혀를 차는 조소와 비난의 소리들이 일시에 튀여나왔다. 급해맞은 재판장은 다시 종을 울리며 서둘러 재판의 방향을 돌렸다.

《피고는 니시하라와 도미꼬에 대한 살인을 살인이 아니라 작년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의 유죄판결의 집행이라고 하는데 그 재판은 세계 각국의 민간단체들이 모여 진행한 사이비법정으로서 법적효력과 유효한 자격을 못 가진다.》

이마무라는 어이없어 머리를 들며 분노하여 소리쳤다.

《재판장! 국가란 무엇이며 법이란 무엇인가?

어떤 국가나 그 국가의 법은 만인의 도덕적정의아래서만 자기 자리를 찾을수 있는 하나의 기구와 규범에 지나지 않는다.

<천황>가문이며 악독한 국수주의자인 니시하라와 도미꼬에 대한 응징은 도꾜전범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응징됐어야 할 전범 히로히또<천황>에 대해 전세계 40여개의 검사단이 다시 모여 기소하고 선고한 유죄판결의 직접적인 심판이며 조선의 명성황후암살에 대한 꼭같은 류형의 보복이다.

아울러 사죄보상과 력사청산의 구심적역할을 해야 할 응당한 본분이 있으면서도 이에 아무런 량심적, 도덕적책무도 느끼지 않는 현 일본정부에 대한 직접적심판이다.》

분노하여 웨치듯 부르짖던 이마무라는 격동된 흥분을 늦추며 잠시 공간을 두었다가 계속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몇해전 오끼나와에서 일어난 미군에 의한 녀중생성폭행사건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때 온 오끼나와, 전 일본이 들고일어나 미군을 단죄했습니다.

저는 그날에 그처럼 분노했던 일본의 국민들, 회사원, 공무원, 교원들에게 묻고싶습니다. 반세기전 바다건너 조선에서 바로 그렇게 한두명이 아닌 20만의 꽃같은 처녀들이 논밭에서,  우물가에서, 집마당과 길가에서 닥치는대로 잡혀가 수백만 <황군>에게 집단릉욕당하고 강간당했습니다.

녀중학생추행사건당시 온 일본에 일어번지는 분노의 규탄에 당황한 당시 일본주재 몬데일대사는 그 세명의 미군을 두고 말했습니다. <쓰리 애니멀> (세마리의 짐승)이라고… 이렇게 사죄해서야 사태가 가라앉았습니다.

그럼 20만의 녀성들을 끌어다 집단륜간을 저지른 그 수백만의 <황군>들 특히 그를 승인하고 지령한 일본군부는, <천황>자신은 무엇이겠습니까? <애니멀 오야붕>(짐승들의 두목)이 아니겠습니까?》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는 묵중한 시선으로 무라야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증인인 이번 사건의 수사책임자 무라야마씨의 발언을 요구합니다.》

재판장이 무라야마를 지정했다.

무라야마는 천천히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만큼 장내모두가 저으기 긴장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경찰관의 한사람으로서 저는 나라앞에 지닌 공인의 책무를 다하고저 사건해결에 전력투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사가 마지막에 와서 그처럼 극적으로 뒤집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무라야마는 페장깊이 모두고있던 숨을 길게 내쉬며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침착하게 머리를 들었다.

《살인범을 잡으려다 오히려 전범자비호죄로 체포당하고만 우리 일본수사팀의 비참한 결말, 그것은 오늘 력사에 진 자기 죄를 똑바로 반성하지않고 세계앞에 죄인으로 묶여 서있는 우리 일본의 참담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라야마는 방청석은 물론 검사와 재판장, 배심원들을 둘러보며 담담한 어조로 계속했다.

《이번 사건의 수사 전 과정을 통하여 내가 찾은 결론은 이 사건의 범인들에게 과연 죄를 물을수 있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지난 기간 살인이라고는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아오던 아시아 각국의 순진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되여 이런 엄청난 사건을 강행했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묻고싶습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 가슴터지는 변을 당하고 그 아픔을 아무리 호소하고 동정과 지원의 강렬한 메쎄지를 던지고던져도 돌아오는것이 랭소와 비웃음밖에 없다면 그 메쎄지를 전달할수 있는 최후의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들의 손으로 직접적인 보복을 행하는것, 이것밖에 또 어떤 방도가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런것입니다.

이마무라씨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결국 우리 일본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끼친 죄악의 산 력사를 체험하는 과정이였습니다.

40여년의 식민지, 반세기가 넘는 분렬의 아픔, 오늘 조선민족이 겪는 이 모든 비극이 우리 일본에 의해 시작된것이라는것을 깨닫는 과정이였습니다.

다시는 일본이 전쟁의 길로 가서는 안된다는것을 통감하는 과정이였습니다.

일본은 조선에 피와 눈물과 치욕만을 가져다주었던 과거를 진정으로 깨끗이 사죄배상하고 다시는 그런 전쟁의 길로 가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만일 력사의 이 정의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 일본에 통절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것을 나는 부언합니다.》

무라야마의 옆에 앉았던 사다께가 일어났다.

《저도 증인의 한사람으로서 이 자리에서 말할것이 있습니다.》

사다께는 역시 그답게 현실적이고 직선적인 발언을 했다.

《이 사건을 끝까지 숨기고 미봉하려는 당국의 조치로 오늘 이 재판에 국내기자들은 물론 외국기자들이 한사람도 참가하지 못했지만 난 정의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싶습니다.

지금 핵무기는 안보리사회상임리사국 다섯개 국가만 가지고 다른 나라들은 절대로 가져선 안된다고 되여있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그건 핵무기를 가진 다섯명의 귀족이 창과 보습밖에 없는 200명의 농노들을 저들이 필요한 때 죽이고 살리고 롱간하자는 약육강식의 론리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 아닙니까?

안할 말루 조선사람들 원자탄 같은것 일찌감치 가지구있었더라면 아관파천이요, 명성황후암살이요, <한일합병>, 20만 위안부 같은 비극이 애당초 생겼겠습니까?

일본이 덤벼들구, 미국이 덤벼들구, 청나라, 로씨야가 달려들구… 총을 들고 달려드는 강도를 호미와 낫으로 막을수 없다는것을 잘 알기에 자기의 존엄을 지키고 식민지약소국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고 대국들과 당당히 맞서나가고있습니다.

나는 우리 일본에 진심으로 권고하고싶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야욕이 수그러들지 않는 한 오늘의 동북아시아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진정한 평화가 깃들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던 11월 23일은 일본《황궁》의 천신제사의 날이였다.

이날 저녁 《천황》부처는 력대 일본《천황》들과 다름없이 대신들과 신관을 거느리고 신전앞에 피운 장작불앞에서 직접 신상제제사를 지냈다.

이 신상제가 끝나고 《천황》이 궁으로 들어간 뒤 궁내청 장관은 황족회의를 열고 니시하라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했다.

이틀후에 다시 열린 법정의 오후 첫 시간에 궁내청 장관이 재판에 나왔다.

그는 황족회의에서 합의된 결정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번 니시하라 겐따로, 도미꼬의 불미스런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궁내청은 황태자비가 황족가문에 들어온 그 시각으로 이미 평민 니시하라, 도미꼬와의 모든 가족적, 혈연적련계를 단절하였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평민 니시하라 겐따로와 도미꼬는 황족과 아무런 신분적관계가 없다.

                평성 ×년 11월 23일 도꾜 지요다구 황실 궁내청》

궁내청 장관이 황황히 이 결정을 발표하고 퇴장한 뒤 재판장이 일어나 도꾜지방재판소의 결정을 랑독했다.

《도꾜지방재판소는 궁내청의 결정에 류의한다. 따라서 니시하라 겐따로와 도미꼬의 살해사건은 황족에 대한 테로행위가 될수 없으며 평민 니시하라 겐따로와 도미꼬에 대한 단순살인사건임을 선언한다.》

변호사가 일어났다.

《그럼 첫날 검사의 기소문에서 황족에 대한 테로행위로 단죄한것은 잘못된것이란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이번 살인사건을 황족에 대한 테로행위로 잘못 해석한데서 가져온 인식착오였습니다.

정부가 그런 해석을 하게 된것은 범인들이 평민에 불과한 그들을 황족으로 추세워 성스러운 교살을 선언했기때문입니다.》

이마무라는 웃고말았다.

황궁의 궁내청은 그야말로 재빠르게 앞손뒤손 뒤집으며 선손을 쓰는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공개되는 경우 내외에 일어날 여론의 파문을 미리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사건을 은페하기로 했던 내각의 결정보다 더 깊이 들어가 황궁과 사건자체를 단절하는 대응책을 세운것이다.

재판장은 시간을 더 끌수록 자신이 궁지에 몰린다고 생각했는지 급급히 물었다.

《피고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

이마무라는 천천히 일어나 앞을 막은 경계탁을 두손으로 짚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우리 일본을 사랑합니다. 령봉 후지산, 스모와 가부끼, 만요슈의 이 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오늘 새 천년, 새 세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현실을 놓고 저는 모대기고 고민했습니다. 물론 일본의 미래에는 과거력사의 연장선에서 근사하게 추리할수 있는 가능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차의 미래속에는 일본이 반드시 계선을 긋고 넘어가지 않으면 엄청난 우환으로 빚어질 우주의 검은 구멍과 같은 미지의 암흑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과거청산입니다.

일본의 과거청산은 그가 품고있는 독으로 해서 오늘날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은 반드시 일본을 새로운 재난에로 끌고갈 악성종양이 될것입니다. 나는 일본의 정치가들이 이것을 일본의 앞날을 위한 절박한 과제로 새겨안기를 다시금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고싶은것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국민 매 개인의 량심의 각성으로 이루어진다는것입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노력이 매 일본인의 가슴에 살아있지않다면 그것은 몇번의 대중집회로 끝나버릴것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는 매 개인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일본국민모두에게 호소합니다.

국민 매 개인의 가슴에 전쟁을 반대하고 아시아의 화목과 평화를 지향하는 진정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 일본에, 당신들의 매 가정에 미래는 없을것입니다.》

이마무라의 절절한 그 호소를 들으며 무라야마는 사무쳐오는 한 일본청년의 애국으로 떨리는 격정에 심장이 찌르는듯 아파옴을 어쩔수 없었다.

비밀재판은 끝났다.

이마무라는 18년형을 받고 도찌기감옥으로 이송되였다.

재판이 끝나고 돌아오며 무라야마는 오래도록 생각해오던 자기 인생의 새 길을 단호하게 확정했다.

집에 들어서는 길로 무라야마는 도꼬노마에서 그의 조상들이, 아버지가 그처럼 대대로 가보로 전해내려오며 그에게 물려준 그 칼을 내리워 세동강을 내여 오물더미에 내다버렸다.

집안의 치욕의 력사를 끝장내는 의미에서 아들 겐조도 그 자리에 함께 데리고 나갔다.

며칠후 무라야마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에 접했다. 마에다가 새로 맞은 부인이 바로 자기를 떠나간 요꼬다라는 사실이였다. 마에다가 그처럼 반해 어쩔줄 모를 정도로 훌륭한 녀자가 요꼬다였단 말인가.

무라야마는 그처럼 순진하고 착한 안해 요꼬다가 자기를 떠나며 했던 말이 새삼스레 되새겨졌다.

《자기밖에 모르는 당신, 함께 사는 사람의 아픔이나 감정 같은것은 조금도 가슴에 없는 당신, 늘 위압적이고 독선적인 당신과 만나 문제를 해결하자들면 분명 접촉불량이 생기거나 방전이 일어나 소동만 커지겠지요. …》

무라야마는 아시아 각국과의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의 마찰에는 자기와 안해가 갈라지게 됐던 그 근본원인과 꼭같은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라는 지구의 한 지역에서 수천년을 함께 살아가는 여러 민족의 아픔과 력사적감정 같은것은 안중에 없이 오직 자기의 편의와 리익, 자기중심의 오만과 독선에 절어있는 일본이 언제면 인류의 량심에 부합되는 바른 길을 선택하게 될것인가.

무라야마는 이번 수사를 계기로 경찰복을 벗으면서야 요꼬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끼게 된것이 가슴에 맺혀졌다.

그 참신하고 순진한 안해, 이제 와서야 그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요꼬다, 하지만 때는 늦은것이다.

운명은 무라야마에게 모든것의 새 시작을 계기지어주는듯싶었다.

이마무라가 감옥에 간 이후 세이스께로인의 병증세는 더 악화되였다.

《저 개, 저놈 니시하라!》

죽음의 망령을 뒤쫓기라도 하듯 손가락질하며 로인은 끝없이 시내로 나가 헤매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거리의 뒤골목에서 로인은 끝내 어느 놈의 칼에 맞아 한많은 불운의 생을 고했다.

틀림없이 니시하라 앞잡이들의짓일것이였다.

이마무라의 가족과 요시노리, 고바야시 등 옛 중대원들이 모여 로인의 유해를 먼 남쪽의 고향 사쯔마로 운반해 내려갔다. 저승에서나마 로인의 명복을 빌며 해볕이 잘 드는 바다가등성이에 그를 묻었다.

감옥에서 어느덧 14년, 이 긴긴 세월 이마무라는 아끼꼬의 사진 한장을 품고 살았다.

기또라고분 3차공개로 아스까촌을 찾아가던 그날 새벽 렬차에서 내리자 바람으로 오사까만을 찾았을 때 바다가에서 찍었던 사진이였다.

새벽바다가의 모래불에 무릎을 한옆으로 모으고 앉은 아끼꼬를 뒤에서 껴안고 활짝 웃는 이마무라, 밝아오는 새날의 노을빛이 선연한 하늘과 바다의 그윽한 진남빛이 한빛으로 어울린 속에 티없이 웃고있는 두 청춘.

이마무라는 사진속의 아끼꼬와 속삭이며 그때처럼 교정을 걷고 별빛 령롱한 시내의 밤길을 걸었다.

구름바다를 날아가던 동남아시아에로의 먼 려행길도, 라후족의 산간마을길도 함께 걸었다.

가슴에 늘 큰 구멍이 뚫린것 같던 허전함속에 생활과 사랑의 충만을 안고 찾아왔던 아끼꼬, 오랜 고독과 체념의 먼지가 앉았던 그의 생활속에 순진함으로, 열정으로, 기다림으로 찾아왔던 아끼꼬!

너무 깨끗하고 순결해 사랑하면서도 손끝조차 건드리기 저어스럽던 그와 첫 입맞춤을 나눌 때 숨막힐듯 벅차오던 그 순간이, 그와 거닐던 바다가의 그 숲과 안개, 새벽려명이 서서히 빛나면서 바다갈매기의 끼륵끼륵하는 울음소리에 섞여 절주있게 들려오던 오사까앞바다의 파도소리며 그 아침에 페부가득히 들이키던 그 청랑한 새벽공기가 그대로 묻어있는 사진, 영원을 구가하는 노래처럼 아끼꼬의 샘물같은 눈빛이, 따뜻한 숨결이 그대로 배여있는 사진이였다.

감방안에 흐르는 시간과 날과 세월속에 이마무라는 끝없이 고뇌했다.

악독한 원쑤들을 징벌했건만 소중하던 그의 사랑은 무참하게 짓이겨지고 그의 넋은 천갈래만갈래로 찢겨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는 그 만신창속에서도 끌날처럼 살아 번뜩이는것이 뛰고있었다.

일본의 참다운 진보와 정의의 길을 위해 나머지인생을 깡그리 바쳐가겠다는 불타는 일념,  그것이였다.

14년 기간에 그는 머리가 세고 완연한 학자가 되였다.

그러나 그사이 일본은 하나도 변한것이 없고 오히려 더 우익화되여갔다.

(일본의 현대사란 끝없는 침략과 략탈로 점철된 날과 날들이였다.

타민족에게 끼친 막대한 피해를 참회자의 자세에서 옳고 공정하게 돌아보며 그 과정에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자성과정이 없다면 일본의 앞날은 없다. 저 지독한 우익국수주의자들을 어떻게 흔들어놓을수 있단 말인가. 반성할줄 모르는 우매의 때가 배꼽까지 낀 일본의 좁은 협곡을 어떻게 력사의 참신한 물줄기가 훑어갈수 있게 한단 말인가. …)

웅카라는 니시하라, 도미꼬사건수사에서 국가의 자존과 존엄을 지켜 일을 원만히 했다는 정부의 평가를 받고 1년후 수사국장으로 승진했다.

츄홍따이는 그를 처벌하지 않으면 당장 합작실현하기로 한 TV수상관공장 사업을 중지하겠다는 일본의 압력을 고려하여 징역 2년으로 판결받고 들어갔다가 1년후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웅카라의 적극적인 협력속에 그의 트레킹사는 날로 더 번창해갔다.

츄홍따이는 2006년과 2013년 정부가 수여하는 애국기업가상을 수여받았다.

싼따라할머니-조선의 박복희할머니는 2010년 3월 아들 츄홍따이와 딸 퓨반따 그리고 그들의 아들딸, 손자, 손녀들이 지켜보는 속에 84살의 일기로 자식들의 앞길을 축복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츄홍따이는 아버지인 츄마키리유격대장과 그의 전우들의 묘가 있는 칸쿤마을뒤산에 어머니를 정히 안장하였다. 한생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싶어 못 견디게 그리던 멀리 조선이 있는쪽으로 향좌를 정하고…

장례식에는 니콤 무시카미가 쑤코타이에서 달려왔고 웅카라도 멀리 방코크에서 프리야춘과 와뚜욤형사를 데리고 찾아와 참가했다.

묘비에는 츄홍따이가 부르고 니콤 무시카미가 한자한자 정히 새긴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조선의 아름다운 한 령혼이 여기에 잠들다.》

장례식이 끝난 그날 츄홍따이는 수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어머니묘지에 함께 누워 밤을 밝혔다. 별이 총총한 하늘가에서 일곱개의 별을 찾아 바 라보며 속으로 외웠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어머니를 따라간 그 병아리들처럼 저 하늘로 어머니를 따라가렵니다.)

현재 츄홍따이는 일흔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왕성한 정열로 자기의 관광사를 이끌어가고있다.

판따시웅은 마닐라에서 그의 취미대로 작은 전자부속품업체를 경영하며 살아가고있다.

적개심이 투철하고 용맹한 왕선홍은 그동안 군관학교를 나오고 현재 중국남해에서 해병대군관으로 근무하고있다.

그들은 매해 10월 8일이면 타이로 가서 츄홍따이와 상봉하고 싼따라어머니의 묘를 찾아간다. 그들은 여전히 정의로 뭉친 한형제들이다.

이제 4년후면 이마무라가 석방된다.

그들모두는 그날을 학수고대하고있다.

츄홍따이는 이마무라의 형기가 끝나면 세이스께로인이 사망한 후 사쯔마에 내려가있는 이마무라의 부모와 도꾜의 아끼꼬의 홀어머니를 치엥마이에 이민으로 데려다 함께 살 계획을 무르익히고있다.

무라야마는 철직제대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스탠포드대학에서 동방학대학원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M대학 동방문화연구소에서 근무한다.

역시 무라야마와 함께 제대된 사다께는 유력자들의 개별주문을 받아 사건을 해결해주는 사설흥신소를 차려놓고 짭짤한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쯔오는 우익세력의 가장 큰 보복의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그가 이미전에 신문지상에 발표했던 아베비판기사들과 일본군성노예기사들, 일본군병사들의 증언 등이 사실과 맞지 않는것이라는것을 신문에 발표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편지를 매일같이 보내왔다.

칼과 같은 흉기를 소포로 보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의 폭발적인 인기뉴스로 최고의 발행부수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신문발행인도 정계와 우익의 압력을 견딜수 없어 끝내 그에게 사임할것을 요구했다.

미쯔오는 펜을 집어던지고 신문사에서 나왔지만 그의 기질을 정부가 이기기는 힘들었다. 그는 충격적인 기습기사를 각 신문지들에 거침없이 투고하는 자유기고가가 되였다.

사다께와 미쯔오는 한주일에 한번씩 무라야마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회포를 풀다가 돌아가는 인생의 더할나위 없는 친구가 되였다.

자민당 간사장이 된 아베는 그사이 두번이나 수상을 력임하면서 2015년 9월 19일에는 끝끝내 그의 전범조상들, 기시와 사또 또 그자신의 필생의 소망이고 야심이던 《집단적자위권의 확대해석》이란 명분으로 지구상의 임의의 지역에서 전쟁에 참가할수 있게 만든 《안전보장관련법》을 끝끝내 국회에서 강행통과시키는 《력사적업적》을 이뤄냈다.

《헌법 9조》밑에서 수십년동안 지속되여온 평화주의를 집어던지고 전쟁을 할수 있는 법안이 통과된 그날 도꾜 나가따정의 국회정문앞에 모인 수만명의 항의자들이 비가 억수로 퍼붓는 속에서도 《강행표결반대!》, 《아베정권퇴진!》을 웨치며 강력한 항의시위를 벌리고있던 그 시각, 아베는 항공《자위대》의 한 전투비행단에 나가있었다.

비행단의 단장으로부터 만단의 전투동원상태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비행복을 입고 한해전에도 타보았던 전투폭격기 《731》호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석달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아베의 일본정부는 수차례의 남조선과의 밀약끝에 만들어낸 일본군성노예문제에 대한 《합의》라는것을 일본과 남조선의 외교장관회담결과를 통해 공포하였다.

《합의》가 발표되자 이에 대한 항의와 규탄이 온 조선반도를 넘어 전세계에서 파국적으로 일어났다.

《합의》는 아베수상의 직접적인 사죄가 아닌 외상의 대독사과로서 성노예문제해결의 본질이라고 할 일본의 국가적, 법적책임을 회피하고 일본정부와 군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감행된 범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아베와 박근혜의 정치적흥정물이였다.

회담에 앞서 아베는 외상을 불러 남조선과 절대로 타협할 필요가 없으며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을 박아넣지 못하는 경우 회담을 걷어치우라고 압박하였으며 성노예피해자들에게 지출하는 돈도 남조선이 설립하는 재단에 《지원》의 명목으로 내는 돈이지 결코 배상이 아니라고 못박게 하였다. 더구나 그 몇푼 안되는 돈도 서울의 일본대사관앞에 세워져있는 소녀상을 없애버리는 조건에서만 낼수 있다고 하면서 《선 소녀상철거, 후 자금제공》을 끝까지 관철하라고 강박했다.

남조선에서는 박근혜가 치욕스러운 굴종외교로 문서장도 남기지 않고 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에 진 죄악의 족쇄를 풀어주었으며 성노예피해자들의 가슴에 칼을 꽂는 추악한 반역행위를 저질렀다는 규탄이 비발쳤다.

《합의》가 있은 며칠후인 2016년 1월 6일, 이날은 새해 잡혀 첫 수요일로 서울 중학동의 일본대사관앞에서 매주 진행되여온 수요집회가 1 212번째로 열리는 날이였다.

성노예피해자할머니들은 집단적으로 떨쳐나 《아베총리가 나서서 <모두 우리가 한짓이니 용서해주세요.> 하고 우리에게 직접 사죄하라.》,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절대 못한다. 위로금 100억이 아니라 1 000 억을 준대도 마지막 한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다 죽을것이다.》고 울부짖으며 성토했다.

그날 석간에 실린 그 사진을 보며 무라야마는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일본이 자기의 죄를 진실로 통감하지 않는다면 저러한 규탄은 세월을 두고 계속될것이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전률이 왔다.

무라야마는 15년동안 새해가 시작되는 때면 이마무라를 체포했던 그때를 참회하는 심정으로 그를 면회가군 했다.

복역기간이 또 한해 줄어드는 신년의 첫아침에 이마무라를 만나고 돌아오면 그와의 면회에서 받은 충격을 눅잦힐수 없어 도꾜대학의 산시로련못가를 찾은 무라야마는 얼어붙은 락엽이 깔린 공원의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면회실에서 이마무라와 나눴던 대화들이 생생히 살아 다시금 뇌리에 떠올라왔다.

오늘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을 정의와 량심의 길, 참다운 국제적형평성을 가진 옳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진정한 정치세력, 정치인이 결여되여있는것이라고 가슴을 치던 이마무라, 이제 복역을 마치고 나가면 국민을 깨우쳐 그런 세력을 만들어가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성토하던 이마무라의 그 열기띤 말마디들이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평화와 민주의 길로 가는것은 막을수 없는 일본의 숙명이다. 그 운명의 길을 반역하는자들은 력사의 단죄를 피하지 못할것이다. 이마무라나 미쯔오 같은 사람들이 일으켜가는 정의와 민주, 평화의 거세찬 그 돌풍에 나 역시 한자락의 바람이 되여 합세해갈것이다.)

무라야마는 이런 다짐속에 짧은 겨울해가 기울어가는 얼어붙은 산시로련못가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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