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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30]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3. 산시로련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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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28 08:5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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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0]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3. 산시로련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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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30 회)

제 6 장

3. 산시로련못

 

이마무라의 사건신고서를 읽어내려가는 무라야마의 눈앞에는 그들이 도미꼬를 만난 그날의 이야기가 영화화면처럼 안겨왔다. …

《조용히 만나 할 말이 있다? 그래 무슨 말이야?》

도미꼬는 아끼꼬를 쏘아보며 도고하고 오만한 그 어조그대로 거침없이 내뱉았다.

《내가 아끼꼬! 너를 만나 더 들을 말이 있을가? 들을만큼 이젠 충분히 듣고도 남았는데… 솔직히 말해 난 아끼꼬 네가 말하듯 지독한 국수주의자야. 야마도족이 아닌 인간들은 사람으로 안 보여. 네가 조선혈통의 녀자란걸 안 다음부터… 난 네가 그렇게 초라해보이기만 하고…》

도미꼬는 맞은편 긴 의자에 아끼꼬와 함께 앉은 이마무라를 경멸스런 눈길로 건너다보았다.

《넋도 없이 저 녀자와 붙어다니는 이마무라! 당신도 참, 그렇게 바보같이 보일수밖에 없어.》

아끼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해서 보낸게 그 칼이겠군요?》

《뭐야? 칼은 무슨 칼야. 난 몰라, 그런건.》

도미꼬는 금시 잡아먹을듯 새파래졌다.

그러는 도미꼬를 말없이 쏘아보던 이마무라는 아끼꼬를 돌아보았다.

《아끼꼬, 우리 역시 더 긴말이 필요없는거고. 그 신문 보여줘.》

아끼꼬는 옆에 놓인 자기 가방에서 그날 조간신문을 꺼내여 도미꼬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거기 어떤 광고기사가 실렸는지 보세요.》

쌀쌀해서 나꿔채듯 받아든 도미꼬는 먼저 제목부터 훑어보았다.

《<한 전범자를 통해 본 일본극우익의 실체>?》하고 읽던 도미꼬는 화들짝 놀라 등받이에 젖혔던 허리를 펴며 황황히 신문을 읽어내려갔다.

그러는 그의 얼굴이 점점 시꺼멓게 죽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원고는 한 전범자의 죄행을 고발하는 첫 광고원고입니다. 하도 절박한 사정과 리유로 오늘은 면전에 나서지 못하고 이렇게 서신으로 무기명의 광고원고를 보냅니다.

언론계의 정의와 진실의 사자로 명성이 높으신 선생님께서는 미거한 이 투고자의 절절한 부탁을 꼭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웅적성전, 대동아전쟁에서 그처럼 악명을 떨친 잔인한 전범자, 오늘도 일본정계에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일본극우익의 실세, 그가 과연 어떤 인간인가를 저는 련재원고로 선생님에게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은 도미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이 광고 다음에 주게 될 원고는 뭐라는거야?》

《니시하라 겐따로, 당신 외할아버지의 피에 젖은 죄악의 구체적인 전범사! 자, 바로 이거다!》하며 아끼꼬는 손에 쥐고있던 다른 원고를 넘겨 주었다.

도미꼬는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저는 얼마전에 저의 할아버지와 지난 대동아전쟁시기 동남아시아에서 함께 싸웠던 <황군>출신의 한 로인을 만나 1944년 여러 소수 부족들이 사는 먄마-타이국경의 한 마을에서 참혹한 만행을 저지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습니다. 마을주민 40여명을 유격대련루자로 체포한 이 헌병대위는 끌어낸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들을 나무에 매달고 머리가죽을 벗겨 학살했으며 격분한 마을사람들이 이에 항거해나서자 그들에게 기관총사격을 퍼부어 녀인들과 아이들, 로인들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을 전부 살륙하고 마을을 페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남은 녀인들을 마을어구에 있는 불교법당으로 끌고 가 병사들을 내몰아 륜간하게 하고 숨이 진 녀인들은 강에 끌어다 처넣었습니다.

이 몸서리치는 만행이 너무 끔찍하여 토하며 물러서는 한 이등병이 있었습니다.

대위는 대학에 입학했다 갓 전장에 끌려나온 그 병사에게 무자비하게 칼을 들이대고 발로 차며 그 만행에 동참하도록 내몰았고 자기가 지켜보는 앞에서 녀인을 강간하게 하고 칼로 찔러 살해하게 했습니다. 그 병사는 끝내 그 만행현장에서 정신착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병사가 바로 저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 악독한 전범자는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그는 오늘 타이의 방코크에서…》

원고를 읽어내려가는 도미꼬의 손이 점차 후들거리며 떨렸다.

원고의 마지막장을 덮은 도미꼬는 《너희들이 정말…》하며 이를 뽀드득 갈았다.

《그 첫회분 원고도 이미 그 기자에게 넘어가있다. 우리가 전화를 걸면 그는 그 원고를 싣게 되여있다.》

도미꼬는 당장 찢어버릴듯 원고를 움켜쥐였다가 단념한듯 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며 한참동안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멀리 도꾜대학 옛 정문인 아까몽쪽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올뿐 자양화가 우거진 숲사이로 새끼물오리가 헤염치는 산시로련못가에는 터질듯 팽팽한 정적만이 흘렀다.

《당신들! …》

도미꼬는 결연히 눈길을 들어 이마무라와 아끼꼬를 갈아먹을듯 쏘아보았다.

《그래, 이 도꾜바닥에서… 송산전역, 칸쿤마을, <미니 도꾜>, 도대체 이 이야기들 다 어디서 캐냈어? 음? 너희들 무슨 목적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미는거야? 니시하라부회장의 과거를 이렇게 지독하게 발가내서 어쩌자는거야? 말해! 단지 전번에 있은 그 토론회때 있은 일때문이야?》

이렇게 몰아붙였지만 원고에서 받은 충격때문인지 늘 짱짱 쇠소리가 앙칼지던 도미꼬의 목소리는 한결 기운이 빠져있었다.

이마무라는 코웃음을 튕겼다.

《도미꼬! 니시하라 겐따로의 피비린 행적, 그것은 일본제국주의가 걸어온 지난날의 죄악의 산 력사요.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전범자! 이미 처형되고도 남았어야 할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아직도 자기 이름 그대로 이 땅을 활개치고있는 이 일본의 비참한 정치현실, 그 추악의 진면모를 세상에 낱낱이 폭로하자는 오직 그 하나뿐이요.》

《안돼! 그건 절대 안돼!》

도미꼬는 발딱 일어나며 새파래서 부르짖었다.

허둥거리는 눈길로 이마무라와 아끼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풀이 죽어 물었다.

《그래, 너희들 나에게 이 원고 보이는 목적이 뭐야?

다 들어주겠어. 그대신 이 기사발표를 중지한다는걸 약속해.》

《정말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는가?》

《그러겠어. 그런데 그 기자가 누구야?》

이마무라는 머리를 저었다.

《그건 말할수 없소.》

이마무라는 높아지는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이었다.

《첫째, 그 니시하라 겐따로가 57년전 참혹한 학살만행을 감행했던 라후족의 칸쿤마을을 찾아가 자기 죄행을 사죄하고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현지 트레킹사 사장 츄홍따이를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배상할것.

둘째, 그 사건당시 나어린 중대대원이였던 세이스께이등병을 강제로 현지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녀인들의 강간행위에 떠밀어넣어 그를 정신이상자로 만듦으로써 그의 한생을 무참히 짓밟고 그의 가문에 헤아릴수 없는 불행을 들씌운 죄를 인정하고 보상할것.

셋째, 니시하라 겐따로가 극우익적인 신도동맹 부회장직에서 사직하고 <미니 도꾜>건설에서 손을 떼며 당신 도미꼬는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리사직에서 사임할것. 이것이요.》

《…》

도미꼬는 이마에 빠질빠질 돋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치받치는 패배감과 절망감을 누를수 없어 어찌나 옥물었는지 입술우로 피가 배여나왔다.

불같은 그 녀자의 성격으로는 악! 소리라도 치며 일어나 이마무라와 아끼꼬를 찢어발기고싶은 극도의 흥분에 살이 떨렸으나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문제가 터진다는 위압감이 그 녀자를 내리눌렀다.

《둘째와 세… 셋째 요구는 외할아버지가 받아들이도록 내가 설득하겠어. 그러나 첫째 요구는 너무 가혹해. 타이의 그 마을을 찾아가 사죄한다는건 상상도 할수 없어. 그 사실이 숨겨질것 같애? 그날로 여론을 타고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겠는데… 여기 도꾜에서 신문에 사실을 밝히는것과 뭐가 다른게 있어? 할아버지는 그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숱한 일본군장교들처럼 명령을 집행했을뿐이야. 이제 그걸 전범죄로 한다는건 말이 안돼. 따지자면 그 명령을 내린 상급들에게 다 따져야지.》

《그렇게 따져 올라가면 결국 <천황>까지 가겠지. 그렇잖아? 당시 그 모든 명령의 최고주권자, 명령자는 <천황>이였으니까. 그런데 그 <천황>가문에 당신들이 지금 들어가있거던.》

《…》

말문이 막힌 도미꼬는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이마무라와 아끼꼬를 쏘아보았다.

《어쨌든 첫째 요구는… 그건 할아버지에겐 죽음을 선고하는것이나 같아. 안돼!》

《좋아. 그럼 첫째 요구는 둘째, 셋째 요구가 관철되는 과정을 담보하는 전제조건으로 하겠소. 반대없겠지?》

《…》

도미꼬는 머리를 끄덕이는수밖에 없었다.

그 녀자는 그들을 한참 쏘아보다가 참담한 심정으로 그들앞을 떠났다.

련못가를 벗어나던 도미꼬는 얼마 안 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뚝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마무라와 아끼꼬를 쏘아보는 그의 두눈에 무서운 기운이 칼끝처럼 스쳐갔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굳어지는 생각을 이마무라와 아끼꼬는 알수 없었다. …

산시로련못가에서 도미꼬와 헤여진 그날 밤.

기숙사에서 깊은 잠에 들었던 이마무라는 누군가가 걸어오는 손전화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누구십니까?》하고 이마무라가 눈을 비비며 물으니 웬 사나이의 활달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도꾜대학 정경과 이마무라군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 여긴 지요다구 후다반쬬파출소입니다. 잠간 물어볼 문제가 있어 그러는데 정문밖으로 좀 나오실수 없는지요? 잠간이면 됩니다.》

알수 없는 어떤 불안이 스쳐갔으나 이마무라는 정색해서 다시 물었다.

《무슨 문제입니까? 제 지금 기숙사에 있는데 들어와서 만나시면 안되겠습니까?》

《아, 이건 좀 조용히 물어볼 문제가 되여서요. 아끼꼬씨 문제입니다.》

《아끼꼬요?》

이마무라는 와뜰 놀라며 다급히 물었다.

《아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니, 큰 문제는 아니고 길을 건느다 앞에 오는 차를 보지 못해서 다리를 약간 다쳤는데… 아, 치료하고 안정하면 낫겠더군요. 그런데 그통에 두 승용차가 충돌하면서 완전히 대파됐단 말입니다. 승용차주인들이 변상해내라고 야단인데 볼모로 잡힌 아끼꼬양은 다리때문에 더구나 움직일수 없고…

그 녀자가 이마무라군을 찾아가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이거 고맙습니다.》

이마무라는 황황히 옷을 입고 기숙사에서 나왔다.

달리다싶이 정문을 나서니 주차장 한끝에 방금 그 경찰이 전화로 말하던 흰색 《닛싼》승용차가 보였다.

그앞에 회색코트를 입은 중키의 사나이가 서있었다.

《아, 이마무라씨입니까? 제가 방금 전화를 걸었습니다.》

싱긋이 웃으며 친절한 사나이는 운전칸에 먼저 올랐다.

어서 타라고 이마무라에게 뒤좌석을 손짓했다.

이마무라가 뒤문을 열고 오르려는 순간이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 사나이가 번개같이 등뒤에서 이마무라의 입을 틀어막으며 좌석으로 밀어넣었다.

그때 반대켠문을 열고 올라탄 또 한 사나이가 그를 끄당겨 가운데 앉히며 문을 닫았다.

그 순간에 이마무라는 숨이 꺽 막히며 정신을 잃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마무라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클로로포름냄새가 지독하게 풍기는 사방 세멘트벽으로 된 방이였다.

벽들이 축축하게 젖은걸 보니 어떤 건물의 지하실 같았다.

그가 마취된 사이에 어떻게 치고 밟고 했는지 이마무라는 온몸이 쑤시고 눈이 부어 앞을 간신히 볼수 있었다.

《이 자식이 정신이 들었습니다.》

어둠속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눈앞에서 촉광센 전등이 켜지며 눈을 뜰수 없었다. 이마무라는 골이 쑤시고 눈앞이 어지러워 머리를 흔들었다.

《야! 한바께쯔 더 퍼부어!》

다른 굵은 목소리의 사나이가 이렇게 뇌까리자 옆에 섰던자가 차거운 얼음물을 서너번에 나누어 끼얹어댔다.

이마무라는 헉 헉 느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 이마무라가 끌려간 곳은 야꾸자의 한 조직이 경영하는 병원이였다.

일본의 야꾸자들은 근 4세기동안 비법적인 도박과 매음, 마약을 본업으로 살아왔다.

그러던 야꾸자들의 운명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대기업들이 해외자본시장들에서 본격적으로 자금류통줄을 찾게 되고 쇠퇴에 직면한 국내은행들이 대부증권장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차용자를 찾아 혈안이 되던 끝에 결국은 야꾸자들에게까지 수십억딸라를 대부해주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것이다.

억대의 돈에 눈이 뒤집힌 숱한 야꾸자들이 암흑세계에서 장마철뒤의 뱀떼처럼 굴밖으로 기여나왔다.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버젓이 건설업과 유흥업, 운수업뿐아니라 제약업으로부터 병원에 이르기까지 일본경제의 모든 분야에 본격적으로 손을 뻗치게 되였다.

야꾸자는 점차 자기 조직이 직접 추천하여 교육을 시켜 써먹는 은행업자들과 회계원들, 변호사들, 병원 원장들을 가지게 되였다.

이마무라가 끌려간 정형외과병원도 그런 야꾸자들의 소굴중의 하나였다. …

어둠속에서 굵은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마무라, 네가 그렇게 담이 큰 놈이야? 이 일본땅에서 <천황>가문을 중상모독하고 살수 있을것 같애?

우린 네가 미쯔오놈에게 넘겨준 그 광고원고를 사실무근, 중상모략음모로 락인하고 편집국에서 찾아왔어. 자, 이것이 그 원고야. 뭐, 니시하라부회장이 칸쿤마을을 찾아가 사죄하고 신도동맹 부회장직에서 사직하라? 도미꼬씨도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물러나라? 이 자식아, 너 일본국민이 옳아? 이런 허튼소리를 막 써들고 다니는 목적이 뭐야?》

《당신들 이게 무슨짓이요. 이런 불법무도한 만행이 어디 있소?》

《뭐? 이 자식 아직 정신이 덜 들었다.》

굵은 목소리가 쩌러렁 울리게 소리치자 좌우옆에서 또 두세놈이 달려들어 옆구리를 차고 머리를 발로 밟았다.

주먹에 맞은 코뼈가 부서지는것 같고 눈알이 터져나가는것 같았다.

눈에서 피가 흐르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물의 세례가 안겨져서야 눈앞이 틔여왔다.

《자, 여기 서명만 해라. 그 기사가 <천황>가문을 중상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꾸민것이란것, 이 한마디면 돼. 수표를 하고 지장만 누르면 곱게 보내주마.》

그제야 이마무라는 이놈들이 도미꼬가 보낸 극우익폭력배들이란것을 가늠했다. 도미꼬년에 대한, 이 무지막지한 놈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머리끝까지 뻗쳐올라왔다.

이마무라가 도리머리를 젓자 굵은 목소리가 다시 지껄였다.

《안되겠다, 그년을 끌어와.》

여전히 이마무라만 비치던 방바닥 한점의 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불빛속에서 이마무라는 체격이 우람한 사나이와 자기를 데리러 왔던 체소한 사나이를 알아보았다.

앞담벽의 중간에 있는 문이 열리며 두 놈팽이가 커다란 자루를 들고 들어왔다.

상고머리가 눈짓하자 놈들은 자루에 달린 쟈크를 벗겨내렸다.

그 순간에 이마무라는 경악을 하며 놀라 소리쳤다.

《아끼꼬!》

입을 막았던 수건을 뽑아던지자 아끼꼬는 《이마무라씨!》하고 소리치며 일어나려 했다.

그런것을 놈들이 발로 걷어차 쓰러뜨렸다.

악몽과도 같은 현실에 이마무라는 눈앞이 캄캄해왔다.

상고머리는 싸늘한 미소속에 험악한 두눈을 지릅떴다.

《이 자식아, 어쩔테야. 아직 대답을 안하겠어?》

이마무라가 침묵을 지키자 그놈은 꾹 다물었던 입귀로 킬킬 웃음을 흘렸다.

《야, 저년을 홀딱 벗겨라!》

그러자 아끼꼬를 잡고있던 두놈이 흐흐흐 너털웃음을 흘리며 그 녀자가 입은 샤쯔를 북 잡아 찢었다.

흰 어깨살이 드러나는것을 아끼꼬는 반사적으로 그러안으며 감쌌다.

놈들은 그가 반항하자 뺨을 때리고 발로 차며 닥치는대로 찢어당겼다.

《이놈들아, 안된다, 안돼!》하고 소리치던 이마무라는 그만 꺽꺽 억이 막혀 부르짖었다.

《서명하겠으니 그 녀자를 다치지 말라!》

《흐흐흐…》

상고머리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련히 그랬어야지.》

그는 체소한 양복쟁이에게 눈짓했다.

그자는 이미 준비했던듯 문서장을 들고 이마무라에게 다가와 마주앉았다.

《자, 이대로 네 자필로 써라.》

이마무라는 부은 눈꺼풀사이로 그자가 내미는 종이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사히신붕>에 게재된 동남아에서 있은 옛 <황군>대위의 만행에 대한 광고와 그 원고는 과거청산문제에 미온적인 일본정부를 자극하기 위해 꾸며낸 나 개인의 허구였음을 확인한다. 도꾜대학 정경과 대학원생 이마무라 노부오.》

그것은 그야말로 니시하라를 철저히 비호하고 사실을 완전히 전도하는 극우익패들의 강도적인 위조문서였다.

그것이 공개되는 경우 이마무라는 언론의 진실을 롱락한 협잡군으로 락인될것이며 한 지성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완전히 말살되게 될것이다.

이마무라는 너무도 격분하여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못해! 이놈들아! 이 무서운 협잡군놈들아!》

그러면서도 아끼꼬가 걱정되여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보던 이마무라는 다시한번 놀랐다.

《이마무라씨!》

찢기운 옷자락으로 웃몸을 가리우며 꿇어앉아 울고있는 아끼꼬, 바로 그뒤에 독사같이 도사리고 서있는 녀자, 대학강당의 토론회때 입고 나왔던 그 보라빛의 달린옷차림으로 서있는 도미꼬를 보았던것이다.

《네년이 이 모든걸 음모했지? 이 간악한 년아!》

이마무라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이 말이 터져나왔다.

도미꼬는 싸늘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자식! 흥, 그래, 내가 그 치욕을 그대로 받아안을줄 알았어?》하며 도미꼬는 옆에 선 상고머리를 돌아보았다.

《어서 시작해요. 그러기 전엔 저 새끼가 굴복 안할거예요.》

상고머리가 알겠다는듯 끄덕이며 아끼꼬를 붙잡고있는 두 놈팽이와 양복쟁이에게 눈짓했다.

《야! 저년의 하얀 속살까지 깨끗이 구경 좀 하자! 킬킬…》

세놈이 다시 달라붙었다.

놈들은 아끼꼬의 몸에 걸치고있는 옷들을 닥치는대로 찢어내고있었다.

《아 아! 이마무라씨!》

놈들에게 채이고 짓밟히는 속에 아끼꼬의 옷이 하나씩 벗겨져 물이 질벅한 세멘트바닥에 떨어졌다.

팔에 비수를 입묵한자가 킬킬 웃더니 바지괴춤을 벗어내리며 아끼꼬에게 다가갔다.

《안된다, 이놈들아! 이 악마들아!》

이마무라는 묶인 몸을 뒤틀며 소리쳤다.

《안돼. 이놈들, 이 악독한…》

소리치며 일어나는것을 뒤에 선자가 발로 밟아 쓰러뜨렸다.

이마무라는 입술을 떨며 부르짖었다.

《서명하겠소. 서명할테니 제발 그 녀자를 다치지 말라!》

도미꼬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싸늘히 웃으며 상고머리에게 눈짓했다.

양복쟁이가 이마무라의 묶인 손을 풀어주었다.

먼저 내들었던 가방우에 이미 쥐고있던 한장의 서류와 백지를 다시 올려놓으며 씨벌였다.

《괜히 시간만 끌지 말아, 이 새끼야!》

이마무라는 온몸을 훑어내리는 분노와 격분에 덜덜 떨며 간신히 한자한자 옮겨베껴내려갔다.

마지막서명까지 하고난 이마무라는 도미꼬를 쳐다보며 절박하게 소리쳤다.

《도미꼬씨! 자, 난 모든걸 단념했소. 그러니 아끼꼬를 놔주오. 부탁이요.》

그러는 이마무라를 입술을 옥물고 내려다보던 도미꼬는 그가 복사해 내미는 서류를 받아 쭉 읽어보고는 가방뚜껑을 열고 그안에 훌 던져넣더니 단번에 옹쳐쥔 주먹으로 이마무라의 면상을 쳤다.

《이 나쁜 새끼야! 이 순간을 넘긴다고 내 네년놈들을 믿을것 같애? 여기서 살려주면 그 루가 어떻게 커질것이란걸 우리가 모르겠어? 뭐 사랑?! 이 새끼야! 죽어 지옥에 가서 실컷 저 아끼꼬년과 사랑해라.》

미친듯이 삿대질하며 독설을 퍼부은 도미꼬는 아끼꼬옆에 선 세놈에게 소리쳤다.

《시작해! 저년이 지키겠다는 그 절개니 정조니 어서 걸레로 만들어.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다 주고 칼로 저미고 사지를 찢어!》

이마무라는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암담하고 캄캄한 장벽을 보았다.

악귀들이 그의 눈앞에서 저지르는 그 참상, 아끼꼬의 그 처절한 비명을 들을수 없어 머리를 쫏고 몸을 비틀며 소리치다 기절하고말았다.

《내가 정신을 차린것은 어떤 강력한 엔징소리때문이였다. 눈을 떠보니 바다우를 달리는 작은 뽀트였다.》

맨 처음 그의 시야에 안겨온것은 불과 손 한뽐거리에 누워있는 아끼꼬의 얼굴이였다.

흰 대리석처럼 하얗게 굳어진 얼굴이며 피기가 사라진 보라빛으로 창백해진 입술, 금시 그 입술이 열리며 《이마무라씨!》하고 부르며 일어날것만 같으나 온통 찢겨진 피투성이옷을 걸치고 반듯이 누워있는 아끼꼬는 묶지 않은 몸이였다.

그것이 아끼꼬가 이미 죽은 몸이기에 놈들이 묶을 필요가 없은때문이라는것을 몸서리치는 전률속에 깨달았을 때 이마무라는 천길나락속에 떨어진 절망과 터져나오는 절규를 어쩔수 없었다.

《아끼꼬!- 아끼꼬!-》

이마무라는 목이 터지게 웨치며 아끼꼬쪽으로 묶인 몸을 뒹굴며 기여갔다.

뽀트를 몰아가던 놈들이 그의 목소리에 놀란듯 돌아보며 뭐라고 소리쳤으나 그의 귀전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끼꼬! 아끼꼬!》

그러나 아무리 목메여 부르고불러도 아끼꼬는 대답이 없었다.

《아! 아끼꼬!》

절통한 눈물이 볼을 타고 저절로 주르르 흘렀다.

물기에 젖은 눈가장자리에 꼭 눈물이 맺혀있는것만 같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싶지만 그럴수도 없는 몸.

《아- 아-》

가슴속에 고패치는 설음에 덜덜 떨며 이마무라는 머리로 선창을 쫏고 배전을 치받았다.

목적지에 닿았는지 놈들이 다가왔다.

그의 옆에 이른 두 놈팽이는 그의 팔과 다리를 맞들었다.

이마무라는 이제 자기도 놈들의 손에 죽는다는것을 알았다.

아끼꼬의 죽음에 절망한 이마무라는 더 살고싶은 의욕도 없었다. …

발에 연추가 매달린채 바다에 던져졌다.

그런 그를 양식잠수공들이 발견하게 될줄이야.

해산물을 캐여가지고 바다우로 떠오르다 그를 발견한 양식잠수공들은 거의 숨져가는 그를 끌고 수면우로 오르자 다급한 나머지 양식떼우에 눕혀 인공호흡부터 시켰다. 한참이나 물을 토한 후에야 이마무라는 간신히 눈을 떴다. 양식잠수공들은 근처에 있는 자기들의 작은 기관선을 불러 그를 태워가지고 뭍으로 나왔다.

그 고마운 양식잠수공들의 집에서 하루밤을 묵으며 기력을 회복한 이마무라는 아침에 아끼꼬를 찾으며 비내리는 바다가로 다시 달려갔다.

이마무라의 온넋은 아끼꼬와 련결되여있었고 그의 목소리, 그의 숨결로 가득차있었다.

《아끼꼬! 너 어데 있니?》

넋잃은 사람처럼 초점없는 눈길로 바다를 더듬다 오열을 터뜨리며 바다가를 걸었다.

《소중한 모든것, 그날에 가서 꽃피우자던 그 언약 어찌하고 속절없이 너 혼자 어디 갔니? 너 혼자! 아끼꼬!-》

가슴을 찢고 에이는듯 한 아픔이 온몸을 훑어내려갔다.

너를 생각하는 내 마음 절반을 뚝 떼여 너를 주고싶다고 했을 때 목을 꼭 끌어안던 그 얼굴이 눈앞을 가리웠다. 눈서리 하얗게 내리던 날 호호 불며 가져왔던 생일과자, 그 초불이 어른거리며 안겨왔다.

가슴에 사무치는 그 모든 추억들이 주르르 눈물과 함께 흐른다.

가슴밑바닥에서 뚝을 터치고 나오는 슬픔의 흐느낌이 목을 꽉 메우고 심장을 터지게 했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 이런걸 피눈물이라 할것이다.

비가 내리는것도 모르고 걸었다.

점점 세차지는 미친듯 한 광풍에 가로 비껴나는 비발들, 나무가지들이 찢어지고 휘젓긴다.

폭우속에 마주오는 아끼꼬의 그 처참했던 마지막모습, 짐승들! 야만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휘뿌리며 어금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마무라의 두눈은 끊어진 칼날에 비낀 섬광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증오와 분노의 강렬한 파도가 활화산처럼 솟구쳐올라 눈앞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몸이 열쪼각, 백쪼각 나는 한이 있어도 알고있는 모든 진상을 경찰에 고발하고 도미꼬년을 비롯한 악독한 살인마들을 기어이 내 손으로, 내 손으로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이마무라의 신고서는 이렇게 끝났었다.

…밖으로 나온 무라야마는 히라노경부를 쳐다보았다.

《이마무라의 사건신고서를 보면 모든게 명백하구만.

그런데 수사가 중지되여 근 한달째 한자리에 멈춰서있다니 어떻게 된 일이요?》

히라노경부는 심중히 이야기했다.

《이마무라의 신고서가 제출된 후 우리는 이 사건의 유일한 혐의자로 지목된 도미꼬를 불러다 사실을 따져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자는 전면부정하면서 오히려 눈을 까뒤집고 우리를 공박해나섰습니다.

도미꼬는 이마무라가 어느 병원의 지하실에서 만났다고 주장하는 그 9월 25일에 자기는 혹까이도 히다까산의 별장에 휴양을 가있었다는겁니다. 그때 그 녀자의 부재증명을 보증하는 사람이 넷이나 나타났습니다. 확인해 보니 다 사실이였습니다.

결국 그 녀자는 그때 도꾜에 있지 않은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를 만난 도미꼬는 도리여 이마무라의 할아버지가 정신착란자라는것을 강조하면서 이마무라의 신고내용자체가 전번 력사문제에 관한 토론회때 생긴 강박증세, 유전된 그 가문의 정신이상증세에서 나온 완전히 창작된것이라는것입니다.

그런 때 한 형사가 누군가가 우편으로 발송해왔다면서 니시하라와 도미꼬에 대해 자기가 쓴 원고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꾸며낸 허구라는것을 확인한다면서 이마무라 본인이 자필로 쓰고 서명까지 한 서약서를 가져왔습니다. 그걸 내대니 이마무라가 기가 막혀 더 아무 말도 못하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결국 이마무라의 신고자체가 의심스럽게 되였단 말입니다.

거기에다 궁내청과 정부, 숱한 우익단체들에서 도미꼬를 내놓으라고 비발치듯 전화가 걸려오는데 견딜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흘만에 도미꼬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도미꼬가 글쎄 그때부터 열흘이 지난 10월초에 느닷없이 타이에 갔다가 거기서 산악려행중 실족사로 잘못되였다지 않습니까.》

《그 기간의 이마무라의 행적을 따져보았소?》

《예, 도미꼬가 려행을 떠난 직후 그가 종적없이 사라졌기에 우리는 처음 도미꼬의 죽음에 그가 련관이 없는가 하고 그의 행적을 캐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니시하라와 도미꼬가 사고로 죽었다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다보니 수사를 더 진척시킬 여지가 없게 되였습니다.》

《그후 이마무라를 더 보지 못했소?》

《어제 그를 찾아냈습니다.》

무라야마는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말이요. 그가 지금 어데 있소?》

《교외 니찌구로강쪽의 그의 집근처에서 한 형사가 보았다는데 뒤따르다 놓쳐버렸습니다.》

《그는 자기를 감시한다는걸 알고있을거요.》

《예! 그런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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