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5]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력사는 잉크로 쓰는 책이 아니다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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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25]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력사는 잉크로 쓰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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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22 10:0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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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5]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력사는 잉크로 쓰는 책이 아니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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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25 회)

제 5 장

2. 력사는 잉크로 쓰는 책이 아니다

 

나라현 다까이찌군 아스까촌에서 발견한 기또라고분에 대한 1차 조사공개는 1983년에 있었다. 그때 이 무덤의 석실내부의 북쪽벽면에 현무그림이 그려진것이 확인되여 이 고분이 사신도벽화무덤일것이라는것이 내외에 알려지게 되였다.

1998년에 있은 제2차 조사공개에서는 석실내부의 동쪽벽면가운데 청룡과 함께 해가, 서쪽벽면가운데에는 백호와 함께 달이, 석곽의 천정에는 별자리들이 그려져있다는것이 알려졌다.

이 벽화가 사신도를 위주로 하고 천문도를 배합한것이 신통히도 고구려벽화무덤을 방불케 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일본의 학계와 언론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마이니찌신붕》에는 다음과 같은 뉴스가 실렸다.

《나라현 아스까촌의 기또라고분의 석실조사과정에 지난 3월에 발견된 천정벽화의 성수(별자리)는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을 포함한 북위 38°~39°지역에서 본 별을 기준으로 하여 그렸다는것이 30일 도까이대학정보기술쎈터의 콤퓨터화상처리를 통하여 밝혀졌다.

이것은 7세기 후반기까지 조선반도 북부를 지배한 고구려의 영향이 일본국내에까지 미쳤다는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된다.》

기또라고분의 3차공개에는 도꾜대학 사학과 대학원생들도 학습과정으로 조사에 합류했다.

도미꼬는 3차조사가 있기 전까지 강의에 나와 자기는 기또라고분의 벽화가 무덤의 형태나 벽화의 특징 특히 사신도가 그려진 형태로 보아 고구려보다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벽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 론거를 구구히 렬거했었다.

그때 아끼꼬는 강사가 고구려와 백제의 고적들이 산재해있는 나라현 특히 아스까촌일대 유적에 대한 일반적리해조차 부족하다고 하면서 강한 반론을 제기했던것이다.

《전 먼저 강사가 이 아스까촌에서 련속 발굴되는 고적들에 일관되는 고구려적인 보편적특징들을 왜 한사코 외면하려 하는지 리해되지 않습니다.》

《…》

도미꼬는 그 말에 미처 대답을 못하다가 아끼꼬를 쏘아보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아끼꼬씨가 주장하는 고구려벽화의 특징이란 어떤거란거예요?》

아끼꼬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전 며칠전에 기또라고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까마쯔즈까고분벽화를 다시 찾아갔댔습니다. 72년도 가시하라고고학연구소가 이 고분을 발굴했을 때 석실안에서 채색벽화가 나타나자 발굴을 중지하고 다시 황급히 묻어버렸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출토된 벽화가 옛 고구려고분에서 발견된 벽화와 너무도 꼭같았기때문이였습니다.

발굴을 총지휘했던 고고학자가 이 고분의 벽화는 조선의 벽화와 류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묻어버렸다가 여론이 즘즘해진 뒤에 몰래 다시 발굴을 시작할 정도로 다까마쯔즈까고분은 공개하기 힘들 정도의 고구려벽화 그대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가보니 궁내청은 막대한 경비(어떤 일에 쓰이는 비용)를 들여 최첨단보존시설을 만들고 소나무 한대 서있던 무덤우에는 빼곡이 참대를 심고 철책을 둘러쳐 일반인의 관람은 물론 접근조차 일체 금지하고있습니다.

전 꼭 봐야 하겠기에 력사학생의 명분을 내세우고 관리자와 필사적인 사업을 해서 잠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 본 저의 그 느낌, 너무도 익히 보아온 고구려고분벽화 그대로인 벽화앞에서 저는 전률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3차조사에서 새롭게 보게 된 기또라고분을 또 새로 목격하면서 이 기또라고분의 벽화는 다까마쯔즈까고분을 더 릉가하는 분명한 고구려벽화라는걸 다시한번 더 확신하게 됐던것입니다.》

저으기 흥분된 아끼꼬는 그동안 자기가 준비한 사진자료들을 비롯한 고증자료들을 펼쳐보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도미꼬강사는 고구려벽화라고 확정짓는 특징에 대해 물었는데 그것은 첫째로 무덤의 네 면에 사신도가 그려져있다는것입니다. 당시 청룡, 백호, 현무, 주작 이 사신도가 그려져있은것은 아시아에서 북조선의 강서세무덤벽화를 비롯한 고구려벽화들뿐이였습니다.

둘째로는 벽화의 그림수법이 신통히 고구려색채를 닮았다는것입니다. 이기또라고분의 백호와 청룡은 비물과 습기로 침착돼 현재 색갈들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주작과 현무는 보시다싶이 이 강서세무덤의 주작과 현무 그대로입니다.》 하며 아끼꼬는 신문 반장만 하게 확대한 천연색사진을 펴들었다.

《보십시오. 방금 날아오를듯 날개를 쭉 편 주작과 목을 씨원하게 쭉 뺀 거부기와 긴 몸을 둥글게 휘감은 뱀이 서로 노려보는 이 현무그림의 우아한 채색이 신통히 여기 강서세무덤그림그대로 아닙니까?》

명백한 고증자료를 들어보이며 설명하는 아끼꼬의 론리적인 분석에 도미꼬는 말문이 막혀 입술이 새파래졌다.

애초 기또라고분이 고구려벽화무덤과 근사하다는 1, 2차 조사결과에 잔뜩 불만을 품고 일껏 준비한 자기의 강의가 한 대학원생의 반론에 여지없이 무너져내리자 가뜩이나 성격이 발끈한 그는 눈에서 불이 일 지경이였다.

도미꼬는 교탁을 짚고 학생들을 둘러보며 비웃듯 강조했다.

《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전혀 리해가 안 와요. 당신들은 아끼꼬씨의 분석이 어딘가 자기의 주견을 의도적으로 앞세우고 거기에 고증자료들을 맞추고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아끼꼬는 북받치는 숨결을 애써 눌러 오히려 목소리를 더 차분히 낮추며 말했다.

《강사님! 한갖 대학원생인 제가 어떻게 저 하나의 주견을 과학적론증자료로 내놓을수 있겠습니까?

이 자료들은 이름있는 사학자인 교또대학의 우에다 마사아끼교수진이 이번에 구체적인 고증자료들을 놓고 확증한것입니다.

그 교수진은 이제 곧 있게 될 아시아 각국 력사학자들의 회합에도 이 주장을 그대로 개진하겠답니다.》

학생들은 그의 말에 웅성거리며 떠들었다.

《과학적인 반증인데 뭐 더 말할게 있어?》

《글쎄, 사진자료와 콤퓨터화상자료를 보니 너무 신통하거던.》

《아끼꼬씨의 고증자료 딱이야. 설왕설래 다른 론리가 통할수 없구만 뭐.》

학생들의 성원에 고무된 아끼꼬는 자신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가장 유력한 증거라고 봐야 할것은 벽화에 그려진 천문도가 바로 오늘 조선의 수도인 평양의 하늘이라는것이 확인된 그것이 아닙니까?》

《! …》

학생들은 누구라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기또라고분이 7세기초에 건설된것으로 봐도 강서고분보다 두세기 늦게 건설됐다는 점, 또 일본의 채색화는 7세기초 고구려화가 담징이 일본에 건너와 전래하면서 시작되였다는 점을 놓고보아도 아스까문화를 비롯한 고대일본의 문화발전에 고구려는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담징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여러분은 바로 나라시에 있는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륭사가 고구려문화의 살아있는 실체라는것을 다 알것입니다.

이 법륭사에 고구려승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가 12개 벽면에 그려져있었으며 그것이 1949년에 전공의 실수로 불타버린 사실은 다 모를것입니다. 지금은 일본화가들이 그린 모사품을 벽면에 끼워놓았지만 담징의 벽화에 비할바가 못되며 그나마도 관람객에게는 보여주지 않고있습니다.》

그러자 남조선에서 온 류학생 조춘일이 일어섰다.

《아끼꼬씨의 발언에 저는 전적인 지지입니다.》

다혈질의 성격답게 조춘일은 력점부터 찍으며 이야기했다.

《여러분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나라시의 법륭사에 보관되여있는 세계불교미술의 최고봉이라는 백제관음상, 교또의 광륭사에 보관되여있는 일본국보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것이 다 백제사람들이 만든것이라는것은 이미 학계에 고증된것입니다.》

한 학생이 야유조로 이죽거렸다.

《여, 조춘일! 자기가 뭐 옛 백제땅 사람이라는건가? 관음상비호부터 하면서…》

《누구야? 이자 말한게. 아, 스기야마!》

돌아보며 춘일은 스기야마에게 경고하듯 손가락을 세워 흔들었다.

《내가 뭐 전라도 부안, 옛 백제땅에서 류학온 사람이라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만 그 관음상앞에 섰을 때의 우아한 자태와 단아한 아름다움에서 오는 짜릿한 감동, 직접 가서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느낄수 없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 감동의 전률을 여기서 어떻게 다 표현하겠습니까?

또 광륭사의 그 미륵보살앞에 섰을 때의 사람의 심혼을 그러잡는 매력이 오죽했으면… 퍽 오래전에 이곳에 참관을 왔던 한 대학생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 스기야마처럼 뭐 볼것 있겠냐구 이죽거리며 미륵보살앞에 다가서던 그 친구는 불상의 그 그윽한 매력에 그만 오금이 저려 굳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다 일본남자들의 그 참지 못하는 충동을 어찌하겠습니까. 이 자식이 숱한 사람들이 지켜보는데도 불구하고 그만 그 불상을 꽉 끌어안아버렸단 말입니다.

백제의 창연한 얼이 담긴 그 일본국보1호를 말입니다.》

《아니?》, 《저런.》 하는 비명이 장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조춘일은 손시늉으로 방불하게 형상까지 하며 계속했다.

《그바람에 그만 미륵보살의 새끼손가락이 잘라지는 큰 사고가 생겼습니다. 당황망조한 스기야마는… 아니, 잘못 말했습니다. 그 대학생녀석은 그 손가락을 가지고 도망쳤는데 신문과 방송에서 제발 내놓아달라고 사정사정 해서야 다시 찾게 되였던것입니다.》

장내에는 안도의 숨이 소리없이 피여났다.

《그런데 문제는… 떨어져나온 그 새끼손가락이야말로 그 미륵보살을 분석해볼수 있는 천재일우의 고고학적재료였다 이 말입니다. 학자들이 달라 붙어 절단된 새끼손가락의 단면재질을 정밀분석해보니 바로 그것은 조선에서만 나는 붉은 소나무, 홍송이였습니다.》

력사학생들의 강의시간이니 그 사실을 모르는 학생은 사실 얼마 안되였지만 조춘일이 하도 생동하게 이야기를 잘하다보니 강당에 모인 학생들 태반이 처음 듣는 사람들처럼 진지하게 경청했고 감동도 새삼스레 가슴들을 파고들었다.

교탁에 섰던 도미꼬마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린상싶었다.

《이것이 오늘도 살아있는 고대조선과 일본관계의 진실이 아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현재 아시아력사학회 회장으로 계시는 우리 도꾜대학의 에가미나미오교수가 최근에 한 국제강연에서 일본의 기원은 고대조선민족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고 밝혀 일본의 사학계를 깜짝 놀래웠겠습니까.》

조춘일의 마지막말은 온 강당을 더 술렁거리게 했다.

《뭐, 에가미교수가?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럼.》

《하긴 뭐, 우리 일본사학계에 조선의것을 내세우기 뭣하니까 은근슬쩍 감추고 무시해버리는게 얼마나 많다구.》

그 분분한 이야기들속에 아끼꼬가 다시 일어섰다.

《저는 강사가 현재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리사인것만큼 충고하고싶습니다. 도미꼬씨는 제가 자기 주견에 고증자료를 맞추지 않았는가고 걸고들었지만 실제상 지금 잉크를 찍어 이렇게저렇게 지우고 외곡하고 덧붙여 자기의 리익에 맞게 력사를 새로 만드는것은 강사의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아니겠습니까.》

《옳소!-》

평시 도미꼬의 주장에 불만이 많았던 학생들속에서 박수가 터졌다.

《력사란 오직 진실만을 확증해놓은 움직일수 없는 사실 그자체이지 도미꼬씨의 <모임>의 간판처럼 새로 만드는것이 아닌것입니다.》

도미꼬는 터질 지경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아끼꼬를 한참 쏘아보다가 연탁이란것도 잊고 씹어뱉듯 《나쁜 년!》 하고 외웠다.

그리고는 홱 돌아서서 찬바람을 일구며 강당에서 나가버렸다.

강의가 끝나자 조춘일이 달려와 아끼꼬의 두손을 어찌나 세괃게 잡아흔들었는지 그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아끼꼬! 완전히 판정승이야. 하하하, 말이 막힌 도미꼬가 꽁지가 빳빳해 달아났잖아?》

《호, 도미꼬씨가 급했던것만은 사실같애요.》

아끼꼬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날 저녁 조춘일은 청주 한병을 꽁무니에 찌르고 무작정 아끼꼬를 끌고 이마무라의 호실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마무라에게 아끼꼬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마무라! 당대 조선에 녀자의 미덕과 문장과 그림재주 다 갖춘 뛰여난 녀걸로 신사임당을 꼽았는데 이 아끼꼬씨는 거기에 계월향의 용기와 론개의 절개를 더 지녔다 할지.

야, 일본인인 이마무라 네녀석이 애초 아끼꼬씨를 몰랐더라면… 아, 이 또한 분개할 일이 아니더냐.》 하며 자못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문모르고 퀭해있던 이마무라는 사연을 전해듣고는 빙그레 웃는다.

조춘일은 청주병을 기울여 한잔 가득 부어서는 《안됐네. 내 오늘 이 달아오른 가슴을 먼저 좀더 달구고서…》 하며 단번에 들이키고는 《야! 술 맛 좋다. 자, 오늘의 주인공인 아끼꼬씨에게 한잔 드립니다.》 하며 아끼꼬의 앞에 놓인 잔에 노르끼레한 술을 따랐다.

《아이, 난 정말 술 못해요.》

아끼꼬는 두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하, 청주 한모금 마신다고 우리 동방례의지국이 무너져내리겠나. 자, 어서요.》

아끼꼬는 할수없이 잔을 받아 눈을 꼭 감고 한모금 마신다.

그러고는 전률하듯 머리를 떠는 아끼꼬를 보며 이마무라는 소리내여 웃었다. 얼굴이 상혈된 조춘일은 손을 저으며 이었다.

《나도 마사아끼선생을 잘 아는데 전번 초빙강의때 왔었거던. 그때 하는 말이 아스까시대때 일본에 전래된 고구려말이 지금 우리 주변에도 허다하다는거요.》

이마무라는 자못 궁금해 물었다.

《그게 어떤것들인가?》

《우선 고구려, 백제유적이 가득한 나라현의 나라라는 이름, 아스까촌의 아스까! 그게 다 고대조선어였다는거지.》

《그래?! 그건 처음 듣는 말이구만.》

《1900년에 력사지리학자인 요시다 도우고박사는 <대일본지명전서>라는 책에서 나라라는 고대조선글까지 직접 쓰면서 나라라는 말은 이 고장을 차지하고 지배하던 이즈모족이 국가라는 뜻으로 지은 명칭이라고 밝혔다네. 그런데 그 이즈모족인즉 조선에서 건너온 이민집단으로 이 이즈모족출신인 스진<천황>이 국가를 뜻하는 나라라는 리두식표기를 썼던거라지. 지금도 조선사람들이 국가라는 말을 나라라고 쓰고있지 않나.

그리고 아스까란 말도 <아침해가 가까운 마을>이라는 뜻의 고대조선어 표기라는거야.》

이마무라가 궁금한듯 아끼꼬와 조춘일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그런 사실을 왜 우리 일본사람들은 광범하게 인식하지 못하고있을가?》

《그게 알려지는걸 극구 막고있으니까.》 하며 조춘일은 아끼꼬를 돌아보았다.

《그렇잖아요? 아끼꼬씨!》 하며 조춘일이 돌아보니 아끼꼬는 습관처럼 책들과 뭔가를 빼곡이 적은 종이들이 더미로 쌓여있는 책상우를 간종그리며 정리하다 방싯 웃으며 돌아본다.

《옳아요! 일본에서 최초로 과학적인 력사학을 정립한것으로 존경을 받던 도꾜대의 구미에 구니다께교수가 일찌기 1907년에 집필한 <일본고대사>에서 일본신도의 뿌리가 고구려의 <동맹의 신>을 비롯해 부여, 고조선의 천신들이였다는것을 밝혔다가 대일본제국의 <천황국가>론을 모욕했다며 교수직에서 추방당했고 자택에서 국수주의자들의 기습테로를 당하는 비운을 겪었어요.

하지만 구니다께교수는 16년이 지난 1923년에 일본력사학의 명저로 꼽히는 <일본고대사>와 <나라사>를 동시에 써냈고 여기서도 종전의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거던요.》

이마무라가 감동한 어조로 끄덕였다.

《그러니 력사의 진실을 투시하는 우리 일본의 량심적인 학자들도 적지않다는 소리군.》

《그럼요.》

《음, 알겠구만. 기또라고분의 천정에 왜 평양하늘의 별자리가 새겨져있는지.》

《그렇지요?》

아끼꼬는 생긋 웃는다.

《우리 도꾜대의 야마구라 쯔구오선생도 구니다께교수처럼 력사의 진실은 랭엄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지론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엄격한분이예요.

교수는 이번에 일본씨름 스모도 그 원형은 고구려의 수박과 씨름이였다면서 고구려벽화의 수박과 씨름을 놓고 하나하나 립증해주더군요. 교수는 스모의 하게요이라는 말도 조선 북쪽에 있는 함경도라는 지방의 사투리인 하기요에서 유래됐다는거예요.

지금 우리 일본사람들은 히다치라는 말뜻이 무슨 말인지 뜻도 모르고 쓰고있잖아요. 그건 고구려말 <해>에서 온 <히>와 <돋이>에서 변형된 <다치>가 합쳐진 <해뜨는 도시>라는 뜻이래요.

특히 교수는 저 기또라고분이 세워지던 나라시대에 씌여졌다는 4천여편에 달하는 고대가요 <만엽집>의 일부 내용이 아직 다 번역되지 않는 원인이 그걸 일본어로만 풀기때문이란거예요.

풀리지 않는 부분은 고대조선어로 풀면 슬슬 다 해석이 된다잖아요. 그건 말하자면 그 당시 조선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적잖게 <만엽집>창작에도 기여했다는 증거라는거예요. 난 그 말이 정말 옳다고 긍정했어요.

내가 우리 사학과 학술모임인 <만엽집>소속 아닌가요.》

《아, 정말 그렇지?》

《지금 일본전국에 <만엽집>을 고대조선어로 풀어보는 그런 모임이 우리 말고도 수십개나 되거던요.》

이마무라는 잔뜩 흥미가 동해 물었다.

《정말 해석이 잘돼?》

아끼꼬는 머리를 흔들었다.

《힘들어요. 하지만 어쨌든 아무리 일본어로 이렇게저렇게 풀어도 뜻련결이 안되던 운률이 고대조선어로 풀면 단어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뜻이 생기거던요.》 하던 아끼꼬가 별안간 《호호호!》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왜 그래?》

이마무라는 처음 들어보는 아끼꼬의 큰 웃음소리에 놀라 물었다.

《우리 <만엽집>의 한 친구가 풀리지 않는 련시를 이렇게저렇게 맞춰 한달동안에 <끝모를 후지산계곡 깊이깊이 들어가보니 채운서린 봉우리마다…> 하고 해석해놨는데 고대조선어로 풀어보니 하루동안에 완전히 다르게 해석이 되는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이 호호…》

아끼꼬는 얼굴이 붉어져 웃다가 《글쎄 <그녀를 안고 침방에 들어 오래오래…> 하는 야한 음담시였다던지…》

《하하하, 그게 정말이야?》

《그럼요, 호호호.》

《하하하.》

그들은 허리를 그러안고 눈물이 찔끔 나게 웃었다.

《<만엽집> 80프로가 다 그런 련정가라면서… 그러니 고대의 토속민요를 일본어로 근대의 뜻에 억지로 맞췄던거군.》

조춘일은 씁쓸히 웃었다.

아끼꼬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문화적측면에서 보면 나라시대는 일본의 고대력사에 하나의 큰 산마루가 되는 시기였다고 볼수 있어요.

710년부터 784년에 이르는 불과 70여년기간이였지만 이 시기에 일본 최고의 력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력사편찬이 이루어졌고 아까 이야기한 <만엽집>이 완성됐으니까요. 그런데…》

아끼꼬는 숙연한 표정으로 이마무라를 돌아보았다.

《바로 그때를 전후해 조선의 고구려, 백제를 비롯한 세나라에서 한자와 불교가 들어오고 경전, 종이, 먹이 이전됐던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기또라고분의 평양하늘까지 보고나니 그 당시 일본이 얼마나 많은 문화를 전래받았는지 다 헤아릴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

이마무라는 내심 수긍했다.

《고분의 천정에 자기 조국의 하늘을 새겼다는건 그 고분을 축조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고구려사람들이였다는 움직일수 없는 물증으로 되는거지. 그러니 우리 일본의 편견적인 력사학자들이 자존심이 상해 음으로 양으로 그 주장을 반대하는거고…》

어디 들릴데 있다며 조춘일이 먼저 돌아가고 그들 둘만이 남았지만 아끼꼬는 도미꼬와의 격렬했던 론쟁의 여운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였다.

《야마구라선생은 바다건너 조선이 대륙과의 유일한 교통로였던 고대일본에 있어서 조선반도는 문명의 즙이 건너오는 유일한 어머니의 젖줄기였다, 고대조선의 젖을 빨아먹고 일본민족은 자라났다, 그런 일본이 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숱한 녀성들을 위안부로 끌어다 유린했으니 결국 제 어머니를 륜간한 패륜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고 하시더군요.》

《그럴가? 그런데 정부는 위안부문제는 정부나 군부에서 한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잖아.》

《그걸 믿어요? 지금 정부에서 필사적으로 낯뜨거운 그 일을 자료적으로 말살하자고 든 일인데…》 하던 아끼꼬는 머리를 들며 물었다.

《참, 이마무라씬 몇년전에 나온 쯔노다 후사꼬녀사의 <민비암살>을 봤어요?》

《그런 책이 있어?》

 아끼꼬는 호 하고 가늘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니 못 봤군요. 제가 가져다드릴테니 꼭 보세요.》

 다음날 아끼꼬가 그 책을 가져왔다.

하루품을 들여 단숨에 읽은 이마무라는 저녁에 아끼꼬를 만났을 때 가슴에 재가 꽉 들어찬듯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아끼꼬! 이게 진실이라면…》

얼굴이 검붉게 충혈된 이마무라는 책상우에 펼쳐놓은 그 책의 한 대목을 가리켰다.

《민비가 칼에 맞아죽은 그뒤의 이 부분… <더우기 민비의 유해곁에 있던 일본인중에 동포인 나로서는 차마 쓰기 괴로운 행위가 있었음이 보고되여있다. 전 법제국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내부 고문관이였던 이 스즈까 에조는 법제국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앞으로 보낸 보고서속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 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있다.> 하며 부랑자 하나가 민비의 시체를 간음한 내용을 시사한 이 대목…》 하며 이마무라는 저도 모르게 턱을 후드드 떨었다.

《아끼꼬! 국가간, 민족간의 륜리는 고사하고 이게 도대체 사람의 탈을 썼다고 하는자들이 행할수 있는짓인가. 이런 천인공노할 사실을 나는 왜 여직 모르고있었을가.》

이마무라의 손은 다음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여기 이 대목… 미우라공사, 오까모도, 오기하라가 작당하여 <문짝우에 이불로 덮은 민비의 유해를 건청궁 동쪽의 록원이라고 불리우는 정원으로 옮겨 높이 쌓아올린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렀다. …재로 변한 유골은 지금도 남아있는 향원지에 던져졌다.> 하는 이 대목… 아, 내가 일본사람이라는것이 정말 수치스럽다.》

이마무라가 가슴속에 끓는 분노를 이렇게 터뜨리자 처녀는 조용히 사려깊은 어조로 대답했다.

《이마무라씨! 사실 일본의 지금 세대는 외곡된 책이나 교과서에서 간접적으로 보고 듣던 몇가지것보다 일본이 저 조선이란 한 나라를 없애려 저지른 그 악독이 얼마나 세뇌적이고 집요하고 악랄했는지 다 모르고있어요.

황궁에 떼무리로 몰려들어가 온 국민이 지엄한 국모로 쳐다보던 명성황후를 발로 밟고 칼로 란탕을 쳐 죽여서는 시체까지 그처럼 치떨리게 모욕하고 고종의 음식에 약을 쳐 독살하고 마지막황족인 영친왕에겐 일본녀자를 결혼시켜 조선봉건왕조의 대를 끊고, 조선 삼천리 이름난 명산마다 구멍을 뚫고 류황을 끓여 붓고 쇠말뚝을 박아 지맥을 결딴내고 대대손손 써오던 성과 이름을 모두 일본의 성과 이름으로 바꾸게 하고 후대를 남길수 있는 수십만의 처녀들을 성노예로 끌고 가 전장에서 지리멸렬시켜 조선족의 혈맥을 끊으려고…

조선을 먹겠다고 그처럼 이를 갈며 덤벼들던 그 일본사람들만큼 지금 조선사람들 일본에 대해 그렇게 분노하며 벼르고있을가요?》

《…》

격앙된 감정을 삭이지 못하는 아끼꼬의 절절한 목소리는 이마무라의 가슴을 저르르 울리고 흔들었다.

황혼의 어스름이 점차 바다가를 잠식하고있었다.

무라야마는 깊은 감동속에 외웠다.

《아끼꼬… 음, 그가 그런 처녀였구만.》

《예, 어쩔수 없는 환경이였지만 그런 속에서도 조상의 나라인 조선을 그렇게 사랑한 참신한 처녀였습니다. 그가 고대조선어연구에 열중하는것을 보면 어떤 땐 조선에서 건너온 제가 오히려 면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몰두했는가?》

《예! 그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게 작년 5월인데 저 타이 북방의 치엥 마이일대에 고대조선어를 쓰는 라후족이란 소수민족이 살고있다는걸 알고는 끝끝내 그 타이까지 갔다왔거던요.》

여기서 무라야마는 전기에라도 닿은것처럼 놀랐다.

《가만, 그들이 타이에 갔다왔단 말인가?》

《예!》

《언제라구?》

《작년 5월이였습니다.》

《?!》

무라야마의 머리속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한차례 돌풍이 지나갔다.

《그때 저에게도 이마무라씨와 함께 가자는걸 고향의 조부모님이 타계하셔서 미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타이에 갔다온 그들이 그 라후족이야기를 어찌나 요란스레 하던지… 거기에서 라후족의 후예라는 무슨 도보려행사 사장인가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니 타이 현지에서부터 그렇게 찾던 두 일본인대학생, 그들은 바로 아끼꼬와 이마무라였던것이다.

모리형사에게 반드시 찾으라고 임무를 주고 온 그들을 여기 안면도에 와서 찾게 될줄이야.

조선혈통의 처녀인 아끼꼬, 그래서 고대조선어에 그처럼 열광적이였던 그 처녀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무라야마는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얼마만한 공력을 더 들여야 했을것인가.

여기 와서 조춘일을 만난것은 정말 천만다행한 일이였다.

도보려행사 사장이란 분명 그 츄홍따이를 의미할것이다.

《그 려행사 사장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는 않던가요?》

무라야마는 바싹 긴장해서 다우치듯 물었다.

《사람이 참 좋다고 했습니다. 고아로 고생도 많이 했고…》

《그들이 타이에서 니시하라 겐따로나 아지자와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얘기는 없었소?》

《없었습니다.》

조춘일과 헤여져 호텔로 돌아온 무라야마는 급히 국제전화로 웅카라를 찾았다.

라후족의 고대언어를 연구한다던 그 두 대학생을 찾았다는 무라야마의 전화에 웅카라는 기뻐서 소리쳤다.

《거 참 반가운 소식이군. 수사가 영 지지부진이던 판에 이거 큰 수고했네. 그런데 그들이 일본대학생이 맞던가?》

《맞네. 둘이 다 도꾜대학 학생들이네.》

《아, 그렇구만.》

무라야마는 조춘일을 알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했다.

《내가 첫 단계에서 판단을 잘못했었네. 설마 일본인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생각했던것, 아니, 그것도 지금 생각이고 애당초 일본인이 이 일에 관여했으리라곤 생각조차 없었네.

그것이 큰 실수였거던. 죽은 도미꼬와 력사청산문제를 가지고 제일 앙숙이던 조춘일이란 조선청년이 도미꼬가 타이로 간 후 인차 사라졌네. 그래 뒤쫓아 여기 <한국>에 건너와 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조사해보니 아니였네. 사건이 벌어진 그 기간에 조춘일은 자기 고향을 떠난 일이 없었더란 말일세. 결국 혐의대상에서 제외시켰네.

그런데 뜻밖에 바로 조춘일에게서 그 두 대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줄 어찌 알았겠나.》

무라야마는 아끼꼬와 이마무라가 작년 5월에 타이에 갔던 일과 거기서 츄홍따이를 만났던 사실, 그들중 아끼꼬라는 처녀가 칸쿤마을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열흘전인 9월말에 도꾜에서 살해된 사실, 조춘일이 그것을 도미꼬의 짓이라고 확언하면서 이에 대해 이마무라라는 그 처녀의 애인이 증명할수 있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하고 전화 저편에서 웅카라는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 도미꼬가 제 죽기 열흘전에 아끼꼬라는 처녀를 죽인 장본인이 옳다면 이마무라라는 그 처녀의 애인이 도미꼬를 복수했을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가.》

《충분히 그럴수 있지.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조춘일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온 이야기일뿐이네. 이 모든것의 사실여부를 아무래도 당신과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할것 같네. 내 곧 도꾜로 돌아가 이마무라를 조사하겠으니 당신은 츄홍따이를 속히 만나주게.》

《알겠네. 듣고보니 내 추측이네만 두 녀자, 아끼꼬와 도미꼬가 죽은 선에 츄홍따이와 이마무라가 관여되여있는것 같네.》

웅카라는 무라야마의 말을 선뜻 긍정했다.

《바로 그걸 확증해야 된다고 보네. 아닐세라 여기서 우린 지금 츄홍따이를 깊이 파들어가고있는중이네.》

《그런데 확정적인 증거자료를 쥐기 전엔 아직은 츄홍따이를 크게 놀래우지 말아주게.》

《아, 알만 하네. 어떻든…》

웅카라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무라야마군, 자네 수고가 크구만.》

웅카라와의 전화를 끝낸 무라야마는 곧바로 도꾜의 시게미쯔국장을 찾았다.

《국장님! 전번에 보고했던 츄홍따이가 만났다던 그 두 일본대학생있지 않습니까.》

《아, 츄홍따이가 관광안내를 했다던 그 두 대학생?》

《예, 그들이 누군가를 찾아냈습니다.》

《그런가? 큰 성과구만. 그런데 그들을 서울에서 찾았단 말인가?》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그들이 누군가?》

《도꾜대학 대학원의 정경과 이마무라와 사학과 대학원생인 아끼꼬라는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는 얼마전에 죽었습니다.》

《뭐? 죽었다구?》

《생각나지 않습니까. 지난 9월말에 바다에서 한 처녀의 시체를 발견했던 사건…》

《가만, 아! 생각나네. 그 수사가 지지부진해 아직 미해결사건으로 남아있지.》

《예. 그런데 함께 랍치되였다 살아남은 이마무라는 그 처녀를 죽인게 도미꼬라고 확언한답니다.》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 녀자가 완강히 부정해서 뒤집어졌지.》

《그렇게 됐습니까?》

《그럼.》

《전 모르고있었습니다.》

《그럴수 있소. 궁내청의 요구로 그 문제엔 일체 함구령이 내렸으니까. 그런데 그 이마무라는 지금 어데 있다는건가?》

《제 국장님께 그것을 부탁드리려던 참입니다. 그에 대한 긴급수사를 당장 포치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이 시간으로 도꾜로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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