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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23]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5. 안면도의 조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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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20 16: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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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3]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5. 안면도의 조춘일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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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23 회)

제 4 장

5. 안면도의 조춘일

 

그날 저녁 약속된 시간에 엄탁준이 전화를 걸어왔다.

무라야마에게 코리아명칭을 가진 단체들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고 그는 조춘일의 선을 좇아 부안으로 내려갔었다.

《과장님! 조춘일은 현재 부안읍 자기 고향에 가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의 그의 행적을 날자별로 추적했는데 집에서 약혼식을 하고 7일과 8일 이틀간 애인과 조상의 선산이 있는 산청군에 갔다와서는 엊그제 덕유산유람을 떠나기 전까지 고스란히 집에 박혀있었다는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예.》

《산청군으로 떠난게 어느날이였다구?》

《정확히 7일 오전입니다.》

《그날에 산청군에 가있은 사실을 당신이 직접 확인했는가 말일세.》

《아, 여부있습니까? 제가 직접 현지에 가서 그 사람 숙부도 만나고 경찰지서장을 만나 확정했는걸요.》

무라야마는 요약해서 간단히 전하는 엄탁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그시 입술을 사려물었다. 여지없는 랑패였다. 그는 십중팔구 조춘일을 도미꼬살인과 련계가 있는자라고 보고있었던것이다.

예상외의 정황에 접하고보니 《그런데 말입니다. 제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길인데 꼭 만나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하는 엄탁준의 말도 귀에 잘 들려오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뭔지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가 가지 않았다.

결국 조춘일에게 혐의가 없다면? … 무라야마의 생각은 다시 윤도환에게 집중되였다.

칸쿤마을에서 보았던 그 《판결집행장》, 거기에 찍혀있던 코리아민족정기사수회, 단지의식을 주도했던 사나이들이 머리에 동였던 코리아구국결사대 그리고 《천황》가를 응징한다는 그 《판결집행장》의 문구와 단지의식에 참가했던 사나이들의 죽음도 불사할듯 한 그 결사적자세들…

그모두에는 무엇인가 하나로 모아지는 공통점들이 있었다.

저녁에 무라야마는 사다께를 데리고 대흥동에 있는 깊숙한 곳의 료리점에서 서울에 올라온 엄탁준을 조용히 만났다.

무라야마는 칠색송어구이, 참마절임과 여러가지 사시미 등으로 풍성하게 차린 탁에 엄탁준을 안내했다.

《그래, 만나 이야기할거라는게 뭔가?》 하고 무라야마가 묻자 엄탁준은 그 심중한 거적눈을 들었다.

《조춘일이 사건과 무관계하다는걸 알게 되니 만나봐도 일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래 제가 덕유산까지 그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당신이 조춘일을? 정말이요?》

무라야마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아, 걱정마십시오. 절대 다른 이야기는 한게 없구 호텔에서 그를 만나 한잔하면서 일본에서의 류학생활에 대해 물었지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끼꼬라는 대학원생처녀가 죽은 이야기를 하더란 말입니다.》

《아끼꼬? 잘못 들은게 아니요? 도미꼬가 아니고?》

이번에는 옆에 앉았던 사다께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요. 분명 아끼꼬라고 했습니다.》

《아끼꼬?》

《예, 아끼꼬는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조춘일과 무척 뜻이 통했던 처녀였다더군요. 얼마전의 일이니 이 친구가 아직 그 충격에서 깨여나지 못한것 같습니다.》

《혹시…》

그 순간 무라야마는 피뜩 한주일전 시게미쯔국장의 긴급호출을 받고 오끼나와출장에서 돌아오던 새벽 비행기안의 신문에서 보았던 생동한 눈빛의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인모르게 살해되여 지금껏 수사가 진행되고있는 그 처녀의 이름이 바로 아끼꼬였던것이다.

《그런데 아끼꼬라는 녀자가 죽은 얘기가 어떻게 나왔소?》

《조춘일이 처음엔 나도 덕유산관광을 온 유람객으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내가 그렇게 행세했으니까요. 덕유산에 유명하다는 그 단풍과 억새릉선 구경왔다 우연히 만난것처럼…

그런데 뭔가 이상한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나보고 수사기관에서 오지 않았는가 곱씹어 묻더란 말이지요.

그렇게 보이는가 되물었더니 그 친구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달포전에 같은 사학과에서 공부하던 아끼꼬라는 처녀가 이마무라와 함께 실종된지 사흘만에 변사체로 나타났는데 도꾜를 떠나오기 전까지 계속 수사기관의 시달림을 받았다는겁니다.》

《…》

무라야마는 명치끝을 내질린듯 꺽 말문이 막혔다. 엄탁준이 말하는 아끼꼬가 분명 그 아끼꼬라는것은 더 말해볼것 없이 명백했던것이다.

(신문은 그 녀자가 조선혈통의 녀자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수사본부가 결성되였지만 아직 아무런 결과가 없이 지지부진하고있는 그 아끼꼬살해사건의 뿌리가 이 사건과 련결되여있다는 생각이 뇌리속을 번개쳐갔다.

《함께 실종된 이마무라라는건 누구요?》

《아끼꼬의 애인이랍니다. 조춘일은 자기와 한기숙사에 들었던 친구라면서… 실종됐던 그 이마무라가 어느날 밤에 자기를 찾아왔더랍니다. 아끼꼬는 원통하게 죽고 자기만 간신히 살아왔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더랍니다. 그처럼 달변이고 활달하던 이마무라가 랭혈의 인간이 됐다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다가 훌떡 사라졌는데 마주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이제 나타나면 자기도 그놈들에게 죽는다면서 아끼꼬를 죽인게 도미꼬년이라고 이를 갈더라는겁니다.》

《아끼꼬를 죽인게 도미꼬라고? …》

무라야마는 다시한번 그 어떤 강한 물체에 뒤통수를 맞기라도 한듯 한 충격을 느꼈다.

자기가 어떻게 그처럼 착종과 혼돈에 빠져 놓치지 말았어야 할 중요한 사람들을 스쳐지났는가 하는 생각으로 순간에 자신에 대한 허무가 왔다.

이건 있을수 없는 실수였다.

일본인을 포함해 도미꼬주변의 모든 사람을 사건혐의에 넣고 수사를 진척시키지 못한데는 물론 일본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심에 있었다.

그렇게 주관적인 자기 의도로 이번 사건의 수사방향을 규정한 여기에 사건해결의 결정적인 허점이 있었던게 아닌가.

무라야마는 한시바삐 자기가 직접 조춘일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탁준은 자기가 무라야마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의 방향타를 돌려놔주었는가를 알수 없었다.

앞으로의 더 확실한 보상과 대응한 도움을 바라고 한 일이지만 도드라진 눈시울밑의 침울한 눈빛이 음침해보여도 이 저기압류의 묵직한 사나이는 비면 비, 우박이면 우박이 명백했다.

확실히 신용이 있는자였다.

오늘 국경없는 범죄가 날로 범람하는 이때에 타국의 이런 방조자를 가지고있다는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탁준군! 이번 수고 꼭 갚겠네. 그런 의미에서 내 한잔 붓겠소.》

무라야마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터뜨리며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는 엄탁준에게 속히 조춘일을 자기가 만날수 있게 해줄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자기가 조춘일을 만나는 사이 수배중인 윤도환을 찾아내라고 했다.

그날로 떠나갔던 엄탁준은 이틀후 무라야마를 안면도까지 데리고 가 조춘일을 직접 대면시켜주었다.

서해 태안반도 한끝에 고드름처럼 길게 매달려있는 안면도는 원래 륙지와 련결된 반도였는데 조선봉건왕조 인조때 수로를 내면서 섬이 됐다고 한다.

무라야마와 조춘일은 섬안의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걸었다.

사다께는 멀리서 주머니속의 동전을 절렁거리며 그들의 주위를 돌았다. 이상한자들이 맴도는게 없는가를 살피는것이였다.

무라야마는 조춘일에게서 도미꼬와 관련된 진실을 듣자면 자기를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춘일자신이 아끼꼬라는 일본처녀가 실종되여 변사체로 나타난것을 도미꼬의 작간이라고 확언하며 분노를 참지 못하는만큼 그에게 자기 신분을 그대로 알리는것이 오히려 낫겠다고 생각했다.

무라야마는 조춘일에게 자기가 일본경시청의 형사라는것을 밝히고 아끼꼬가 죽은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춘일은 아직 도미꼬가 죽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것을 봐도 그는 사건과는 무관계한 인물이다.

무라야마도 엄탁준에게 도미꼬와 관련된 문제는 일체 이야기한게 없었다.

그러니 조춘일이 그 내용을 알리가 없는것이다.

《조춘일씨는 어떻게 아끼꼬씨를 도미꼬가 죽였다고 단언합니까? 법앞에 내놓을 확고한 증거없이 그렇게 말하면 자칫 중상죄에 걸릴수 있다는걸 모르지 않겠는데요?》

《…》

조춘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칼칼한 얼굴에 날이 선 코며 약간 굽은 어깨가 받을듯 앞으로 향한 조춘일은 말없이 걸으며 잠시 수평선쪽을 일별하더니 문뜩 산책로에서 벗어나 낚시군들이 군데군데 앉아있는 백사장쪽으로 터벌터벌 걸어내려갔다.

무라야마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잔물결이 쉬임없이 일어번지는 바다기슭이 저아래 내려다보이는 모래둔덕에 이른 조춘일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라야마도 그옆에 다가가 다리를 뻗치고 앉았다.

조춘일은 흘깃 무라야마를 돌아보더니 무라야마의 선이 곧은 코날옆에 말없이 응시하는 예리한 눈길과 부딪치자 긴 한숨을 톺으며 말했다.

《형사님, 만약 아끼꼬에게 이마무라라는 애인이 없었다면 저는 그 처녀에게 청혼했을겁니다. 아끼꼬는 사실 조선혈통의 처녀였습니다.》

《음, 신문에도 그렇게 났더군.》

《예.》

제 감정에 격앙된 이 조선청년은 무라야마가 실상 아끼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있다는것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무라야마가 심중한 낯빛으로 응대없이 앉아있자 그제야 조춘일은 리성을 되찾은듯싶었다.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말을 뗐다.

《아끼꼬와 도미꼬가 일본의 과거청산문제로 맞붙은것은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극우익적인 조직이 결성된 때부터였습니다.》

가뜩이나 예리해보이는 조춘일의 두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쩍였다.

주먹을 쥐며 이야기하는 그의 자세에선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꿈틀거리고있는 그 무엇인가가 금시라도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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