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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식

북녘 | [기행문] 동해명승 칠보산을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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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18 08:2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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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행문] 동해명승 칠보산을 찾아서(1)

 편집국


<로동신문>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녘과 해외동포들에게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산으로 알려진 기암절승의 칠보산의 아름다움과 유래에 대해 상세히 소개 기행문을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로 구분되는 칠보산지구는 동식물자원도 풍부하여 세계생물권보호구로 등록되어 있는 조국의 명산중 명산이다.


필자는 외칠보 만물상의 조약대에 올라서서그대가 만약 시인이라면 이곳에서 주옥같은 시상을 고르시라. 그대가 촬영가라면 부디 다른 곳에서 명화면을 찾지 마시라. 그대가 만약 음악가라면 세상만물을 가져다놓았다는 여기서 애타게 찾고찾던 선률을 고르시라.”라고 하였다.


칠보산 기행문을 연재로 소개한다.




유구한 력사와 절승경개로 자랑높은 내 조국

[명승기행] 동해명승 칠보산을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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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산좋고 물맑아 금수강산이라 불러온 우리 나라의 북변 동해기슭에 보물이 가득찼다고 하여 보물산, 보석처럼 빛난다고 하여 보석산으로 자랑높은 명산이 있다.


우리 인민들속에 《함북금강》으로 널리 알려진 칠보산!


웅장하고 독특한 산악미와 계곡미, 수려하고 황홀한 수림미와 바다가경치가 한데 어울려 다른 명산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이채로운 자연절경을 펼쳐보이고있으니 과시 명산중의 명산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아아한 산발들과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각양각색의 명소를 이룬것도 절승이지만 거기에 담겨져있는 구수하고 흥미있는 전설과 민간설화들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으뜸가는 명산!

우리는 아름다운 조국산천에 대한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세계적인 명산 칠보산에로의 기행길에 올랐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칠보산은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칠보산은 우리 나라의 5대명산으로 이름난 산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칠보산은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두차례나 칠보산명승지에 대한 해설을 진행한 칠보산명승지관리소 학술연구사 김갑성동무와 동행하기로 하였다.

그는 취재차가 칠보산의 관문인 박달령기슭에 들어서자부터 큼직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먼 옛날에 박달령은 생김새가 반달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반달령 또는 반월령으로 불리웠다. 그러던것이 언제부터인가는 박달령으로 불리우게 되였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령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란다는데서부터 유래되였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인민들이 이 령에서 단군제를 자주 지낸데로부터 생겨난 이름이라는것이다.


박달령에 들어서니 도로량옆으로 수려한 소나무림이 무성하게 펼쳐져있었는데 나무들이 하나와 같이 미끈하게 곧추 자라는것이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라고 하면 구불구불하게 자란것을 많이 보아와서 그럴것이리라.

아마도 칠보산송이버섯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 유명한 칠보산송이버섯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맛과 향기, 약효에 있어서 으뜸인 칠보산송이버섯의 독특한 향기가 우리 나라는 물론 대양과 대륙을 넘어 풍기고있다 하니 명물이 많기로 자랑높은 명산을 찾아가는 우리의 걸음에 어찌 날개가 돋지 않을수 있으랴.


흥얼흥얼 노래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칠보석이 빛을 뿌려 그 이름 칠보산

    우리 당의 해빛 안아 칠보산일세

    한번 보면 넋이 끌려 갈길을 잃고마는

    칠보산은 바위풍치 천하명승이라오

    천하의 명승일세

 

박달령에 큰길이 생기기 전에 사람들은 문암령을 넘어 칠보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곳에는 먼 옛날 죽어서도 칠보산절경을 떠나고싶지 않아 죽음의 길을 택했다는 한 사람과 말의 무덤에 대한 전설이 깃들어있었다.


어느덧 칠보산관광안내도가 세워져있는 박달령정점에 이르렀다.

안내도에는 내칠보, 외칠보, 해칠보지구와 구역별탐승도로들, 칠보산의 명소와 기암들이 표식되여있었다. 또한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업적을 전하는 현지지도표식비와 이 일대에서 발굴된 구호문헌들의 위치가 밝혀져있었다.


본래 안내도는 유화로 그려져있었다고 한다.

주체85(1996)년 11월 2일 칠보산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기 박달령정점에서 칠보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부감하시면서 전경도를 보석화로 특색있게 만들어세우고 칠보산을 인민의 문화휴양지로 더 잘 꾸릴데 대한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 가슴뜨거운 사연을 새겨안을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더욱 후더워졌다.


칠보산의 보석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속에 박달령이 첫날 새색시런듯 칠보산관광안내도를 칠보족두리처럼 쓰고 명산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맞아주고있었다.


박달령정점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바위가 나졌는데 묘한 천연바위는 마치 칠보산의 문주같았다.

이곳에서 잠간 휴식하는 동안 학술연구사는 우리에게 칠보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칠보산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불리워졌는데 7가지의 보석과도 같이 산이 하도 아름답고 보배롭다는 뜻에서 유래되였다. 칠보산의 지명유래와 관련하여서도 여러가지 전설이 전해져내려오고있다.

대표적으로는 옛 문헌에 씌여져있는 칠보매장설, 지각변동설, 칠보단장설이다.


칠보매장설은 칠보산에 7가지 보물이 묻혀있다는데서부터 유래되였다고 한다. 그 7가지 보물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금, 은, 마노, 차거, 진주 등을 들수 있다. 지각변동설은 먼 옛날 조선동해의 북부기슭에 묘하게 생기고 보물이 많은 7개의 산이 불쑥 솟아올랐다가 6개의 산은 바다에 잠기고 지금의 칠보산만이 남게 되였는데 그 7개의 산을 통털어 불리워진 이름이라는것이다.


칠보산의 지명유래들가운데서 그중 우리의 흥미를 끈것은 칠보단장설이였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아름다움을 상징할 때 《칠보》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실례로 칠보단장, 칠보반지, 칠보홍안, 칠보팔진, 칠보패물, 칠보화관 등과 같이 《칠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귀하고 진귀한것을 가리키는 말로 되여왔다. 이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의 일만경치를 다 안고있는 이 산을 칠보단장을 한 첫날 새색시에 비겨 칠보산이라고 불러왔다는것이다.


철따라 아름답게 단장되는 칠보산의 경치를 두고서도 봄이면 백화만발한 《꽃동산》, 여름에는 록음 우거진 《록음산》,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피는 《홍화산》, 겨울에는 흰눈으로 은빛단장한 《설백산》이라고 불러왔다.


지명의 유래와 력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칠보산이야말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민들의 마음속에 친근하게 자리잡고있었다는것을 잘 알수 있었다.

굽이굽이 아흔아홉굽이나 되는 박달령을 넘어서자부터 내칠보의 독특한 경관이 우리앞에 펼쳐졌다.

네갈래의 릉선우에 바위들이 조롱조롱 솟아있고 또 마치 새조롱처럼 생겼다고 하여 조롱봉이라 불리우는 명소였다.

짙은 록음과 유정한 물소리가 안겨주는 쾌감에 먼거리를 달려온 피로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머리가 거뜬해지는듯싶은데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제가끔 솟은 바위들이 이제 펼쳐질 내칠보의 경치를 예고하는가 이곳 풍치를 더욱 돋구고있었다.

머리에 띠를 두른 도사같다는 도사바위, 책들을 차곡차곡 올려쌓은듯 한 인상을 주는 책바위, 체격이 큰 사람처럼 생긴 거인암…

그런가 하면 악어가 솔잎이 드리워져있는 바위벽에 붙어있는것만 같은 악어바위도 있고 몸집이 억대우같은 장수를 방불케 하는 장수바위도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다 개성적인 생김새와 흥미진진한 전설이야기로 지울수 없는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데 기암들이 늘어선 조롱봉구역을 지나니 우리의 눈앞에 칠보산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형상한 모자이크벽화가 안겨왔다.


여러차례나 이곳에 찾아오시여 칠보산은 명산중의 명산이라고 하시며 칠보산을 인민의 유원지로, 세계적인 명산으로 더욱 빛내일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


절세위인의 그렇듯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어 우리의 칠보산은 인민의 명승지로서 자기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만방에 떨쳐가고있는것이 아니랴.


록음우거진 수림과 쉼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이채로운 절경을 펼친 청계골, 단풍이 붉게 타는 가을이면 마치 노을이 피여나는것 같다고 하여 자하동이라 불러온 이곳에 들어서니 옛 시구절이 생각났다.

 

    돌은 쌓이여 층암산을 이루고

    물은 급히 흘러 폭포여울 되였네

    검고 누런 바위들은 참으로 기절할 경치로다

 

우리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잘 보여주는 오랜 력사문화유적인 개심사에 들려 고색창연한 옛 건축물들도 깊은 감회속에 돌아보았다.

다난다사한 민족사의 풍운을 거슬러보게 하는 건축물들과 유물들을 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민족의 정취를 그대로 정기로 새겨안은 우리의 칠보산,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더욱 새겨안게 하는 내 나라의 명산, 민족의 또 하나의 재부가 바로 칠보산, 네 아니던가!


우리는 누구나 여기에 오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고 하여 개심대라고 부르는 전망대에 올라 《칠보산아!》라고 소리높이 웨쳤다.

명산의 청신한 공기가 페부로 한껏 흘러들어 이름 못할 격정을 불러일으켰다.

칠보산은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그 매력이 짙어졌다.

장난기어린 우습강스러운 곰조각으로 형상한 리정표가 가리키는대로 우리는 아아한 산봉우리정점에 솟아있는 승선대정각에 올랐다.

하늘의 선녀들이 칠보산에 내려와 구룡담의 맑은 물에 미역을 감고 날개옷을 날리며 하늘로 올랐다는 승선대,

구름은 두손을 뻗치면 잡힐듯 하였고 산밑으로는 만사봉, 천불봉, 종각봉, 원숭이바위를 비롯하여 내칠보의 일만경치가 환하게 안겨왔다.

저 멀리로는 외칠보의 산악들이 기세찬 위용을 자랑하며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모양이 과시 장관이였다.

한폭의 그림같았다. 아니 전설속에 나오는 신비로운 동산에 온것만 같았다.

기이하면서도 장쾌하고 황홀하면서도 장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눈부신 이 가슴벅찬 광경을 보지 못하면 평생 한이 된다고 누군들 말하지 않을수 있으랴.


위대한 장군님을 승선대에 처음으로 모시였던 주체85(1996)년 6월에는 정각이 세워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칠보산을 인민의 명산으로 더 잘 꾸리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함경북도인민들은 불과 몇달동안에 이처럼 훌륭한 정각을 세워놓았다고 한다.

그해 11월 또다시 칠보산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승선대정각에 오르시여 현대적으로 잘 건설하였다고, 자연바위처럼 만든 정각기둥이 보기 좋다고 하시면서 건설자들의 수고를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그날 초가집바위와 기와집바위, 부부바위를 비롯하여 내칠보의 일만경치를 오래도록 부감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은 명산중의 명산이라고 거듭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옛날사람들이 5대명산을 꼽았다면 오늘 로동당시대에는 6대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것 같다고 뜻깊게 교시하시였다.

마치 절벽우에 천개의 부처들이 모여있는것 같다고 하여 천불봉이라 불리우는 봉우리도 장관이지만 벌거스레한 벽체에 처마를 얹고 만개의 절간이 층층이 겹쳐있는듯 한 만사봉은 이름있는 석공이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들어세운것처럼 볼수록 신비스러웠다. 이전에는 만마리의 사자가 웅크리고있는것 같다고 하여 만사봉으로 리해하고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설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사봉은 만마리의 사자가 앉아있는것 같다고 하여 만사봉이라고도 하고 만개의 절간이 있는것 같기도 하고 만사람의 중이 앉아 도를 닦는것 같기도 하여 만사봉이라고 한다는데 자신께서 보기에는 만개의 절간이 있는것 같아보인다는 말이 비슷한것 같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해당 부문 일군들이 력사자료를 깊이 연구분석하고 민간전설들을 수집종합하는 과정에 만개의 절간이 있는것 같아 만사봉이라고 하였다는 력사적사실이 나졌다.


천불봉의 남쪽에 위치한 원숭이바위도 력사에 아로새겨질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고있는 명암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에는 부부바위, 천불봉, 례문암을 비롯하여 기묘한 바위들이 많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전에는 로적봉으로 불리우던 바위를 바라보시며 원숭이가 턱을 고이고 무엇을 생각하는것 같이 생긴 바위도 있다고 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어버이의 손길에 의하여 내칠보의 명암들과 명소들은 기묘하고 위엄스러운 자태를 한껏 시위하며 참다운 위인을 모셔야 력사도 산천도 빛난다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다시금 깨우쳐주고있었다.

 

 

 

 

 

 

 

 

글 본사기자 김성민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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