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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20]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진화과정의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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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17 09:2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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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0]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진화과정의 일본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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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20 회)

제 4 장

2. 진화과정의 일본인

 

그런 때 꼬카시로 가니다니형사를 찾아 떠났던 방코크경찰국의 두 형사가 뜻밖의 소식을 웅카라에게 전해왔다.

가니다니가 어떤 불미스런 문제로 꼬카시의 무에타이청년들에게 잘못 걸려들어 결투끝에 의식을 잃고 시종합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이였다.

《마에다》로 되여있는 일본기자증명서를 본 병원사람들은 경찰청 중앙사고본부에 일본기자 한사람이 꼬카시취재중에 사고로 입원했다는 보고를 했는데 타이외무성은 그가 일본경찰 가니다니인줄은 전혀 알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그의 소식이 무라야마나 웅카라에게 가닿을수 없었던것이다.

가벼운 찰과상과 뇌타박을 입고 며칠간 병원에서 안정하고 형사들의 차에 실려온 가니다니에게 웅카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었다.

가니다니는 제 체신이 저로서도 부끄럽고 어이없는지 어설프게 웃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 가니다니가 그런 실수를 저지를줄은… 실상 그들을 추적한 자체가 잘못이였습니다.》

… 꼬카시에 도착한 가니다니는 주유소앞의 공원에 이르러 북조선사람들이 찾아갔댔다던 길건너 집들과 도로상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사장은 그때 차에서 내린 그들이 가벼운 짐을 하나씩 들고 매대로 다가가 무엇인가 물어보더니 매대뒤로 빠져들어갔다가 30분후에 그리로 다시 나왔다고 했다.

방코크지사장이 알려주던 그대로 6층의 키낮은 아빠트 두동이 서있는 짬에 진한 료리냄새를 풍기는 풍을 씌운 매대가 하나 서있었다.

가니다니는 주변을 살펴보고 이상한 다른 징후가 없다는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그 매대로 다가갔다.

고기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찌르는 매대앞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키작은 젊은 청년이 편편이 썬 돼지고기에 양념을 발라 꼬치로 구워내서는 한옆의 그릇에 연신 담아놓고있었다.

가니다니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떠듬거리는 타이말로 며칠전 여기에 와서 무엇인가 물어보던 북조선에서 온 두사람이 생각나는가고 물었다.

두리번한 얼굴에 사람좋아보이는 젊은이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아, 그 북조선사람들 말입니까? 생각나다마다. 나에게 탁분느의 집을 물어보았지요.》 하며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매대의 뒤쪽풍을 훌 천정으로 올려던지고 곧바로 그뒤에 있는 낮은 단층집을 가리켰다.

《저기 저 집이 우리 탁분느의 집이우다.》

《아, 그렇습니까?》

가니다니는 손에 든 작은 꾸레미를 쳐들어보였다.

《그 사람들이 그때 미처 가져가지 못했던 이 짐을 마저 가져다 주라기에 왔는데…》

《아, 그랬군요. 그 고마운 사람들 참. 그 사람들때문에 저 탁분느의 어머니가 살아났지요. 어서 가보시우다. 탁분느의 회사에서 왔다니 반가워들 할거우다.》

가니다니는 예상외의 이야기에 얼떠름해 물었다.

《탁분느의 어머니가 살아났다는건? … 탁분느라는 사람은 저 집의 아들인가요?》

그 말이 가니다니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젊은 청년의 슬슬 부치던 부채손이 서서히 멎었다.

청년은 눈을 똑바로 뜨고 가니다니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당신, 방금 탁분느의 회사에서 짐을 보내서 왔다고 하더니…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당신 도대체 누구요?!》

애당초 떠듬떠듬하는 가니다니의 타이말이 미심쩍어 기웃거리던 사나이는 대뜸 이렇게 따져묻는것이였다.

아차 하고 생각하며 가니다니는 제꺽 말을 돌렸다.

《아, 같은 회사래도 과가 다르다보니… 다 알수는 없는거지요. 그저 심부름 좀 해달라기에 왔던것인데…》

가니다니가 말을 돌려 변명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풍밖으로 훌 나온 사나이의 기름에 번들거리는 손이 가니다니의 어깨를 꽉 잡았다.

《좀 서시오.》

그러며 밖으로 나온 료리사청년은 여차하면 옆에 놓인 고기를 찍어내던 칼을 잡을 잡도리를 하며 다시 물었다.

《탁분느는 내 애인이요. 당신, 증명서 좀 봅시다.》

일본기자의 증명서를 보이면 모든것이 탄로날 판이다.

가니다니는 멋적게 웃으며 《자, 이 손을 놓고 얘기 좀 합시다.》 했으나 사나이는 머리를 저었다.

《당신은 암만 봐두 그때 왔던 그 사람들과는 달라. 당신 도대체 누가 보낸 사람이야?

그 조선사람들이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 탁분느가 골수염으로 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우는걸 보고 치료에 필요한 약을 출장길에 가져다 주고 갔는데… 그 사람들이 다시 보냈다는건 또 뭐고? 자, 보자니까, 증명서!》

가니다니는 순간에 자기가 모든 판단을 잘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불리할뿐이다.

안됐지만 이 청년을 쳐눕히고 도망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니다니의 눈이 긴장해지며 굳어지는 동작에서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청년이 홱 하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매대들에서 《뭐야? 무슨 일이야?》 하며 어느새 예닐곱의 젊은이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모여오기 시작했다.

청년이 가니다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 이상한 놈이 나타났어. 분명 우리 탁분느를 어째보려고 찾아온 놈이 분명해.》

그 찰나 가니다니는 자기 어깨를 잡은 청년의 손목을 잡아 숙련된 유도솜씨로 단번에 휘돌려 멨다꼰졌다. 그리고 매대를 훌 날아넘어 순간에 거리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어느새 날랜 두 젊은이가 동시에 날아넘어와 앞을 막는것이였다. 그 동작들이 여간 기민하지 않았다.

몸쓰는것이 하나같이 무술을 익힌자들이였다.

(안되겠군!)

결국 솜씨를 보일수밖에 없었다.

잠간사이에 젊은이들의 거의가 그의 박력있는 손발타격에 맞아 발밑에 쓰러졌다.

그러나 다음순간 안도의 숨을 쉬며 허리를 일으키던 가니다니는 돌연 누군가가 후려친 둔중한 무엇에 맞아 쓰러지고말았다.

까마득해지는 의식속에 《내 약혼녀를 따라다니는 나쁜 자식이다.》라고 소리치는 청년의 마지막말을 들었을뿐이였다. …

《하여간 수고했네.》

가니다니를 일본대사관의 숙소로 돌려보내며 웅카라는 쓰겁게 입을 다셨다.

가니다니를 통해 결국 북조선사람들에 대한 추적이 공연한 일이였다는것이 다시금 확정된셈이였다.

그날 저녁 웅카라는 전화로 무라야마에게 가니다니의 일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북조선은 이 사건과 어떤 련관도 없는것 같네.》

《결국 그렇게 됐단 말이지?》

은연중 가니다니에게 큰 기대를 가졌던 무라야마도 또 하나의 좌절감을 맛보는 랑패한 심정이였다. 쓴입을 다실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무라야마! 자네 도꾜와 서울에 더 힘을 집중해 진지하게 파보아야 할걸세.》

《알겠네. 참 그렇잖아두 방금 니시하라의 군적자료를 확인했네. 니시하라가 태평양전쟁당시 먄마방면군 16군에서 장교로 있었더군.》

《아, 그런가? 그건 큰 자료군. 글쎄, 그가 이 동남아에 그처럼 집착할 까닭이 있었겠지.》

웅카라는 크게 흥분했다.

《웅카라부장! 그러니 니시하라의 동남아근무당시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캐볼 필요가 있네.》

 …

웅카라는 지금 사무실의자에 앉아 승려마냥 눈을 감고 암흑의 건너편을 꿰뚫어보듯 오늘까지의 수사과정을 곰곰히 더듬어보고있었다.

그는 처음 니시하라와 도미꼬가 살해된데는 틀림없이 그와 깊이 엉킨 현지합작사업의 리권문제나 경영과정의 로사분쟁으로 인한 그 어떤 개인적인 원한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노자끼상사와 합작하는 세개의 계렬기업들을 세밀하게 조사한 형사들은 경영문제나 돈거래문제, 로사분쟁문제 같은데서 살인으로 갈만 하게 두드러지는 원한관계는 드러난것이 없다고 보고해왔다.

더우기 니시하라가 큰 기업의 상무취체역으로 합작, 합영의 큰 계약사업을 제외한 경영상의 모든 거래문제를 부하들에게 일임하고 사사로운 기업관리나 임금, 취업문제 같은것에는 끼여들지 않았던것만큼 현지인들과의 관계문제에서 제기될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범인들이 현장에 떨구고 간 그 《판결집행장》이 전적인 살인동기이겠는가?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문제, 《천황》의 처벌문제 같은 사명감에서 출발한것이고 그 어떤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동기는 없었단 말인가?

무라야마가 강조해 말한것처럼 니시하라가 과거 전쟁시기에 여기 현지인들과 빚어진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게 혹시 니시하라를 처형한 범인들과 일본군성노예문제로 깊이 얽혀있는것은 아니겠는가.

생각이 이렇게 가지치면서 웅카라는 피뜩 아버지를 죽인 왜놈들이 어머니와 마을녀인들을 법당에 끌어다 륜간하고 살아남은 한 녀인과 자기 어머니를 일본군성노예로 끌어갔다던 츄홍따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고아가 되였던 츄홍따이는 전쟁이 끝난 후 자기를 찾아온 한 고마운 녀인의 양아들이 되여 그의 보살핌속에 오늘껏 성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언젠가 츄홍따이가 자기에게 들려주었던 과거사였다.

그때 츄홍따이는 지금의 싼따라어머니는 친어머니가 들려주던 옛 민화를 알고있는걸로 보아 분명 왜놈들의 위안소에 함께 있은것 같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혹시 전후 련합군의 문건들에서 츄홍따이의 친어머니 샨프리양이나 지금의 싼따라어머니의 이름을 찾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실낱같이 희미한 실마리였지만 그런 자료가 없으면 없다는것을 확인하는셈 치고 한번 찾아보자!

웅카라는 오후 첫 시간이 되기를 기다려 경찰청도서관을 찾아갔다.

3층에 있는 고문서고에 들어가 일제의 강점당시와 패망후 실태를 부문별로 종합한 낡은 문서들속에서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관련한 내부자료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들춰보아도 그런 문서는 나지지 않았다.

그가 하도 이 자료, 저 자료 뒤지며 고문서에 골몰하니 문서고에 30년나마 근무한 주임이 어떤 문서를 찾는가고 물었다. 웅카라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주임은 전쟁과 관련된 문서는 경찰에 필요한 자료를 내놓고는 대체로 국가정보국으로 이관했다며 거기에 찾아가보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할수없이 문서고에서 내려와 작전부에 국가정보국의 문서열람신청을 했다. 정보국의 문서열람은 경찰국장의 승인과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절차들을 거쳐야 했다.

웅카라는 부리나케 그 모든 문서를 만들어가지고 다음날 국가정보국을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꼬박 하루를 보냈다.

고문서들에서 풍기는 퀴퀴한 뜬 냄새속에서 오전에 가져온 한 뭉테기문서를 바치고 다시 가져온 한아름 되던 문서도 몇권 남지 않았을 때는 어느덧 석양녘이 다 되여올 무렵이였다.

그때 두툼한 한 문서가 그의 눈에 밟혀왔다.

《타이강점 일본군 제25군, 제30군관하 제21, 22, 23포로수용소 장교, 군인, 군속 포로명부》라는 문서였다.

243이라는 번호밑에 1946년 5월 17일이라는 작성날자가 명기된 그 문서는 목침같은 두께로 거의 다섯권이나 되였다.

문서를 펼치니 련합군에 무장해제된 일본군 사단, 련대들과 그 관하 병참, 후방구분대들, 압수한 땅크와 포를 비롯한 무기, 전투기술기재들의 수자가 지지콜콜히 밝혀져있고 그뒤로 포로들의 명단이 마지막 다섯권째까지 이어져갔다.

한장한장 번져간 명부의 마지막부에 병원과 군의소들의 소속과 군의, 간호원들의 명단이 있었다.

그 간호원명부 뒤끝에 따로 붙어있는 《간호조무사》라는 항목이 그의 눈길을 딱 잡아끌었다.

《간호조무사》라고 쓴 그옆에 《군위안부》라고 첨부한 글이 있었던것 이다.

《<간호조무사>는 위안업봉사자들로 제25군 참모본부는 그들의 본 직업을 은페할 목적으로 패망직전인 1945년 7월 2일 지령으로 위안부들을 일체 <간호조무사>라는 직명으로 변경등록하도록 하였음.》이라는 설명서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밑에 조선,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순서로 일본군과 함께 포로된 《위안부》들의 나라별 수자와 명단이 첨부되여있었다.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위안부》 2 327명중에 조선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았는데 1 548명의 수자와 그중 463명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있었다.

(《위안부》들의 절대다수는 조선녀자들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군. …)

웅카라는 새삼스레 끄덕이며 그밑을 더듬어 내려갔다.

타이《위안부》들의 명단은 맨 마지막에 나졌다.

(있긴 있구나.)

웅카라는 안도의 긴숨을 내쉬였다.

명부에 기입된 타이녀성들의 이름은 362명이였다.

원체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것이나 타국에서 끌려온 갈데올데 없는 다른나라 녀인들과 타이녀성들은 처지가 달랐을것이다.

태반이 일제가 패망하자 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바삐 자기 고향으로 빠져나갔을것이다.

웅카라는 명부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찍어내려가며 《샨프리양》과 《싼따라》라는 이름을 찾았다.

그러나 끝내 그런 이름은 나지지 않았다. 웅카라는 긴숨을 톺으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혔다.

명부에 그 이름이 있다 해도 우연의 산물이라 생각할것이지만 정작 없고보니 온 하루품이 어이없었다.

하긴 츄홍따이의 어머니가 살아있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될 정도였다면 그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왜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숱한 녀성들이 전장에서 죽었으니 필경 그 불행한 녀인 역시 그들과 함께 잘못됐을수 있다. 츄홍따이가 지금의 어머니가 친어머니와 함께 있은것같다고 하지만 싼따라가 지금껏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이상 그에게 물어볼수도 없는것이다.

웅카라는 필요한 내용을 복사하고 자료를 반납한 후 정보국을 나섰다.

(웅카라가 본 이 자료는 14년후인 2015년 8월에야 비밀해제되여 세상에 공개되였다.)

정보국 자료실에 갔다온 웅카라의 보고를 들은 수사국장은 고개를 저으며 자기가 알고있는 자료를 말해주었다.

《당시 칸쿤마을일대의 먄마와 린접한 타이국경지역은 일본군의 제18군, 30군이 속한 먄마방면군이 관할하고있었네.》

《그러니 결국은 샨프리양이 끌려간 행처가 명백치 않다는겁니다.》

《난 혹시 츄홍따이 아버지를 사살하고 어머니를 끌어간 그 토벌대가 먄마방면군소속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누만.》

웅카라의 작은 눈이 빛났다.

《참, 니시하라가 먄마 16군에 있었다는 자료를 무라야마가 알려왔습니다.》

《그런가? 음, 그거 정말 흥미있군. 그러니 그 니시하라선도 계속 캐보고 샨프리양의 종적도 먄마쪽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소.

참, 며칠 있다 마약문제로 먄마경찰의 수사국장을 만나는데 그 기회에 내 부탁해보겠소.》

《고맙습니다.》

《여하튼 자네 보고를 들어보면 커누문제나 두 대학생문제나 츄홍따이를 속히 만나보는게 중요할것 같애. 그리고 니시하라의 사진을 가지고 라후족마을들에 그를 알만 한 사람들이 없는가 확인해보오.》

《알았습니다, 각하.》

웅카라가 보고하고 나오려는데 《가만!》 하고 국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참, 래일 방코크지방재판소에서 두 일본인을 재판하는것을 아오?》

《일본인을요? 아니, 무슨 사건이게 또 일본인입니까?》

 웅카라의 반문에 국장은 허허 웃었다.

《자네 얼마전 그 <미니 도꾜>에 갔던적 있지?》

《예, 무라야마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가보았습니다.

그쪽에 뭔가 건설한다기에 그런가 했는데 그렇게 거대한 환락의 도시를 건설하고있는걸 처음 봤습니다.

말로는 들었지만 현지에 직접 가서 형성안을 보니 여기가 우리 나라 수도가 옳긴 옳은가 하는 생각에 머리칼이 오싹해지더군요.》

《그 <미니 도꾜>에 거주한 두 일본늙은이가 골프장에 고용된 열네살 어린 소녀를 강제로 끌어다 륜간했거던.》

《열네살짜리를… 하여간에 이 일본놈들…》

웅카라는 기가 막혀 이마살을 찌프리며 혀를 찼다.

《그 추행사건을 래일 재판한다는군. 범인중의 한 늙은이가 뭐 니시하라 복수를 운운했다던데 참가해 경청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네.》

다음날 오전 방코크지방재판소에서는 후날에 웃지 못할 희비극으로 남은 그런 재판이 진행되였다.

재판시작시간에 림해 웅카라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것을 피해 재판에 립석한 경찰들뒤의 구석진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맨 뒤자리에 일본대사관의 야마시다서기관이 먼저 앉아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서는것이였다.

뜻밖에도 그옆엔 수사팀의 가니다니형사가 앉아있었다.

《부장님! 저도 왔습니다.》

키큰 야마시다와 반대로 중키에 눈이 작고 강파롭게 생긴 가니다니는 버젓이 고개를 들고 의연하게 웅카라를 맞았다.

웅카라는 부하들을 통해 이 가니다니가 무라야마과에서 5년 련임하는 제일 나이먹은 형사로서 원래부터 과장물망에 오르고있었다는걸 알고있었다.

이번에 실수하긴 했지만 웅카라가 보건대 무라야마가 데려온 일본형사들 중에서 국수주의사상이 골수까지 꽉 들어찬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수사능력이 뛰여난 형사가 가니다니였다.

시간이 되자 수갑을 찬 두 로인이 경찰의 손에 끌려들어와 피고석에 섰다. 뒤따라 재판부와 배심원들이 입정하고 검사와 변호사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강마른 몸의 백발로인과 작은 키에 몸이 다부지고 반들반들한 대머리의 로인은 외형부터 판 달랐으나 하나같은것은 얼굴에 흐르는 득의연하고 뻣뻣한 기색들이였다.

재판장이 재판의 시작을 알리자 검사가 먼저 일어났다.

《본 검사는 피고들의 기소에 앞서 자신이 숱한 범죄사건을 다루어보았지만 지금 이 자리의 두 일본인처럼 초보적인 인륜을 저버리고도 조금도 량심의 가책을 모르는 범인은 처음이라는것을 서두에 말씀드립니다.》

재판장은 피고들을 마뜩지 않게 쏘아보며 검사에게 강조했다.

《검사! 피고들이 그렇게도 반성의 태도가 없는가?》

《그렇습니다.》

《그 오만성이 어느 정도라는것인가?》

《재판장님! 본 법정에서 피고들의 죄상을 다시 추국해보면 알것입니다.》

《좋소. 그럼 검사! 론고하시오.》

검사가 오른쪽에 선 키큰 로인에게 물었다.

《피고의 이름을 말하시오.》

《이와사끼 고오루.》

《몇년생이며 본적지는 어디인가?》

《대정 15년 8월 5일생, 도꾜 와까야마현 신구시 아이가 3번지.》

《피고는 태평양전쟁당시 여기 타이에서 복무했다는게 사실인가?》

《그렇소. 25군관하 수송기지사령부에서 운전사로 복무했소.》

《방코크 <미니 도꾜>에 거주한것은 언제인가?》

《2001년 9월이요.》

《어떻게 손녀와 같은 그 어린아이에게 그런짓을 저지르게 됐는가?》

키큰 로인은 수정을 찬 주먹을 들어 입가에 대고 으험! 하고 기침을 깇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물론 억지로 그 아이에게 강요해 빚어진 일이지만 난 그애가 그것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나빠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떻든 남자와 녀자가 벌리는 일이 아닙니까?

그게 쾌락과 즐거움의 노릇인데 다 끝난 뒤면 이렇게 피해자, 가해자로 갈라 죄인으로 만드는게 전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저런…》

《아니, 저게 상식있는 소리야?》

《저 령감 지금 무슨 소리 해?》

방청석에 꽉 찬 사람들속에서 이런 소리들이 삽시에 튀여나왔다.

《피고는 전쟁때 침략전쟁에 가담하면서 여기 타이 각지에서 숱한 녀성들을 강간했다고 실토했는데 그에 대해 말하라.》

《그때는 그것이 점령군의 일상화된 생활이였소.

우리 부대에는 여러곳에 위안소가 있었는데 내가 수송기지사령부 운전사다보니 아무때고 임의의 위안소에 찾아들어갈수 있었소.

한번은 우리가 수송하는 두개 중대 200명이 챠오프라야강상류의 한 강기슭에서 길가던 두 처녀를 랍치해 밤새 숙영지에서 전부가 달라붙어 해먹은 일이 있었소. 그런데 그때도 그 녀자들은 우리가 떠날 때까지 아무런 반항도 규탄도 하지 않았소.》

《당신들이 떠날 때 그 녀자들은 어떤 상태였는가?》

《기절한 상태였소.》

《당신들의 야수적만행에 혼절해 쓰러진 녀자들이 어떻게 반항하고 규탄한단 말인가?》

《그렇게 말한다면 글쎄… 할 말은 없소만…》

《저런, 뻔뻔스런…》

《야, 이 후안무치한 놈아!》 하는 절규가 방청석에서 막 터져나왔다.

재판장이 왈랑절랑 종을 흔들어서야 장내가 겨우 진정되였다.

검사는 키작은 대머리의 로인에게 물었다.

《피고의 이름을 말하라.》

《다까시 마쯔오.》

《난날과 본적지를 말하라.》

《대정 17년 6월 7일생, 도꾜도 도시마구히가시 나가사끼 2번지.》

《피고가 그런 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를 말해보라.》

《나는 니시하라 그분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심정으로 그 아이를 범했습니다. 니시하라씨는 이 동남아 먼 외국땅에 우리 <황군>출신들을 위한 신도시를 개발하고 <천황>의 황은으로 우리의 인생말년을 맡아준 은인입니다.

신문에선 그가 사고로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저는 그를 타이인들이 목매달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저는 그 복수를 하는 심정으로 마음먹고 타이아이를 릉욕했습니다.》

《그 행위에 가책되는것이 없는가?》

《글쎄, 이제 와 생각하면 좀 너무한감은 있소만…》

《당신은 그 어린 처녀에게 말로 표현할수 없는 끔찍한짓을 다 저질렀소. 당신은 인간이 아니요.》

《난 이미 자기 명을 다 산 사람이요. 일생 놀아볼수 있는것을 다 놀아 보고 할수 있는짓은 다 해봤소. 전쟁때나 전후 경찰에 있으면서 난 한생을 이 신조로 살아왔소. 인생은 길지 않소. …》

《그 어린 처녀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생각 안했소.》

《야, 이 악당놈아- 아-》

피고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규탄과 분노의 소리들이 튀여나오던 방청석에서 째지는듯 한 한 녀인의 웨침이 터져나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길고 처절하게 온 재판정을 울렸는지 재판석과 피고석, 방청석에서 모두들 와뜰 놀라 일어났다.

게거품을 물고 피고들이 있는 앞자리로 달려나가는 한 녀인, 그 녀인을 바라보던 모두가 순간에 아, 소리를 지르며 경악했다.

《이 짐승보다 더한 개들, 잘라버리겠다-》

산발한 머리를 휘저으며 눈에 달이 떠서 달려나가는 녀인은 손에 커다란 가위를 들고있었다.

피해자인 그 소녀의 어머니였다.

법석 끓는 소동과 웨침의 수라장속에 경찰들이 그 녀인을 막아나섰으나 가위를 막 휘두르는 그 녀인의 기상은 무서웠다.

순간에 눈앞에 달려나오며 악에 받쳐 웨치는 녀인이 무엇을 잘라버리겠다는것인지 알아차린 피고들의 얼굴이 삽시에 꺼멓게 변하더니 《아, 이거, 어… 어》 하더니 허둥지둥 사타구니를 가리며 피하려다 키큰 로인이 먼저 뭔가에 걸려 넘어지고 키작은 대머리가 그우에 엎어지며 바닥에 나딩굴었다.

경찰들이 녀인의 두어깨를 잡고 끌었으나 녀인은 결사적으로 뿌리치며 피고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다 끝내 경찰들에게 가위를 빼앗기고 제지되자 《이 일본의 야만들 아! …》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더니 그만 꺽 머리를 떨구며 기절해 쓰러졌다.

《립회서기! 의사를 찾으라. 병원, 병원으로!》

재판장은 립회서기에게 소리쳤다.

의사가 황급히 들어와 경찰들과 함께 녀인을 담가에 올려놓고 들고나갔다.

법정의 분노한 공기는 삽시에 두 일본인피고에게 삼단같이 쏟아져갔다.

《저 야만들, 저놈들을 몽땅 중형에 처해야 해.》

《찢어죽이라!》

《아니, 극형에 처해도 모자라요.》 하는 규탄에 장내가 떠나갈듯 했다.

재판장이 또다시 종을 한참 울려서야 소동은 멎었다.

옆에 앉았던 야마시다서기관과 가니다니는 망신살이 뻗쳤는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검사는 장내가 한결 가라앉자 격분한 어조를 애써 눅잦히며 계속하였다.

《보시다싶이 두 피고는 타국의 어린 소녀에게 그의 생명과도 같은 정조를 유린하고도 그 어떤 가책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있습니다.

제가 이 두 피고를 조사하면서 느낀것은 일본인들은 인간이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량심의 척도, 도덕의 척도가 전무후무하게 결여된 사람들이라는것입니다.

모든것을 자기 리익의 중심에서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들, 도무지 제 잘못을 회개할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것입니다.

제가 이 피고들을 대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문제는 일본인들은 녀성을 단지 쾌락의 도구, 희롱의 도구, 화를 풀고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여기는 무지한 사람들이라는것입니다.

너무도 무절제하게 쾌락만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이 저질의 성관념을 보면서 저는 일본인들을 한번 인류학적으로 검증해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진화과정의 일본인, 일본인들의 인성은 아직 원시시대의 군혼무리관념을 벗어못난 도덕적저능아에 머물고있다. 이것이 제가 찾은 결론입니다.》

재판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며 웅카라는 《천황》의 황은을 입게 해준 니시하라의 복수를 위해 어린 처녀를 범했다던 대머리로인의 말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의식속에서는 아직도 대동아전쟁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가위를 들고 달려드는 녀인과 그를 피해 넘어지고 엎어지며 허둥거리던 참담한 몰골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치솟는 분노를 어쩔수 없었다.

어딘가 니시하라와 도미꼬의 죽음뒤에도 인간의 리성을 떠난 이런 추악한 리면이 있을듯싶은 예감이 지꿎게 갈마들었다.

일본인은 인류학적으로 다시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정신적미숙아, 도덕적저능아…

일본인들에 대한 가장 극명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년전 유따빠오에서 있은 18명 처녀들의 랍치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확실히 일본인들의 혈관속에는 다른 민족보다 동물적인 음탕한 욕구와 욕망이 동맥경화의 고지혈덩이처럼 걸죽하게 배여 흐르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렇지 않다면 십자군원정때도 아닌 20세기 현대문명시대에 녀성들을 끌고 다니며 성욕을 충족해야만 싸울수 있었던 일본군대의 지능도를 뭐라고 분석할수 있단 말인가.

검사의 말대로 유난히 성에 탐닉하는 야마도족의 호색의 근원을 캐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웅카라는 방코크종합대학을 찾아갔다. 동방문화사의 권위자라는 나이지숙한 교수를 만난 웅카라는 전날에 있은 재판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주고 찾아온 리유를 덧붙였다.

《사실 어제 재판에 앞서 태평양전쟁시기 일본군대의 위안부자료들을 찾아본게 있습니다. 그 자료들을 보면서 포화가 울부짖는 전장에까지 녀자를 끌고 다니며 육욕을 채워야 싸울수 있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풍속에 대해 참 궁금하더군요.

제가 알고있기에는 조선이 력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에 상당히 앞서있는것으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되여 수많은 녀성들이 일본군에 끌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는지 그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좀 알고싶어왔는데 말입니다.》

알만 하다는듯 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사색을 집중하는듯 잠시 눈을 감고있더니 이렇게 말머리를 뗐다.

《사실 인간이 인간일수 있는 가장 첫째가는 징표중의 하나가 바로 그 성문제 아닙니까?》

《예, 그야 그렇지요.》

《어제 재판과정에 검사가 진화과정의 일본인이라고 규탄했다는데 그 말이 참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철학자 파스칼이 말한게 있습니다.

<자아에 눈뜨지 않은 인간은 아직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어린이는 아직 완성된 인간이 아니다. >

파스칼의 의미에서 보면 일본인들은 아직 정신적으로 인간의 리성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말하자면… 인간에로의 진화가 채 이뤄지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해야겠지요. 무엇이 고상하고 무엇이 천박한가를 깨닫는 정신적지성도가 부족한…》 하고 말을 잇던 교수가 갑자기 《허허허!》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웅카라는 의아해서 교수를 바라보았다.

교수는 눈물이 찔끔 나게 혼자 웃으며 《다른게 아닙니다. 방금 부장님이 이야기하던 그 가위로 잘라버리겠다던 일본로인들의 물건이 생각나서 그럽니다.》 하고는 또 한참 웃었다.

교수는 조리있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일본인들의 호색성을 놓고 그 근원을 따져보면 무엇보다 일본을 이끌어온 이른바 야마도족의 통치자들에게 그 근본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자칫 타락의 근원이 되기 쉽고 사회의 기강을 흐리는 부패의 도구로 전락되기 쉬운 성을 인간생활의 건전한 풍속으로 도덕화하려 한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일본은 고대로부터 통치자들이 자유로운 성애를 권장하고 지어 음욕을 인생의 원천으로, 종교적최고경지로 장려해온 나라입니다.

아시아 각 나라들의 건국신화가 다 각이한데 그 신화들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거기엔 그 나라를 만들고 그 민족을 이끌어온 당대 통치자들의 문화적, 풍속적리념이 강하게 담겨있습니다.

<삼국유사>라는 책에 씌여진 조선의 건국신화를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라는 신이 준 마늘과 한타래의 쑥을 먹은 곰이 동굴속에서 21일간을 견디고 결국 녀인으로 변해 환웅과 결합했는데 그렇게 되여 낳은 아들이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이라고 되여있습니다.

한마디로 근면성과 개척정신이 강한 조선인들의 토템신앙이 그대로 담긴 신화라 해야겠지요.

그런데 8세기에 기록된 일본의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렬도의 국토생성신화는 어떻게 되여있는지 아십니까?

이자나기라는 남신과 이자나미라는 녀신이 바다물을 휘저어 하나의 섬을 만들고 지상으로 내려왔는데 이자나기가 이자나미에게 몸의 생김새를 묻자 녀신은 아직 한곳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고 남신은 자기는 한곳이 남는다 해서 그 남는 곳과 부족된 곳을 합쳐 만든게 저 일본의 네덩이 섬들이라는것입니다. 우익적인 국수주의자들이 일본이 <신국>이라고 주장하는것도 이 신화에서 출발한것입니다.

이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남매간이라는데 일본사람들이 사촌끼리도 막 혼인을 맺고 사는 풍속도 아마 여기서 유래됐을겁니다.

또 같은 <고사기>의 <이와또신화>에 의하면 일본사람들이 <천조대신>으로 받드는 이자나기의 맏딸인 아마데라스 오미까미가 이와또라는 동굴에 박혀 나오지 않자 한 녀신이 동굴앞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마쓰리라는 푸닥거리를 하며 춤을 추어서야 기웃이 내다보던 아마데라스 오미까미가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저들의 경제성장을 가리켜 이와또호경기라고 하는 배경에도 불황의 동굴을 벗어났다는 의미의 이런 선정적인 신화가 있습니다.

매일같이 쳐다보며 절을 하는 <천조대신>이 성적으로 개방된 신이고 국토의 생성과 경제의 발전도 신의 성적행위에서 그 활력이 생긴다고 보는 일본이다보니 성의 주술력은 일본인의 모든 생활에 보편화되였던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인들은 신사를 찾아가 그앞에 성스럽게 절을 하고는 돌아앉아 거리낌없이 성행위를 하고있는것입니다. 옛날에 일본의 신사가 절에 가면 그 옆에 반드시 유곽이 있은 원인이 딴데 있는게 아닙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전국의 통일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창을 내온것이나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수도를 에도(도꾜)로 옮긴 후 그 한복판에 요시와라라는 거대한 쾌락의 도성을 만들어 수백년을 운영해온것이나 피페한 국민의 감정을 다스리고 불만에 찬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도를 일본의 통치자들은 쉽게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방법에서 찾았던것입니다.

이렇게 력대 일본의 통치자들의 통치방법이 어떤 철학적리념이나 도덕적인 자아의 완성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저질의 경지를 못 벗어났던 여기에 오늘은 돈과 색이 인생의 목적으로, 목표로 된 야마도족의 근본문제가 생긴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일본은 세계에서 그 례가 드문 나라입니다.

일본에서 성의 정치가 더욱 창궐하기 시작한것은 현대에 와서 명치유신과 더불어서입니다.

명치유신의 지도자들은 <색을 모르면 영웅이 아니다. >, <배꼽아래에는 인격이 없다. >라는 적라라한 문구를 써가며 성의 환락을 추구했는데 여기서는 단연 이또 히로부미가 유명했습니다.

1885년 12월 명치정부의 초대수상이 된 44살의 이또는 공개적인 내각회의를 주관하면서 돈도, 좋은 집도 다 필요없고 틈날 때 게이샤와 노닥거리는게 인생의 최고재미다라고 말하며 각료들의 불륜과 성적취향을 장려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또는 다섯자 조금 넘는 작은 키였지만 정력이 절윤한 호색가였는데 시모노세끼출신의 우메꼬라는 게이샤를 부인으로 맞아들였고 수십명의 정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상이 이런 정도니 명치유신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고관들은 너도나도 미모와 교양을 갖춘 게이샤를 경쟁적으로 첩으로 들여앉히고 더러는 정실로도 삼았습니다.

조선의 명성황후에 대한 암살을 지령한 당시의 외상 무쯔 무네미츠는 일시 감옥에 갇혀있던 때에 결핵을 앓는 속에서도 화류계출신 애처에게 정감넘치는 편지를 써보내면서 한편으론 감옥에 출입하던 세탁부와 관계하여 아이까지 낳게 하였습니다.

이런 정치의 물이 어디로 흐르겠습니까.

일본의 군국주의집권자들이 전쟁터에 성노예를 끌어다 군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사기를 돋구겠다는 발상을 할수밖에 없었던 력사적배경에 바로 이런 근원이 있는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사랑이 비끼고 가정의 행복을 위한 건전한 개념의 성이 아니라 육욕의 도취속에 진이 빠지도록 관능을 즐기는 유희와 향락의 도구로 간주하는 무절제한 성습관을 국민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주요수단으로 긍정하고 장려한 일본의 력대 통치자들이나 특히 군인들의 사기를 돋구는데 수십만의 성노예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지난 대동아전쟁의 조직자들은 아마 세기를 두고 세계의 지탄을 받게 될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듣고보니 참 많은 리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이거 내가 너무 시간을 빼앗는게 아닙니까?》

웅카라는 강의준비로 바쁜 교수의 시간을 념려해 손목시계를 보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아, 괜찮습니다. 수사부장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교수는 웃음속에 손을 저으며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본사람들은 색에 집착하는 그 버릇이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 타이를 비롯해 동남아 각국에 매일같이 넘쳐나는 수백만의 일본남자관광객들이 다 녀자를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가는 곳마다 돈을 뿌리며 녀자를 찾습니다. 그들은 만가지 정책의 우상이 돈입니다. 과거청산도, 상임리사국가입도, 령토분쟁도 돈이면 다된다고 생각하는 에코노미 애니멀(경제동물)의 나라…》

교수는 웅카라가 권하는 차로 목을 추기고는 계속해서 이었다.

《이자 조선에 대해 말했는데 도덕적풍속문제를 놓고볼 때 가장 가까운 린접국인 조선과 일본은 하늘땅만큼이나 그 관념의 차이가 큽니다.

1562년에 일본에 와서 34년간이나 선교활동을 했던 루이스 푸로이스란 사람이 돌아가서 쓴 <유럽문화와 일본문화>란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일본남자들은 녀자의 순결을 조금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녀자들은 그런 문제로 결혼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전혀 다르거던요.

조선의 녀성들은 자기의 정조를 생명보다도 더 귀중히 여깁니다.

조선의 어느 시골에나 가보면 순결을 지켜 죽은 녀자들을 위해 세운 렬녀비를 볼수 있답니다.

말하자면 녀자의 정절과 순결을 목숨으로 아는 민족과 순결을 걸레처럼, 강물에 배 지나간 자리처럼 아는 민족이 바다를 사이두고 이웃해 살고있는셈이지요.

조선봉건왕조때 력대로 정부대표단격인 조선통신사가 해마다 왕래했는데 가는 곳마다에서 일본의 남녀들이 함께 탕안에 들어가 혼욕을 하고 일본녀자들이 행인왕래를 부끄러워 않고 태연히 길옆에서 목욕을 하면서 전혀 낯뜨거운줄 모르는걸 보고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녀인들은 하부를 가릴줄도 모르는 야만인들이라고 침을 뱉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저 사람들 왜 저러는가 리해를 못하는 정도였다니 제 눈에 안경이라고 그럴수밖에 없지요. 오히려 그런 일본인들을 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부끄러워 돌아설수밖에…》

《그 조선민족이 참 정결한 사람들이군요.》 하고 웅카라가 저으기 감동되여 묻자 교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조선인들은 가까운 혈연은 물론 동성동본끼리는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고대로부터 지켜온 이 풍속이 오늘의 현대사회에 와서 봐도 의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얼마나 현명한것인가 하는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게 아닙니까?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사촌끼리도 결혼을 하고 형이 죽으면 형수를 동생이 데리고 살고… 애초 혈연에 대한 중시가 전혀 없습니다.

혈연을 이렇게 무시하다보니 일본사람들은 이름도 원래 성자체가 없었습니다.

백제의 구수왕(214-234)때에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사람 왕인에 의해 한자가 퍼지기 시작하면서야 일본사람들은 성씨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성이 권세의 상징으로 되면서 통치계급인 상층귀족들에게만 허용되였습니다. 그러다가 명치유신때 와서야 정부가 모든 국민이 성을 가져야 한다는 포고령까지 내려 그때부터 일본사람들은 이름앞에 성을 붙이게 되였거던요.

그런데 당시 일본주민의 95프로가 문맹자들이다보니 저저마다 갖다붙인다는게 강기슭에 산다고 나까가와, 개를 기르는 집이라고 이누가이, 간장을 좋아한다고 쇼우 등 별의별 잡성을 몇십만개나 만들어가졌는데 지어는 고시마끼(녀자속치마)에 구찌(주둥이)라는 성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문명과 문화에서 이렇게 뒤떨어지고 원시적인 성관념에 혈족과 혈연을 무시하며 살아온 일본인들이 혈통의 대물림을 생명으로 여기고 녀자의 정조와 절개를 목숨처럼 지키며 살아온 조선민족을 힘으로 타고앉아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수십만의 녀성들을 끌어다 짐승같이 유린하고 학살했으니 조선사람들의 원한이 쉽게 풀릴수가 없는겁니다.

오늘에 와서 보면 참으로 문화의 선생으로 늘 일본의 우위에 있었던 조선사람들이 잘못한게 딱 한가지, 근대에 와서 일본이 사무라이중심의 무사정치로 일관할 때 상무기풍을 멸시하고 안온한 유교의 시조가락과 당파싸움에 빠져있다가 명치유신 30년사이에 신식무장을 하고 달려든 일본에 송두리채 나라를 빼앗겼던 비극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통영갓쓰고 음풍영월하던 선비가 칼을 들고 나선 옆집의 저질적인 부랑자에게 횡액을 당한셈이지요.》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

웅카라는 진심으로 감심해서 인사를 했다.

대학을 떠나 경찰국으로 돌아오던 웅카라는 마침 국민일보신문사앞에서 일본기자들을 비롯해 신문기자 여럿과 함께 있는 가니다니형사를 만났다.

웅카라는 그를 보자 새삼스레 일본인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차를 뻑 세운 웅카라는 소리쳐 그를 찾았다.

《여, 가니다니군. 재판이 끝나 한참이나 찾았는데 그 좋은 구경두고 당신 어데 갔댔는가?》

《…》

가니다니는 얼굴이 뻘개졌다가 웅카라의 묻는 의도가 기분에 거슬리는듯 눈을 치떴다.

그러건말건 웅카라는 퍼붓듯 소리쳤다.

《가니다니군, 참 내 이번 수사를 맡아하면서 그동안 다 모르고있던 일본을 새롭게 알게 된게 많소. 오늘의 재판을 보고나서 난 이런 생각이 들 더구만. 히노마루 한복판 빨간 해에 가위를 그려넣는게 어떤가 하고 말이요. 응?》

《예? 아, 아니! …》

가니다니는 어떻게 감히 그런 불경스런 소리를 막 하는가 하는듯 눈을 사납게 뜨며 웅카라를 맞갖잖게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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