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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연재14]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1. 의혹많은 도미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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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8-10 10: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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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4]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1. 의혹많은 도미꼬의 죽음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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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창작된 전인광 북녘 작가의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이 지금 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소설은 타이의 어느 한 산간벽촌에서 일어난 두 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을 파해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서두에 이렇게 씌여져 있다.

《나는 죽더라도 증명할것입니다. 력사가 증명하고 내가 증명합니다. 이 력사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 한 조선녀성의 증언중에서 -

 

<조선의 오늘>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4. 15문학창작단의 작가들을 비롯하여 나라의 관록있는 작가들이 《하나의 조일관계력사론문》《바늘끝도 안들어가게 구성이 째인 작품》《이렇게도 쓸수 있겠구나 하는 창작적묘리를 깨우쳐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은 작가의 피타는 사색과 탐구불같은 열정과 높은 창작적기량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라고 밝혔다.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네덩이의 얼음>을 연재한다.





(제 14 회)

제 3 장

1. 의혹많은 도미꼬의 죽음

 

도꾜에 도착한 무라야마는 비행장에서 내리자마자 본국에 떨구고 갔던 수사조의 사다께를 불렀다.

그동안 전화로 알아보며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던만큼 사다께는 작년 12월 도꾜에서 진행된 《일본군성노예제를 재판하는 2000년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과 관련한 자료들과 니시하라와 도미꼬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자료들을 일목료연하게 작성하여가지고 왔다.

그는 법정에 참가했던 여러 나라 인물들 특히 이번 사건수사에서 놓치지말아야 할 관건적인 인물들의 자료도 상세하게 조사해놓았다.

법정에 참가했던 각국 대표단성원들과 그 보장성원들로부터 현재 일본에 류학하는 인물들 특히 중국계, 민단계, 총련계관련자들 한사람한사람을 채로 치듯 구비해놓은 자료들을 보면서 무라야마는 완강한 성격밖의 사다께의 다른 측면, 면밀하고 주도세밀한 그의 사업능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를 수사팀에 참가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다께는 간부후보생출신으로 도꾜의 하바닥파출소로부터 한계단한계단 밟아 경찰청까지 올라온자였다.

넷이나 되는 아버지형제들중 전쟁에 나가 셋이 죽고 관동군에 끌려나갔던 아버지만이 쏘련(당시)에 포로되여갔다가 60년도에 귀환하여 가정을 이루고 낳은것이 사다께라고 했다.

그 아버지도 얼마후 사다께 하나만을 남기고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경찰서에 근무하던 당시 머리회전이 빠르고 령리한데다 의지가 강한 사다께는 강력반 형사로 온몸의 수십곳에 상처를 입어가면서 도꾜일판의 야꾸자들을 휘여잡아 한때 소문이 났었다.

경찰청에 올라온 후엔 다년간 외국인들의 동태를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는 치안본부 외사과에서 근무하다 그 방면의 능력이 인정되여 결국 대외문제국으로 발령되여왔다.

대외문제국에 와서도 짬짬이 불이 붙듯 공부에 달라붙어 외국어를 두개나 뗐다. 일에서 완강하고 치밀하고 틈이 없었다.

말도 툭툭 던지는것 같아도 마디마디에 기개가 있고 뼈가 있었다.

무라야마가 늘씬한 큰 키에 길쑴한 얼굴, 그 얼굴중심에 솟은 선이 곧은 코날이 선명하고 예리한 느낌을 주었다면 사다께는 중키에 탄력있는 다부진 몸이 산골강의 센 물살에 다스려질대로 다스려진 바위돌을 련상시켰다.

늘 근육이 울근불근한 어깨를 실룩거리며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동전을 절렁거리며 다니지만 일단 사업에 들어가서는 판단이 빠르고 순간정황처리가 번개같았다.

그는 안팎으로 실리를 갖춘 전형적인 공격형의 형사였다.

그래선지 무라야마가 처음 과장으로 임명돼왔을 때 사다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자세였다.

무라야마의 임명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잔뜩 취하게 되자 무라야마를 손가락질하며 한다는 소리가 《빽좋고 터밭좋아 공부나 찰찰 해가지고 락하산타고 내려온분들과 나는 달라요, 다르단 말입니다.》하며 흰소리친 일까지 있었다.

그때 부하들이 모두 긴장해서 사다께를 욕하며 만류했는데 무라야마당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못 들은척 수걱수걱 초밥을 먹을뿐이였다.

부하들은 말없는 선비같은 과장이 그대로 넘어가는가 했다. 그런데 며칠후 있은 체력시간이였다.

먼저 도복을 입고 나온 무라야마는 오늘 훈련요강대로 과장이 유도와 가라데의 특기시범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며 자기를 상대할 자신이 있는자는 나서보라고 했다. 과원 일곱명중 세 형사가 나섰는데 그중에 사다께도 있었다.

그러리라 예상했는지 무라야마는 대뜸 사다께를 짚었다.

그때 일때문인가? 자기가 짚이자 사다께는 이렇게 생각했다.

(뭘 시시하게 취한김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설사 그렇다 하면 당신은 잘못 생각했다. 격투라면 야꾸자의 한다하는 놈들과도 수십차례 치렀던 나다. 경찰밑바닥생활을 겪을대로 다 겪은 나를 경찰대학에서 배운 유도단수나 가지고 이길 자신 있는가. )

사다께는 자신만만해 어깨를 재며 나갔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미처 정신을 차릴새없이 짧은 첫 순간에 사다께는 초벌죽음이 되여 나떨어졌다.

특히 먼저 넘어지며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고 완벽하게 일격을 가하는 무라야마의 네와자기술에 사다께는 탄복하고말았다.

그것으로 그들의 초면인사는 깨끗이 이루어졌다.

유도장밖으로 나떨어졌지만 웃으며 다가와 일으켜세워주는 무라야마에게 《과장님! 버릇없는 이 사다께 많이 사랑해주십시오.》하고 깍듯이 고개를 숙였었다. …

《그동안 수고했네.》

무라야마는 그간의 사다께의 노력을 칭찬하며 그가 가져온 문건들가운데서 우선 도미꼬의 자료부터 펼쳐들었다.

《음, 현재 36살, 아직 공식적인 배우자나 애인은 없다.

도꾜대학 사학과 직외강사와 황실과 귀족자녀들이 공부하는 가꾸슈잉대학 직외강사를 겸하고있으면서 최근 일본보수우익의 선봉조직이라 일컫는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리사로서 작년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을 저지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활약했다.

그때문에 이번 국제법정 주최측으로부터 광신적인 우익녀로 불리울 정도였다, 음…》

무라야마는 저으기 놀란 눈으로 사다께를 쳐다보았다.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기본인물이라는 이것만으로도 이 녀자는 진보세력의 타매를 당할수 있는 신분적근거를 충분히 갖추고있다고 보아야겠구만.》

《예, 옳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이 녀자의 성장경위는 알아봤나?》

《예, 지금 황태자비로 들어간 도미꼬의 언니는 원래 외교관출신이며 그들자매의 아버지 역시 미국과 로씨야 등지를 전전한 오랜 외교관입니다.》하며 사다께는 설명했다.

《도꾜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동방력사를 전공한 도미꼬는 부모를 따라 북아메리카와 유럽에 나가 산 언니와는 달리 외할아버지인 아지자와 즉 니시하라 겐따로와 같이 쭉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니시하라의 정확한 지위도 알아봤습니다.

니시하라는 노자끼상사 상무취체역이면서 우리 일본의 극우익단체인 신도동맹 부회장이며 일본회의거두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래? 아, 신도동맹 부회장 니시하라! 그 니시하라였구만.》

《예.》

무라야마는 도미꼬의 자료를 다시한번 훑어보았다.

그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도미꼬가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기본인물이란건 어떤 역할을 념두에 둔거요?》

《예,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활동이 그 녀자의 기본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기에 온 심신을 쏟아부으며 살았다는겁니다. 그 <모임>의 리념적선봉장이였다 할가…》

《… ?!》

무라야마는 손세를 쓰며 조리있게 얘기하는 사다께를 잠시 쳐다보았다.

무라야마는 조선, 중국과의 예민한 관계문제로 상정된 이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어떤 조직인가는 이미 알고있었지만 도미꼬가 이 조직의 기본성원이였다는것은 뜻밖이였다.

아시아 각국이 극우파지식인들의 《국수주의부활행동대》라고 비판하는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1996년 12월에 창립되였다.

이 단체가 결성되게 된 결정적동기는 1996년 7월에 공개된 중학교 력사교과서 7개의 개정판에 모두 일본군《위안부》로 지칭되는 일본군성노예에 대한 내용이 실린때문이였다.

… 일본이 전쟁판에 성노예를 끌고 다녔다는 이런 내용을 결코 교과서에 실을수 없다, 후대들에게 이런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 기존력사교과서는 《자학사관》, 《암흑사관》에 빠져있다, 자랑할것도 많은데 유독 일본의 망신이 되는 나쁜 점만 강조하고있다. …

이런 주장을 몰아세우며 전기통신대학의 도이췰란드문학교수인 니시오 간지, 명성대학의 다까하시 시로, 도꾜대학의 후지오까와 사까모도 다까오 그밖에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를 비롯하여 13명이 발기인이 되여 이 단체가 결성되였다.

니시오교수가 회장, 다까하시가 부회장이였다.

그런데 단체를 결성해놓고보니 회장과 부회장을 비롯해서 력사학을 전공한 학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력사전공이 아닌 학자들이 중학생들의 새 력사교과서를 쓰겠다고 나선 자체가 력사를 학문으로 연구하고 배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에서 이 단체를 결성한것이라는 비난이 일어났다.

이런 때 마침 도미꼬가 단체의 리사로 자진해 들어왔던것이다.

《모임》성원들은 도미꼬가 단체의 명분을 살리는데 소방차역할을 해준 셈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했고 그의 단체가입을 열렬히 환영했다.

사실은 그의 단체가입배경에 국민의 비난을 의식한 관방부장관과 경제산업상 그리고 그의 외할아버지인 니시하라부회장의 강력한 권고가 있었다는것을 사람들은 알수 없었다.

력사를 새롭게 쓰겠다는것은 실상 력사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말이 아닌가. 지성이 깊고 사회와 력사에 대한 고찰의 과학성과 엄정성을 학문탐구의 생명으로 여기는 학자라면 감히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은 력사를 일본의 리익에 맞게 새로 뜯어고치겠다는 표현을 세상에 대고 아무 거리낌없이 하고있는것이다.

이런 착상이 서슴없이 받아들여지는 일본사회, 그러고보면 원체 일본인들은 순수한 자연산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인공물을 더 당당히 긍정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이 일본정신과 일본문화의 정수가 스며있는 종합예술이라고 긍지와 자부를 가지고 말하는 《다도의례》(차를 마시는 의식과 절차)만 놓고봐도 그것이 일본인들의 고유한 생활자체가 가져온 자연적인 문화는 아니다.

전국시대의 동란을 평정하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전란으로 거칠어진 서민들과 사무라이들, 도시상인들의 불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것이 급선무로 나서자 그를 위해 전 국민이 아침저녁 일종의 안식적인 의례와 절차를 거쳐 차를 마시는 습관을 붙이도록 하는것을 착안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모든 가정이 받아들이게 강요하여 생활습관으로 고착되도록 했다.

일본인들은 도자기를 만들 때 가마에서 형태가 자연스럽게 변화되여 고품의 가치를 가지는것보다 가마에 넣기 전에 우정 인위적으로 삐뚤어지게 찌그러뜨리거나 소금을 치는 등 조작으로 만들어진 도자기의 변화가 더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것의 가치는 높다.》

그들은 력사도 그런 눈으로 보는것이다.

결국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일본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일본중심의 력사교과서를 쓰겠다던 당초의 취지를 살려 새로 쓰는 교과서에 일본군성노예내용을 한줄도 기술하지 않았고 2001년 4월 수백곳을 빼거나 바꾸고 고친 교과서를 문부성에 검정신청하여 그대로 합격,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그들은 《우리 운동의 성과》라고 박수를 치며 자화자찬했다.

이렇게 되자 력사적사실을 오도하고 은페하려는 이들의 행동을 규탄배격하는 량심적인 학자, 교육자들의 항의운동이 일어났다.

889명의 력사학자, 력사교육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사실을 외곡하는 교과서에 력사교육을 맡길수는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패전후 일본의 력사학, 력사교육은 국민을 전쟁에로 이끄는데 이바지했던 전쟁전의 력사학, 력사교육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출발해 많은 학문적업적을 이루어냈다.》며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교과서는 력사적진실을 외곡할뿐아니라 이미전의 력사학교육의 학문적성과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비학문적인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전쟁에 참가했던 70대이상의 로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총을 잡고 전장의 비참함을 페부로 느낀 군인들이였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성전의 교육을 받고 전쟁에 내몰려 아시아 여러 나라에 다대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의 교과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것입니까.

최후의 힘을 짜내여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런 교과서가 교육현장에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런 교과서가 그리는 인간상-그것은 예전의 우리입니다.

수십년동안 아시아 여러 나라 인민들에게 다대한 참해를 입혔고 그래서 인간이기를 그만두었던 우리들입니다.》…

무라야마는 무엇인가 심중히 생각하다가 사다께를 돌아보았다.

《사다께군! 그러니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리사로 끝끝내 교과서에서 일본군위안부내용을 삭제하도록 하는데 이바지한 측면과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추궁하여 유죄를 선고받은 <천황>가문이라는 이 두 측면에서 도미꼬는 이번 사건과 다 련관이 되는게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선 이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활동과정에 도미꼬와 충돌했던 인물들, 작년 녀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했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캐보아야겠어. 특히는 북조선과 중국, <한국>에서 왔던 대표단원들을 말이요.》

《예, 제 그래서…》

사다께는 서둘러 서류더미에서 따로 골라놓았던 문건 하나를 내밀었다.

《과장님! 이게 그겁니다. 관방부장관님이 틀림없는 북조선의 소행이라면서 구체적으로 캐보라고 지시했던 북조선대표단의 허선옥단장을 비롯한 대표들의 자료들입니다.》

무라야마는 사다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뭐 이상한 단서를 잡은것은 없는가?》

《이번에 여기 떨어져 조사에 제일 힘을 집중한것이 이들입니다. 헌데 도꾜에 머무른 전기간의 행적을 시간별로 따져보았지만 재판과 관련한 문제외의 이렇다할 단서를 잡은게 없습니다. 있다면 이번 도꾜법정설립으로부터 재판 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북조선대표단이 제일 주동적으로 이 민간법정을 끌고나갔다는 자료들입니다.》

《음.》

무라야마는 문득 꼬카시로 떠난 가니다니생각이 떠올랐다.

방금전에 전화를 거니 웅카라는 가니다니가 여전히 소식이 묘연하다고 하면서 이틀이 지났다, 더 기다릴수 없으니 그를 찾아 자기 사람들을 꼬카시로 띄우겠다고 했었다.

번거로운 생각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들며 자료철의 사진을 하나하나 번져보던 무라야마는 단장의 사진을 쳐들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허선옥단장이 상당한 미인이군.》

《가장 조선적인 미인형이라고 하더군요.》

사다께는 입술을 감쳐물며 끄덕거렸다.

《이번에 모인 여러 나라 녀인들중에서 제일 돋보였습니다.

위안부피해가 가장 혹심했던 조선이고보니 조선녀인의 아름다움과 일본에 당한 위안부들의 참혹상이 상징적으로 대조되면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를 더 격화시켰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 자료까지 다 수집했나?》

《예, 거 뭐 조사하다보니…》

사다께는 느물거리며 웃었다.

무라야마는 시간을 잡고 사다께에게 지금까지 타이에서 진행된 수사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방코크에서 행불된 니시하라와 도미꼬가 먼 북방의 칸쿤마을에까지 끌려가 살해된 문제의 의혹점, 분리된 주검의 발견, 삥강에서 건져낸 커누와 트레킹사 사장 츄홍따이가 열흘간이나 관광안내를 했다는 두 일본대학생, 이런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무라야마는 손가락을 흔들며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시할게 무엇인가 하면 범인들의 살인목적이 그 <판결집행장>이라는데서 강조한 명분그대로 녀성법정이 선고한 <천황>의 유죄를 집행한다는 그 정치적명분뿐인가 하는거요. 사실 그 명분뿐이라면 방코크를 떠나오기 직전의 수사협의회에서도 이야기됐지만 그 니시하라와 도미꼬가 방코크에서 수백키로나 떨어진 칸쿤마을에 끌려가 살해당할 근거가 성립될수 없는거요. 그 두사람이 칸쿤마을에서 죽은데는 틀림없이 그 고장과 과거나 현재에 얽힌 어떤 사연이 있다는게 내 생각이요.》

《듣고보니 과장님의 그 추리엔 충분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되나?》

《예!》

《그 니시하라부회장은 방코크에 5년나마 장기체류한 사람이니 사업건이나 여러가지 문제로 현지인들과 알륵이나 암투가 생길수 있는 여지가 있소. 그래서 그 선상에서의 추적을 웅카라부장이 맡았소.

도미꼬는 한해에 잠간씩 휴가를 받아 외할아버지 니시하라를 만나러 타이로 갔을뿐이요. 그러니 그가 거기서 어떤 인간관계로 죽을수 있다는 설은 선뜻 성립이 되지 않거던.

그런데 정황을 추리해보면 범인들에게는 도미꼬 역시 죽여야 할 어떤 리유가 있었다고 보아진단 말이요.

니시하라만을 죽일 필요가 있었다 하면 도미꼬까지 그 머나먼 칸쿤마을에 끌고 갈 필요는 없는게거던.

내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것은 도미꼬가 명백히 니시하라와 따로 갈라져 법당에 끌려가 살해됐다는걸 알게 된 후부터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도미꼬가 죽게 된 원인은 타이가 아닌 이 일본땅에 있는건 아닌지.

그들을 살해한 후 류창한 일본어를 쓰는 사나이가 그 녀자를 찾으려면 여기로 오라고 지점을 알려준 사실 그리고 커누선에서 많은 의심이 가는 츄홍따이사장이 지난해 5월에 관광안내를 했다는 도꾜대학의 그 두 일본 대학생… 이렇게 문제점들을 련결해보면 도미꼬를 죽인 그 류창한 일본어의 사나이와 작년에 관광을 왔었다는 두 일본대학생들이 모두 타이가 아니라 바로 이 도꾜에서 도미꼬와 알고있었던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는거요.》

《…》

사다께는 무라야마의 분석에 공감이 가는듯 머리를 끄떡였다.

《그러니 자넨 시급히 도꾜대학에 나가 도미꼬와 련관됐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캐보도록 해야겠네.

최근 1~2년사이에 그 녀자가 관계했던 <한국>과 중국에서 류학온 인물들, 조총련계나 민단계인물들과의 관계를 놓치지 말고 료해해보게. 특히 고대조선어연구로 칸쿤에 갔던 그 두 대학생이 누구인가를 꼭 찾아내야겠단 말이요. 일본대학생이 고대조선어연구로 동남아까지 갔다, 자넨 이게 믿음이 가나?》

《딴은 그렇군요. 그 문제를 파보겠습니다.》

《그리고 도미꼬가 혼기를 넘긴 로처녀인만큼 남녀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도 알아보라구. 예상찮게 애정문제에서 질투나 복수로 격화된 감정이 살인으로 가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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