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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독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를 구제할 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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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7-22 08:1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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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를 구제할 길은 없는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통쾌한 해답-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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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회장인 전광훈 목사는 2019 61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릴레이 단식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전광훈 목사는 2007년 대선을 앞둔 한 설교에서 “이번에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다. 생명책에서 안 지워지려면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라”고 말했다. 소망교회의 장로출신인 이명박대통령은 어떤 도시를 기독교의 여호아 하나님에게 받치겠다는 말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전광훈 목사는 2019 3월 황교안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이은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독실한 개신교도인 황교안 대표는 스스로 “50년간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를 다녔고 전도사 자격도 얻었다. 검사로 일하면서는 부임하는 곳마다 기도회를 조직했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당 내외 개신교 행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황교안 대표는 예수는 상을 주는 분이기에 자신이 예수를 잘 믿어 사법고시 합격과 검사 보임,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재직을 예수로부터 “상”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간증에서는 “가뭄이 극심할 때 기도를 하자 2주 뒤에 비가 내렸다,”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해 기도하자 통과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믿는 신은 천문 기상은 물론 개인의 국가고시와 공무원 임용, 법안 처리 등을 주관하는 초자연적 존재다.

 

최근에 가장 주의를 끌었던 목사는 대전 중문교회 장경동목사이다. 그는 설교와 동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이 쳐들어 오면… 북한은 2천만, 우리(남한) 5천만 명이니까 한 놈씩만 안고 죽으면, 2천만 희생당하면 나머지 3천만이 아기는 금방 낳아버리면 된다.

 

또한 그는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고 타종교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최근 미국정치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기독교 시온주의(Chritian Zionism)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에 Mintpress News에서 지금 미국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가장 큰 그룹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7백만 회원을 가진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라고 보도하였다. 2019 78~9일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 연합(Christians United for Israel)>에 소속된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워싱톤에서 모여 회의를 했는데 거기에서 현 부통령 마이크 펜스와 국무장관 미이크 폼페오, 그리고 국가안보 보좌관 죤 볼튼이 연설하였다고 위 신문은 보도하였다. 특히 펜스 부통령과 폼페오 국무장관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시온주의 신앙은 <종말의 때(end time)>를 준비하기 위하여 거룩한 전쟁(Holy War)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올해3월에 뉴욕타임즈에 보도된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졌다는 것이 확실하게 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Pompeo opined that it was certainly possible that President Trump had been sent by God to save the Jewish people from the Iranian menace).

 

이러한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에 둘러쌓여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2017 127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하고 이스라엘주재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지시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이스라엘 지지 일변도의 결정은 70여년에 걸친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이남의 황교안이나 전광훈목사 같은 독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혹시나 위에 언급한 미국의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나 않은지 심히 염려된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과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이 태극기 부대를 지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크게 염려된다.

 

미국의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황교안과 전광훈목사같은 이남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들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는 현재의 남한과 미국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의 선교정책은 지극히 도전적이고 위협적인<문화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은 신을 믿지 않는 사회주의 나라들을 <적그리스도>로 보고 적대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남의 기독교인들은 신을 믿지 않는 동족인 이북 인민들을<적그리스도>, <악마>로 보고 적대시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장경동목사는 2천만 이북 인민들을 모두 몰살시키자고 노골적으로 표현할 정도로 적개심을 표현하고 있는데 아마 대부분의 이남 기독교인들의 내면에 갖고 있는 이북 인민들에 대한 적개심을 잘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 미국의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이남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공통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알아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 우선 이들은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만이 유일한 거룩한 책( the Holy Book)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느 나라와 민족치고 민족종교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와 민족이 없다. 그리고 각 종교마다 자신의 거룩한 경전을 다 갖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단군교와 대종교의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증산교의 <도전>, 천도교의<동경대전> <용담유사>, 등 많은 민족종교의 경전들이 있다. 불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도 다 거룩한 경전들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성경도 여러 성스러운 책들 중의 하나(a)에 불과하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음으로, 이들의 큰 문제 중 또 하나는 이들이 문자주의로 성서를 해석한다는 점이다. 성서에 써있는 글들은 성령으로 감화되어 써진 것이니 일점일획이라도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은 신구약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이니 인간이 함부로 비판하거나 해석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대학생때까지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그러한 성경의 무오설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내가 잘 아는 분은 실리콘 밸리에서 호텔을 경영하는데 이남에서 출장오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면 마가복음 16 9절부터 20절에 나오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일부 고대사본들(ancient manuscripts)에는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을 성경의 주를 읽어주며 알려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것을 실제로 확인한 분들은 모두 놀라며 어떻게 성경이 그럴 수 있냐고 하면서 자기들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전혀 지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서 문자주의 기독교인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그들은 교회에서 성경은 일점일획이라도 잘못된 것이 없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내가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썼던[공관복음 비교서(Gospel Parallels)]에 보면 마가복음서(AD 66년경에 써진 것으로 추산)의 내용들이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서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각각 AD 75년경에 써진 것으로 추산)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 도올 김용옥선생이 마가복음서보다도 먼저 써진 것으로 알려진 도마복음서(AD 40년경에 써진 것으로 추산)를 강의했는데 그의 주장은 초대교회가 당시 직면한 그리스도론(Christology)과 종말론(eschatology)이라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마복음서에 기록된 역사적인 예수의 참된 인간적 모습이 4복음서에 많이 변질되어 기록되었다는 것을 조목조목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지적한 바 있다. 예수의 제자들(도반들)과 초대교인들은 그들이 믿고 따르던 그들의 스승 예수가 허망하게 십자가를 지고 죽자 역사적인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만들어 곧 세상을 심판하러 올 말세의 <심판자>로 만들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초대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가 어서 속히 다시 재림하여 로마가 지배하는 불공평한 더러운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종말의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초대 기독교인들이 믿었던 <그리스도론> <종말론>이 바로 도마복음에 기록된 평범한 역사적인 갈릴리 청년 예수를 그리스도와 종말의 심판자로 묘사하여 4복음서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도마복음서의 역사적 인간적 예수와 4복음서의 채색된 예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AD 40년경에 써진 도마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는 전혀 자신을 그리스도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종말론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희브리서까지 포함하여13 서신을 바울이 썼다고 교회에서 배웠을 것이다. 나는 1975년부터 79년까지 시카고대학이 있는 하이드 팍에서 매코믹 장로교 신학대학원을 다녔다. 하이드 팍에는 지금 시카고대학 신학과를 포함하여 7개정도의 신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1976년 하이드 팍에 있는 카톨릭 신학교의 한 신약학자에게서 바울서신을 배웠는데 바울이 쓴 것으로 알려진 13서신 중에 현재 6서신만이 실제로 바울이 썼고, 7서신은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을 도용하여 쓴 것으로 배웠다. 그래서 그것을<Pseudo-Pauline Letters(가짜 바울 서신들)>이라고도 하고 <Deutero-Pauline Letters( 2의 바울 서신들)>이라고도 불려진다.

 

그리고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일이 양피지에 성서를 손으로 써야 했다. 그 사본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사본마다 조금씩 다른 점들이 많이 발견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 옛날 사본들의 이름이 다 표시되어 있다.

 

또한 4복음서가 기록되던 시기는 이미 예수가 사망한지3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에는 예수의 말씀자료들과 비유들, 일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구두로(orally) 전달되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1년만 지나면 그 원래의 이야기가 많이 변질되는데 30년간 구두로 전달되었다면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변질되었을지를 누구나 다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도마복음서와 4복음서가 써지기 이전에 이미 바울 서신들이 써졌다는 사실이다. 그 말은 지금 터키인 다소에 살던 해외동포인 다이애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개종후 여기 저기 전도여행을 하면서 형성된 예수의 상, <바울신학>의 눈으로 4복음서가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다소에서 나서 자란 로마시민권을 가진 다이애스포라 유대인으로 역사적인 예수를 만난 일도 없었고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인 예수가 아니라 <영적인 예수>였다. 그러니 역사적인 예수의 참된 모습이 <바울의 신학>에 의해 얼마나 변질되어 4복음서에 기록되었을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그 외에도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수없이 많은데 생략한다.

 

다음으로, 복음주의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의 문제점은<종교심(the religious)>에 대한 아주 협소한 이해심이다. <종교심>에 대한 이해심을 넓히기 위하여 존 듀이가1934년에 쓴 [공통의 신앙(A Common Faith)] 같은 책과 버트란드 러셀이 쓴 [나는 왜 크리스챤이 아닌가?] 등의 서적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들을 통하여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절대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네소타주에는 몇천 명이 모이는 인본주의 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스트 교회가 있다. [인본주의(The Humanism)]라는 잡지도 내고있다. 최근 내가 쓴 [신학의 해방] 8장에 나오는 <인본주의 종교운동의 한 예-유니테리안 유니버설리즘> 같은 글도 독단적인 문자주의 기독교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북에 갈 때마다 부흥회를 경험한다. 도착해서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감동하여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북의 음악을 들으면 꼭 찬송가처럼 내 심장을 때려 나를 울리게 한다. 학자들과의 대화, 창전남새전문 협동농장의 나와 나이가 같은 여성 관리위원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기도 함), 등이 나에게 감동을 주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러한 경험도 나는<종교적>이라고 본다. 나는 북에 갈 때마다 해이해진 나를 재생시켜 새로운 결단을 하고 나온다. 이 보다 더 훌륭한 종교적인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 자기 종교에만 <종교심>이 있다고 믿는 것은 독단이다. 도올 김용옥선생은 “왜 독단적인 문자주의 기독교회에 나가 답답한 설교를 듣고 있느냐, 나처럼 일요일날 도봉산에 올라 바람에 날리는 풀한 포기에서 감동을 받으며 예배를 보지 않고.”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모세5]이라는 것을 다 알 것이다. 영국의 제임즈(James) 왕이 인정한 King James Version 이라는 성경에는 오경(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각각 <모세에 의하면(According to Moses)>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나중에 불합리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개혁성경<Revised Version(소위RSV)>에는 그 문귀가 빠졌다. James 성경에 의하면 오경이 모세에 의해 씌어졌다고 되어있다. 그러면 도대체 모세가 몇 살까지 산 것일까? 천지창조가 몇백억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현대과학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때 누가 6일간의 천지창조를 목격하고 기록했지? 모세가? 누가 에덴동산에 가서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나무 열매를 따먹는 것을 목격하고 기록했지? 누가 노아의 방주를 목격하고 기록했지? 그때 이미 희브리어가 있었나?  그 당시 기자들도 없었고 녹음기도 없었고 사진기도 없었는데 도대체 천지창조이야기들은 어떻게 기록된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이러한 의문들을 계속 제기하다가 내가 직접 신학교에서 <구약개론>  배워보니 사실로 위의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창세기 이야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에 의해 창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둘로 되어 있다는 것도 구약 개론에서 배울 수 있었다. 창세기 1 1절부터 2 4절 상까지는 사제작가(Priestly Writer)가 쓴 것이고, 2 4절 하부터 7절까지의 간단한 천지창조의 언급과 에덴동산의 이야기(창세기 2:7-3:24)는 야웨작가(Jahweh Writer)의 창작품이라고 배웠다. 오래 전에 이미 독일의 문헌학자들(philologist)이 성서를 문헌학적으로 분석하여 위와 같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참으로 경탄할 일이다.

 

구체적으로 작가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BC 1,000년경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대에 활동한 야웨(여호와) 신앙을 가진 세익스피어 같은 작가가<야웨신앙>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천지창조와 노아의 방주이야기들에 관한 창세기의 글들을 썼을 것이라고 이들 독일 문헌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 학자들이 그 작가의 이름을Jahweh(Yahweh)작가(약칭 J 작가)라고 불렀다. 독일어의 J가 영어로 y로 발음된다. 하나님을 야웨(Jahweh)라고 부른 작가를<J 작가>라고 하고, 하나님을 엘로힘(Elohim)이라고 부른 작가를 <E 작가>라고 한다. 그리고 나중 바벨론 포로시절 활동한(BC 550년경) 사제작가를 사제(Priest)P를 따서 <P작가>라고 한다. 그리고 신명기 작가는 신명기(Deuteronomy)의 첫자를 따서<D작가>라고 한다. 지금 저명한 구약학자들은 모세가 오경(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썼다고  가르치지 않고 있다.

 

B.C. 1,000년에서 922년경 다윗과 솔로몬왕이 지배했던 80년 동안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번성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쉐익스피어 같은 천재가 나와 야웨신앙의 눈으로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독단적인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은 아직까지도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아라고 믿고 있다. 위의 세 시람은 서로 핏줄과는 관계없는 중동의 유명한 족장들이었다고 일부 역사가들은 주장한다. J작가가 여호아 신앙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세 족장들을 하나의 핏줄로 연결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쓴 [신학의 해방]에서 창세기가 먼저가 아니라 출애급기가 먼저라고 한 것이다. 오합지졸들이 출애급(엑소도스)하여 이집트의 노예신세에서 벗어나 40년간 광야를 헤매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고 가나안에 정착하여(BC 1,400년경) 다윗왕과 솔로몬왕 때 태평성대를 누리면서 유대인들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누구지? 모세? 그러면 그 위는? 그 위는?

 

야웨작가의 창작, 엘로힘 작가의 창작, 그리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로 갈라졌을 때에 활동한 예언자들, 아시리아와 바벨론 포로시절에 활동한 사제작가들의 창작과 설교, 예언이 종합하여 창세기를 비롯한 39권으로 구성된 구약성경이 나온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내가 쓴 책 [신학의 해방] 2 <내가 본 구약성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상, 위에 언급한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장 명확하게 해결해준 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의식>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는 사람의 <의식>, <이상>, <이념>, 더나아가 <절대정신>, <초자연적인 신>은 결국 인간의 <뇌수(brain)>를 떠나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인간뇌수의 기능, 작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믿는 여호아 하나님도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면 인간 뇌수의 작용, 기능에 불과하다. 즉 인간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신들은 인간뇌수가 만들어 낸 창작품에 불과하다. 온갖 종류의 신들에 대한 참으로 명쾌한 해답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새롭게 밝힌 인간의<본질적 속성>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의식성>이다. <의식성>을 올바로 이해해야 위에 지적한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물질의 반영, 즉 객관세계의 반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의 본질> <물질세계>, <객관세계>에서 찾았다. 이 경우 <의식의 원천><물질세계>, <객관세계>에 있게 된다. 물론 이 이론은 <의식>을 신비화하고 의식의 <물질적 기초>를 부정하고, 의식을 절대화하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관념론>을 반대하는 데서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의식>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동물들도 <감각>, <지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개념><판단>, <추리>라는 것을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동물의 감각, 지각은 의식발전의 낮은 단계를 표현할 뿐이다. <의식>이라고 말할 때는 감각으로 출발해서 개념, 판단, 추리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의 본질>을 마땅히 인간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의식의 본질>을 논해야 의식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듯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해> 가지고 객관세계의 특성에 맞게 활동해야만 행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객관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행동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된다. 그런데 인간은 <객관세계의 법칙>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세계의 법칙의 작용도 자기에게 복종시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객관세계를 자기의 <요구><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에서<의식>이 노는 역할의 견지에서 볼 때 <의식>이라는 현상을 단순히 <객관세계를 복사, 모사, 촬영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의식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요구> <이해관계>에 맞도록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가 하라는 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객관세계를 자기에게 복무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바로 <의식>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자면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점을 고려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다음과 같이 <의식성>을 정의하고 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요구> <이해관계>에 맞게 두뇌 속에 들어 온 형상도 목적의식적으로 개작하고 변형하여 앞으로 자기의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면서 행동의 목적을 세워 활동한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역시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의식>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은 맞지만, 의식의 본질을 거기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의 반영>이라는 데서 보다도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인간> <생명의 중심>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초해서 외부세계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이다. 결국<의식>이라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면 <인간의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란 인간의<사회적 속성>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는 의식을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반영한 의식형태>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는 전자를 <지식>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사상의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는 의식을<지식으로서의 의식> <사상의식으로서의 의식>, 두 가지 의식형태로 구별하여 쓰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추동력>으로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인간>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해야 할 것은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 정의내리고 있는<의식>, <절대정신>, <초자연적 신> <사상의식>,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라는 것이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인 인간, 인간의 몸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 <뇌수(brain)><고급한 기능>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 말하는 <의식>, <절대정신>, <>, <사상의식>은 인간의 <두뇌> 밖에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 <인격체>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인간뇌수의 고급한 기능>이다.

 

그러니까 위에 지적한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와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여호와>, <엘로힘>, <알라>, <삼신 상제님>, 등의<초자연적 신들>도 결국은 인간의 두뇌가 <가장 이상적인 존재, 즉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고급한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 의식이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에 인간은 하늘 저 어디에선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그러한 흰 수염을 가진 <전지전능한 할아버지>같은 <인격신>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예배하며 살아왔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인간들은  황금보석으로 장식된 <천당>도 만들어 내고 그곳을 동경하며 죽은 후에는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위에서 언급한 도마복음서에는 천당에 대한 예수의 재미있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도마복음서3절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하늘에 왕국(the kingdom in heaven)이 있다고 말하면 너희가 천국(heaven)에 가기전에 새들(birds)이 먼저 갈것이고, 그것이 바다에 있다고 누가 말하면 물고기(fish)가 너희보다 먼저 갈것이다. 왕국은 너희 속과 너희 밖(within you and outside you)에 있느니라.

도마복음 113절에서 예수는 “아버지의 왕국이 지상에 널려 있다.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the kingdom of the Father is spread out on the earth and men do not see it)라고 말했다.  

역사적인 인간 예수도 천당이 저 하늘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속에 있고 인간 밖의 지상에 널려있다고 보았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면이 천당이나 극락세계도 다 인간 두뇌의 고급한 기능의 산물인 이상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한치 앞을 못보는 불안한 존재이기에 과학이 고도로 발전된 디지털 시대에 사는 황규안같은 소위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인간들도 역시 자기 두뇌가 투사하여 만들어 놓은 전지전능한 초자연적 신에게 자기 운명을 맡기고 그 신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한심하다.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의하면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사람은 초자연적 신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뇌수의 작용으로서의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자기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을 판단한 기초 위에서 모든 활동을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벌여나간다. 모든 활동을 아무런 착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뇌수 속에서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나간다. 사람은 의식성으로 하여 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고 발전시켜나간다. 의식성에 의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이 담보되며 그 합목적적인 인식활동, 실천활동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초자연적인 신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되며 세계를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혁명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고 세계를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신이 아니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유일한 개조자라는 사실을 모든 독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시온주의 기독교인들은 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5년에 나온 이남의 문체부 보고에 의하면 개신교인 수는 약 967만이고 천주교 교인은389만 명, 도합 1,35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기독교계 개신교와 천주교  신앙을 가진 대통령도 천주교신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5명이나 배출되었다. 이처럼 이남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기독교인들이 이남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들 기독교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진 깊은 독단과 문자주의, 교조주의, 절대주의에서 속히 해방되어 상식적인 자연인으로 돌아 올 때만이 조국의 자주화와 통일, 번영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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