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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5〉《피바다》가 지펴올린 가극혁명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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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12-01 09:4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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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증인을 찾아서/공화국이 걸어온 70년의 로정 5〉《피바다》가 지펴올린 가극혁명의 불길

 

70년대 주체적문학예술의 최전성기

 

 

1971년 7월 17일 첫 막을 올린 혁명가극《피바다》의 한 장면

 

불도가니로 화한 극장

 

1960년대말부터 조선의 영화와 문학, 가극과 연극, 음악과 무용, 미술과 교예 등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에서 명작창작의 열풍이 일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김일성주석님께서 창작하신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부터 시작되였으며 가요《눈이 내린다》, 연극《성황당》, 《딸에게서 온 편지》, 교향곡《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시대정신이 맥박치는 명작품들이 수많이 창조됨으로써 주체적문화예술의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영화부문에서 시작된 그 흐름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 가극부문에 대변혁을 안아왔다. 그 시발점이 된것이 1971년 7월에 완성된 혁명가극《피바다》이다.

 

일제가 조선인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폭로하고 주인공이 점차 각성하여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한 《피바다》는 1969년 혁명영화로 옮겨진 후 1971년 3월부터 김정일장군님의 직접적인 지도밑에 혁명가극에 옮기는 사업이 시작되였다.

 

《1971년 3월 28일 김정일장군님을 극장에 모셨다. 작품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피바다〉는 주석님께서 친필하신 작품인데 제 마음대로 고쳤다고, 유럽식가극, 옛날식으로 창작되였다고 지적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대본을 쓰겠다고 하시고 6월 28일에 창작가들에게 대본을 주셨다. 그러시면서 이 작품은 자신께서 직접 지휘하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부터 창작이 시작되였다.》

 

김기원씨

 

혁명가극《피바다》의 초대 주인공으로서 1971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428회 무대에 출연한 인민배우 김기원씨(79살)는 작품창조의 첫 시작을 이렇게 설명한다.

 

《장군님께서는 이 작품의 모든 노래를 우리 인민들이 재깍 따라부를수 있게 절가화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온밤을 꼬박꼬박 밝히시면서 지도해주시였다. 우리도 극장에서 침식하면서 밤낮이 따로 없이 창작에 달라붙었다. 극장은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하나의 불도가니로 화하였다.》

 

가극의 기본특징은 등장인물이 말이 아닌 노래와 음악을 기본수단으로 하여 사상과 감정을 전달한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작품창작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극의 노래들을 절가화하는데 큰 힘을 넣었다.

 

7장에서는 어머니가 노래《혁명만이 살길이다》를 부르며 모든 사람들이 혁명의 한길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데 당초 이 장면에서는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는것이 아니라 긴 대사를 말하는것으로 되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니의 내면세계를 대사가 아니라 노래의 선률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노래의 선률도 손수 찾아주시고 다듬어주시여 명곡이 되게 하시였다.

 

혁명가극《피바다》에 들어갈 50여곡은 모두 이렇게 해서 창작되였다. 50여곡을 위하여 작곡가들은 무려 2,700여곡을 만들었다.

마침내 1971년 7월 17일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평양대극장에서 혁명가극공연의 첫막이 올랐다.

 

가극의 새로운 경지

 

가극분야 창작원칙과 방법에서 오래동안 남아있던 유럽식가극의 낡은 틀을 마사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혁명가극《피바다》는 공개되자마자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절가화된 노래, 새롭게 도입된 방창, 유기적으로 배합된 무용, 립체적인 흐름식무대미술, 모든것이 새로왔다. 공연이 상연된 평양대극장은 인파로 깨질만큼 련일 초만원을 이루었다. 도들마다에서 순회공연이 진행되여 관중의 대절찬을 받았다.

 

원작의 독창적인 종자와 심오한 사상을 종래의 가극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형식의 가극으로 재현한 혁명가극《피바다》는 자주성에 대한 문제, 자주적인간의 문제에 대한 예술적해답을 줌으로써 각계층 인민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국내뿐아니라 당시 《피바다》는 로씨야, 로므니아, 알제리 등 세계각국에서 상연되여 세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20세기의 문예부흥》 등 찬사가 터져나왔다.

 

1972년 알제리공연에서 있은 일이다.

 

일제가 쏜 총에 의해 막내아들 을남이를 잃은 어머니가 군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장면. 어머니가 《가자-!》 하고 웨치자 객석에 앉은 전체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와-!》 하고 소리치며 호응했던것이다. 어머니역을 한 김기원씨는 너무 당황해서 다음 노래시작이 한박자 늦어졌다고 감회깊이 회억한다.

 

《그때 알제리사람들이 하는 말이 <피바다>는 혁명투쟁의 교과서라고, 자기들도 오래 프랑스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이 작품을 그대로 아랍어로 바꾸어 하게 되면 바로 알제리작품이 된다고 하는것이였다. 작품은 그렇게 위력이 있었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가극예술의 새시대를 열어놓았다. 《피바다》에 이어 《꽃파는 처녀》, 《당의 참된 딸》,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의 5대혁명가극이 71년부터 7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창조되였다.

 

1980년대 조청미씨가 주인공을 맡은 공연

 

전통의 계승

 

1973년 7월 만수대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과 가극《꽃파는 처녀》의 일본공연은 온 일본땅을 휩쓸었다. 예술단은 두달 남짓한 기간에 도꾜와 나고야, 오사까, 히로시마, 후꾸오까, 교또, 고베 등 각지에서 공연을 진행하였다.

그 당시 조국의 예술인들이 펼쳐보인 진정한 주체예술에 접하여 자기도 조국의 참다운 예술인이 될 희망을 안고 귀국에 길에 오른 한 재일동포소녀가 있었다.

조청미씨

 

《피바다》 초대 어머니역 김기원씨의 뒤를 이어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어머니역을 훌륭히 수행한것으로 알려져있는 인민배우 조청미씨(61살)이다.

 

1973년 10월 조국의 품에 안긴 그는 1979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피바다가극단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가 《피바다》의 주인공 어머니역을 맡은것은 그 4년후인 1983년의 일이다.

 

《당에서는 나를 음악대학에서 배우도록 배려해주었을뿐더러 조선말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저를 믿어주어 <파바다>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주었다. 장군님께서 밤을 지새우시면서 가극혁명의 포성을 울려주신 업적을 길이 빛내이기 위해 어머니역을 해내는데 온갖 열정을 바쳤다.》(조청미씨)

 

노래로부터 대사, 형상, 연기 모두 김기원씨가 전적으로 맡아 장군님께서 직접 지도해주신 내용이 고스란히 이어지도록 지도를 주었으며 그 전통을 현재는 조청미씨가 후대들에게 이어주고있다.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 성악학부 양악성악강좌 교원으로서 후대육성사업에 힘쓰는 그는 수업을 진행하는 한편 《피바다》를 비롯한 5대혁명가극의 주단역을 키우는 사업을 추진하고있다.

 

《피바다》 어머니가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이 창건된지 어언 70년. 오늘 조국은 김정은원수님의 령도에 의해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전략국가의 위치에 올라섰으며 민족번영의 새시대가 펼쳐졌다.

 

조청미씨는 우리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서 우리 민족이 착취받고 압박받던 지난날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혁명만이 살길이라는 《피바다》의 사상, 생활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안겨주기 위한 연기형상, 노래형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며 《문명강국건설에 힘있게 이바지할 예술인재들을 키워나감으로써 우리 혁명가극의 전통을 천년이건 만년이건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김숙미기자)

 

금강산가극단의 탄생과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

 

조선의 문학예술부문에서 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일던 1970년대, 바로 이 시기에 금강산가극단도 창단되였다.

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인 재일조선인중앙예술단은 1955년 6월 6일, 20여명의 단원으로 발족하였다.

 

1974년 4월 14일,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중앙예술단의 공연을 몸소 보아주시였다. 그리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가 재일동포들에게 안겨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되겠다고 하시면서 이국땅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이 《금강산의 노래》공연을 볼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시고 친히 예술단의 이름을 《금강산가극단》으로 지어주시였다.

 

금강산가극단은 《금강산의 노래》를 일본각지에서 대성황리에 공연하여 재일동포들과 일본시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리별의 아픔을 겪은 가족이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가의 리별과 만남에는 갈라진 북과 남 그리고 해외의 온 겨레가 행복을 누리는 통일조국에 대한 지향과 념원이 담겨져있다.

 

2014년 8월 주석님께서 가극단의 이름을 지어주신 40돐에 즈음하여 평양에서는 금강산가극단과 피바다가극단 배우들이 출연하는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의 공연이 진행되였다.

재일조선예술인과 조국의 배우들이 합동으로 가극을 공연하는것은 처음되는 일이였다. 금강산가극단의 배우들은 피비다가극단의 배우, 무대관계자 등 총 400명과 함께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내였다.

 

[출처; 조선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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