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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 70여 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만남..금강산은 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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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8-20 06:0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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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철아!” “어머니!”
(추가) 70여 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만남..금강산은 눈물바다
 
금강산=공동취재단/조정훈 기자

 

 

▲ 20일 오후 3시 금강산 내 금강산호텔에서 남북 이산가족상봉 단체상봉이 열렸다. 남녘의 어머니 이금성 할머니가 북녘의 아들 리상철 씨를 부둥켜안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상철아!”, “어머니!”

남녘 어머니는 북녘 아들을 끌어안았다. 전쟁통에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고 놓지 않았다.

“통일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

남녘 오빠를 만난 북녘의 여동생은 눈물을 훔쳤다. 백발이 성성하게 만난 남매는 누가 뭐라 할 수 없이 너무나 똑 닮았다.

 

70여 년의 세월. 얼어붙던 분단선은 뜨거운 눈물로 녹았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0일 오후 3시 금강산에서 상봉했다. 남측 1차 대상자인 89가족, 197명. 이들의 사연은 달랐지만, 전쟁과 분단의 상처는 모두 같았다.

 

1951년 1.4후퇴 당시 어머니 한신자 할머니(99세)는 첫째 딸 김경실 씨와 둘째 딸 경영 씨를 남겨두고 셋째 딸만 업고 남으로 내려왔다. 2~3달이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67년이 흘러 다시 만났다.

 

연보라색 한복을 맞춰입은 북녘의 두 딸은 상봉시각이 다가오자 남녘 어머니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어머니 한신자 할머니가 들어서자, 두 딸은 눈물을 흘리며 90도로 인사했다. 딸을 알아본 한 할머니는 “아이고”를 내뱉으며 통곡했다. 67년 전 헤어진 두 딸의 볼을 비비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할머니는 딸 경영 씨에게 “너가 이름이 김경자인데 왜 이름을 바꿨느냐”고 묻고는 “내가 피난 갔을 때”라며 울먹였다. 두 딸을 미처 데려가지 못한 미안함에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연보라색 한복을 갖춰입은 북녘의 두 딸 김경실, 경영 씨가 남녘의 어머니 한신자 할머니를 만났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상철아!” 남녘 어머니 이금성 할머니(92세)는 아들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연신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아들 리상철 씨도 어머니를 부여잡았다.

 

이금성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올랐다가 남편, 아들 등 다른 가족과 모두 헤어졌다. 할머니의 등에는 갓 난 딸 하나만 있었다.

 

북녘 아들과 며느리는 60여 년 만에 만난 어머니에게 아버지 사진을 꺼냈다. 아들이 “아버지 모습입니다”라고 말하자 모자는 다시 오열했다. “애들은 몇이나 뒀니?”, “손(자식)이 어떻게 되니”라고 연신 묻는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진짜 맞네. 진짜 맞아” 남과 북으로 흩어진 남매는 서로를 확인했다. 남녘 누나 김혜자 씨(75세)를 기다리던 북녘 남동생 은하 씨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베레모를 벗으며 73년 만의 만남에 긴장이 역력했다. 어색했던 남북의 남매는 서로를 확인했다.

순간, 남녘 누나 김혜자 씨는 벌떡 일어나 동생을 껴안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진짜 맞네, 진짜 맞아”

 

1945년 해방 당시 만주에서 일본군이 쫓아올까 봐 무서워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가 어린 김혜자 씨를 둘러업고 이남으로 내려왔다. 김 씨의 어머니는 남동생을 업고 외갓집에 갔다가 영영 헤어졌다.

 

남동생이 꺼낸 어머니 사진을 본 누나는 “엄마 맞다. 아이고 아부지”라며 대성통곡했다. “73년 만이다. 해방 때 헤어졌으니. 아이고야 정말 좋다. 혹시 난 오면서도 아닐까 봐 걱정했는데, 진짜네”라며 누나는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 남북 이산가족이 70여 년의 세월을 넘어 금강산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북녘 두 여동생은 남녘 오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남녘의 오빠 김춘식 할아버지(80세)는 북녘의 두 여동생 춘실, 춘녀 씨를 단번에 알아봤다.

“일어서봐, 일어서봐, 춘자, 춘녀냐. 내가 춘식이다”
“오빠, 이렇게 만나냐. 오빠”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김춘식 할아버지는 전쟁 통에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피난을 내렸다. 두 여동생은 고향에 남았다. 남겨진 동생들에게 미안하듯, 김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춘자, 춘녀 보고 싶어서 정말 가슴 쓰려 하시다가 일찍 죽었다”고 눈물을 보였다.

 

“통일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

남녘의 오빠 김병오 할아버지(88세)의 손을 꼭 잡은 북녘의 여동생 김순옥 할머니는 말했다. 여동생은 “혈육은 어디 못가. 오빠랑 나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자, 오빠는 기자들을 향해 “정말 정말, 아이고. 기자 양반 우리 정말 닮았죠?”라고 물었다.

 

김순옥 씨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내가 의과대학 다닐 때 사진이다. 오빠, 나 평양의과대학 졸업한 여의사야. 평양에서 정말 존경받고 살고 있어. 가스도 매달 주고. 내가 전쟁 노병이라 정말 존경받는다”고 자랑했다.

 

오빠는 “여동생이 이렇게 잘 됐다니 정말 영광이다. 나는 고등학교 선생님 30년 하고 교장으로 퇴직한 지 10년 됐어. 만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었는데, 정말 잘 됐다”고 화답했다.

 

동생은 “오빠, 통일되면 정말 좋을 거야. 내가 내과의사다. 젊은 의사들도 다 나한테 와서 협의한다”며 “얼른 통일돼서 같이 살게 해줘요. 통일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 남녘 여동생 조혜도 씨와 남동생 도재 씨가 북녘의 누나 조순도 씨를 만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남녘의 오빠는 북녘의 여동생에게 65년 만에 직접 사과를 먹여줬다. 1953년 당시 잦은 폭격으로 개성에 살던 신재천 할아버지(92세)는 친구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길을 나섰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북녘의 여동생 금순 씨를 본 오빠는 “엄마하고 똑 닮았다”며 “진작 서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아. 만나니 좋다. 엄마, 아버지한테 밥 한 그릇 못 해드린 게 마음에 걸렸는데, 널 보니 마음이 놓인다”며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사진을 꺼내 여동생의 얼굴과 비교하던 오빠는 “딱 이 모습이야. 딱 보니까 그래. 피는 못 속인다”면서 사과를 집어 여동생에게 먹였다.

 

“맛있지? 오빠가 먹여주니 맛있지? 너 만나니까 기쁘고 한이 풀리고 그래.”

1.4후퇴로 아들과 헤어진 남녘 아버지 이기순 할아버지(91세)는 함박웃음을 띄었다. “내 아들이 맞아. 내 아들!”

북녘의 아들 리강선 씨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기자를 향해 “어때? 나랑 아들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기자는 “얼굴형하고 아래턱이 똑 닮았다”라고 답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쳐다봤다.

 

   
▲ 1급 시각장애인인 남녘 이금연 할머니가 북녘 올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분단의 세월, 남북 가족들은 만났지만, 정치적 이야기에서는 날을 세우기도 했다.

남녘 형 차제근 할아버지(84세)는 북녘 동생 제훈과 조카 성일을 만났다. 차제근 할아버지가 “빨리 통일이 와야지”라고 말하자, 조카 성일은 “미국놈들을 보내야해. 큰아버지, 봐보세요. 싱가포르 회담 리행을 안 한단 말이에요”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차 할아버지는 “6.25 난 것이 김일성이 내려와서 그렇다”고 하자, 조카는 “아이, 그건 거짓말이라요. 6.25는 미국놈들이 전쟁한 거에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싸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할아버지는 “그래, 그건 잘 한거야”라며 가족을 다시 웃으며 논쟁을 마무리했다.

 

이날 남북 이산가족상봉에는 국군포로 한 가족과 전시납북 다섯 가족도 포함됐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했으며, 이어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북측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해 재회한다.

 

   
▲ 남녘의 윤흥규 할아버지가 북녘의 매부 정익호 씨와 외조카손자 김상욱 씨를 만나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 남녘의 김종태 할아버지가 북녘 조카 김학수 씨를 만났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추가, 19:43)

 

[출처: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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