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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김명주 장례미사 24일 천주교 성당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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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1-26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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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고 김병주 선생 장례미사에 관과 사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미주]김명주 장례미사 24일 천주교 성당서 거행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정동현 편집위원]재미동포통일운동 원로 김병주 선생 장례행사는 24일 오전10시 토런스 소재한 성프란체스코 성당(2040 Artesia Bl, Torrence, CA90504)에서 이태영 신부님의 집례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또한 고인을 추모하는 모임은 20일과 21일 밤 8시에는 가족들과 천주교 교인들, 통일운동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당 별실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고인의 유가족들-부인과 세딸 사위들과 손자손녀들 모습
24일 고인에 대한 장례미사에 이어 그를 추모하는 조사들이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에 의해 소개되었다. 노 대표는 유럽지역의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회장 이지숙 박사)와 회원일동이름으로 보낸 애도의 편지, 대앙주 <재오스트랄리아 동포전국연합회(박용하 회장)가 보낸 조사, 뉴욕의 <우륵교향악단(단장 리준무 선생)>서 보낸 조사, 재미동포서부지역연합회(회장 김현환 박사)이 보낸 조사, 민족통신 편집위원 백승배 목사가 올린 고인에 보내는 편지 등을 요약하여 낭독하자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대표하여 큰 딸 김수영씨가 우리말이 서툴다고 전재하고 영어로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한 여러분과 조사들과 조의금을 보내 준 여러분에게 감사한다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인사말을 하였다. 장례행사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토런스에 소재한 나오미 식당에 모여 점심을 나누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통일운동권 인사들로서 양은식 박사, 배강웅 범민련 재미본부 의장, 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백승배 민족통신 편집위원, 정동현 민족통신 편집위원, 육재규 선생, 홍성현 목사, 성낙영 목사, 한문수 선생, 왕용운 선생, 이태선 선생, 이세방 선생, 토마스 김 박사,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백승배 민족통신 편집위원, 정동현 민족통신 편집위원, 조재길 세리토스 시장 부부, 성당 신자들, 그리고 유가족 등 1백여 명이었다.

가족들에 의하면 고인의 시신은 고인의 요청으로 화장하여 원하는 곳에 뿌려주기로 하였다고 한다.

유가족 위로 연락처 (310)403-7843, (310)740-6938,(213)458-2245


(위로 말이나 편지를 보낼 분들은 이메일 minjok21@hotmail.com 으로 보내주시면 곧 전달됩니다.)

고 김병주 선생 잘례미사에 참석한 통일운동권 인사들, 성당신자들, 유가족 등 모습

고 김병주 선생 장례미사 일정이 끝나고 퇴장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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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오스트랄리아, 뉴욕 등지에서 온 조사들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조사들 소개]독일, 오스트랄리아, 뉴욕 등서 애도편지


<김 병 주 선생 유족: 이 금 녀 여사께>


뜻밖의 부음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병마에 투병중이라는 말씀을 듣긴 하였습니다만, 이렇듯 별세에까지 이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가족들께서 애통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전에 조국통일을 누구보다 원하셨고, 그러셨기에 많은 시간 그 일을 위해 노력하며 매진하셨던 선생님이셨는데, 이승에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려옵니다. 하지만 저승은 이승의 옆 동네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심신이 지쳐 이승에 머물기 곤란한 분들께서 먼저 가셔서 편안하게 쉬는 곳이 저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단의 아픔으로 많은 세월 동안 선생님께서 몸과 마음으로 일해오셨던 힘든 일들을 이제 내려놓으시고, 좋은 곳에 잘 모셨다고 생각하시면 슬픔이 조금은 덜하리라 여겨집니다.

빈소를 찾아 조문을 드리지 못하고 이처럼 몇 마디 말로 애도의 뜻만 전하게 되어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사히 장례를 마치고 하루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 밝고 환한 본디의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9년 1월24일

재오스트랄리아 동포전국연합회장 박용하 드림



<애도의 편지>


재도이취란트동포협력회는 미주의 통일원로이신 김병주선생님께서 타계 하심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며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한사람의 동지가 절실히 필요한 이 때에 선생님께서 먼저 떠나시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 큽니다.

김병주선생님께서 생전에 나라와 민족을 귀하게 생각하여 모범으로 보여주신 삶의 자취들이 저희들 해외동포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유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1월 24일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회장 이지숙)회원 일동




<김병주선생님을 추모하여…>



광주항쟁이 일어난뒤 미국전역에 민주화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을때 나는 <한겨레운동연합>의 성원으로 나성에서 열린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해외동포대회>에 참가하여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었지요.

초대를 받고 선생님댁을 방문했을때 감격스러웠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보여주신 조선예술영화 <<월미도>>를 통하여 나에게 조국을 알게 하여주신 크나큰 충격과 격동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둘도없는 조국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노래의 가사에서오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이선생”하고 부르며 선생께서는“우리조국은 위대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라고 강조하시며 조국에 대해서 내가 알지못하고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여 주시던 그 인자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89년 3월에 선생님을 따라 조국에 갔을때의 그감격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때 받았던 충격을 가슴에 소중하게 안고와 <<남북가곡의 밤>>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미국전역 9대 도시에서 13회에 걸친 공연을 하여 동포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킬수 있었던 것도 병주선생의 애국활동에서 받은 감명이 말할수 없이 컸기때문 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에 이북의 비데오 잡지 출판물등을 취급 하실때 협박인들 얼마나 많았고 모략인들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이겨온 선생의 지난 과거는 한개인의 생애라기 보다는 태양을 향한 우리민족의 투쟁사라 하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꿋꿋한 기상과 불굴의 애국활동을 본받고 따르며 실천하는 후배가 될것을 한번더 굳게 다짐합니다. 편히 잠 드십시요.

부인님과 자녀들께 애도의 인사를 전합니다.


2009년 1월24일

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리준무 삼가 올림



<김병주선생의 영전에>


오래 동안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다 최근에 서거하신 김병주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특별히 김병주선생은 분단된 조국 북반부의 서적들과 그림, 건강 상품, 등을 판매하는 고려종합상사를 경영하면서 <<북 조국 바로 알기 운동>>을 벌려 오셨습니다. 참으로 힘든 일을 묵묵히 해 오신 김병주선생께 경의를 표합니다.

남은 우리들은 김선생의 뒤를 이어 열심히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 1월24일

재미동포서부지역위원회(회장 김현환 박사) 회원 일동



<존경하는 김병주 선생 영전에>


김선생,
아니 김형, 이렇게 불러야 더 정이 가기에 이렇게 불러봅니다.
아직 김형께서 바라시던 통일이 아직도 요원한데, 아직도 김형이 살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어찌 이렇게 서둘러
우리를 떠나십니까? 통일운동을 하느라, 그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더디게, 미약하게 나타나는 것 같이 속이 타셨었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겨우셨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시고 싶으셨습니까? 아니지요.
통일일꾼이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겠지요. 끈질기게 통일운동을 하다 보니 속이 타셨겠지만 서두요.

일찍이 민족사랑에 눈이 뜨시어 통일운동을, 그 중에도 이북 바로 알리기 운동을 하시느라 남들이 감히 못하고 안 하는 이북 출판물,
비데오 들을 취급하는 고려종합상사를 운영하며 통일방해꾼들로 인해 얼마나 속이 타셨겠습니까? 그래서 병을 얻으셨겠지요. 드디어

이제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떠나셔야 할 때가 되셨기에 모든 사람들이 가야 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겠지요.

그러니 이제 저희들 어찌 하겠습니까? 김형이 그렇게도 원하던 통일, 그 일을 위하여 남아 있는 우리들 김형이 해야 할 몫까지
함께 맡아 가야겠지요. 서로 의견이 조금씩 달라도, 방법은 달라도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의 지상명령을 함께, 더불어, 힘 모아,

정성 모아 정진하여야겠지요.

김형, 편히 쉬십시오. 남과 북을 모두 감싸는 하느님이 품에서 편히 쉬면서 남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구해 주십시오. 김형의
소원대로 조국통일의 염원 안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갈리지 않고! 감싸주면서 일할 수 있도록!.

김형, 아무리 몸이 편한들 마음까지 편하셨겠습니까. 조국통일을 보지 못하고 어찌 눈을 편히 감으셨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들을 두고 어떻게 기쁘게 길을 떠나셨겠습니까?

김형 이제 편희 쉬십시요.


2009년 1월24일

통일의 작은 일꾼 백승배 올림


고인을 위로하는 의식을 진행하는 이태영 신부와 사제들

24일 오전10 토런스 성당에서 고 김병주 선생 장례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출처: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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