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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4.27 [판문점 선언]은 나를 암흑에서 광명으로 이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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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4-27 14:0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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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은 나를 암흑에서 광명으로 이끌어주었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감격스러운 정상회담과 그 놀라운 회담의 결과인 [판문점 선언]을 보면서 나는 감격의 눈물을 계속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감격적인 정상회담의 장면 하나하나를 보고 또 보아도 또 보고 싶고 이게 꿈인가 손을 비벼보기도 했다. 나는 오늘만큼은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러한 감격스러운 4.27 [판문점 선언]같은 결실은 먼 후대에 가서야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물론 첫걸음이고 김위원장이 지적했듯이 이 선언의 실천에는 난관과 많은 장애가 있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단지 감격할 뿐이다.

 

나와 아내는 오늘(엘에이 시간으로 4월26일 오후 5시) 엘에이 시내의 쉼터에서 개최되는 엘에이 동포들의 정상회담 공동 청취모임에 참석하였다. 거기에 큰 티비가 설치되어 있었고 내가 그 곳에 도칙했을 때는 이미 여러 동포들이 참석하여 두 정상의 만남을 진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거기에 의외로 이남의 KBS 티비 기자들이 우리 청중들을 찍고 있었고 한 기자가 나에게 와서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나는 즉시 “나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게 좋은데요.” 그러니까 그 기자가 하는 말이 “북도 많이 방문하셨다고 6.15 사무국장이 그러던데 꼭 인터뷰를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그들의 질문에 답하였다. 물론 KBS 기자들이 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인터뷰를 요청했을 것이고 인터뷰한 내용이 얼마나 실제로 방송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정세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1975년 29살에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와서 시카고대학이 있는 하이드팍에 자리를 잡고 5년간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이남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해방신학>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반북, 반공의 사슬에서 벗어나면서 우리 민족이 가야할 길은 조국통일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에서 개최되는 통일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되었고 유럽에서 개최되는 북과 해외학자들과의 대화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올바른 길을 찾아가다 보니 종북이 되었다. 그리고 뜻있는 재미동포들과 함께1986년에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도 결성하여 이산가족사업을 하기도 했고 1997년 조국통일에 관심있는 재미동포들과 함께 <재미동포전국연합회>도 결성하여 동포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동안 범민련, 6.15재미위원회를 비롯하여 여러 통일단체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그저 열심히 통일운동만을 벌려왔을 뿐 오늘4.27[판문점 선언] 같은 감격스러운 조국통일의 서광을 보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뭔가 코리아반도에서 통일의 물꼬가 터질려고 하면 틀어지고 또 틀어지는 뼈아픈 좌절을 계속 맛보았기에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살아오다가 이번 정상회담의 결실인 [판문점 선언]을 보고는 감격하여 눈물만 나올 뿐이다. 감격 그 자체일 뿐이다.

 

1994년 7월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이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으나 7월 8일 갑짜기 김일성주석이 서거함으로써 정상회담은 좌절되었다. 참으로 그 좌절감을 무엇으로 표현하겠는가. 나는 평양으로 달려가 김일성주석의 운구 앞에 엎드려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참으로 우리 민족이 왜 이리도 운이 따르지 않는지 운명탓만하며 한탄하고 한탄하면서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가 2,000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6.15선언]을 하는 날 나와 재미동포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김대중대통령을 이어 극적으로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어렵게 <6.15시대>가 개척되었다. 나도 오래간 만에 이남에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5년간 받아 남과 북, 해외 대표들의 회의마다 참석하였고 이북을 방문할 때마다 이남에 들러 노모와 누님, 동생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사실상 김영삼대통령 전에는 나는 무서워서 이산가족들을 모시고 이북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비행기와 중국비행기를 이용하곤 했다. 김영삼문민정권이 들어서서야 나는 대한항공을 타기 시작했다.

 

2,007년 10.4선언 때에도 마찬가지로 나와 재미동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하였다. 그러나 이남에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에 부쉬정권이 들어서서 이북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면서 6.15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에도 나와 재미동포들의 이북 방문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1년이 지나서 나와 아내는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다가 봉면을 당하였다. 아내는 입국수속이 되어 저 밖에서 기다리는데 나는 입국이 불허되었다. 아내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짐을 챙켜가지고 웃층으로 와서 짐을 가른 후 아내는 서울로 들어가고 나는 인천공항에 있는 구치소에 3시간 있다가 중국 심양으로 퇴출되었다. 내가 서울에 10일간 체류한 후 심양을 통하여 이북으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기에 엘에이 대신 심양으로 퇴출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서 나의 이남방문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머니가 2016년 12월에 돌아가셨지만 방문허가가 나지 않아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2017년 2월에도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에서 환승하여 이북을 방문할 수 있었으나 2017년 4월에 대한항공을 타려고 하자 내가 인천에서 심양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이 되지 않아 엘에이에서부터 대한항공마저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중국비행기를 타고 중국 광동을 거쳐 빙둘러서 평양을 방문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부터 웜비어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미국정권이 미국시민권자들의 이북방문을 불허함으로 나와 재미동포들의 이북방문의 길은 꽉 막혀버렸다. 최악의 상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 4월27일 남과 북의 정상회담에서 획기적인 [판문점 선언]이 나오다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기레기로 알려졌던 KBS마저 나와 인터뷰를 요청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 북미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합의가 되면 우리 재미동포들은 미국비행기를 타고 뉴욕이나 엘에이에서 직접 평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최소한도 뉴욕이나 엘에이에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를 타고 인천에서 내려 리무진을 타고 판문점을 거쳐 바로 평양으로 가는 날이 올 것이다. 중국을 통과하여 평양으로 들어가는 그 지긋지긋한 절차와 시간, 돈 낭비가 더 이상 없기를 기대해본다.

 

4.27[판문점 선언]은 내 개인에게도 암흑으로부터 광명을 찾아주었다. 그것은 내 개인의 심리적 위압감을 확 풀어주었다. 그 동안 나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되어 있었다. 실제로 구글에 들어가 내 이름(김현환, 혹 김현환 소장, 김현환 목사, 김현환박사)을 쳐보면 거기에 내 사진도 나오고 내 글들도 많이 나오고 내 죄수번호 5번도 나온다. 내가 왜 죄수 번호 5번이 되었는지 모른다. 어디를 방문하면 내가 올 자리에 왔나 둘러보게 되고 나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다. 내 존재가 남에게 해가 될가 걱정이 되곤했다. 남을 만나는 것도 조심하게 되었다. 노무현정권 때 서울을 방문하여 동창생들을 만나면 기무사나 경찰이 찾아와  동창생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고 그 후부터는 동창생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삼가하였다. 그 동안 나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일한 죄밖에 없는데 죄인으로 취급받으며 위축된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은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더 감격스럽다.

 

이제 오는6월에 열리는 북미회담에서 더 감격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북과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미수교를 하여 우선 서로 평양과 워싱톤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날이 곧 오기를 고대한다. 그러면 나는 죄인에서 해방인으로 되어 완전한 해방을 만끽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엘에이 공항에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조사받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미국에서 미국비행기로 바로 평양으로 날아감으로써 중국을 거치는 지긋지긋한 절차가 생략될 것이다. 해방이다! 그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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