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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파르타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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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9-26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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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에 본 커크 더글라스와 진 시몬스 주연의 [스파르타커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중노동을 하는 광산노예들이 쓰리키아 출신의 검투사인 스파르타커스의 지도아래 노예해방을 시도하는 장면이였다. 로마병사들은 그 주동자인 스파르타커스를 찾기 위하여 누가 스파르타커스냐고 노예들에게 물었다. 이 때 광산노예들은 하나씩 일어나 <내가 스파르타커스다.>라고 외쳐 대었다. 노예들 모두가 스파르타커스라고 외쳐대니 스파르타커스를 찾을 수 없게 되는 멋진 장면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깊이 사색해 보았다. 예수를 믿는 교회당에 나도 오래 동안 다녔다.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벌레만도 못한 우리 인간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역시 기도를 할 때 나 자신을 그렇게 비하하곤 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한히 영광스런 신령한 존재이고 예수를 믿는 나는 무한히 더러운 벌레만도 못한 천한 존재로 여기는 믿음의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인간존재에 대한 인식을 주는가? 간단히 말하여 이러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을 수동적 존재, 노예적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바란 것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다 자신처럼 안식일(종교, 사상)의 주인이 되어 종교나 사상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안식일 법을 인간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안식일 날 병자를 고친 예수의 행위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예수는 <인간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인간을 위하여 있다>고 선포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모든 종교와 사상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주인되게 하기 위하여 종교도 사상도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벌레만도 못한 천한 존재가 아니라 예수와 같이 모두 이 세상의 주인이며 자신의 구세주로 신령한 존재이다. 예수를 믿고 복이나 받으려는 것은 쉬우나 예수를 닮아 예수처럼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최근에 이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비행장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으로 오면서 이남에서 발간된 신문들을 보고 깜작 놀랐다. 이북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와병설을 소설 쓰듯이 열거하면서 이북 붕괴시 어떻게 대비해야할 지를 염려하는 기사를 읽고 놀랐다. 사실 확인도 없이 미국의 팍스뉴스가 추측기사를 쓴 것을 그대로 믿고 그것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전혀 주견이 없는 선정적인 감각이나 자극하는 기사들이었다.

나는 이북을 방문하면서 이북의 민중들과 일꾼들이 우리가 그 동안 교육받고 믿어 왔던 대로 전혀 수동적 꼭두각시, 즉 노예들이 아니라 반대로 [능동적인 주체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이북은 지도자와 당과 군대, 민중들이 하나로 일심단결된 주체의 나라였다. 지도자(이북에서는 수령)란 바로 이 일심단결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 중심이다. 여기서 지도자(수령)는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일반 사람들과 똑 같이 병도 드는 것이고 늙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교통사고도 날 수 있고 화도 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중심으로서의 지도자인 수령은 그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영생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 중심으로서의 지도자(수령)도 구체적인 인간이다. 지도자(수령)도 나이가 들면 늙고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 중심으로서의 지도자(수령)는 계속 계승된다. 뇌수가 없이 인간존재가 생존할 수 없듯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도 뇌수인 수령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김 주석께서 육체적으로는 서거하였으나 사회정치적 생명체 속에서 영생하고 있고 그 후계자에 의하여 계승되었듯이 지금의 지도자(수령)도 역시 똑 같이 이북 주체사회주의 사회라는 사회정치적 생명체 속에서 영생할 것이며 그 후계자에 의하여 계승될 것이다. 단지 지금 그 후계자가 가시화 되지 않고 있을 뿐이지 후계자는 반드시 어디선가 철저하게 후계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계승론이다.

우리는 이북의 수령을 이해 할 때 얼굴 모습은 어떻고, 나이는 얼마고, 키는 얼마고, 몸의 혈색은 어떻고, 출신은 어디고,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고, 등등 외모로 판단한다. 그러나 수령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집단의 뇌수, 중심이다. 이북에서 주체교육을 받고 실천을 통하여 주체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있는 이북의 일꾼들과 군인들, 모든 민중들은 다 주체이다. 이들은 그들의 뇌수이며 중심인 수령을 옹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령과 당과 민중, 군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만약 미국을 비롯한 외세가 이북의 수령을 해치고자 누가 수령이냐고 찾는다면 이북 전체 민중들은 하나같이 일어나서

<내가 수령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내가 스파르타커스다.>라고 외쳤듯이.

김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이북 민중들을 모두 하늘같은 주체로 키웠다. 노예로 키운 것이 아니었다. 벌레만도 못한 하느님의 은혜나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은혜를 베푸는 자급자족하는 자력갱생의 능동적 존재로 키웠다. 인간을 하늘처럼 여기는 <이민위천>사상을 실천한 분이 김 주석이었고 김정일 위원장도 역시 그 사상을 계승하여 실천하고 있다. 지금 이북에는 2천5백만의 김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주체로 살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을 일개 정당의 대표, 계급사회의 일정한 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 정도로 보아서는 이북사회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북의 지도자는 바로 내 몸의 뇌수와 같이 주체사회주의 사회라는 유기체인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이다. 각 몸의 지체가 따로 놀 수 없듯이 수령, 당, 대중, 군대가 따로 놀 수 없다. 이러한 유기체적 이해를 가지고야 이북 집단주의 사회의 뇌수로서의 지도자(수령)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유기체는 지도자(수령) 한 사람이 병든다고 혹은 서거한다고 그 유기체가 파괴되지 않는다. 그 뇌수가 계속 계승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이북 집단주의사회의 지도자(수령)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작성:김현환 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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