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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태생과 성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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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11-11 13: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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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태생과 성장(2)

김영준 담쟁이기자

 

제국의 탄생

 

글 내용은 절대적으로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요약과 인용의 경우 모두 괄호에 페이지를 표기했습니다. 추가로 인용은 겹따옴표(“ ”)로 처리했습니다. 다른 텍스트를 참고한 경우에는 따로 표기했습니다. [글쓴이]


 

미 제국의 태생과 성장(2) 제국의 탄생

 

미국의 위대함을 정당화하는 건국신화는 실은 학살과 전쟁이라는 피와 오물의 역사였다. 수백, 수천만의 원주민 학살과 백인 상류층들을 위한 두 번의 전쟁(독립전쟁, 남북전쟁)은 미국의 인종적, 계급적 성격이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 미국은 진정한 ‘제국’이 되진 못했다. 대영제국을 비롯하여 일본, 독일 등 여러 경쟁국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미국엔 축복이었다는 사실은 교과서만 펼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기존 제국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미국은 지리적 위치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전쟁특수를 누렸다는 일종의 ‘어부지리’설이다. 이런 설명은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긴 하지만, ‘제국으로서 미국’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부족한 감이 있다. 마치 신에게 선택받은 인종과 국가가 있듯, 역사와 구조는 유감스럽게도(?) 미국을 세계유일 패권국으로 선택했는가? 이제라도 두 번의 세계대전에 뛰어들기 위한 미국의 피나는 노력과 자기희생을 우린 똑바로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세계대전, 위대한 구원(Great relief)

 

사람에겐 학습능력이 있다. 한 번 해서 유익한 방법은 다음번에도 써먹기 마련이다. 학살과 전쟁이라는 건국방법은 제국을 건설하는데도 유용했다. 

 

 

▲ 여객선 루시타니아호

 

 

▲제1차 세계대전 : 1915년 5월1일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유보트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다. 미국인 128명을 포함해 약 1200명이 사망·실종된다. 이를 빌미로 윌슨은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하지만 루시타니아호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독일은 전쟁지역을 출입하는 영국과 그 동맹국 선박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미국 정부에 통보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전쟁지역에 군수물자를 실은 민간인 선박을 들여보낸다. 대형증기선 루시타니아호가 불과 18분 만에 침몰한 것도 영국으로 보내는 다량의 폭발물이 연쇄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유도된 사고였다. 참전을 위해 무고한 승객이 희생양이 된 것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1차 대전은 미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58~61) 

 

루시타니아호 승객들은 약 36만 명의 전쟁 희생자와 더불어 제국에 의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2차 세계대전 : 전투 참가 인원만 약 1억 명, 사망자만 7200만 명에 달하는 2차 대전은 그야말로 총력전이었다. 이때도 미국은 1차 대전처럼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선포하고 참전 구실을 찾았다. 일본을 대상으로 참전공작이 시작되었다. 미국, 영국 내 일본 재산을 동결하고 석유 금수조치를 단행한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을 유도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된다. 간략히 살펴보면,

 

- 1940년 10월7일 : 해군정보처 맥콜럼 소령은 <일본의 대미 공격을 유발하는 8단계 조처>라는 시나리오를 루스벨트에게 제출한다.  

 

- 1941년 6~8월 : 일본, 멕시코 주재 미 군무관들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위한 공습훈련을 진행 중이며, 소형 잠수정도 건조하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한다. 

 

- 1941년 9월 : 미국 정부는 2413건의 일본 전문을 도청하면서 진주만 공습에 관한 구체적 정보를 파악한다. 

 

- 1941년 11월25일 : 루스벨트는 전쟁장관에게 다음주 월요일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너무 큰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해 국민에게 전폭적인 전쟁 지지를 얻어낼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 1941년 11월27일 : 육군에는 협상이 순조롭지 않으니 경계태세를 강화하라 하고, 해군에는 일본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니 경계태세를 완화하라고 지시한다. 

 

- 1941년 12월7일 :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었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루스벨트는 “위대한 구원(Great relief)”이라며 반겼다. 이날 공습으로 미군 2403명이 사망하고 1178명이 부상했다. 

 

후일 루스벨트는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켜야 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62~72) 

 

 

▲진주만 공습

루스벨트는 자유진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으로 불린다. 그런데 ‘전쟁영웅’과 ‘전쟁광’은 어떻게 다른가? 히틀러는 제국을 건설하는데 실패했지만, 루스벨트는 성공했다는 것이 확실히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제국은 피를 원한다

 

미국은 자국민들을 전쟁의 제물로 바치며 제국으로 거듭났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단 한 명의 미국인이라도 위하는 미국은 어디까지나 영화에서만 존재했다. 나아가 제국은 자국민만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제물을 필요했다. 

 

▲드레스덴 양민 학살 : 1945년 2월13일, 미·영 연합군 폭격기는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에 14시간 동안 7100여 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이후 이틀 동안도 추가 폭격이 이어졌다. 도시는 초토화되었고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일반적인 폭격과 달리 공격 ‘목표물’이 없었다. 건물이든 사람이든 눈에 띄는 건 전부 폭격하라는 지시만 있었다. 사용된 폭탄도 대량살상에 특화된 네이팜탄과 클러스터 폭탄(확산탄)이었다. 단지 주민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기 위한 폭격이었다. 

 

“두 팔로 아기를 안고 폭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던 한 여인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시뻘건 불길에 휩싸였던 끔찍한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이제 와서 들으니 그것이 바로 네이팜탄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젖은 담요를 덮어 씌워주시며 키스하고는 달리라고 소리쳤다. 내가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엄마는 이미 화염에 묻혔고, 거리는 연합군이 투하한 폭탄으로 발 디딜 수 없는 불바다였다. 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불에 타 녹아버렸다.” 

이같은 생존자들의 증언은 당시 참상을 충분히 짐작게 한다.(72~73) 

 

 

▲나가사키의 원폭구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 원폭을 투하한 것이 과연 전쟁을 조기 종식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을까? 1945년 5월 독일 항복 후 일본은 종전 준비를 시작한다. 도조 히데키 수상을 해임하고, 비둘기파인 스즈키 칸타로가 그 자리에 앉는다. 7월11일, 일본은 조건없는  항복의사를 미국에 전달한다.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을 설득해달라고 소련 쪽에도 간곡히 요청한다. 7월13일에는 고노에 왕자가 일본 천황의 종전 친서를 전하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일본의 종전 의지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행정부는 8월6일 히로시마에, 8월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다. 두 도시 모두 드레스덴처럼 군사기지나 군수품 생산시설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민간인 사망자 20만 명, 방사능 피해자 100만 명. “소련을 길들이려면 가공할 무력시위가 필요했다.” 제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선 필요한 제물이었다.(74~76)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은 미국에겐 곧 세계제패의 위대한 구원이기도 했다. 미국은 진정한 세계 단일 제국에 등극한다.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의 진정한 소임은, 이러한 우월적 지위를 수용하는 국제관계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삶의 질 향상이니 인권이니 민주화니 하는 따위의 대화는 걷어치워야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직접 힘을 행사해야 할 시기가 다가올 것이다. 이제 이상적인 구호들을 거둬들여야만 그러한 구호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78) 1948년에 쓰인 미 국무부 정책기조 보고서는 앞으로 미국이 걸어갈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길은 이제껏 미국이 걸어왔던 길처럼 피와 오물로 가득하다.  

 

 

[출처: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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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떠드는 《인권옹호》의 침략적이며 략탈적인 본색을 만천하에 발가놓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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