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생은 아름답다(하) > 새 소식

본문 바로가기

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새 소식

북녘 | [단편소설] 생은 아름답다(하)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9-23 10:48 댓글0건

본문

단편소설, <생은 아름답다>

 

편집국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7일 김정은 위원장은 "로력영웅이며 교수, 박사인 국가과학원 유색금속연구소 연구사 현영라동지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16일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였다."고 보도하였다.

 

현영라 연구사는 비날론 개발자인 리승기 박사와 유전학자인 계응상 박사와 함께 북의 3인 과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현영라 연구사는 1999년 11월 3일 제2차 천리마대진군선구자대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력영웅칭호와 함께 망치와 낫이 새겨진 금메달 및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여성 과학자로 교수, 박사가 되었으며 노력영웅까지 받은 그는 북 컴퓨터 산업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북 과학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현영라 연구사 삶을 소설로 소개한 단편실화문학집인 《의지의 나래》(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1년 4월출판)에 실린 《생은 아름답다》단편실화를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생은 아름답다[하}

최 영 학

 

 

 

이러한 때에 아버지한테서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 들어왔다는 편지가 왔다. 아버지는 결국 자신을 회복하지 못한채 사회생활을 끝마치신것이다.

 

《네가 부디 나라에 미안하게 된 이 아버지의 인생을 보상해주기 바란다. 너무 멀리 바라보면서 세계적인 문제에 매혹되여서는 안된다. 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현실을 호흡하면서 과학자의 손을 기다리는 문제들에 심혈을 기울이라. <물리학자의 조국은 전 세계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던 시기는 멀리 지나갔다. 나라 없던 그 시절 거기에 매혹되여 과학을 시작했던 아버지는 끝내 그런 관념을 버리지 못한탓에 나라에 손해를 끼치고 인생을 흐리였다. 아버지의 교훈이 일생을 두고 너의 지팽이가 되였으면 한다. 먼저 위대한 수령님의 딸, 당의 과학자가 되는것이고 뀨리는 그다음이다. 이것이 못난 아버지 사회생활의 총화이니 꼭 명심하기 바란다. …》

 

한편 《생활의 법칙》도 그를 유혹하였다. 윤미가 귀부인틀이 잡힌 추월을 휘동해가지고 탄광에 찾아왔던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의 론리를 가지고있었다.

 

그때 아마 추월이가 말했던가?…

 

《어느 날 나는 별다른 계기도 없이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구나. 모든 사람들이 궁극에 가서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것이 아닌가! 그러자 세상물정이 환해지지 않겠니. …》

 

그는 놀랐다. 그렇게도 생각할수 있을가?

 

《그래. 사회에서 자기를 위해 투쟁할줄 모르고 생활에서 자기 몫을 찾을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은 유치원생이나 같지 뭘 그러니. 네가 일단 모든것을 버리고 과학에 운명을 건 이상 세계과학계를 노린 훌륭한 목표를 세워야 해. 우리도 힘껏 돕겠으니 해봐!》

 

접점따위에 집착하지 말고 세계적인 발견을 목표하라는것이였다. 하여 《어찌할수 없는 대학시절 우리들의 꿈》을 대오에 남은 유일한 벗 현영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실현해보려는것이다.

 

《생활의 법칙》에 굴복하여 자기 대오에서 떠나간 벗들이고 많은 면에서 일치되지 않지만 정답게 안겨오는 벗들이였다. 훌륭한 리상을 한번이라도 지녔던 인간은 현실에 굴복하면서조차 그것을 영 버리지는 못한다. 그 고상한 지향으로 하여 훌륭하진 못해도 정답고 아름다운 벗으로 남아있는것이다.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 없는것은 서로에게서 보충하려 했었지. 그것으로 《물리학부 세 녀자》의 우정은 계속 이어지고…

 

《그건 이다음에!》

 

추월이 말하는 《세상물정》을 그는 웃음어린 짤막한 한마디로 물리쳐버렸다. 인생의 옳고 그름을 어찌 선 자리에서 판가름할수 있으랴. 살아보자. 일생을 통하여 자기의 정당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서 생활은 곧 투쟁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그의 투쟁은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책임비서를 찾아가 그의 방에 모여앉은 련합의 책임일군들앞에서 탄광사람들의 무책임성을 타매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혀를 깨물고 싶다.

 

《<태향>의 청년갱을 내놓고는…》

 

거기서는 믿음직한 《그 동무》가 시험접점을 도입한 자기 채탄기의 기동회수를 빠짐없이 기록해주었다.

 

《다른 갱 도입대상들에서는 대충 짐작으로 기동회수를 기록해넣고 심지어 어떤 갱에서는 기록일지를 없애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4. 15가 코앞인데 재료용해기지를 꾸리게 되여있는 련합보수사업소의 지배인동지는 찾아갈적마다 로력핑겝니다. 자재상사에서는 미리 확보해놓아야 할 전기동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무 마련도 없습니다. 마치 탄광일이 아닌듯이 모두가 강 건너 불보듯 합니다.》

 

책임비서는 그 자리에 그 사람들이 없는듯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래일 나를 데려다주시오. 그 <강 건너 불구경>하는게 어드런 사람들인지…》

 

이튿날 련합합숙에서 습관적으로 새벽잠을 깬 그는 아침전에 도입대상들을 돌아보던 평소의 일과를 미루어두고 오늘 책임비서를 통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겠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합숙마당에서 승용차경적소리가 울렀다.

 

그는 자전거종소리에 벌떡 일어나군 하던 본능으로 창가에 다우쳐갔다.

 

《책임비서동지!》

 

이른 새벽 《그 동무》가 자전거종소리를 울리며 올려다보던 그 자리에 까만 승용차가 서있었다. 누구한테서 나의 일과를 알아가지고 시간을 맞추어 찾아왔을가.

 

《늦지 않았소?》

 

《아닙니다!》

 

책임비서는 이 하루 전적으로 연구사처녀에게 바치겠다는것을 암시하면서 운전사에게 일렀다.

 

《돌아가오. 난 이 동무와 함께 걸어다니겠소.》

 

《책임비서동지, 멉니다》

 

《멀어도 동무가 늘 걸어다니는 길이겠지?》

 

《아닙니다. …》

 

얼결에 자전거소리가 나왔다. 《따르릉!》

 

《그 동무》의 자전거종소리와 함께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이른 새벽 인적없는 들판으로 《그 동무》와 《작은 매》는 날아옜다. 《그 동무》의 자전거를 타고 도입대상을 한바퀴 돌아오면 합숙식당에서 첫 아침을 내는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만은 자전거대신 차를 탑시다.》

 

먼저 밉살스러운 ××갱으로 갔다.

 

《어쩌다가 기록일지까지 잃어버렸소?》

 

채탄공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은 잃어버린게 아닙니다. 채탄기를 조작할 때마다 셈세기를 한다는게 생각할 땐 어렵지 않은데 어떤 때는 굳어진 습관때문에 그냥 넘긴 조작회수를 생각해내느라고 기계를 왕청같이 운전하게 됩니다. 그 바람에 한번은 견인쇠바줄을 끊어먹었답니다. 그래 화가 나서 결김에 기록철을 뜯어 운반갱 콘베아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니 어쩐다? 이건 적어도 석탄생산을 20~30% 올릴수 있는 사업이요. 동무네도 접점때문에 채탄기를 세워두고 온 소대가 곡괭이와 질통으로 계획을 하느라 맥을 뽑군하지. 그러니 이게 누구의 일인가 하는건 명백하지 않소.》

 

《그러지 않아두 기록철을 화김에 없이치우구 나서 계속 그 생각을 굴려봤는데… 거 기동단추를 누를 때마다 한번씩 동작하는 셈세기장치를 간단히 만들어 붙일수는 없습니까?》

 

현영라는 눈이 반짝했다.

 

《될것 같애요. 전기소대 전공들과 토론해보겠어요.》

 

참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해냈을가? 

 

이렇게 문제들이 풀려나갔다.

 

전자석에다가 웜치차를 결합한 매우 간단한 자동계수장치에 대한 구상이 전공들속에서 나왔다. 용해로기지는 현영라의 설계에 따라 그의 직접 지휘하에 금요로동으로 해치웠다. 전기동은 련합적으로 수집운동을 벌려 파동을 마련해가지고 남포제련소에 가서 순도높은 전기동과 바꾸어왔다. 그리하여 한달이 지난후에는 첫 시제품이 나왔다. 직접 설계하고 제 손으로 축조한 로에서 쇠물을 끓여얻어낸 합금으로 시제품을 가공해냈다.

 

그것을 가지고 련합당위원회로 찾아갈 때 그는 처음으로 로동계급의 땅을 밟으며 사는 자기를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몰리해하고 함부로 무책임성이니, 보신주의니, 관료주의니 하는 감투를 씌우며 행악을 부렸던가. 지내놓고 보면 진실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인데 온통 저 하나 일하는것처럼 야단 피우고 돌아갔던것이다.

 

(용서하세요, 탄광동지들! 이제는 탄부의 성격을 알았어요. 석탄처럼 검으면서도 광택이 나고 돌덩이 같으면서도 뜨거운 열을 안고있는 사람들입니다.)

 

2년이 지나갔다.

 

과학자돌격대사업총화가 시작되였다.

 

과학지도처 처장과 담화하였다. 자료불충분, 문헌조사의 빈약성, 실태조사 등한, 이전의 사고원인, 개선된 지표를 장악하지 못하고있는것을 비판하였다.

 

《빨리 사업내용을 종합해야 보고를 올릴게 아니요. 이 접점이 제것만은 못하지만 순동으로 만들어쓰던 대용접점보다는 질이 월등하다는거야 확인된것이구 현실적으로 석탄생산실적이 오르고있지 않소. 뭘 더 할게 있다구 외고집이요? 우린 지금 과학자돌격대지 연구소의 연구사가 아니라는걸 명심하오.》

 

그렇지 않다. 나의 사업은 이제 시작된것에 불과하다. 실험계획에 따라 조성과 배합비률을 각이하게 만든 67가지 시험접점을 다 도입해보고 그중에서 가장 리상적인 수치를 얻어내야 하는것이다. 최대의 질지표를 찾아내지 못한채 《이것이다》고 내놓는것은 과학자답지 못한 행위이다.

 

그런데 과학자돌격대의 일부 책임적인 일군들은 《당에 기쁨을 드리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아직 설익은 열매를 따내라고 독촉하는것이다.

 

어느날 대렬참모가 그를 불렀다.

 

《련합기술발전실에서 계산한데 의하면 우리의 접점이 국가에 주는 년간리익이 2백만원으로 추산되고 있소. 액상 기준으로만 보면 영웅이 10명도 나올수 있는 성과란 말이요.》

 

그러니 탄광에서의 영웅적인 투쟁자료를 만들어내라는것이다.

 

《우리한테서 영웅이 나온다면 돌격대의 자랑일뿐아니라 당의 과학자돌격대방침의 정당성을 과시하는것으로 된단 말이요.》

 

내가 영웅이 된다? 아무리 곱씹어봐야 남의 소리같이 멀리 들린다. 아직 당원이 못되고 이제 3급연구사로서 독자적인 과학연구의 첫 걸음을 뗀데 불과한 내가 영웅이 된다니…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했다. 물론 접점은 소경 문고리 잡은것이 아니였다.

 

지칠대로 지치고 안 아픈데가 없는 몸을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으켜 세위온 하루하루였다.

 

중금속가스중독으로 맛과 냄새를 잃어버린지 오랬다. 가끔 내장이 끊어져나가는듯 한 아픔이 몰려와 입에 손수건을 물고 진통과 싸우고 나면 살고싶은 생각마저 없어진다. 그러니 파괴된 육체를 영웅적희생으로 묘사해야 하는가. 어렵고 괴로왔던 나날들을 위훈으로 묘사해야 하는가. 더구나 나의 사업은 이제 시작되였을뿐인데 소문을 먼저 내고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당치 않은 요구도 여러차례 독촉을 받다보니 어느새 빚이 되고 말았다. 돌격대 책임일군들앞에 죄스러웠다. 돌격대는 사업을 총화하려고 하는데 가장 큰 성과를 거둔 헌영라는 《이제 시작이다》고 《외고집》을 부리면서 탄광일군들을 설득시켜 180Kw예비전동기를 끌어온다, 계수장치에 순간기동, 차단장치를 결합한 최적시험체계를 개발한다 본격적인 실험계획을 추진하고있는것이다.

 

과학자돌격대는 그의 《외고집》에 신물이 나서 얼굴을 돌려버렸다.

 

처녀연구사는 유혹을 이겨내려고 하루에도 몇번씩 뀨리의 말을 외웠다.

 

《과학에서 우리가 관심을 돌려야 할것은 사물이지 인간관계가 아니예요.》

 

《작은 매》야! 너 유혹에 끌리여 딴눈 팔지 말고 바람부는 벼랑우에 억세게 붙어앉아 깃을 다듬어라. 아직 얼마나 멀리 날아야 하는지 모른다.

 

자기 사업을 기본적으로 끝마친 과학자돌격대는 각기 자기 연구소로 돌아갔다.

 

영웅내신을 한다고 떠들던 현영라에게는 그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라 《미해결》항목에 포함시켜 어지간히 야박한 평가를 내리는것으로 끝났다.

 

한사코 고집한 결과였건만 막상 당하고보니 얼마나 야속하고 쓸쓸했던가. 비겁하게도 눈물까지 흘렸었지…

 

(이겨내라. 《작은 매》, 너를 지키라!)

 

 

 

 

연구소에서 소환령이 떨어졌다. 한해만 더!… 연구소와의 복잡한 줄당기기가 시작되였다. 탄광에 혼자 떨어진 그는 야외에 설치한 시험전동기에 붙어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한 모양 전동기를 씌운 철판밑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 동무》가 이따금 자기의 영양제식사를 가져오군 했다. 거퍼 세마디도 말을 번지기 힘들어하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마음이 끌리고 의지가 되였던가.

 

다시 1년만 더!…

 

전동기에 제동장치를 해놓았다. 동발목으로 전동기뿌리를 잡아주는 원시적인 제동장치였지만 관성회전시간을 줄이니 시험기동회수가 배로 높아졌다. 동발목에 동동 매달려 전동기를 멈추고 연기가 퍽퍽 이는 제동부에 물을 끼얹은 다음 다시 기동시킨다.

 

《멀리서 보면 작은 새가 들소곁에 붙어돌아가는것 같소.》

 

《그 동무》가 즐겨 말하군 했다.

 

겨울이 접어들자 탄광에서는 시험장소가까이에 있는 버럭산에 의지해서 반토굴식으로 된 작은 휴계실을 지어주었다. 난로를 들여놓고 기름진 탄을 짜개넣으니 연통안에서 왕왕 불길이 울고 방안은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에게 집이 있다!

 

전동기너머로 그림속의 새집같은 나의 조그만 집이 보이고 집안에서는 유리 한장을 넣은 뙤창으로 일터가 내다보였다. 제발 1년만 더!… 한주일동안 시험한 접점들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이른 새벽 린접군에 있는 지질탐사대로 떠났다.

 

마모, 패임, 균렬, 중량감소 등을 만분률로 측정해야 하는데 련합에는 그런 측정설비가 없었다. 그때문에 연구소까지 왔다갔다 할수도 없고… 다행히 탄광에서 70리 떨어진 이웃군에 있는 지질탐사대에 그런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던것이다.

 

걸으면서 졸고 졸면서 걸었다. 계속되는 피로와 피곤이 겹치여 매양 그랬다. 그런데 그날 따라 해가 떠오르고 길가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자 무릎이 녹아내리고 머리가 핑 돌았다. 가로수를 붙들고 인사불성 주저앉았다.

 

3일만에 그는 련합병원 침대우에서 눈을 떴다. 살았구나! 깜박 잠들었던듯 싶은데 3일이 되였다는것이였다.

 

온 탄광땅에 연구사처녀가 길가에 쓰러져 죽었다는 소문이 났다. 책임비서가 문안을 왔다. 련합지배인도 왔다. 아는 사람도 오고 모르는 사람들도 왔다. 그리고 《그 동무》도… 눈물이 나왔다. 정다운 탄광! 좋은 사람들!

 

《엎어진김에 쉬여 간다는 말이 있지 않소. 억지 쓸 생각하지 말구 탄광료양소에 가서 몸을 추세워야겠소. 그러다가 아예 쓰러지면 접점은 누가 완성하겠는가 말이요. 이건 당의 요구요. 그러니 거절할 생각 마오.》

 

해변가! 경치 아름다운 료양소! 바다는 처음에 두렵고 무서웠다. 멀찌감치서 한걸음한걸음씩 바다기슭으로 다가갔다. 맨발로 백사장에 밀려들어왔다가 물러가는 잔 물결을 따라 점점 깊이 바다쪽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바람! 따뜻한 파도! 날이 갈수록 바다는 하나씩하나씩 자기의 미를 나타내였다.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미지의 힘을 안고 들레이는 바다, 곱슬곱슬 흰 물갈기를 말아올리며 웅장한 파도소리 쏴-우! 지르는 물의 장벽이 밀려오고 밀려온다. 가슴은 뺑뺑해지고 볼은 빨간 홍조가 피여나고 웅심깊은 바다는 점차 그의 넋을 사로잡았다. 해수욕복을 입은 처녀는 바다로 들어갔다. 파도는 조그만 그의 몸을 휙 감아올렸다가 파도골짜기로 흥떡 던졌다. 자연의 품에 안겨 그네를 타는듯 한 그 매력에 한순간 가슴이 짜릿했다. 바다는 마침내 그 깊은 뜻과 아름다움, 진할줄 모르는 힘으로 처녀를 매혹시켰다.

 

《이제 돌아가면!…》

 

그는 정든 바다를 향해 아름다운 수평선너머로 마음속 고백을 터뜨렸다.

 

《<그 동무>의 사랑의 파도에 몸을 던져볼테야. 뒤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한편 탄광에서는 진짜 자기네 사람으로 잡아두려는 욕심을 품었다.

 

《이젠 탄광에 남아서 우리와 함께 일합시다. 동무가 우리 사람이 되면 영웅내신을 할수 있겠는데… 그만한 일을 했거든. 탄광적인 석탄생산이 15%나 늘어났단 말이요.》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책임비서는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저었다.

 

《그래 시험이 끝났다지?》

 

《예!》

 

《찾아냈소?》

 

《27번부터 31번사이에 있는 <ㅅ>조성시료입니다.》

 

《정말 수고했소. 앞으로 우리끼리 할수 있게 접점생산공정을 꾸리고 기능공까지 좀 양성해주시오.

그저 좋기는 동무가 우리한테 남아서 접점을 책임져주었으면 하는데… 될수록이면 그런 방향으로 결심해주오.》

 

누가 알랴. 나도 행복해질지. 이것이 정녕 이 고장과 더불어 나에게 차례지려는 행운이 아닐가? 아마도 그 행복은 저기 태향의 버럭산에 붙어있는 작은 집에 《그 동무》와 함께 하얀 회칠을 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될것이다. 매일 아침처녁으로 《그 동무》의 정다운 자전거종소리를 들으리라. 내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 동무》에게 대접할수 없고 그의 몸에서 나는 땀내와 채탄기냄새 그리고 막장냄새를 맡을수 없다면 완전한 행복이라고 할수 없다.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자, 구경표요. 당에서 보내준 가극단동무들이 오늘 저녁에 첫 공연을 하오.》

 

표를 보니 공연시간은 저녁 8시였다.

 

《저… 한장 더 없습니까?》

 

책임비서는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태향>의 청년갱 소대장 주자던 표가 하나 있긴 한데 어쩐다?…》

 

능청스레 시치미를 뗐다. 공연히 청을 드려 마음속을 엿보인것이 속상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동문 말이요. …》

 

책임비서는 《그 동무》에게 주려고 한다는 구경표를 흔들어보였다.

 

《오늘 같이 앉게 될테니까 잘 여겨보오. 훌륭한 청년이요.》

 

아, 행복은 이처럼 발 맞추며 다가온다! 하건만 그에게는 행복을 맞이할 물질적준비가 너무나 모자랐다. 옷차림때문에 극장에 가는것이 저으기 난처했던것이다. 여기 와서 7년동안은 늘 작업복을 깨끗이 다려입고 다녔다. 노상 일터에 붙어살아온 그로서는 이것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차림새였다. 그런데… 사실 처녀답게 시절과 계절의 류행을 다 따르며 차림새를 갖추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그가 터득해낸것이란 나들나들한 혼방보자기를 묘하게 접어서 쇠물똥에 총총 뚫린 구멍들이 감추어지도록 목수건을 받쳐두른 다음 탄광제복의 목깃우에 살짝 부풀게 만든 매듭을 내놓는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시간과 품이 들어 련합에 찾아가거나 공정추진을 나가 두루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에라야 꾸미고 나서는 차림이였다. 그래도 그때문에 인격이 깎이거나 사업에서 손해를 본적은 없었다. 오히려 연구사처녀의 소박한 품격을 보여주는 차림새로서 탄광사람들의 눈에 익은 모습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구실을 붙여도 《극장에서 가극을 감상하는 연구사처녀》의 차림새가 이럴수는 없다. 더우기 평양에서 온 배우들의 눈에 《훌륭한 채탄소대장의 처녀》가 이처럼 초라한 차림새로 앉아있는것을 보이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니 별수가 있단 말인가. 문득 추월의 말이 떠올랐다.

 

《백번 아니라고 해도 녀자는 차리고 나서야 녀자야. 하물며 너야 처녀가 아니냐.》

 

그렇다. 나는 처녀다. 하지만 나에게는 처녀다운 행복을 맞아들일 아무런 마련도 없어.… 이러한 망설임끝에 갑자기 화가 났다. 커다란 불행앞에서도 주저없이 일어선 그가 여태 무시하고 살아온 옷차림때문에 망설이고있는것을 발견했던것이다.

 

당치 않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할수 없는 그런 일때문에 위축되는것은 무익한 자기 학대야. 보다 중요한것은 우리가 서로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리해하고있는거야. 정신차려, 현영라!

 

우리에게 외적인 꾸밈새가 중요했다면 7년이나 손아래인 《그 동무》와 너사이에 어떻게 사랑(우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가?)의 감정이 싹 터났겠니… 저도 몰래 사랑이라는 표현을 마음속으로 떠올린것때문에 얼굴이 뜨거위났다. 벽거울안에 마주선 자기의 눈길에 못이겨 게면쩍게 물러나 마가을 붉은 석양이 흘러드는 창가로 갔다. 창밖으로 옛날 외적을 막으려고 흙을 구워 쌓았던 토성둔덕에 뿌린 봄시금치가 푸릿푸릿 돋아난것이 내다보였다. 곧 추위가 올터인데 생각없이 푸른 싹을 땅우에 내민 그것들이 가엽었다. 여러해를 두고 지켜온 참된 우정을 아니아니하면서도 끝내는 사랑으로 꺾어버린때문일가?

 

나는 처녀다. 아직도 청춘이다. 걷잡을수 없이 타오르는 이성의 불길을 더는 꺼버릴수 없어. 영원히 《작은 매》라 불리우면서 《그 동무》의 바다처럼 억센 육체와 하늘처럼 푸른 마음속에서 훨훨 날아오르고 내리꼰지며 흔히들 말하는 《녀자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될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쓸쓸할가?

 

극장은 초만원이였다. 통로에까지 가득찬 사람들속을 비집고 표에 밝혀진 좌석번호를 찾으니 뜻밖에도 객석 중심에 있는 귀빈석이였다. 중앙에 빈 자리 하나가 나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좌석에 앉아 있는 《그 동무》의 모습이 후드득 안겨왔다. 그는 모재비걸음으로 믿어지지 않는 행복을 향해 다가갔다. …

 

무대우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있다. 땅크의 무한궤도소리! 마차를 타고가던 부상병후송대가 갑자기 멈춰섰다.

 

《동무들, 적땅크가 북으로 밀려오고있소.》

 

믿을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후송대는 홀지에 적후에 들었다. 후송대를 책임진 처녀간호원 강연옥! 그러니 우리가 후퇴한단 말인가? 적후의 밤. 반짝이는 별무리! 간호원 강연옥은 북녘하늘을 우러러 위대한 장군님을 그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

 

 

공연을 보고난 다음부터 그의 마음속에서는 줄곧 그 노래구절이 울렸다.

 

 

    창문가에 불 밝은 최고사령부

 

    장군님계신 곳은 그 어데일가

 

 

노래소리와 함께 어쩐지 자기도 대오에서 멀리 떨어진것만 같은 외로움이 북받쳤다. 노래의 힘일거야. 얼마간 지나면 일없어지겠지. 눈부신 영예와 벅찬 행복이 기다리고있는데 쓸쓸해 할 까닭이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을 거슬러 울려오는 처녀간호원의 노래소리는 그가 애써 잠 재워두려는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현영라! 너는 지금 자기 대오에서 리탈하고있어. 접점을 끝낸 여기에 남아서 네가 할수 있는것이란 명예와 사랑을 얻고 행복을 누리는 일뿐이다. 물론 7년간의 사심없는 고난으로 대가를 치른 응당한 행복이지만 보다 정당한 길을 택한다면 연구소에 돌아가 새로운 과제를 받고 지금까지의 고난을 또다시 시작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너는 이것을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과학자의 량심과 숨박곡질을 하고있지. 어찌할수 없는듯이 자기를 속여가면서…

 

돌아서라, 현영라! 참되게 살려면 어려운 길을 택하라. 일생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에 기쁨을 드리겠다던 당초의 좌우명을 지키라. 결혼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 미루자. 좀 더 큰 일을 해낸 다음에… 그는 주춤거리다가는 주저앉고 말것 같아서 급히 떠났다. 배낭에 실험자료들과 접점들을 넣어가지고 마치 지질탐사대에 측정하러가는듯이 남 몰래 떠났다. 설밑이였다.

 

연구소정문에 낯선 접수원처녀가 있었다. 처녀는 그의 증명서를 보고도 의심쩍은 눈초리로 행색을 살피더니 쌀쌀하니 말했다.

 

《알아보자요.》

 

《뭘 알아본다는거예요. 제 집에 왔는데…》

 

《글쎄 기다리라요.》

 

처녀는 그의 증명서를 만지작거리면서 전화를 걸었다. 현영라라는 사람이 연구소에 있는가를 확인해보려는 모양이였다.

 

그는 우들우들 떨면서 기다렸다.

 

책임자인듯 한 처녀가 나타나더니 접수원과 함께 이쪽으로 의심스런 눈빛을 던지며 말을 주고 받는다. 얼마후 소장이 나와서야 그를 확인하였다.

 

《현동무가 아니요? 그런데 이건 무슨 차림이요?》

 

그는 그제서야 시퍼렇게 언 얼굴을 보자기로 둘러감고 솜옷도 없이 탄부제복에 로동화를 신고 덜덜 떨고있는 자기 몰골을 의식하였다. 게다가 청남에서 통근렬차에 올라 화독을 붙안고왔더니 얼굴이며 손이며가 온통 탄먼지투성이였다. 왈칵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그는 연구소로 돌아왔다.

 

두달이 지난 이듬해 어느 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연구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1t의 접점소재를 안주지구탄광련합에 보내줄데 대한 믿음어린 과업을 안겨주시였다.

 

탄광에서는 접점소재를 싣고온 그에게 《연회》를 차려주었다. 정든 땅, 정든 사람들속에서 다시 두달동안 접점생산건투를 벌려 2천여개의 접점일식을 보장해주었다. 그 사이에 《그 동무》는 몇해동안 기다려온 늙은 어머님을 데려다가 집을 잡고 안해를 맞아들였다.…

 

연구소에 돌아오니 민족최대의 명절 4월 15일! 온 연구소가 환영의식을 차려서 맞이해주었다. 그는 사람들속에서 자기를 항해 꽃보라를 뿌리는 처녀! 쌀쌀하니 눈물나는 푸대접을 안겨주던 접수원처녀를 보았다.

 

꽃보라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의 앞으로 보내주신 선물을 받아안았다.

 

그해에 전국자연과학부문 연구발표회에서 그의 접점연구론문이 1등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처럼 바라던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이 되였다.

 

《저의 나이 이제는 40이 넘었지만 저를 오늘과 같이 참되게 살도록 이끌어주고 믿음을 주고 키워준것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품이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일편단심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만을 믿고 따르며 온 생애를 우리 당에 바치겠다는것을 피로써 맹세합니다. 저는 당면하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제가 새로 맡은 <극소형자기원판 구동장치> 재료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과학기술에서도 계단식으로 남의 뒤꼬리나 따를것이 아니라 남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 걷는 조선사람의 본때로 첨단기술을 따라 앞설데 대한 작전을 펼치시고 최단기간내에 전자계산기생산을 주체화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리고 고도기술의 종합체로 불리우는 극소형밀페식경자기원판구동장치의 견본품을 연구소에 보내주시였다.

 

현영라는 대담하게 경자기원판을 맡아나섰다. 조건을 다 갖추어놓고 하는 연구사업이 어디에 있는가.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견본품이 있고 또 그이께서 바라시는 문제인데 무조건 해내야 한다! 조건에 따라서 할수 있다, 할수 없다를 론하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딸의 태도가 아니다!

 

그는 경자기원판의 합리적인 합금조성을 찾기 위한 수백건의 용해실험을 진행하는 한편 새로운 쇠물처리방법들과 독창적인 쇠물려과방법들을 하나하나 탐구해나갔다.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진공유도로가 없이 일반대기중에서 용해주조가 진행되는 조건에서 쇠물표면을 산소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자니 하는수없이 《ㅂ》라는 유해윈소를 넣어야 하는 문제가 나섰다.

 

10년전 다른 과제를 수행할 때 가스중독으로 장기간 치료 받은적이 있어 누구보다 그 해독성을 잘 알고있는 그로서는 주춤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 그에게 떠오른것은 전국숨은공로자대회에 참가하여 머리 희여지신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지척에서 뵈옵고 걷잡을수 없이 눈물 흘리던 일이였다. 한오리한오리 나라와 인민을 위한 길에서 희여지신 머리가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일생을 바쳐 단 한번의 기쁨이라도 드릴수 있다면 그때의 아픔이 좀 가셔지리라. )

 

죽음도 각오하라. 네가 참되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는 유해롭고 위험한 합금공정, 쇠물처리공정, 주조공정 전반을 직접 조작하면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마침내 자기원판소재의 기술적요구를 일정하게 만족시킨 재료소재를 만들어냈다. 《바위돌에다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 격》이였다.

 

과학원에 올려보낼 첫 시제품의 거울같은 표면에 비친 얼굴을 보니 왜서인지 성공의 기쁨대신 시름이 비껴있었다. 피타는 노력과 고난의 대가로 얻어진 그의 창조물속에서 최종적인 성공이 내다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목적했던 원판소재의 질지표를 달성하자면 지금까지보다 더 어려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런데 육체가 견디여 주겠는지?

 

오랜 세월 극복하기 어려운 육체적부담을 이겨오는 과정에 혹사당한 몸의 깊은 곳에서 매우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것이다.

 

 

×

 

 

현영라는 창문에서 눈길을 거두며 과장선생의 말을 상기했다.

 

《유선암이라는건 초기에 발견하면 완전히 치료할수 있는것인데 너무 오래 끼고있었소.》

 

자기의 침대로 실내화를 끌면서 천천히 돌아왔다. 통로 저쪽 침대에 한달전에 수술받은 녀인의 남편이 병문안을 왔기때문에 그냥 등을 돌려대고 창밖을 내다보는것은 실례였다.

 

그 몇발자국을 옮기는 사이에 그는 이 병원에 들어온 열이틀동안 매일처럼 자신을 다잡아온 생각을 또다시 뇌이였다.

 

(운명은 가려는자는 데리고 가고 안가려는자는 끌고간다고 했지. 어찌겠니. 생활은 나의 의지대로 줄기차게 이끌어왔건만 죽고사는 일만은 어찌할수 없으니 운명에 맡겨라. 가슴이 아픈것은 죽음보다 나의 두뇌, 나의 경험, 나의 지식과 그동안 벼리여 온 의지를 가지고 아직도 많은 일을 할수 있는데 그것들과 헤여져야만 하는것이다.)

 

현영라는 침대머리맡에 있는 사물함에서 그동안 정리해둔 자료보따리를 끄집어냈다. 이것만은 운명에 맡겨버릴수 없다. 내가 죽어도 다른 사람이 맡아서 끝까지 해야 한다.

 

그는 서면화해놓은 인계자료들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놓친 점은 없는지, 보충할것은 없겠는지? 다 훑어보고 나니 결국 하나하나의 수치와 지표들을 생의 마지막순간들과 바꾸면서 얻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성공이 빤히 내다보이는 이 귀중한 자료들을 두고 떠나야 할 슬픔에 눈물이 났다.

 

만년필을 들고 언제부터 벼르던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초급당비서동지! 당원 현영라는…》 래일 마지막이라고 아니하기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녀성이기를 포기하고라도 살아서 일하리라 결심했지만…

 

이튿날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기나긴 복도를 걸어서 수술실곁에 있는 준비실로 갔다. 인생의 마지막길을 외롭게 걸어가는 그의 마음은 복도의 창문으로 해서 함뿍 흘러드는 해빛을 받아 조금 위로가 되였다.

 

준비실에 들어가니 밀차가 준비되고 그곁에서 마취의사가 격려하는 눈빛을 지어보이며 준비하고있었다. 마취의사가 주사기에 모르핀을 빨아넣고있다. 그 침착한 동작을 지켜보느라니 갑자기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났다가 한번 가면 그만이다. 귀중한 생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치있는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사람은 사는것이다!)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전에만, 아니 조금전에만 깨달았어도…

 

그는 자기에게나 남에게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것을 절대의 인격으로 여겼다.

 

이것이 정녕 마지막길이라면 아무 소용도 없는 그런 생각때문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것이다.

 

연구소에서는 《종합적인 진단을 받기 위해》 떠나왔으니 여기서 사태가 이렇게 번진줄은 모르고있을것이다. 이제라도 돌이킬수 있다면 부모형제들과 연구소동지들에게 알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눈에 비낀 자기의 모습을 보고싶었다.

 

아! 인정이 이다지도 그리울줄은!…

 

간호원이 밀차에 누운 그의 몸밑으로 손을 넣어 조심히 모로 돌려눕히고 척추에 선뜩하니 약솜을 비볐다.

 

그는 생사를 운명에 맡기면서 눈을 감았다.

 

 

×

 

 

그때 현영라의 생을 당중앙위원회의 두 일군이 간막이 저쪽에서 지키고있었다.

 

아니, 그들을 통하여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그의 생을 지켜보고 계시였다.

 

어제 현영라가 창가에 기대서서 자기의 인생을 더듬어보고있던 그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서 과학원을 현지지도하고 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전시관을 돌아보시다가 진렬대에 놓여있는 자그만한 경자기원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일군들의 설명을 들으시고 훌륭하다고, 우리가 이것을 만들어낸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것을 연구한 사람이 유색금속연구소의 녀성물리학자 현영라라는 일군들의 말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곧 현영라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시였다.

 

그이께서 몇해전 안주지구탄광련합기업소에 내려가시였을 때 그곳 책임비서가 자기네 탄광에 와있던 처녀연구사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그가 연구해낸 접점을 우선 쓸수 있게 보장해주었으면 한다고 청을 드렸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영라의 이름을 다시금 외우시며 한번 만나보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시였다.

 

현영라연구사가 지금 암진단을 받고 종양연구소에서 수술을 기다리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과학자 한사람한사람을 금방석에 앉히고 싶은것이 자신의 심정이라고 간곡히 말씀하시면서 그를 꼭 살려내고 건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산삼과 록용을 비롯하여 많은 귀한 약들을 보내주시였다.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이 생명수로 되여 현영라는 살아났다.

 

그러나 이 감격적인 이야기는 그가 충격적인 흥분을 감당해낼만큼 회복기에 들어섰을 때에야 전달되였다.

 

그는 울었다. 행복에 겨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일생을 통하여 단 한번이라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자던 그 인생최대의 희망이 이렇게 문득 현실로 안겨오다니, 이것이 정말인가 꿈인가!… 그리하여 《깜장뀨리》로 시작된 현영라의 인생은 당의 참된 딸로,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그 이름을 아시는 녀성물리학자로 영광의 절정에 오르게 되였다.

 

 

×

 

 

그때로부터 10여년세월이 흘러간후에 우리의 주인공 현영라는 시대의 영웅으로 떠받들리워 제2의 천리마대진군선구자대회 연단에 오르게 된다.

 

《…제가 어떻게 달리 살수 있었겠습니까.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슬픔과 〈고난의 행군〉이 겹치여 어쩔바를 모르던 때에도 우리를 일떠세워주신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의장에 나오신 그 시각에도 어버이수령님의 육성록음영구보존을 위한 사업정형을 료해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일떠섰습니다. 〈고난의 행군〉에 강행군이 이어지는 어려움속에서도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어나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육성록음을 변함없이 보존할수 있는 금속기억매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과학자로서 응당 할 일을 한 저에게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진 고급손목시계와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금반지를 비롯하여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와 함께 박사학위를 안겨주시였으며 오늘은 이처럼 로력영웅으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의 선구자로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연단우에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지금 현영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속에 자기도 있다는것을 느낀다. 새로 받아안은 연구과제가 두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있지만 거기서부터 행복이 오고 영생이 마련된다는것을 그는 안다. 보다 더 명백한것은 너무나 눈부신 대회의 주석단으로부터 피치 못해 한동안 두고 떠났던 연구사업에로 마침내 돌아왔다는 느낌이였다.

 

노란 라크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책상에 마주 앉아 빼람을 열고 현미촬영한 금속시편사진들을 꺼내여 한장 또 한장 번져보는 녀성물리학자의 머리속에서는 어느새 일이 시작되였다.

 

(확실히 55번을 중심으로 금속조직밀도가 고르로와지고있어.…)

 

마치 어린 소녀가 남의 자리에 앉아서 엄청난 미래를 꿈 꾸는듯한 평소의 낯익은 모습으로 그는 돌아왔다. (끝)

 

 

 

 관련기사

►[단편소설] 생은 아름답다(상)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기자회견문] 미국, 방탄청년단 방문 불허
조-미 대결전에서 조선의 승리는 합리적이며 과학적이다
[성명] 방탄청년단의 방미불허를 한 트럼프정부를 규탄한다.
엘에이, 청년원정단의 평화투쟁에 연대하는 기자회견
미 제국의 중남미 침탈사(1)
세포지구 축산기지 준공은 수소탄보다 더 무서운 무기
환영받지 못한 중국특사
최근게시물
[사진으로 보는 노동신문] 11월 21일(화)
[제목으로 보는 노동신문] 11월 21일(화)
[동영상]유투브로 보는 조선중앙텔레비젼 보도 11월 20일(월)
[카드뉴스1] 코리아반도 안보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미국은 왜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였나?
지구환경파괴의 주범들
[만리마시대] 군사분야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북, 높은 완치율의 당뇨병 특효약 외 2
[개벽예감275] 트럼프의 중재요청과 시진핑의 특사파견, 허탕쳤다
【인터뷰】조선에서의 탄소하나화학공업의 창설/김화식 화학공업성 부상
무력증강이 가져올 파국적 후과를 경고
북, 수소탄보다 강한 자력갱생으로 승리할 것 강조
Copyright ⓒ 2000-2017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