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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전교조 위원장 정진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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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08-12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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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모


△정진화 선생님 ⓒ사진_최상천


<사진으로 보는 사람이야기>-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6월 6일,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늘 만나는 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인 정진화 선생님이다. 본래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정진화 선생님이 다른 일이 안 끝나서 5시로 미뤘다. 4시에 민주노총 사무실 복도에서 기다렸다. 4시 반 쯤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정진화 위원장이 나온다.
정진화 위원장은 요즘 ‘교육 희망 행진 21’이라는 이름으로 교육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다. 11월까지 전국을 돌면서 학생, 학부모, 교원, 시민단체를 가리지 않고 만나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고 대책을 논의하는 일이라고 한다.
올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18주년이다. 나는 그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부드러우면서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제 나이 서른 살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서 도덕 선생을 하고 있었어요. 전교조 분회를 만들었는데 학교장이 조합원들을 너무 괴롭혔죠. 시어머니한테까지 전화해서 당신 며느리가 불순한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내고 전교조에 가담하고 있어서 짤리게 생겼다, 빨리 설득해서 건져라(웃음). 교사들은 부모 시부모 하고 관계 때문에 어려웠고 경제 곤란도 따르기도 하고 ‘현장에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 다 잘리면 어떡하냐’고 해서 다른 선생님들은 탈퇴 각서를 쓰고 현장에 남아 있었고 저 혼자 해직이 됐어요.”
정진화 선생님이 사회의식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 때부터였다. 1학년 말에 박정희가 살해되는 10·26이 터졌고 1980년 민주화의 봄에서 군부독재가 시작되어 자연스레 사회 현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교사가 될 뜻을 품고 학우들과 《제3세계 교육론》, 《억눌린 자의 교육학》, 《페다고지》, 《학교는 죽었다》 같은 책들을 보면서 올바른 세상과 올바른 교사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검정고시 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정진화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학교는 아이들을 억누르고 권위주의가 판을 쳤다. 정진화 선생님은 그 당시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쳤는데 독재 정권 아래서 학교가 정권을 홍보하는 성격이 강해 아이들에게 진실에 바탕을 둔 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멸공, 승공, 반공으로 대변되는, 반쪽을 외면한 교육과 추상적인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정진화 선생님은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싶었다.
수많은 열사들이 피를 흘려 죽어가면서 투쟁한 결과 1987년 전두환 독재는 물러났다. 1989년 참교육을 내세운 전교조가 창립됐고 정진화 선생님은 당연히 전교조에 가입했다. 독재정권의 적자인 노태우 정권은 ‘신성한 교사가 노동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1,500명이나 되는 선생님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그 가운데 정진화 선생님도 있었다.
“저는 그때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 하는 생각도 있었고 ‘세상을 경험할 때가 왔다’는 생각도 했어요. ‘2, 3년 뒤에 뵙겠습니다’ 하고 교무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학교를 떠났죠.”
하지만 생활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마저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갇혔다. 학교에 남아 있던 동료들이 후원금을 모아 주어 살았다.
“한 달에 35만 원으로 살았어요. 경조사비 못 내고 옷가지 같은 건 살 필요도 없었고, 상근 활동을 계속하면서 노조, 단체 만나면서 전교조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 교육하고 알리면서 다녔어요. 교육 선전국에 있다 보니까 힘들어도 즐거웠지요.”


△ ⓒ△정진화 선생님 ⓒ사진_최상천


정진화 선생님은 4년 뒤 학교로 당당히 돌아갔고 1999년 전교조는 합법화가 되었다. 정진화 선생님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장과 부대변인을 거쳐 지난해 12월 위원장에 당선됐다. 선거 공약이 ‘아이들이 행복한 질 높은 공교육’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교육복지’ 실현이었다.
“저는 전교조 운동을 하면서 꿈을 이룬 거 같아요. 중학교 2학년 때는 존 듀이가 쓴 실험학교에 관한 책을 보면서 실험학교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 학교가 사립이어서 교실이 쥐죽은 듯한 분위기에서 억눌린 사춘기를 보냈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말하고 체험하는…`….
적어도 전교조에서 그걸 꿈꾸고 실천하는 일을 해서 행복해요. 이젠 아이들이 옛날하고 달라졌어요. 옛날엔 한 반에 70명이 넘었어도 교탁 옆을 자로 한 대 때리면 조용해졌어요. 이제는 5분 이상 선생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이젠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활동하게 해야지 교사가 들려주는 식의 교육은 이제 불가능한 시대가 됐어요.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내야 하고 시대와 아이들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내야 하는 거죠. 그런 것들에 역점을 두고 열심히 할려고 합니다.“
정진화 선생님은 앞으로 할 일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했다. 내가 어릴 때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1998년 무렵 우리 아이가 중학교 때, 나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면서 담임보다 전교조 선생님들을 먼저 찾았다. 그만큼 전교조 선생님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교조가 창립할 때 수구 신문들이 ‘교사가 어떻게 노동자가 될 수 있냐’고 비아냥거려도, ‘빨갱이’라고 색깔론을 들먹여도 나는 전교조 선생님을 믿었다. 전교조는 여전히 아이들의 희망이다. 글·안건모, 사진·최상천

출처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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